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싱턴의 유령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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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침묵>에서 ‘깊이’와 ‘얼굴’을 말하는 마지막 부분을 출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읽어 내려갔다. 지하철 특유의 기계음과 서 있는 자리에서도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부산스런 주변 사람들이 점차 희미해져 갔다. ‘깊이를 이해 못하는 사람’과 ‘얼굴을 갖지 않은 사람’을 이야기하는 오자와의 말에 집중하니 나는 내가 아는 사람들 하나하나가 눈 앞에서 나타났다 빠르게 사라져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얘기는 내가 하고 싶은 얘기 같았다. 내가 아주 우연한 기회에 누군가에게 쏟아내고 싶어했던 언어다. 그것은 내 얘기였고 내가 세상에 대해 품고 있는 근본적인 적의를 나타내는 말이었다. 그토록 무서운 파괴력을 속으로 단단히 품고 있는 그 낱말들을 아침 4호선 한강 위 출근길에서 맞이한 나는 이 하루를 또 어떻게 견뎌야 할지 잠깐 동안 아득했다.

견딘다.  


이토록 무겁게 느껴지는 한 마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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