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거 게임 헝거 게임 시리즈 1
수잔 콜린스 지음, 이원열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먼 미래에 북미대륙은 폐허가 된다. (우리가 예상하는 미래는 늘 암울하다) 그 암울한 미래속에 '판엠'이란 나라가 건설된다. 판엠의 수도는 '캐피톨'이고 캐피톨을 둘러싸고 열 두개의 구역이 나란히 서있다. 좋은 모든것은 캐피톨이 누리고 있었다. 그 현실을 참지 못한 열 두개 구역이 반란을 일으키지만 보기좋게 실패한다. 반란이 멈춘 후 공포정치가 이어지고, 공포정치의 일환으로 '헝거게임'이 매년 열리게 된다.

일 년에 한 번씩 열 두개 구역에서는 추첨이 열린다. 남녀 한명씩 두 명의 조공인을 뽑는 잔인한 추첨식은 한해도 거르지 않고 열린다. 추첨식에서 뽑힌 스물 네 명의 조공인들은 판엠의 수도 캐피톨로 모여 피비린내 나는 헝거게임을 벌이게 된다. 게임의 규칙은 간단하다. 한 명이 살아남을 때까지 나머지 사람들을 죽이면 되는 것. 마지막 한 명이 살아남으면 게임은 끝나고, 그 마지막 조공인은 평생 부와 명예를 누리며 살 수 있다.

열 두 번째 구역에서 사는 캣니스는 이미 자신만의 생존 게임을 진행하고 있었다. 광산에 기대어 살아가는 척박한 열 두 번째 구역에서 아버지를 잃은 캣니스. 그녀는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사랑하는 동생 프림과 함께 죽음의 고비에까지 이르지만, 살아야한다는 일념으로 정신을 다잡고 매일 사냥을 다닌다. 하루하루 살아가기에도 벅찬 그녀에게 큰 시련이 다가오니, 바로 헝거게임 조공인에 동생 프림이 당첨된 것이다. 연약하고 부서질 것 같은 프림이 헝거게임에 참여한다면 바로 죽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캣니스는 자신이 동생 대신 헝거게임에 자원한다. 그렇게 죽음의 게임 속으로 한 발 들여놓게 된다.

조공인들에게는 끔찍하기만 한 '헝거게임'이지만 판엠의 수도 캐피톨에서는 축제에 불과한 게임이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처럼 조공인들이 서로 죽이고 죽는 모습을 매 시간 카메라에 담아 생중계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그런 캐피톨 사람들에게 캣니스는 증오를 품지만, 곧 살아남을 생각에 집중한다. <숲에서 사냥을 하는 것처럼 집중하면 돼> 캣니스는 마음을 다잡고 또 다잡는다.

무척 단순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이야기를 끌어가는 작가의 역량과 상상력 때문에 결코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다. 매순간 찾아오는 위기와 그 위기를 아슬아슬한 차이로 피해가는 캣니스의 이야기를 읽으며 잔인한 생존게임은 잊고 그녀가 우승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과정이 생존게임이 아닐련지. 리얼리티 생중계되는 헝거게임에 열광하는 캐피톨 사람들을 바라보며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2부에서 이어지는 캣니스는 또 어떤 시련에 부딪히게 될 지, 너무나 궁금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 때에, 이 책을 잡은 것은 실수였다. 실수였다고 말하고 싶다. 만약, 어쩔 수 없이 내 나이를 담담이 받아들였을 내년이나, 혹은 그 다음해에 이 책을 잡았다면 물 흐르듯이 책을 읽어나갈 수 있었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나이를 한 달 앞둔 이 시점에서 책을 집어든건 정말 실수였다. 에브리맨의 '그'처럼 내 가슴을 치면서 책을 읽어내려갔으니 말이다.

이 책의 줄거리를 말하라면 단 한 줄로 이야기할 수 있다. '그'라는 남자가 태어나서 죽음을 맞을때까지의 이야기다. 그만큼 평범하다. 제목이나(에브리맨) 이름이 없는 '그'의 이야기 모두 주변에서 흔히 듣고 관찰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결코 평범하게 지나칠 수 없는 '그'의 이야기에서 심장을 꿰뚫는 진실을 발견하는 것은 결코 나만이 아닐거라 생각한다. 찬란한 젊음을 지나 유약한 노년에 접어들면서, 인간이 얼마나 처참하게 무너져내릴 수 있는지, 혹은 외로워질 수 있는지 심도있게 그린 소설은 거의(혹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제 한 해도 입원 없이 지나가지 않았다. 장수한 부모의 아들이고, 토머스 제퍼슨 고등학교에서 공을 들고 뛰던 때와 마찬가지로 변함없이 건강해 보이는 여섯 살 위의 형을 둔 동생이었지만, 그는 아직 육십대에 불과한데도 건강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몸은 늘 위협을 당하는 것 같았다. 그는 세 번 결혼했고, 애인들과 자식들과 성공을 안겨준 흥미로운 일자리를 가졌지만, 이제 죽음을 피하는 것이 그의 삶에서 중심적인 일이 되었고 육체의 쇠퇴가 그의 이야기의 전부가 되었다. (p.76)
 

누가 노년을 아름답다고 했던가. 불안한 젊은이보다는 삶의 지식이 충만한 노인들이 더욱더 빛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그 누가 말했던가. 하지만 그렇지 않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죽음을 피하는 일이 전부다. 고통과 친해져야 하고, 외로움에 익숙해져야 한다. 나이가 들 수록 부모와 형제가 하나둘씩 떠나가고, 혹은 삶의 동반자인 배우자마저 먼저 떠나보내야 한다. 사랑하는 모든 것이 악몽처럼 쓸쓸이 사라질 때 혼자 남은 노인은, 과연 어떤 꿈을 꾸며 잠이 들련지.

'그'는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였다. 젊고 활기찼을때는 자신이 완전한 인간이였음을 확신했던 보통 사람-하지만 늙고 병들고 나서야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언제까지나 완전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할 줄 알았던 그는, 이제 홀로 남아 노년의 씁쓸함을 곱씹고 또 곱씹고 있다. 내가 나이드는 것을 두려워 하는 이유 역시, 그가 노년에 느끼는 그 감정과 마찬가지겠지. 다른 사람의 사랑이나 관심따윈 필요 없어도 나 혼자 완벽히 아름다운 일상을 꾸려나갈 수 있었지만, 나이들고 매번 수술과 입원을 반복하면서 일상을 이야기할 사람들이 그리워지고 과거의 아름다운 내가 절실히 필요해지는 그것-바로 그것이 노년의 악몽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나이 드는것을 두려워하는 걸거다. 영원히 지금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하고픈 덧없는 희망을 꿈꾸고 또 꿈꾸는 것....

"그냥 오는대로 받아들여. 버티고 서서 오는 대로 받아 들여라. 다른 방법이 없어."

이 문장에서 구원을 찾았다고 하면 너무나 큰 과장이라고 비웃음을 살까? 상관없다. 가슴치며 책을 읽다가 이 문장에서 넋놓고 비로소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나도 '그'처럼 보통 사람이니 살면서 수많은 실수를 할 것이다. '그'처럼 불륜을 저지를수도 있고, 결혼생활을 이어나가지 못하고 이혼할 수도 있겠지. 어쩌면 노년을 나혼자 쓸쓸이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 이 생을 다시 받아들일 수 있는건,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저 내가 선 자리에서 버티고 서서 그냥 받아들이는 것-그것이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어쩌면...모든 삶이 저 문장안에 들어있는게 아닐까 싶다. 버티고 서서 오는 대로 받아들이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저 2만리 아셰트클래식 1
쥘 베른 지음, 쥘베르 모렐 그림, 김석희 옮김 / 작가정신 / 200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본적으로 인간은, 깊은 바다에 대해 막연한 동경을 품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도달하지 못하는 심해에는, 고대에서부터 살아온 심해 생물이 살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바로 그것이다. 네스호의 괴물이나 가까운 백두산에 사는 괴물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정복하지 못한 깊은 심해에 대한 인간의 동경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1800년대를 살아온 쥘 베른 역시 그런 막연한 동경을 품은 인간중에 한 명이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멋진(!) 해저 이야기를 써내진 못했을테니 말이다. 어렸을때 얇은 축약본으로 읽던 '해저 2만리'가 완역본으로 멋지게 탄생했다. 쥘 베른의 이야기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읽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매력적인데, 거기에 더해서 멋진 삽화까지 더해진 책이다. 책을 받아든 순간, 책의 내용과 무게에 뿌듯해진건 나만이 아닐거라 생각한다.

바다에 괴생물체가 나타나서 배들을 공격하기 시작하고, 시민들은 공포에 떨기 시작한다. 두께가 5m가 넘는 철판을 뚫어버리는 괴물의 정체는 무엇일까? 프랑스의 아로낙스 박사는 일각고래의 소행으로 추정하고 괴물을 추적하는 함선에 오르게 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을 쫓아가지만 소득이 없고, 모든것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오려는 찰나 괴물과 만나게 된다. 괴물에게 공격을 가하다가 아로낙스 박사와 그의 하인 콩세유, 그리고 작살잡이 네드는 바다에 빠져 조난당하게 된다.

마침내 모든것이 끝나버린다고 생각할 즈음, 괴물이 정체를 드러내는데 그것은 '잠수함'이였다! 잠수함의 주인인 네모 선장은 이들을 포로로 잡고 잠수함에 억류시키다. 다시는 육지로 돌아갈 수 없는 대신 해양 세계를 마음대로 탐험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네모 선장. 아로낙스 박사 일행은 그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네모 선장과 노틸러스호와 함께하는 해저 탐험은 상상 이상으로 놀라운 것이였다. 희귀한 생물로만 알려진 온갖 어류들과 함께, 잠수복을 착용하고 해저숲을 산책하는 즐거움까지 누리는 아로낙스 박사는 노틸러스호에 승선한 동안, 평생 경험해보지 못한 진귀한 경험을 하게 된다.

지금 시대에는 잠수함이라든지 잠수복이 보편화되어 있어서 책의 내용이 놀라운 것이 아니지만, 이 책이 씌여진 시대는 1800년대 였다. 이 모든것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창조된 것이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세월이 흘러 작가의 상상대로 잠수함도 만들어지고 잠수복도 탄생되었으니 더더욱 그렇다! 온갖 희귀한 어류들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모험들은 완역판을 읽는 즐거움을 한껏 더해주었다.

'베르니안'(쥘베른의 미지의 세계를 믿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책의 내용을 그대로 믿는다는건 바보같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그려내는 해저 세계를 함께 탐험하고 나니, 심해의 세계에는 쥘 베른이 그린 모든 것들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을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사의 나라>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아사의 나라
유홍종 지음 / 문예출판사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여러가지 사극 드라마로 인해 고대 나라들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지고 있다. 드라마라는 장르 특성상 역사의 사실보다는 극의 재미에 더 치중하는게 문제이기는 하지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건 사실이다. 저 먼 옛날에 삼국시대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또, 삼국의 역사에서 조용히 스러져간 가야라는 나라는 어떤 나라인지... 

'아사의 나라'는 가야 왕녀의 일생을 다루고 있다. 1부는 그녀의 일생을 다루고 있고 2부는 그녀의 딸에 대해 다루고 있다.  가야의 왕녀 아사는 백제군에 침입에 피난을 떠난다. 불안한 정세속에 떨고 있던 그녀는 대야주의 주둔 사령관으로 부임한 설오유와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서로에 대한 침략이 없는 편안한 시대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둘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나고 만다. 설오유와의 사랑의 결실을 뱃속에 품은 채 아사는 의자왕의 후궁으로 백제에 끌려가게 된다. 의자왕의 총애를 받는 아사지만 뱃속의 아기를 위해, 그리고 사랑을 위해 궁을 탈출하지만 결국 목숨을 잃는다. 

시녀 설파에 의해 간신히 목숨을 건진 사비는 눈 먼 예언자가 되어 다시 백제에 나타나게 된다. 가야와 어머니 아사의 목숨을 거두어간 백제는, 이미 멸망의 길을 걷고 있었다. 사비는 왕비에게 깨끗하게 자결할 것을 권하지만, 이미 때는 너무 늦었다. 

"그런데 사비야, 네 이름이 무슨 뜻인지 아느냐?"
"어머니의 아사처럼 사비는 아침이라는 뜻입니다." 설오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설오유는 그 순간 아사가 사비이며 사비가 아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으로 부녀의 짧은 해후는 끝이 났다. 

그렇게 부녀간의 만남을 짧게 끝났다. 사비와 설오유는 다시 역사의 거대한 흐름속에 잠겨버린 것이다. 소설이기에 어떤 내용까지 사실이고, 어떤 내용까지가 픽션인지 알지 못하나, 그 옛날 흔들리는 나라 속에서 개인이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불안했을 것이리라. 그런 불안한 정세속에서도 간신들은 권력을 잡기 위해 이리저리 아첨했고, 세도가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백성들을 내쳤다. 그런 모습들이 요즘의 세태와 너무 닮아있는것을 아닐지. 가야가 힘없이 스러지는 모습을 보며 잠시 긴 생각에 잠겼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아주 시간이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페터 빅셀 지음, 전은경 옮김 / 푸른숲 / 200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전에 어느 작은 동네의 바보에게 뭘 하는지 물으면, 그는 늘 “기다려!”라고 대답했다. 모든 사람이 그에게 묻고 또 물었고, 모두 그의 대답도 알고 있었다. 도대체 뭘 기다리는지 물으면 그는 “뭘 기다리는가 하면……”이라고 말하고는, 생각해내려고 한참 동안 애를 쓰다가 “뭐냐 하면…… 뭐냐 하면…… 그냥 기다려”라고 대답했다.....  

....고통으로 인식된 기다림. 하지만 동네 바보는 기다림을 고통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에게 기다림은 존재 자체에 가까웠다. 평생 기다리기, 오로지 기다리기. <41~42쪽> 

작가 페터 빅셀의 말처럼 기다림은 존재 자체에 가까울지 모른다. 우리가 인식하든 그렇지 못하든 '기다림'은 늘 우리와 함께 간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기다리며 살아간다. 출근하는 시간을, 퇴근하는 시간을, 연인과 만날 시간을, 친구와 만날 시간을 늘 기다리며 살아간다. 어떤 기다림은 고통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영원히 다가오지 않을것만 같은 무언가를 기다리노라면 인생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기다림의 진리를 동네 바보는 정확하게 이야기해준다. 그냥 기다려. 

스위스의 주간지 <슈바이처 일루스트리어테〉에 기고한 칼럼들을 담은 이번 산문집은 일상에 대해, 그리고 주위의 모든 것들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해준다. 결코 길지 않은 글들이지만 쉽게 책장을 넘기지 못한 이유는 한 편 한 편 깊이 생각하고 내 자신을 돌아봐야했기 때문이다. 

사회가 점점 현대화 되어가면서 속도는 빨라지고, 빨라지는 속도에 대비하여 기다리는 것을 지루해하는 사람들이 더욱더 늘어만갔다. 기다림의 미학을,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를 잃어버린 것이 요즘의 일상이리라. 저자는 그런 현실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들어주고 있다. 예전에 이웃들과 함께 일요일을 보내며 산책을 하던 그 날을, 맥주집에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축구 경기를 응원하던 여유를, 연착이 된 기차 안에서 기다림의 미학을 이야기하며 자신을 돌아보게 해주는 것이다. 

밀가리 풀을 이용해서 온전히 연을 날릴줄 아는 열두살짜리 소년이나, 혹은 기차 시간표를 모두다 외우고 다니는 지적 장애인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을까? 그들은 모두 자신만의 세계에서 자신만의 일상을 가진 이들이였다. 우리는 어쩌면 세계화라는 이름 안에서 너무나 획일화되어 가는것은 아닐까. 조금은 기다릴 줄 알고, 이웃들을 자세히 볼 수 있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가는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현명한 방법은 아닐지. 페터 빅셀의 글을 읽으며 비로소 나만의 세계에서 삶의 여유를 찾은 것 같아 마음이 편안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