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크 라이프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노블마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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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바나나의 단편소설들을 아마추어 야구에 빗댄 적이 있었다. 어딘가 서투른 듯 보이지만 요행 같은 건 생각지도 않는 자세 같은 것. 작은 성공에도 선수 전체가 모두 한 마음이 되어 기뻐할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어서였다.

요시다 슈이치의 이 소설은 그에 비하면 갑자원 결승전에 오른 팀 같다. 닳고 닳은 프로가 아니라 아마추어라는 점에서는 바나나와 느낌이 비슷하지만, 뭐랄까 훨씬 우수한 선수들이 나와서 경기를 하는 기분.

툭 툭 하고 볼을 던져 주의를 흩트린 후 빡! 하는 소리와 함께 포수의 글로브에 꽉 차게 들어오는 직구 스트라이크. <<파크라이프>> 속 인물들의 대사가 그렇다. 그렇게 빠른 직구를 날릴 때, 거기에는 어떤 시선이, 의지가, 통찰이 뭉뚱그려져 공 안에 꽉 차있다. 통쾌한 반짝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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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의 고리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 창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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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손택은 제발트를 가리켜 ‘비탄에 잠긴 정신’이라고 했다.
<<토성의 고리>>는 10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장을 한 컷의 사진으로 친다면 그의 사진은 가장 하얀 부분이더라도 옅은 회색으로 인화된, 그라데이션이 아주 정확한 사진들임을 느낀다. 현대의 많은 훌륭한 소설들이 그 한 구석에라도 윤곽이 흐릿해지며 마치 공중에서 엷게 사라지는 듯한 가벼움 같은 것들을 장치해 두는 반면에 제발트는 가벼울 만한 것에게도 짙은 무게감을 부여한다. 그런 무게감은 확실히 비탄이라고 불릴 만하다고… 끄덕거리게 된다. 더군다나 이 소설은 제목에까지 ‘토성’이 들어가 있다. 멜랑콜리의 상징.

밀란 쿤데라는 ‘커튼을 찢는’ 것에 대해 말했었다.
<<토성의 고리>>의 화자는 영국의 서퍽 지역을 여행한다. 한물간 도시, 잊혀진 저택, 길도 제대로 찾기 힘든 시골, 관광객이 사라진 해변 등등. 제발트는 이런 공간적 물성(物性)에 가리워진 것들을 시간의 지식으로 홀연히 걷어내고 있다. 로우스트로프라는 이젠 잊혀진 항구에서 한 때는 최고 전성기를 구가하던, 이젠 어획고가 바닥난 청어 얘기를 풀어 가다가 영국의 반역범으로 처형된 로저 케이스먼트 이야기로 이어지고 다시 그와 콩고에서 만났고 로우스트로프 항구를 들락거렸던 조셉 콘래드의 아프리카에서의 끔찍했던 경험들을 전한다. 그리고는 카프카의 삼촌까지 연결된,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에 의한 자연과 사람과 장소와 인간성의 파괴를 가감 없이 써 내려간다. 그저 황폐해져 버려 이젠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것들의 역사를 통해 역사책에 흔히 표기된 시대에 따른 제국들의 영토 지도처럼, 진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 허상의 지식들을 찢어 버리고 인류가 자행한 비극에 대한 날것의 진실을 접하게 된다.

윤리의식과 잊혀진 진실의 순간을 포착하는 시선, 내가 그의 작품들을 소중히 여기게 된 이유다. 조문객의 신중함이랄까, 극히 애석해하고 진심으로 슬퍼하는 태도가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그런 윤리의식 때문에 그가 말하는 사실과 허구를 모두 진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사실 소설이 이런 분위기를 띄면 독서하기엔 대단히 갑갑하고 따분하기 일쑤다. 그런데 그의 작품들은 전혀 그렇지가 않은 데, 그건 그의 시선이 다음에는 어디로 향할지 또 어떻게 새로운 사실과 허구로 연결할지… 호기심을 끊어지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그의 진실 포착 능력이 그런 것을 가능하게 한다고 믿는다.


‘강가를 따라 걸어가면서 패배자들의 투쟁과 깊은 절망의 끔찍함을 이해하지 못한 채 방관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그의 비전은 언제나 영혼을 흔드는 강력한 지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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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들 펭귄클래식 109
조르주 페렉 지음, 김명숙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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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어버린 광고가 잡지를 도배하듯 우리의 삶에서도 우리가 욕망하는 상품들이 목적이 되어 버렸고, 그물에 걸린 어류들마냥 우리는 낚여 버렸다. 세상의 경계 안에서 더 이상 주인이 아닌 부스러기 같은 존재들이 되어 버렸다. 고 페렉은 말한다.

소설은 제롬과 실비라는 1960년대 파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젊은이들이 어떻게 그들의 고급해진 취향과 가벼운 주머니 사이에서 갈등하는지를 보여 주는데, 가구, 인테리어 소품, 의상, 책, 음식, 영화… 상품명들을 길게 나열하기만 해도 주인공들뿐 아니라 독자인 우리도 또한 얼마나 쉽게 욕망에 동요되는지를 은밀하게 지적하고 있다.

우리가 그 모든 욕망을 채울 수 있느냐 하는 질문은 무의미 하다. 이미 그 상품들의 기다란 목록은 현대인의 호흡과 같다. 그 상품들을 화폐를 지불해 더 이상 살 수 없을 때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죽음을 선고하기 때문이다. 행복의 덫에 걸렸다는 페렉의 말은 20세기 이후 우리 모두의 비명(碑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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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심
박상륭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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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일꾼이, 벗어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너무 오래 입어 흐리꾸리하게코롬이나 퇴색하고, 빨지 안 해 땀이 썩은, 거의 넝마가 다 된 윗옷모양, 벤치에 쭈구려 앉은 늙은네께도, 볕은, 산수유 꽃 그늘이 되어, 늙은 냄새를 저어하지 않고, 너그럽게, 늙은네의 몫을 나누어주고 있는다, 산수유 꽃잎의 담요로 포근히 감싸주고 있는다. 자라는, 또는 활력에 넘치는 젊은 생명들에 대해선, 그것은 아직도 충분한 것은 아닐 터이지만, 쇠잔해가는 생명들에 대해서 그것은, 그런 까닭에 무겁다. 가을볕만큼은 무겁다. 그것을 받는 이마나, 가슴엔 따스함으로 무겁고, 눈꺼풀엔 잠으로 무겁다. 보릿고개 때의, 모든 허전한 위장들은 모른 척하고 말해야겠지만, 그것은 봄날의 무게인 것이어서 늙은네는, 그 따스함, 너그러움, 그 훈훈함의 산수유 꽃빛의 물결 속에, 자기의 전신이 녹아들고 있음을 느끼며, 산수유를 등지고 놓여진 그 벤치에 앉은 뒤 얼마 되지도 안 해, 조금씩 졸음 속에로 내려가고 있는다. 그럴 때론 늙은네는, 물에서 물로 몸 해입고, 물을 사는 물고기에의 몽상에 잠겨있게 마련인데, 몽상은, 그리고 혼자서 고스랑거리기는, 하릴없는 늙은네께 주어진 자유며, 방종이기까지도 하다. 산수유 꽃빛의 볕의 바다에 잠겨, 그 바다를 왼통 뻐끔여들이는, 한 마리의 작은 물고기, 한 바다가 왼통 한 마리의 물고기이다.


신형철이 얼마 전 알라딘에 <<다다를 수 없는 나라>>를 소개했을 때, 약간 화가 났다. 그 책은 적요함 속에 침잠해 있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었을는지, 그것은 한 유명한 사람이 유명하게 소개해 한낮 볕 아래 환하게 드러내기 보다 한 인연자의 인연에 알맞게 그 인연에게만 소롯하게 가 닿아야 했던 책은 아니었을는지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박상륭에 대해서는 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는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지만 다수의 사람들에게는 거의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이 작가는.. 그 언제나 읽어도 확 한눈에 잡히지 않는 어마어마한 추상적 사유와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화려하고 유장한 문체로, 읽는 이를 기 죽이게 만들고 열패감에 휩싸이게도 하는 작가지만, 그럼에도 정말 그 말빨에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든 이 작가는 확실히 더 알려져야 하며 알려져야 할 운명을 좀 맞이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신화적/종교적/철학적 사유는 제쳐 두고서라도 말이지 정말 정말 세상에 둘도 없는 문체를 가진 이란 말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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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갇힌 사람들 - 불안과 강박을 치유하는 몸의 심리학
수지 오바크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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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관한 한 현대사회는 점점 프랜차이즈화 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유명인들의 몇몇 신체 부위들을 카피해 자기의 얼굴과 몸의 지형을 바꾸는 것은 거의 자연스러운 일이 된 듯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런 것을 폄하하고픈 마음은 없다.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열등감 같은 것을 헤쳐 나가는데 도움이 된다면 나라도 그렇게 할 가능성이 높으니까. 다만 생각해 볼 것은 투자 대비 수익율 이랄까 그런 것이다.

간만에 삼청동에 다녀왔다. 그 한가운데 카페베네와 빠리바게트 같은 프랜차이즈들이 이미 들어섰음을 본 순간, 이 거리가 이제 정점에서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는 봉천동 같은 곳이야 프랜차이즈 점포의 깔끔함과 표준화된 맛/멋들이 경쟁우위 요소일 테지만 유행을 선도하는 거리들에 들어서는 프랜차이즈는 뭐랄까 이제 막 상하기 시작한 고기를 보는 느낌을 준다.

몸의 프랜차이즈화가 시작될 때부터 예상된/예정된 우려는 그러니 이런 것. 유행을 끄는 프랜차이즈가 그 유행이 다 했을 때 재빨리 간판을 갈아 껴야 하듯 우리의 몸에게도 그런 과부하 된 충격을 줘야 한다는데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물론 아주 오래오래 갈 유행을 내 몸에 새겨 넣는 것일 테지만 어디 그게 또 그렇게 쉬운가. 확실히 다이어트에 목을 매는 이유는 그것이 가장 오래갈 유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저자는 우리의 몸이 전장화(戰場化) 되고 있음을 안타깝게 여기며, 자기 몸을 당연한 것이자 즐거운 것으로 여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개인에게 당부한 말이고 수지 오바크의 주장의 핵심은 몸에 대한 사람들의 이런 강박을 그저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말고 사회 제도적으로 정교하게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뭐 이런 거겠지. 마치 담배에 여러 명목의 세금을 붙이듯 칼로리가 높은 음식물들에 대해서는 높은 세율을 적용한다든가 그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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