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으로 풍덩 빠지지 못하고 물웅덩이 언저리에서만 서성거리고 있는 형국이다. 요즘 내가 만지고 펴보고 훑어본 것들이 대부분 그렇다. 딱히 책의 잘못은 아니고 다만 기질적으로 나와 잘 어울리지 않는 것인지 하여튼 날고 있는 기분은 아니다. 김애란의 소설보다 먼저 읽기 시작했는데 마저 읽지 못하고 있는 책들에 대해 한 두 문장이라도 좀 써보면 낫지 않을까 해서.
헬프, 캐스린 스토킷
최근의 이런 파편화된 독서 경향을 강하게 한 책이다. 소재나 문체, 주제나 등장인물 등 크게 거슬리는 것이 없는데도 이렇다. 세 사람의 화자가 있어서 그런 것일까? 확실히 그녀들의 똑똑한 말솜씨와 모험에 뛰어드는 용기(또는 무모함)는 나로 하여금 모종의 불안감을 느끼게 하는 것 같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최인호
첫 문장부터 철학적이다. 앞 부분은 마치 라캉의 상징계와 실재계를 풀어 놓은 이야기 같다. 캐스린 스토킷의 작품은 지하의 불안 같은 것 때문에 읽기 추동력이 약해진 것 같은 반면 이 소설은 독자에게 전면적으로 불안감을 안기고 있는 기분이다. 약간 환상적이어서 더 그런 기분.
느낌의 공동체, 신형철
나로선 좀 기묘한 느낌이다. 자기 완결성이랄까 무결성이라고 할까. 좀더 읽어보고 생각해 봐야 할 듯.
철학 연습, 서동욱
이건 제일 빨리 읽을 듯 싶긴 하다. 확실히 현대철학은 진득하니 그 중 하나의 사상이라도 좀 붙들고 공부를 해야 할 성 싶다. 매번 소개서 비슷한 것만 읽어서 그런지 대충 분위기는 파악하겠는데 조금만 안으로 더 들어가려면 이것과 저것이 헷갈려… 각 철학자의 개념, 세포벽이랄까 세포막이랄까 하여간 그 모양을 유지하게 해주는 어떤 경계들이 매번 애매한 기분이다. 찝찔한 기분이 든다.
주석 달린 월든, 제프리 크래머 주석
월든은 몇 번 읽었지만, 주석을 달아 놓으니 또 다른 세상이다. 최근에 유일하게 이 책만이 야금야금 읽어야지. 하는 생각을 품게 했다.
차근차근히 하자. 책들마다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는 다를 테니. 조바심 치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