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처방해드립니다
카를로 프라베티 지음, 김민숙 옮김, 박혜림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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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크레시오는 그렇고 그런 좀도둑이다. 이 날 역시, 친구 수프가 점찍어둔 집에 물건을 털러 들어갔을 뿐이였다. 하지만 그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 남자아이인지 여자아이인지 모를 요상한 어린아이일 뿐이였다. 그 아이는 경찰에 신고 안할테니 루크레시오에게 자신의 아빠 역할을 해줄것을 부탁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루크레시오는 이상한 집안에 갇히게 된다. 그것도 정체를 알 수 없는 꼬마와 함께.

그 집안에서 루크레시오는 이상한 경험들을 하게 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꼬마도 그렇고, 깊이를 알 수 없는 무시무시한 옷장도 그렇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집안에 느껴지는 으시시한 한기는 루크레시오를 더욱더 겁에 질리게 할 뿐이였다. 루크레시오는 집안에 도사리고 있는 비밀을 향해 한발짝씩 다가가게 된다.

세상의 한가지 단면만 보던 루크레시오는 집안의 도사린 비밀에 다가가면서 새로운 단면을 보게 되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 그 일의 시작은 칼비노와 함께 가게 된 정신병원 도서관에서 일어나게 된다.

루크레시오가 방문한 정신병원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책의 등장인물속에 푹 빠져있었다. 그들이 빠지는 인물은 피터팬의 피터팬일수도 있고, 팅커벨일수도 있고, 후크선장일수도 있고...혹은 책 속의 작은 소품인 시계라도 될 수 있다. 바로 그곳이 정신병원 안의 세계였다. 미친 사람들만 있는 곳이라고 혀를 내두르던 루크레시오는 결국 그곳의 특이한 처방에 빠져들고 만다.

"책을 읽을 때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이곳 환자들과 똑같이 행동해요. 특정 등장인물과 우리 자신을 동일시하고 그들의 모험을 재현하지요. 이게 당신이 말한 대로 잠시나마 우리의 일상에서 스스로를 멀어지게 하는 거죠. 하지만 만약 그 책이 좋은 책이라면, 그러니까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생각하게 만들고, 새로운 질문을 하게 만든다면, 우리가 현실세계로 돌아왔을 때 우리를 좀더 강하고 지혜롭게 만들어줄 거예요."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함이 아니다. 책 속에 존재하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되면, 책 속에서 빠져나와 진짜 세상앞에 섰을때 내 자신이 조금 더 강하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책을 읽는 것이다. 정신병원에 있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책 속의 인물과 동일시 하면서 자신의 내면을 좀 더 건강하게 하는 것-이것은 루크레시오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이였던 것이다.

정신이 불안정한 사람들에게 책을 처방해주는 책 약국, 텅 빈 스크린을 바라보며 자신이 상상하는 것을 스크린에 투사하는 꿈테라피등은 이 곳 정신병원이 병원임을 알려주는 동시에, 병원이 아닐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어느것하나 확실한 것이 없는 이 책은 특이한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책의 결말이 프롤로그인지 에필로그인지조차 헷갈리는 순간 우리는 깨닫게 된다. 이 책이 내게 처방해주는 처방전이 무엇인지를. 

".....누구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당연하지."
난쟁이는 이렇게 대답하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루크레시오가 좀더 기다렸다가 말했다.
"그러니까 뭐?"
"제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셨잖아요."
"물론 대답했지. '당연하지'라고 대답했잖아."
"하지만 누구신지는 말씀 안해주셨잖아요."
"그건 물어보지 않았잖아."
"아니라고요? 막 물어봤잖아요!"
"자넨 내가 누구인지를 물은게 아니잖아. 물어봐도 되냐고 물은거지."
"그게 그거 아닌가요?"
"당연히 아니지. 하나는 어떤 것에 대해 물어보는 거고, 다른 하나는 그것에 대해 물어도 좋은지 물어보는 거지."

책을 읽으면서도 선와 악, 혹은 시작과 결말에 치중해서 어느 한 단면에만 빠져든것은 아닐지. 그렇다면 극과 극의 중간에도 이야기와 인물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그래야 책을 통해 치료를 받을 수 있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테니 말이다. 혹시라도, 의심을 품고 있는 독자가 있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한꺼번에 읽어내리지 말고, 아침에 10쪽, 점심에 5쪽, 저녁에 15쪽씩 읽도록 씌여진 처방전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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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poison > '잘가요 언덕'의 저자 차인표씨와의 만남

 

 
내가 차인표씨에 대해 갖고 있는 첫번째 추억은 '사랑을 그대 품안에'이다. 당시 중학생이였던 나는 드라마안에 말 그대로 푹~~빠져들었고 드라마에 빠져드는 만큼, 주인공인 차인표씨에게도 빠져들게 되었다. 방과 후, 친구집에 모여 사랑을 그대 품안에 1회부터 방영된 회까지 감상하며 친구들과 함께 우~아~ 같은 감탄사를 연발하는게 일상이였다.

그 후 차인표씨는 결혼을 하고, 군대를 갖다오고 드라마와 영화에서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덧 '바른생활 사나이'로 불리고 있었다. 늘 바른 행동과 바른 언행, 그리고 선행으로 인해 붙게 된 별명이였다. 그런 바른생활 사나이가 책을 냈단다. 그토록 좋아했던 배우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가데뷔 소식에 삐딱한 시선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는데, 배우라는 인지도를 통해 그렇고 그런 책을 낸 건 아닐까 싶어서였다. 삐딱한 시선으로 책을 집어들고 읽던 나는 내 생각이 매우,매우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앉은 자리에서 책을 다 읽어내려간 뒤 문득 나는, 배우 차인표가 아닌 작가 차인표씨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졌다. 

그렇게 4월의 따뜻한 어느 날, 차인표씨를 만나러 홍대로 향하게 되었다.

 
강연회 시작 전, 출판사에서 준비한 깜짝 파티가 열렸는데 작가 차인표로서의 데뷔를 축하하는 파티였다. 훅~~ 촛불을 끄는 차인표씨가 왠지 수줍어하는 것처럼 느낀 건, 나만의 생각일까?



책을 내게 된 동기에 대해 묻는 질문에 97년 알게 된 '훈' 할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만약 훈 할머니가 일본군에 끌려가지 않고 대한민국에서 남은 여생을 보냈다면 소중한 생명으로 잘 살지 않았을까하는 연민에서 '잘가요 언덕'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잘가요 언덕'이 완성되기 전까지 작가의 꿈은 추호도 없었다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출간되서 책이 나올거라는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작가가 되고픈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고 했다. 아들이 자신이 쓴 글을 보며 좋아하는걸 보고 이 글을 동화로 만들어보면 어떨까해서 출판사에 딱 '10페이지'만 보내서 출간여부를 물어봤단다. 글 쓰는게 취미니까 계속 써나갈 생각이지만 발표와는 별개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꼭 읽어줄 독자가 있다면 앞으로도 작품을 발표할 의향이 있다고 말을 이어갔다. 그의 다음 작품은 어떤 내용이 될까 벌써부터 궁금해졌다.

'잘가요 언덕'의 원제는 '호랑이 계곡의 전설'이였다고 했다. 차인표씨의 작품을 다 읽은 출판사에서 동화보다는 장편소설의 느낌이 더 강하니 제목을 '잘가요 언덕'으로 바꾸면 어떻겠냐고 했고 차인표씨는 무릎을 딱 치며 이거야!라고 감탄했다며 웃음지었다.


-위안부, 그리고 할머니-
책에서 위안부 할머니가 등장하는만큼, 위안부 문제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97년 7월 미국 하원 의원들이 위안부 문제를 상정해서 통과했다고 한다. 이 문제가 상정되지 않도록 많은 일본 사람들이 로비를 했으나 결국 통과되었다는 것. 그러나 지금까지 일본은 어떤 사과도 하지 않고 침묵하고 있다. 올해 11월에 UN에 이 문제가 상정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 당시 일어났던 '위안부'문제는 전세계적인 문제인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가장 힘이 있던 무리(군대)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주권없는 나라의 소녀들을 잡아다 저지른 범죄 행위이기 때문에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우리가 할머니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첫번째 일은 '나눔의 집'에 방문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나눔의 집에 방문해서, 옆에 지어진 전시관에 들러 할머니들이 고통당하던 방을 둘러보고 위안부 징집소가 있던곳을 의미하는 빨간점이 그려진 지도를 보며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와 더불어 할머니들이 춤추고 노래하는걸 좋아한다고 하시니 함께 놀아드리는것도 좋을 것이라고 알려주셨다.

-작가가 생각하는 용서의 의미-
만약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고 보상금을 준다고 치더라도, 과연 할머니들이 당신들이 당한 그 모든것을 깨끗이 용서할 수 있을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진정한 용서는 나에게 죄지은 사람을 동등한 생명체로 인지해서 품에 품는것이 용서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책에 등장한 용서의 의미가 세월이 지났으니 할머니들께 먼저 용서하라고 말하는게 절대 아니다. 할머니들이 이대로 상처 받은대로 돌아가시게 할건가...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인 당신은 어떻게 용서할 것인지에 대해 출발한 것이 바로 이 책이라고 말을 이어나갔다.

-바른생활 사나이, 차인표-
인간은 누구나 죄를 지으며 살아간다. 일 년 나이를 먹는만큼 죄 또한 늘어가게 마련이다. 어느 순간 살다보니 홍보대사를 하고 있고, 군대 다녀오면서 기부생활 하다보니 어느 순간 '바른생활 사나이'로 불리고 있었다. '이렇게 살면 사람들이 칭찬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하지만 올바르게 사는데도 행복을 느낄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러다 3년전 컴패션을 통해 인도 켈커다에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가난한 인도 아이들을 보게 되었다고 했다. 아이를 위로해주러 간 그가 오히려 자신의 손을 잡아준 아이에게서 위로를 얻었다고 말하며, 봉사활동을 통해 그동안 들은 찬사에서 느껴보지 못한 진정한 위안을 찾게 되었다고 했다.

 
작품 속 용이와 닮은 듯하나, 사실 자신은 훌쩍이와 제일 비슷하다고 말하는 그. '잘가요 언덕'이 짧은 시간과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닌, 작가의 세월과 연륜이 녹아들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컨패션을 통해 봉사하는게 본업이 되었다고 말하며 웃는 차인표씨를 보며 진정으로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의 아름다운 마음에서 우러나는 다음 작품은 어떤 것이 될 지, 너무나 궁금해졌다.

P.S 차인표씨는 사인을 특별하게 해주셨다. 독자를 자신의 옆에 앉혀서 사인해주는 내내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 그 덕분에 줄을 서는 내내, 그리고 사인 받는 내내 포이즌 가슴이 정신없이 쿵쾅쿵쾅 거렸다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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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과 명예를 가진 자들의 레드 예리코 작전 - 태양의 딸을 찾아서 HGS 비밀결사대 1
조슈아 몰 지음, 강미경 옮김 / 서해문집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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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험'이 가득한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불끈 움켜쥐고 모험 속에 동참하고 있는걸 발견하게 된다. 여러가지 위험과, 돌발상황이 불쑥불쑥 튀어나오지만 비밀속에 파묻혀있던 미지의 '어떤 것'을 발견하는 쾌감은 모험가의 특권일 것이다. 모험가만의 특권을, 독자인 나 역시 간접경험으로 함께 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모험소설에 푹 빠지는 것이리라.

아주 특별한 모험소설을 만났다. 2002년 영국에 사는 조슈아 몰은 특별한 상속을 받게 된다. 이모할머니에게서 '명예로운 전문가 동업조합' 기록 보관소를 물려받은 그는 이모할머니의 특별한 모험을 책으로 발간해야 겠다고 생각하고 작업에 착수한다. 이 부분에서부터 허구의 사실이 실제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아니 그럼, 이 내용이 모두 실제 있었던 일이란 말야?'

더그와 베카는 1년전 신장으로 떠난 부모님이 연락두절되면서 여기저기 친척집을 전전하고 있다. 부모님이 사라지면서 말썽꾸러기로 변함 남매는 결국 삼촌에게까지 오게 되고, 삼촌과 '원정호'를 대면하게 된다. 원정호 여기저기 탐사하고 다니다 부모님 실종에 대한 단서를 얻게 되고 남매는 깊은 비밀 속에 빠져들게 된다.

수수께끼에 휩싸인 조리디움(태양의 딸)이라는 물질을 지키려는 '명예로운 전문가 동업조합(HGS)'과 '수징 콴토 회'라는 불가사의한 비밀결사단을 만나게 되면서 남매는 부모님의 실종에 대한 단서에 한발자국 가까이 가게 되고, 그 비밀을 풀고자 하는 욕심 때문에 위험한 해적 '성팟'에게 납치되고 만다.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사악한 짓도 마다하지 않는 성팟은 조리디움(태양의 딸)을 가지고 위험한 짓을 하려고 하고 더그와 베카의 삼촌과 수징 콴토 회는 손을 잡고 '레드 예리코' 작전을 수행하게 된다. 더그와 베카 역시 삼촌을 도와 작전수행에 참가하게 되고, 남매는 결과적으로 한 뼘 더 성장하게 된다.

 


'모험'을 따라가다보면 저절로 머리속에 미지의 섬과 모험가의 활약들이 눈에 그려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조슈아 몰은 상상속에 더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려주었으니 자세한 도표와 설명서, 그리고 신문기사들이 그것이다.

'팩션'임을 알면서도 책의 내용이 사실이 아닐까 의심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러한 조슈아 몰의 치밀한 계산 덕분일 것이다. 작가의 치밀한 계산 덕분에 더그와 베카 남매의 위험한 여정을 따라가는 동안 나 역시 작전을 수행하고 있는듯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동시에 배의 구조, 안개발생기, 첨단 무기의 자세한 설명은 미지의 분야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시켜 자세한 원리에 도달하도록 도와준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과학이 쉽게 느껴지는 것이다. 

레드 예리코 작전은 성공적이였다. 남매는 '명예로운 전문가 동업조합'에 가입되었다. 책 마지막에 등장한 '자이롤라베'는 또다른 흥미로운 모험을 예고하고 있다. 조슈아 몰이 창조한 흥미로운 모험의 세계에 푹 빠져보면 어떨지. 분명, 상상도 못한 세계가 기다리고 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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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가요 언덕
차인표 지음, 김재홍 그림 / 살림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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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제비가 상공을 가르며 안내해주는 '잘 가요 언덕'과 '호랑이 마을'
눈에 잡힐 듯 그려지는 그 곳이 마음속에 그려진다. 마치 옛이야기 하듯 들려주는 이야기의 도입부는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들을 마음 안쪽에 편안히 받아들이라고 말해주는것 같다.

<만남>
서른가구 남짓, 옹기종기 모여사는 호랑이 마을은 그림에나 나올법한 정겨운 시골 마을이다. 함께 농사지어, 함께 공유하는 정겹고 정겨운 마을. 그곳에 황 포수와 용이 부자가 찾아오게 된다. 황 포수 부자는 호랑이 사냥꾼이다. 용이가 어렸을적, 용이 어머니와 동생을 잡아간 백호를 추적해 호랑이 마을까지 찾아오게 되었다.

호랑이 마을에서 만나게 된 순이와 용이. 착하고 마음씨 따뜻한 순이는 용이의 외로운 마음을 감싸준다. 

"용이야. 이제 그만 백호를 용서해 주면 안 되겠니?"
(……)
"난 네가 백호를 용서해 주면, 엄마별을 볼 수 있게 될 것 같아."
용이가 가엾고 안타까운 순이가 말합니다.
"모르겠어. 용서를…… 어떻게 하는 건지."
용이의 입에서 처음으로 ‘용서’라는 말이 흘러나옵니다. 백호를 잡아 복수하겠다던 용이가 변한 걸까요? 아니면 홀로 지낸 세월에 지친 것일까요?
"빌지도 않은 용서를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어."
띄엄띄엄 말을 잇는 용이의 얼굴은 깊은 외로움을 머금고 있습니다.
"용서는 백호가 용서를 빌기 때문에 하는 게 아니라, 엄마별 때문에 하는 거야. 엄마별이 너무 보고 싶으니까. 엄마가 너무 소중하니까."

함께 엄마별을 바라보며, 이제 그만 백호를 용서하라고 말하는 순이. 그리고 용서가 무엇인지 모르는 용이. 용서가 무엇인지 모르는 용이지만, 순이의 따뜻함 속에서 '용서'가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을 바라보는 엄마별을 찾아간다. 순이를 향한 감정과 함께.

<전쟁>
예전 이땅에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전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 전쟁으로 인해 고통당하면서도 욕심많은 인간들은 남의 것에 끊임없이 욕심내고 있는 것이다. 일본 역시 우리나라에 쳐들어와 많은 것을 전쟁속에 몰아 넣었다.
이 땅의 곱고 고운 처녀들 역시 전쟁이라는 야수에게 잡혀갔는데 호랑이 마을의 순이 역시 예외는 아니였다.

순이를 구하려던 용이는 결국 실패하고, 다시 만나자는 눈인사를 나누며 긴 이별을 한다. 전쟁은, 그렇게 많은 이들을 헤어지게 만들었다.

<결국, 모든것은 용서로 매듭지어진다>
이 책에서 말하는 가장 큰 것은 '용서'라는 것이다. 일제침략, 위안부 문제등 굵직한 이야기들이 가득하지만 세월이 흘러 엄마별을 만난 용이처럼, 우리 역시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냥 덮어놓고 묻어버리자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우리의 것을 마음 속 깊이 지키기 위해 용서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머나먼 땅에서 다시 돌아온 '쑤니' 할머니가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배우 차인표에 묻혀 그냥 지나쳐 버릴뻔한 수작이였다. 그래서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을 더욱 감사했다. 역사 속 여러가지 문제와 더불어 진정한 '용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 준 이 책을 가슴 속 깊이 생각하고 또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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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의 시계장치
마티아스 말지외 지음, 임희근 옮김, 박혜림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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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 우리는 심장에 달려있는 시계소리를 듣게 된다. 심장에 달려있는 시계는 평소에는 잠잠하다. 그래서 시계가 달려 있는지조차 알 지 못한다. 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시계는 커다란 소리를 내게 된다. 똑,딱,똑,딱...그제서야 우리는 깨닫게 된다. 심장에 커다랗고, 알 수 없는 시계장치가 달려있는것을.

'잭'의 출생은 환영받지 못했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비밀스럽게 낳아놓고는 젖 한 번 물려주지 않고 떠나버렸다. 대신 매들린이 잭을 맡았다. 갓 태어난 잭은 정상적인 심장을 가지지 못했다. 그래서 매들린은 그녀의 기술을 발휘해서 심장에 시계장치를 달았다.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심장 대신 시계장치가 잭의 심장 기능을 떠맡았다. 똑,딱,똑,딱 규칙적인 시계소리에 맞춰 잭의 피가 온 몸을 순환하기 시작한다.

매들린은 아무도 입양하려 하지 않는 잭을 가여워하며 잭을 온 몸으로 사랑한다. 그리고 잭에게 어렸을때부터 주의를 준다. "절대로,절대로 사랑에 빠지지 말 것. 사랑에 빠지면 심장시계의 바늘이 네 몸을 뚫고 나오고, 뼈는 산산이 부서지고 심장의 시계장치는 다시 고장나버릴 테니까."

하지만 잭은, 늘 그렇듯이 사랑에 빠져버린다. 난생처음 나들이 간 마을에서 천사처럼 노래하는 작은 소녀를 보고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사랑에 빠진것이다. 매들린의 주의는, 결국 잭에게 아무 소용 없었다.

잭은 이해하지 못했다. 사랑에 빠지면 왜 심장의 시계장치가 고장나는지. 오히려 기분좋게 쿵쾅거리는 소리를 내며 잘만 굴러가는데 매들린은 왜 사랑을 하지 말라고 했을까. 시계장치가 고장나면 잭은 죽는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위험한 존재를 껴안고서라도 그 소녀를 꼭 만나고 싶다. 잭은 오직 소녀만이 가득하다.
그런 잭에게 멜리어스는 이렇게 말한다. "아픔을 두려워할수록 아플 가능성은 더 높아지는 법이란다. 줄타기 광대들을 보렴. 그들이 외줄 위를 걸어갈 때 떨어지면 어쩌지, 하고 생각할까? 아니야. 그들은 위험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것을 감수함으로써 즐거움을 맛보는 거야. 어떤 일에도 상처받지 않으려고 조심하면서 평생을 보내면, 사는 것이 끔찍하게 지루할 거다. 알겠니?"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잭은 소녀를 찾아 머나먼 여행을 떠나고, 마침내 그녀를 만나 그토록 갈구하던 '사랑'을 얻게 된다. 하지만 잭은 알지 못했다. 심장의 시계장치가 고장나는건, 사랑이 시작됐을때가 아니라 사랑이 끝났을 때라는걸.

소녀와의 사랑이 끝이 보일 때, 잭은 스스로 심장의 시계장치를 뽑아버린다. 그렇게 해서라도 사랑을 이어가고 싶었던 잭은, 결국 그녀를 잃는다. 온 몸이 부서질 것 같은 고통 뒤에는 끝모를 고독과 부서진 시계장치만 남을 뿐이란걸 잭은 깨닫는다. 그게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사랑 때문에 느끼는 즐거움이나 기쁨은 언젠가는 모두 고통으로 뒤갚음 받게 되어 있어. 많이 사랑할수록 앞으로 닥칠 고통은 두 배, 세 배가 되는 거야. 넌 허전함을 느낄 거고, 그 다음엔 질투의 괴로움, 이해받지 못한다는 고통, 버림받는 느낌, 부당하나는 느낌을 알게 될 거다. 뼛속까지 시린 한기를 느낄거고,네 살갗 밑에 얼음장 같은 피가 흐르는 것 같을 거야. 네 심장의 시계장치는 폭발할 거야."

사랑에 빠져 즐거운 리듬으로 흘러가는 시계소리만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결국 심장의 시계장치는 어느날이고 폭발하게 되어있다. 그걸 알면서도 잭은, 그리고 우리들은 결국 사랑에 빠졌고 누군가를 사랑했고, 그리고 심장의 시계장치의 폭발소리를 들으며 이별했다.

사랑의 즐거움과 함께 사랑의 고통도 함께 알려준 잭의 심장 시계장치는 오래도록 기억속에 남을 것이다. 첫사랑의 즐거움과 함께, 가슴이 부서질듯한 통증을 기억하는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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