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북
F. E. 히긴스 지음, 김정민 옮김, 이관용 그림 / 살림Friends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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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러들로는 더러운 도시의 뒷골목에서 쫓기고 있다. 악당이나, 무서운 사람들로부터 쫓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준 친부모로부터 쫓기고 있는 것이다. 친부모에게 쫓기고 있다고 해서 러들로를 무조건 나쁜 아이라고 생각하는 건 큰 오해다. 러들로의 부모는 단지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의 치아가 필요해서 쫓고 있을 뿐이다. 러들로의 치아는 부모에게 단지 하루밤 술값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러들로는 인생 최악의 밤을 보내고 있었다.

천만다행으로 러들로는 위기를 넘기고, 자신을 끔찍한 도시로부터 멀리 떨어뜨려 줄 마차를 만나게 된다. 그 마차를 타고 러들로는 '파구스 파르부스'는 작은 시골 마을로 들어오게 된다.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비죽비죽 서있는 집들-그리고 꼭대기 위에 자리잡은 교회까지, 시골 마을은 이상한 모습만큼 이상한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런 작은 시골 마을에 이상하고 비밀스러운 전당포가 개업하게 되고 러들로는 우연한 몇 번의 만남끝에 전당포 주인인 조 자비두와 함께 일을 하게 된다.

그 전당포는,전당포 본연의 임무 외에도 아주 비밀스러운 일을 하고 있었는데 매일 밤 자정이 되면 그 비밀의 내면을 쳐다볼 수 있다. 바로, 마음 속 깊은 곳에 어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비밀을 털어놓는 고해성사실이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조 자비두의 깊고 맑은 눈을 바라보며 결국 비밀을 털어놓게 되는데, 그 비밀은 '블랙북'에 은밀하게 자리잡게 된다. 비밀을 모조리 털어놓은 사람은 비로소 비밀의 무게로부터 해방됨을 느낀다. 비밀을 털어놓음으로서 용서받게 되는 것이다.

작은 시골마을인 파구스 파르부스는 아담하고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비밀과 추악한 일들이 매일 일어나고 있었다. 그 사건의 중심에는 제레미아 래체트라는 고리대금업자가 있었고, 사람들은 안으로 움츠러 들면서도 매일매일 복수를 꿈꾸게 된다. 그러다가 조 자비두의 블랙북을 만나게 되고 차츰차츰 내면의 복수를 바깥으로 꺼내놓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고 한다. 또한 입 밖으로 새어나온 비밀은 더이상 비밀이 아니라고도 말한다. '블랙북'은 바로 그런 비밀들을 담고 있다. 더 이상 안으로만 담아두기에는 엄청나게 커버린 비밀들이 안식할 수 있는 바로 그런 곳. 사람들은 블랙북에 비밀을 담아놓으면서 해방감을 느끼게 되고, 경제적인 해방도 얻게 된다. 그러면서 점차 깨닫게 된다. 불의에 맞설 수 있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뿐이라는 것을.

지금도 어딘가에서 조와 러들로가 커다란 블랙북을 꺼내들고 당신에게 은밀하게 말할지도 모른다. 조용히, 은밀하게 비밀을 얘기해보라고 말이다. 블랙북에 담긴 비밀은 영원히 비밀로 지켜질거라는 말과 함께. 지금 마음 한구석에 은밀하게 숨기고 있는 비밀이 있다면 이 기회에 털어놓는게 어떨까. 블랙북에 비밀이 담기는 순간, 비밀은 더이상 짐이 아니라 해방의 날개가 되어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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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되고 싶었던 버스 운전사>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신이 되고 싶었던 버스 운전사
에트가 케렛 지음, 이만식 옮김 / 부북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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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긴 장광설 같은 이야기보다는, 때론 짧은 한마디에 가슴이 '쿵'하고 울리는걸 깨닫게 된다. 진심이 담겨있는 한 마디라면, 미사여구로 가득한 백 마디보다 더 절실히 가슴에 와닿는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에트카 케렛의 '신이 되고 싶었던 버스 운전사'를 만나게 되었다. 

자주 오지 않는 버스가 눈 앞에서 출발하려고 한다면, 그 누군들 숨가쁘게 뛰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스 운전사는 누구도 봐주지 않고 그냥 출발한다 한 사람에게는 15초 아끼는 것이 될 지 모르나 전 승객들의 15초를 합하면 어마어마한 시간이 되므로, 버스 운전사는 자신만의 철학에 따라 절대 뛰어오는 승객들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러다가 너무나 착한 에디를 만나고서는 잠시 자신의 철학을 접어두는데, 누구라도 에디를 본다면 그러할 것이다. 신이 되고 싶었던 그 버스 운전사는, 어쩌면 에디를 만나 신의 영역을 조금이라도 맛보지 않았을까. 

소원을 들어주는 벽의 구멍에 '천사'를 외쳤던 우디는 결국 천사를 잃었다. 5층 건물에서 떨어진 천사는 그의 하얀 날개 한 번 펴보지 못하고 추락사한 것이다. 어쩌면, 이 각박한 세상에서 천사는 날개잃은 인간과 똑같은 존재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글이글 뜨거운 불길이 가득한 지옥에서는 백 년에 한 번씩 사람들이 외출을 나오고, 짧은 자유를 누리다가 다시 지옥으로 돌아간다. 비록 지옥의 문은 닫혔지만, 우리 모두 이 지옥같은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어 또다른 지옥을 찾아 떠나는건 아닐지. 헤브라이 신이 애굽에 내린 열 가지 재앙 중에 가장 지독했던 마지막 재앙은 온 집안의 장자가 죽는 것이였다. 온 애굽이 곡 소리로 시끄러울때 오직 한 집만이 평온했으니, 그 집은 장자가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장자는 온전한 장자가 아니였기에 재앙을 피해갈 수 있었으나, 마음 속 깊이 새겨진 상처는 어찌 치유할련지. 

짧은 단편들이지만 읽고 나면 한 번씩 깊은 생각에 잠기게 만든다. 때로는 이솝우화 같기도 하고, 때로는 신문기사 같기도 하고, 때로는 논문같기도 한 이야기들은 복잡한 세상과 맞물려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진심이 담긴 한 마디는 삶을 바꾸어 놓는다. 이 책 역시 짧은 단편들이 가득하지만, 담고 있는 무게는 두꺼운 책 못지 않다. 그 안에 담긴 세상이 진짜이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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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미초 이야기>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가스미초 이야기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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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화자인 이노와 나는, 공교롭게도 같은 추억을 가졌다. 그것은 '사진관'에 얽혀있다. 이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대를 이어 사진관을 이어왔다. 나의 아버지는 젊었을때 사진기술을 익혀 사진관을 생업으로 가졌다. 이노의 집안은 사진관이 2대에까지 걸쳐졌지만, 나는 사진관을 물려받지 못했다. 너무나 빠른 기술진보 때문이리라. 집집마다 보급된 컴퓨터와 디지털 카메라의 속도를, 아날로그 카메라가 따라가기엔 힘들었다. 그래서 필름 카메라가 사라지듯, 사진관 역시 사라졌다.

청춘의 기억은 오래된 영화의 스틸사진과 비슷하다.

이노는 자신의 청춘을 더듬어가며 이렇게 읊조린다. 머리속에 자리잡은 기억은, 때론 상황에 따라 거짓으로 왜곡되기도 하고 아름답게 채색되기도 하지만 기억 자체만으로 미래를 살아갈 힘을 준다. 그래서 오래된 영화의 스틸사진을 보듯, 청춘의 기억은 아련하고 아름다운 것이리라.

첫사랑을 못잊는 할머니를 마음 속으로 깊이 품어 준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데릴사위로 들어온 아버지는 늘 할아버지와 티격태격하지만, 자신의 스승이자 정신적 지주에게 늘 무한한 존경을 표현한다. 할머니는 첫사랑을 마음속에 품지만, 그사람이 준 꽃다발을 강물에 버리며 마음을 정리한다. 이노의 친구인 료지와 기치는 늘 엉뚱하고 가끔은 불량하지만 친구와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소중한 것 하나쯤은 포기할 줄 아는 사려깊은 마음을 가졌다.

이노의 청춘과 가족들이 8편의 이야기에 어우러져있다. 오래된 영화의 스틸사진처럼 불분명한 기억은 가끔 정확한 이야기를 끌어내지 못하지만, 가슴속에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그 기억과 이야기는 가족간의 끈끈한 사랑과 친구들과의 우정을 이야기하고 있고, 화자인 이노뿐 아니라 이야기를 읽는 독자까지도 옛기억에 추억속에 빠져들게 만드는 것이다.

이노의 할아버지는 자신의 라이카 사진기를 품에 꼭 안고 숨을 거뒀다. 그 사진기와 사진안에 얼마나 많은 추억과 기억이 담겨있을까. 나는 꼭 아버지의 사진기를 보는 것 같아 오래오래 가슴이 먹먹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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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문>을 읽고 리뷰해주세요.
달의 문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김주영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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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회의가 열리는 오키나와는, 혹시라도 불미스로운 일이 생길까봐 철통같은 수비로 삼엄하다. 이런 오키나와에서 '비행기 납치' 사건이 발생한다. 류큐항공 8편을 이륙 직전에 납치한 범인들의 요구조건은 단 한 가지. 이시미네 다카시를 제한된 시간안에 공항으로 데려와야 한다는 것이다. 

조용히 사건을 마무리하고자 경찰은 노력하지만, 테러범들은 이미 언론쪽에 비행기 납치 사건을 흘려놓은 상태다. 그래서 인질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면서도 범인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아야하는 난감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냥 범인을 놓아주면 경찰의 이미지에 먹칠을 하게되고, 그렇지 않으면 범인들의 손에 놓인 아이들에 죽게 되는 상황-그 어느쪽도 결코 선택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비행기에서 무언가 떨어진다. 21시 30분까지 대답을 주지 못한 경찰에게 범인들이 보낸 것은 바로 '시체'였다. 

명분없는 행동이 어디있겠냐만은, 범인들이 이시미네 다카시의 석방을 그토록 원한건 정해진 시간안에 재생의 세계로 이동하기 위해서였다.(물론, 이 대목에서 '풋' 웃음이 나오긴 했지만 말이다) 신흥종교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범인들의 스승에 대한 믿음은 철저했다. 그렇기에 비행기 납치라는 엄청난 일을 저질렀겠지만 말이다. 그런 와중에 비행기 내에서는 범인들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살인이 일어난다.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서 여자가 죽어있었던 것. 이제 범인들은 스승님의 석방과 함께, 도무지 알 수 없는 밀실살인도 풀어내야 하는 난관에 부딪히게 됐다. 

책의 소개에 이렇게 써있다. <비행기 납치, 밀실 살인, 판타지의 수수께끼 3종 세트> 

세 가지 이야기가 잘 어우러져 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왠지 어지러운 구성이라고 느낀것은 나뿐일까? 납치범들이 스승님이란 존재를 그토록 믿는 것도 이해가 안 되고, 개기일식때 재생의 세계로 건너간다는 것도 선뜻 이해할 수 없는 설정이였다. 차라리 작가의 전작처럼 절대 풀 수 없는 밀실사건에만 매달려 사람들의 심리 과정을 따라가는게 더 나았을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가지 사건을 한 가지 작품안에 적절히 버무려놓은 작가의 상상력에는 박수를 보낸다. 밀실사건을 풀어내는 장면에서의 몰입도가, 책 마지막에서 완전히 허물어졌지만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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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보트 Young Author Series 1
남 레 지음, 조동섭 옮김 / 에이지21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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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단편집을 사랑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다. '표류', 넓은 바다에서 표류하는 느낌.
두꺼운 책 안에 작가의 생각을 담은 여러가지 작품들이 둥둥 떠다닌다. 장편소설과 달리 한가지 주제안에 얽매이지 않는 이야기들이 나를 향해 밀려온다. 읽고나서 가슴이 먹먹해질수도 있고, 잠시 이야기속에 푹 빠질수도 있고, 때론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에 고개를 갸우뚱 할 수도 있다. 

베트남 출신의 작가 남 레의 책을 집어들었을때 고개를 약간 갸우뚱거렸는데, 익숙치 않은 느낌이 들어서일거다. 하지만 다시 생각을 돌려봤을때 우리나라 문학이 아닌 외국 문학은 모두 그렇게 낯섬에서 출발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미국 문학이든 일본 문학이든 그것들이 익숙해진건 많이 접해봤기 때문일거라고. 그래서 이 낯섬은 곧 익숙함으로 바뀔거라고.

낯선 기분은 곧 편견으로 나타났는데, 작가의 모든 이야기가 베트남과 연결되어 있을거라는 생각이였다. 물론, 베트남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기는 했으나 그보다 더 넓은 세상, 넓은 시선이 존재했으니 내 편견이 좁은 시야였음을 인정해야했다.

베트남 출신 작가여서 받는 시선에 대한 이야기도 존재하고, 늙은 화가가 생의 마지막 순간에 딸을 만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도 존재한다. 미식축구 단 한경기의 골로 인하여 순식간에 영웅으로 떠오른 소년의 이야기도 있고, 원자폭탄이 떨어지기 전 히로시마에 살던 소녀의 이야기도 존재한다. 그리고 보트에 실려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베트남 사람들의 이야기도 존재한다.

'바람은 싸한 냄새로 가득했다. 천천히 떠 있는 불빛 속에서 나는 저 멀리, 강 아래를 보았다. 얼어붙은 언저리에 번들번들한 기포들이 커다랗게 부풀었다. 아직 얼지 않고 흐르는 물은 검게 꼬여 있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강 표면이 얼려면, 완벽하게 크리스털 같은 세계 안에 갇히려면 몇 시간, 아니 며칠이 걸릴까. 그리고 그 세상이 작은 돌이 내는 단음절로도 얼마나 깨어지기 쉬울까.'

변호사로 안정된 삶을 살다가 미국으로 건너간 작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자신만의 크리스털 세계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 했을까. 혹은 그 세계가 작은 돌로 깨어지기 쉽다는 생각에 가끔 소름돋지 않았을까. 짧은 단편들 속에 담긴 작가의 세계에 푹 빠져있다보니 근원적인 질문에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나는 늘, 책 마지막편에 실린 작가의 말을 유심히 지켜보는 편이다. 그 안에는 책에서 못다한 또다른 이야기가 숨어있을때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에는 작가의 말이 없다. 아마, 다른 작품으로 자신의 말을 대신하려는 것이겠지. 그런 기대감으로 작가의 다른 작품을 기다려본다. 분명 자신만의 크리스털 세계가 더 단단히 만들어져 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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