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트>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보트 Young Author Series 1
남 레 지음, 조동섭 옮김 / 에이지21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내가 단편집을 사랑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다. '표류', 넓은 바다에서 표류하는 느낌.
두꺼운 책 안에 작가의 생각을 담은 여러가지 작품들이 둥둥 떠다닌다. 장편소설과 달리 한가지 주제안에 얽매이지 않는 이야기들이 나를 향해 밀려온다. 읽고나서 가슴이 먹먹해질수도 있고, 잠시 이야기속에 푹 빠질수도 있고, 때론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에 고개를 갸우뚱 할 수도 있다. 

베트남 출신의 작가 남 레의 책을 집어들었을때 고개를 약간 갸우뚱거렸는데, 익숙치 않은 느낌이 들어서일거다. 하지만 다시 생각을 돌려봤을때 우리나라 문학이 아닌 외국 문학은 모두 그렇게 낯섬에서 출발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미국 문학이든 일본 문학이든 그것들이 익숙해진건 많이 접해봤기 때문일거라고. 그래서 이 낯섬은 곧 익숙함으로 바뀔거라고.

낯선 기분은 곧 편견으로 나타났는데, 작가의 모든 이야기가 베트남과 연결되어 있을거라는 생각이였다. 물론, 베트남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기는 했으나 그보다 더 넓은 세상, 넓은 시선이 존재했으니 내 편견이 좁은 시야였음을 인정해야했다.

베트남 출신 작가여서 받는 시선에 대한 이야기도 존재하고, 늙은 화가가 생의 마지막 순간에 딸을 만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도 존재한다. 미식축구 단 한경기의 골로 인하여 순식간에 영웅으로 떠오른 소년의 이야기도 있고, 원자폭탄이 떨어지기 전 히로시마에 살던 소녀의 이야기도 존재한다. 그리고 보트에 실려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베트남 사람들의 이야기도 존재한다.

'바람은 싸한 냄새로 가득했다. 천천히 떠 있는 불빛 속에서 나는 저 멀리, 강 아래를 보았다. 얼어붙은 언저리에 번들번들한 기포들이 커다랗게 부풀었다. 아직 얼지 않고 흐르는 물은 검게 꼬여 있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강 표면이 얼려면, 완벽하게 크리스털 같은 세계 안에 갇히려면 몇 시간, 아니 며칠이 걸릴까. 그리고 그 세상이 작은 돌이 내는 단음절로도 얼마나 깨어지기 쉬울까.'

변호사로 안정된 삶을 살다가 미국으로 건너간 작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자신만의 크리스털 세계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 했을까. 혹은 그 세계가 작은 돌로 깨어지기 쉽다는 생각에 가끔 소름돋지 않았을까. 짧은 단편들 속에 담긴 작가의 세계에 푹 빠져있다보니 근원적인 질문에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나는 늘, 책 마지막편에 실린 작가의 말을 유심히 지켜보는 편이다. 그 안에는 책에서 못다한 또다른 이야기가 숨어있을때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에는 작가의 말이 없다. 아마, 다른 작품으로 자신의 말을 대신하려는 것이겠지. 그런 기대감으로 작가의 다른 작품을 기다려본다. 분명 자신만의 크리스털 세계가 더 단단히 만들어져 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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