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정도 - 윤석철 교수 제4의 10년 주기 작作
윤석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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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을 주기로 한다는 그의 책이 나오자 군말 없이 집어 들었다. 많은 경영학도들이 그렇듯 나도 그의 <<경영학적 사고의 틀>>과 <<프린시피아 매네지멘타>>를 밤 늦도록 머리 싸매며 읽었었다. 실은 지금도 그때 그 책들에서 다뤘던 물리학적, 기계적, 화학적, 수학적 사례들은 거의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영학의 밑받침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그만큼 확실하고 실감나게 알려준 이는 없었다는 점에서 고마운 존재다. 
 

책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말년의 양식>이 문득 생각난다. 한 작가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그의 작품의 질이 어떤 식으로 변모하는지에 대한 글이었는데, 특히 나이 들어서 나타나는 특징들에 대한 글이었다. 이 책. 제목에서부터 연륜이 묻어져 나온다. 이런 거창한 제목을 책 제목으로 쓸 수 있는 이는 아마도… 많지는 않으리라 그렇게 짐작해 본다.

‘간결함’을 추구하라고 처음부터 말한다. 저자는 삶을 수단매체와 목적함수라는 두 개의 개념으로 간결화해서 삶을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는 정도. 방법을 말한다. 경영학이 그렇듯 의사결정의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겠지.

끄트머리에 나오는 단어 ‘우회축적(roundabout accumulation)’이 마음에 와 닿았다. 미끄럼틀 위를 어떤 물체가 미끄러져 내려온다고 할 때, 내려오기 위해 소요되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싶다면 미끄럼틀의 미끄럼 면이 어떤 형태를 가져야 할까를 논하면서 과학적으로 나온 해(解)가 사이클로이드 곡선이라는 점을 말한다. 그러면서 그 곡선이 전기/후기로 나눌 수 있고 전기는 ‘축적’, 후기는 ‘발산’의 지혜가 깃들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 우회축적이 성공하려면 1. 목적함수가 분명히 정립되어 있어야 하고 2. 정립된 목적함수 달성에 필요한 수단매체가 무엇인지를 정의 3. 수단매체의 형성 및 축적을 위해 필요한 단기적 희생을 감내하는 것. 이라고 말하는데.. 보다시피 셋 모두 쉽지 않은 것들이다.

예를 들어 판사가 되기로 작정하고 사법고시를 준비한다고 할 때, 1과 2번은 힘들지만 당연한 과정이지만, 이 ‘단기적 희생’이라는 것은 막막한 부분이 없지 않다. ‘단기적 희생’은 ‘포기의 시점’을 잡아야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고 생각한다. ‘단기’를 어느 정도로 볼 것인가.. 청춘의 어느 정도를 할애해야 하는가? 어려운 문제다. 결국 세 번째 단기적 희생의 감내는 원칙의 문제인 것 같다. 처음부터 어떤 원칙을 세워놓고 그 원칙에서 벗어나게 되면 깨끗이 승복하고 포기할 줄 아는 것. 내가 생각하고 내가 고민해야 할 부분은 이것이다. 정신의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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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이 갖춰야 할 수사학
제이슨 델 간디오 지음, 김상우 옮김 / 동녘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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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는 행동이다.
언어로 세상 바꾸기.
몸으로 하는 혁명.

목차가 전부를 담고 있다시피 하고 있다. 현재 급진주의자로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은 세부적 매뉴얼로 참조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나 같은 이에게는 선전선동의 문장이 주는 자극이 더 눈에 띄었다.

거부감이 없지 않다.
수사라는 말 때문인데, 철학의 배경에서가 아니라 직장인으로서 살아가는 방법의 거의 대부분을 포섭하는 단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기획서의 단어 하나 문장 한 줄 세심하게 경영진의 입맛에 맞추기, 회의에서 자기 할 말은 다 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의견은 교묘하게 물리치기.. 이것이 능력 있는 샐러리맨의 국영수다. 그야말로 수사학. 그런 의미에서 꺼려진다는 얘기다.

다른 맥락. 즉 밖으로 표현되는 것이 모든 것일 수 있다. 라는 뜻에서는 점점 더 수긍이 간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으니까 행복해진다는 말처럼, 나이를 먹을수록 ‘누적된 말의 위력’이란 게 어느 정도인지 점점 실감하게 된다. 내 삶의 상당 부분은 내가 내뱉은 말로 인해 형성되었다는 사실은, 말과 글과 몸의 매무새를 계속해서 다듬어 나가야 하는 당위를 알려 준다.

관심은 저자가 많이 언급한 네그리와 하트의 <<다중>>으로 전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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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퀘스천 - 삶의 의미라는 커다란 물음 Meaning of Life 시리즈 1
줄리언 바지니 지음, 문은실.이윤 옮김 / 필로소픽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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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경험기계(매트릭스의 세계) 안에서 살 기회를 거부할 때 우리가 행복보다 우위에 놓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볼 때 가장 그럴듯한 답은 우리가 ‘진실성(authenticity)’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는 가치들을 소중히 여긴다는 사실이다. 라고 줄리언 바지니는 말한다.

그러면서도 ‘진실성’이 무조건 행복보다 더 나은 가치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어쨌든 행복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부여하는 무엇이 있음을 입증한다고 하면서, ‘우리는 인생의 의미를 찾는 일이 그저 행복이 무엇인지, 어떻게 행복해질 것인지를 결정하는 문제라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라고 말한다.

의문. 과연 매트릭스에서 빨간 약과 파란 약 중에서 빨간 약을 선택한 것이 네오가 ‘진실성’이라는 가치를 더 소중히 여겨서였을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줄리언 바지니와 다른 생각을 했다. 진실성이라기 보다는 호기심. 즉 이미 경험했던 매트릭스 말고 다른 세계에 대한 욕망이 더 크지 않았을까?

줄리언 바지니는 이 책에서 신앙, 이타주의, 대의명분, 행복, 성공, 쾌락주의, 해탈, 허무주의. 이렇게 여덟 가지, 삶의 의미라는 질문에 자주 언급되는 것들에 대해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관점에서 각각의 가치들이 단 하나로는 인생의 의미가 될 수 없음을 차근차근 논박해 나간다. ‘진실성’이라는 가치를 언급하는 대목은 Happy를 논하는 챕터에서 다루고 있는데, 나의 의문은 이런 것이었다. 여덟 가지라고는 하지만 모두다 욕망 아닌가? 뭐야 뭐 하러 여덟 가지씩이나 들먹여가며 이렇게 길게 얘기한 거야 대체.. 이렇게 좀 투덜거리긴 했지만, 이 책. 보기 보다 엣지 있다. 읽는 맛이 난다. 기름기가 없고 겉멋이 느껴지지 않는다. 논리는 심플하고 명료하다. 때로 놓친 것들도 있는 것 같지만, 겸허하게 (때론 소심하게 느껴질 정도로) 그럴 수 있음을 인정한다.


<갈매기>는 희망 없이 끝나지 않는다. 포부가 넘치는 배우 니나는 극의 말미에 다가갈 무렵 말한다. “이제는 알아요. 마침내 이해하게 되었어요. 콘스탄틴, 우리에게는 말이예요, 글을 쓰든 연기를 하든지 간에 중요한 것은 내가 꿈꾸었던 명예와 영광이 아니예요. 중요한 건 견뎌내는 힘이예요.”

성공에 대해 논하는 챕터에서 바지니는 체호프의 소설 등장인물 니나를 예로 들며 ‘성공’이나 ‘명예’보다 더 중요한 ‘투쟁’을 말한다. 이때 좀 울컥했는데, 이렇게 동조할 수 밖에 없는 (즉 감동적인) 예시를 책에 사용하면 독자의 관심이 완전히 다른 데로 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예시로 이 책 보다는 체호프의 소설들이 더 눈에 아른거렸으니까… 어쨌든 성공도 삶의 의미라고 말하기엔 미진하다. 라고 저자는 말한다.


삶의 의미는 몇 가지 가치를 실로 엮어 내야 하는 것 같다. 줄리언 바지니의 결론처럼.
진실성, 견뎌내기(투쟁), 카르페 디엠.. 나도 이런 말들이 다른 것들 보다 더 많이 끌린다. 이 말들에는 윤석철의 <<삶의 정도>>에서 읽은 naked strength가 느껴진다. 몸으로 느끼는 전율 같은 거. 전적으로 부딪치는 것. 지금 후쿠시마 원전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이들에게서 느껴지는 것. 그런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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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모메 식당 디 아더스 The Others 7
무레 요코 지음, 권남희 옮김 / 푸른숲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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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어이없는 행복감.
축 늘어진 퇴근길에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한 카모메 식당은 내 발걸음을 자연스럽게 동네 카페로 이끌었다. 이 기분. 행복감을 멈춤 없이 즐기고 싶은 마음. 사치에의 삶에 대한 태도. 그 태평스러움은 일본대지진과 리비아 사태, 손해보고 있는 주식과 직장에서의 스트레스, 그건 것들에 대한 나의 반응을 싹 쓸어버리고 있었다.


발목을 잡는 것들을 어떻게 요리해야 하나?
친한 여자 동료들이 작년부터 그 어느 때 보다 많이 해외를 들락거리고 있다. 그 친구들이 나더러, 밥 해줘야 할 사람이 없는 나 같은 솔로라면 편한 마음으로 그냥 쓩 언제라도 날아가겠다고 한다. 그래 도대체 내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정말 바보 같이 어느새 젖어버린 것 아닌가? 습관에 쩔은 것 아닌가? 긴 여행, 돌아오는 것을 기약하지 않는 여행을 가고 싶어.. 라는 말은 소망일뿐, 결국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나는 놓치고 보내 버리고 낭비하고 있는 것 아닌가? 사치에는 오랜 준비 끝에, 미도리와 마사코는 자신을 붙잡고 있는 것들이 느슨해 졌을 때 느닷없이 갑작스럽게 그냥 아무 뒷생각도 없이 일본을 떠나 아주 먼 곳. 핀란드로 날아왔다. 느닷없음과 태평스러움. 읽는 내내 행복했던 이유는 아마도 이 둘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족은 내가 원하는 관계가 아니다. 하지만, 가족 같은 관계는 진정으로 내게 필요하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하는 가족. 거부감이 들지도 특별하게 애착이 가지도 않는 말. 가족. 이라는 말. 가만 생각해 보니 내게 필요한 것은 가족 같은 관계이지 가족은 아니다. 아무 관계도 없던 이들 세 명이 핀란드 헬싱키 카모메 식당에 모여 함께 일하고 생활하고 삶을 행복하게 향유할 수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비록 판타지라고 말할 수 있다 해도)을 보여 준다. 가슴 설레게 하는 것이 거기에 있다. 의지를 내세우지 않는 의지를 기반으로 한 친구 같은 가족 같은 관계. 수평적 관계. 그래서 언제라도 맘이 또 다른 데로 흘러가면 태평스럽게 그리로 또 떠날 수 있을 것 같은 관계. 카모메 식당은 그래서 열린 창문 같다. 산뜻한 바람이 불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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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집
김희경 지음,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그림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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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들 가지고는 소용없을, 종이 페이지의 넘김으로만 느낄 수 있는 자잘한 재미를 주는 그림들이다.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그림은 쉽게 정이 안가고 조금은 딱딱하고 차갑고 무섭기까지 하지만, 페이지를 넘길 적마다 넘실거리는 그림들의 율동은 아.. 이 사람 그리 접근하기 까다로운 사람은 아닌 것 같아. 하는 생각을 품게 만든다. 김희경의 철학적 글과 100% 이상 매칭되면서, 마음은 ‘집’이라는 은유를 펼쳐 보인다. 
 


마음도 집처럼 결국 내 스타일대로 꾸려져 갈 것이라는 점에서, 좀 바꿔보고 다르게 활용해 보고 그러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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