암스테르담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읽고 난 이후 감탄을 몇 번이나 하게 된다. 우연의 충돌로 인해 빚어진 필연의 결과가 주는 놀라움과 소설 전체 플롯의 기가 막힌 대칭성. 이 소설은 대위법으로 작곡된 단단하게 빛나는 한 편의 푸가와 다름 아니다.

작곡가 클라이브와 신문사 편집국장 버넌, 몰리라는 매력적인 여성의 옛 애인이기도 한 이들. 그들은 자기 일에 어마어마하게 몰두해 있지만 그 일의 중심부엔 핵심, 심장, 의미가 없다. 클라이브가 레이크 디스트릭트에 등산을 가서 겪은 일은 그의 최후 교향곡이 베토벤의 카피에 불과하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안쓰럽고, 영국 정치의 방향성에 대해 대단히 걱정하는 양 신문사 일을 하는 버넌도 결국 황색 저널리즘에 매몰된 가엾은 인간에 불과하다.

1.
제목이 암스테르담인데, 실제 이 소설의 대부분의 배경은 런던이다. 클라이브와 버넌은 런더너인 셈. <암스테르담>이라는 제목이 이 소설에서 갖는 의미는 <울프 홀>이라는 제목이 그 소설에서 갖는 의미와 가까워 보였다. 모두 퇴락의 길. 다만 울프 홀은 최고점, 그래서 이제 내려갈 일 뿐인.. 암스테르담은 최저점이자 퇴락의 종료점, 죽음.


2.
가머니(몰리의 애인 넷 중 또 하나)의 와이프 로즈가 뱀 같은 기자들을 피해 달리는 장면과 버넌이 회의실로 달려가 정신 없이 일을 하는 장면이 교차하는 장면에서, “It must have been love”가 카페 모서리 스피커에서 울려 퍼졌다. 음악과 어찌나 잘 매칭되던지, 내가 이 소설로 영화를 만든다면 반드시 이 장면에선 이 곡을 삽입 하리라.


3.
막판 암스테르담 장면에서 나는 일단 읽기를 멈췄다. 하루를 보낸 후 나머지를 마저 읽어 내려갔다. 이 소설의 후반부에서 느끼는 서스펜스는 스티븐 킹이나 존 그리샴, 스티그 라르손에 비해 손색이 없다. 그렇기에 일시 정지할 필요가 있었다. 심호흡을 하고, 다시 플레이버튼을 누른 후 우리 모습과 결코 다르지 않을 그들. ‘저마다의 과오를 향해’ 가는 그 친구들의 폭주를 천천히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바라봐야만 했다. 이 시대의 일중독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다. 그러고 싶은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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