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조용히 사랑한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가만히, 조용히 사랑한다 - 자라지 않는 아이 유유와 아빠의 일곱 해 여행
마리우스 세라 지음, 고인경 옮김 / 푸른숲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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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얻는다'는 기쁨을 무엇에 표현할 수 있을까. 집에서 기르는 애완동물이 새끼를 얻어도 너무 기쁘고, 애지중지 기르는 식물이 예쁜 꽃을 피워낼때도 기쁨은 배가 되는데, 하물며 내가 사랑하는 나의 아이의 탄생을 무엇에 비교하랴. 하지만 소중하게 태어난 내 아이가 돌이킬 수 없는 장애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때는 기쁨의 순간만큼이나 불행의 깊이 또한 깊어질 것이다.

유유의 아버지 마리우스 역시 그러했다. 아들을 얻은 기쁨도 잠시, 곧 아이의 이상한 점이 자꾸만 눈에 들어온다. 음식을 잘 먹지도 못하고,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고, 기어다니지도 못하는 내 아들...도대체 내 아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지 조마조마할 뿐이다.

"심각한 뇌 질환이 있다면 두개골이 정상의 절반 이하로 자랄 걸세."
신경학자 친구의 말을 듣고 유유의 아버지는 매일매일 아들의 두개골 크기에 신경쓰게 된다. 정말 내 아들이 그렇게 큰 질병을 안고 있는 것인지 두고두고 고민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가슴이 무너져내리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그렇게 유유는 심각한 장애를 갖고 있다고 판명되고 길고긴 여정을 시작되고야 만다.

유유의 심각한 질병 때문에 유유의 아버지는 집에만 처박혀있지 않는다. 유유를 부끄러워 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무감각하게 내버려둔것도 아니였다. 다른 아이들처럼 많은 세상을 보여주고자 여기저기 여행을 다녔다. 아이에게 많은 것을 보여준 만큼 더 성장하고, 더 나아지길 바라면서 말이다.

그렇다고 세상이 유유와 그의 가족에게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였다. 유유의 등교 시 집 앞까지 오던 스쿨버스가 노선이 바뀌어 좀 더 먼 거리에서 타게 되었다. 하지만 근처 학교의 아이들을 등교시키는 부모들이 자가용을 휠체어가 버스에 오르기 위한 보도 공간까지 넘어와 주차시키자 유유와 그의 아버지는 버스에 타기가 점차 힘들어진다. 하지만 아버지는 강했다. 몰지각한 부모들에 맞서 당당히 버스를 탈 위치를 확보한 것이다. 또한 제노바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레스토랑에 미리 예약을 했건만, 여주인은 막상 유유를 보자 불쾌한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강한 유유의 아버지는 기어코 주인과 싸워서 예약한 자리를 차지하고 식사를 마친다.

유유의 아버지는 세상의 편견과 시선에 맞서 담담하게 유유의 이야기를 서술해나가고 있다. 때로는 사랑스러운 아들에 대한 사랑으로, 때로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가진 세상에 대한 분노로, 때로는 아픈 아들에 대한 연민의 감정으로 이리저리 흔들리지만 결국 마지막에 남은 것은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뿐이였다.

세상에 태어나서 한 번도 달려보지 못한 유유를 위해서 책의 마지막에는 폴리스코프(-종이 넘겨 보기)가 있다. 천천히 책장을 넘기자 마자 달리기 시작하는 유유-그 모습에 미소짓는건 나뿐만이였을까? 가만히, 그리고 조용히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사랑인지 보여준 폴리스코프에 눈시울이 젖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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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의 몸값 2>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올림픽의 몸값 2 오늘의 일본문학 9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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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의 여름, 유난히도 덥고 끈적이는 여름이지만 도쿄의 온 국민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거대한 행사가 있다. 그것은 바로 '도쿄 올림픽'이다. 패전국의 오명을 씻고 성장한 나라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에 나라는 온 국민을 쥐어짜며 이곳 저곳 거대한 빌딩을 올리기 시작한다. 멋진 체육관도 다시 짓고, 고속도로도 근사하기 보수하고, 전차까지 개통시켰다. 그야말로, 발전한 일본의 모습이 눈 앞에 잡히기 시작한다.

그렇게 모든 국민이 올림픽의 성공을 염원하고 있을 때, 시마자키 구니오는 형의 죽음을 알게된다. 어렸을때부터 떨어져 지냈던 형이라 그리 큰 정은 없지만, 형의 쓸쓸한 죽음앞에 무엇인가 깨닫게 된 구니오는 도쿄대 생이라는 신분도 잊고, 홀린듯 형이 일하던 공사장 인부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면서부터 시마자키 구니오의 삶을 완전히 바뀌게 된다.

성공적인 올림픽의 이면에는 그 성공을 이룩하기 위한 추악한 면도 숨겨져 있었다. 누군가는 건물을 올려야하고, 누군가는 길을 닦아야한다. 그것을 재빠르고 값싸게 하려면 밑바닥 계층의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점점 부유해지는 도쿄와 달리 먼 외곽 시골은 아직도 전기나 수도의 혜택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 구니오는 바로 그런 깡촌 출신이다. 그가 형을 이해하기 위해 공사장을 체험하면서 점점 더 사회의 삐뚤어진 이면을 보게 된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절대 아래를 쳐다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구니오는 그래서 거대한 올림픽을 인질로 삼기로 결심한다. 올림픽 때문에 이리저리 짓밟히는 프롤레타리아들의 모습에 마침내 가슴속에 무엇인가가 '툭'끊어지며 구니오의 밖으로 뛰쳐나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든 것을 가진 너희들이라면 눈을 들어 소외받는 사람들을 좀 돌아봐라!! 라고 구니오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올림픽을 위협하는 구니오와, 그를 뒤쫓는 경찰들, 그리고 구니오의 동창이자 구니오의 습격에 위태로운 아버지를 지켜보는 스가 세 사람의 시선이 이리저리 얽히며 빠르게 흘러간다.

늘 유쾌하고 근심없는 오쿠다 히데오를 알고있던 독자라면 이 작품에서 좀 더 새로운 작가를 만날 수 있을것이라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책을 덮고나서도 계속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것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할테니 말이다.

오쿠다 히데오가 내린 결론이 그렇게 썩 만족스럽지는 않다. 하지만 구니오의 행동으로 인해 도쿄 전체가 바뀌었다고 한다면 그것 역시 정말 소설속에서나 있을 법한 말도 안되는 일일 것이다. 구니오처럼 체제에 반항한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속이 시원했다. 나라라는, 그리고 권력자라는 거대한 벽 아래 숨죽여사는 개미같은 우리들이지만, 그 개미들이 합심하면 벽을 무너뜨리는건 문제도 아니라는걸,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일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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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 위의 식사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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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쉽게 가도 될텐데....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내게 누경은 그런 존재로 다가왔다. 기현이 그렇게 조심스럽게 다가갔으면, 그냥 모르는 척 마음을 열어줘도 괜찮을 것 같은데....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였나.

하지만 천천히, 누경과 서강주의 사랑 속에 빠져들면서 '누경'이 다른 누군가에게 마음을 여는 일은, 다시 누군가 사랑하는 일은, 정말 죽기보다도 힘든 일이겠구나...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그만큼 자신안에 사랑을 쏟아내어 누군가를 사랑한 그녀였기에 그녀의 아픔이, 그녀의 사랑이, 그녀의 독백이, 가슴 깊숙이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어디서 들어봤음직한 아주 간단한 스토리-50대 교수인 유부남과 30대 처녀인 여자가 그렇고 그런 불륜에 빠진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사랑에 빠져들게 되는 것은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사랑'이 아주 분명하게 눈 앞에 그려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이란것 없이 조용하고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누경이 나을까, 아니면 격렬한 사랑에 몸부림치는 누경이 더 생기있는 삶을 살아가는가. 혹은 세상이란 짐에, 자신의 운명에 묵묵히 고개 숙이며 따라가는 강주가 나은지, 아니면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훌쩍 머나먼 여행을 떠나는 강주가 더 살아있는 삶을 살고 있는지 묻고 있다면 모두들 후자를 택하지 않을런지.

끝이 보이는 길이라고 해서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의외로 그 끝에 더 멋지고, 값진 것이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누경과 강주의 사랑도 그런 것 아닐까. 부서질까, 깨질까 두려워하면서도 서로의 사랑을 보듬고 놔주지 않았던 것은 결국 끝이 보여야만, 서로의 손을 놓을 수 있는 바보같은 사랑이였기에 그랬을 것이다.

"우린 마음이 같을까요?"
내가 물었다. 그가 숨도 쉬지 않고 대답했다.
"같아."

내가 더 많이 사랑하는건 아닐까? 라며 조바심치던 모든 사람들에게 누경은, 그리고 강주는 말한다. 더 많이 더 깊이 사랑한 사람은 사랑으로 인해 다치지 않는다고. 사랑은, 권력이나 돈 명예등과 달라서 더 많이 사랑 할수록 결국 그 사랑안에 내가 폭 감싸이는 것이리라. 비록 피부에는 수많은 생채기가 생채기가 생길수도 있겠지만.

상처받기 싫어 이리저리 사랑을 피했던 나였지만, 어느덧 '사랑'이란걸 해보고 싶어졌다. 누경처럼 내 마음 모든것을 쏟아부을 수 있는 상대를 만날 수 있다면, 그래서 모든것을 쏟아놓고 마음 한 쪽이 공허해지더라도 행복하게 웃을 수 있을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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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지 못한 어글리>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사랑받지 못한 어글리
콘스턴스 브리스코 지음, 전미영 옮김 / 오픈하우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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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계모들의 악독한 처사가 사회 문제로 비춰지곤 했다. 물론 좋은 계모도 있을 수 있겠으나 기본적으로 자신이 낳지 않은 아이를 돌본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계모의 어려움을 이해못하는 바는 아니나, 아이를 학대하고 방치한다는 것에는 용서할 수 없는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요즘에는 친부모가 자신의 아이를 학대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 며칠 전 사회를 경악하게 한 사건만해도 그렇다. 게임에 빠져서 갓난아기를 죽게 한 부모도 있었고, 말을 듣지 않는다며 상습적으로 폭행하는 부모도 있었다. 피가 섞이지 않은 타인이 그런다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피와 살을 나눠가진 부모가 자식에게 가지는 무자비한 살의는 어떻게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인간이란 동물은 기본적으로 '모성애'를 타고나는 것 아니던가. 자신의 혈육에게 행해지는 무자비한 폭행을 보며 한숨을 쉬는 것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이 책에 등장하는 어글리 역시 어렸을때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 이유없는 학대와 폭력, 언어적인 폭력을 감수하며 그녀는 어린 시절을 보낸다. 자신의 사진을 보며 "어쩌면 이렇게 못생겼을까? 못생겼어. 정말 못생겼어."라고 말하는 어머니는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툭하면 폭력을 행사하고 육체적 감정적으로 학대하는 어머니를 견디다 못해 콘스탄틴은 집을 나가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차라리 고아원에서 살고 싶었을만큼 힘들었던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내게 요술지팡이가 있다면 이 세상의 모든 불행한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텐데. 나는 줄곧 나를 아껴줄 어떤 사람을 원했다. 아이들에게는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왜 아이들을 이 세상에 데리고 왔단 말인가? 왜 그랬단 말인가? 내가 만약 내일 죽는다면, 나를 그리워해줄 사람이 한 사람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아이들은 반드시 일 년에 두 번 선물을 받아야 하고, 한 달에 한 번은 새 옷을 입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을 젖은 침대에 재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를 때리는 부모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 어떤 부모도 자기 아이를 학대할 권리는 없다.> 

 

그녀가 어렸을때부터 당한 학대는 읽는 내내 불편했지만 결국 학대는 그녀의 성공의 밑거름이 되었다. 미국 최초 흑인 판사가 된 콘스탄틴은 자신의 과거를 털어버렸기 때문에 담담하게 학대의 기록을 써내려갈 수 있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어두운 과거로 인해 그 벽에 갇혀 일생을 갇혀살게 된다. 하지만 콘스탄틴은 달랐다. 그녀는 벽을 뛰어넘어 자신의 미래를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불가능이라고 했던 미국 최초 흑인 판사가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희망은 충분하다. 못생긴 소녀 어글리가 외치는 희망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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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꾼>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 이야기 하나로 세상을 희롱한 조선의 책 읽어주는 남자
이화경 지음 / 뿔(웅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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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책을 읽을 때, 소리내어 읽어볼 때가 있다. 머리 속에서 울리는 문장이 너무나 좋을 때 입 밖으로 낭독해보면 감동의 배가 될 때가 있다. 작가들의 낭독회에 기를 쓰고 쫓아다니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직접 글을 쓴 작가가 들려주는 문장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감동이다. 책은 조용히 가슴으로 읽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가끔 소리내어 세상 밖으로 흘려보내줄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한 것이 나뿐만은 아니였나보다. 조선 후기 정조 시대에 이야기꾼(전기수)으로 활동한 김흑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했다. 그와 내가 다른 것은 그는 이야기로 세상을 휘두르고자 했고 나는 그저 이야기 그 자체로 감동을 받고자 했다는 것이리라. 

 

김흑이 활동하던 시기는 '꾼'으로서 살아가기에 힘든 시대였다. 정조의 문체반정 역사 속에서 당시 유례없이 널리 읽힌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마저도 패관소품이 되어버렸고, 조선 팔도의 백성들이 남 몰래 탐독하기 시작한 언문소설들을 경박하고 감상적이며 시시콜콜한 글일 뿐이라며, 그러한 소설체를 쓰는 선비들과 백성들, 관료들을 단속하기에 이른다. 그런 어수선한 시기에 김흑은 이야기로 여러 사람들을 후리고 다닌다. 

 

<세상에 사연 없는 인생은 없었다. 인생의 사연 속에는 너무도 기이하고 다양한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고단한 길 위에서, 주막에서, 그 인생들은 휘황찬란한 글속은 없어도 절절한 사연들을 맛나게도 풀어냈다. 쓰고 달고 시고 짠 인생의 맛이 그들의 이야기 속에 녹아 있었다. 때로는 너털웃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때로는 마른 볼을 적시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면서 풀어내는 인생들의 사연들을 들으면서 김흑은 이야기꾼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 

 

다만 책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은,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세상을 호령해보고자 했던 김흑의 의지가 여인네와의 사랑에 아쉽게 꺽인것은 아닌지 자꾸만 미련이 남았기 때문이다. 이야기와 사랑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지만 그 끝의 허무함과 집중하기 힘든 문장들은 이야기 몰입에 방해가 되었다. 하지만 이야기꾼 '김흑'의 발견은 새로운 그 무엇이였다. 암울했던 시절, 사람들의 마음 속에 이야기로 파고들었던 그처럼 우리들 역시 이야기 하나에 울고 웃는 건 먼 조선 시절이나 현재나 마찬가지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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