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풀밭 위의 식사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평점 :
조금 쉽게 가도 될텐데....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내게 누경은 그런 존재로 다가왔다. 기현이 그렇게 조심스럽게 다가갔으면, 그냥 모르는 척 마음을 열어줘도 괜찮을 것 같은데....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였나.
하지만 천천히, 누경과 서강주의 사랑 속에 빠져들면서 '누경'이 다른 누군가에게 마음을 여는 일은, 다시 누군가 사랑하는 일은, 정말 죽기보다도 힘든 일이겠구나...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그만큼 자신안에 사랑을 쏟아내어 누군가를 사랑한 그녀였기에 그녀의 아픔이, 그녀의 사랑이, 그녀의 독백이, 가슴 깊숙이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어디서 들어봤음직한 아주 간단한 스토리-50대 교수인 유부남과 30대 처녀인 여자가 그렇고 그런 불륜에 빠진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사랑에 빠져들게 되는 것은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사랑'이 아주 분명하게 눈 앞에 그려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이란것 없이 조용하고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누경이 나을까, 아니면 격렬한 사랑에 몸부림치는 누경이 더 생기있는 삶을 살아가는가. 혹은 세상이란 짐에, 자신의 운명에 묵묵히 고개 숙이며 따라가는 강주가 나은지, 아니면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훌쩍 머나먼 여행을 떠나는 강주가 더 살아있는 삶을 살고 있는지 묻고 있다면 모두들 후자를 택하지 않을런지.
끝이 보이는 길이라고 해서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의외로 그 끝에 더 멋지고, 값진 것이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누경과 강주의 사랑도 그런 것 아닐까. 부서질까, 깨질까 두려워하면서도 서로의 사랑을 보듬고 놔주지 않았던 것은 결국 끝이 보여야만, 서로의 손을 놓을 수 있는 바보같은 사랑이였기에 그랬을 것이다.
"우린 마음이 같을까요?"
내가 물었다. 그가 숨도 쉬지 않고 대답했다.
"같아."
내가 더 많이 사랑하는건 아닐까? 라며 조바심치던 모든 사람들에게 누경은, 그리고 강주는 말한다. 더 많이 더 깊이 사랑한 사람은 사랑으로 인해 다치지 않는다고. 사랑은, 권력이나 돈 명예등과 달라서 더 많이 사랑 할수록 결국 그 사랑안에 내가 폭 감싸이는 것이리라. 비록 피부에는 수많은 생채기가 생채기가 생길수도 있겠지만.
상처받기 싫어 이리저리 사랑을 피했던 나였지만, 어느덧 '사랑'이란걸 해보고 싶어졌다. 누경처럼 내 마음 모든것을 쏟아부을 수 있는 상대를 만날 수 있다면, 그래서 모든것을 쏟아놓고 마음 한 쪽이 공허해지더라도 행복하게 웃을 수 있을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