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블로모프 1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10
이반 알렉산드로비치 곤차로프 지음, 최윤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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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바탕에 <오블로모프>라는 제목과 작가 이름 정도만 덩그러니 적힌 표지. 왠지 러시아 문학의 묵직한 이야기와 웃음기 싹 빠진 인간사가 빼곡히 적혀 있을 것만 같아 괜히 읽기 전부터 허리를 한 번 펴고 앉아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자 각 잡힌 분위기가 한 번에 무너졌다.

침대. 그것도 아주 편안해 보이는 침대.

부드럽고 신축성 좋은 잠옷을 입은 삼십 대 남자가 침실이면서 서재이고 거실이기도 한 방에 누워 있다. 오블로모프다. 이 인간, 누워 있는 것이 일상이다.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은 한다. 그런데 생각만 한다. 방 안을 둘러보면 더 가관이다. 곳곳에 먼지는 쌓여 있고, 거미줄은 죽죽 이어져 있고, 널브러진 접시에 먹다 흘린 빵 부스러기까지... 이걸 누가 치우느냐? 오블로모프가 부르면 언제든 하인 자하르가 투덜대며 와 줄 거다. 그런데 자하르도 만만치 않다. 주인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아 공중제비 두 바퀴쯤은 너끈히 돌 것 같다. 집구석이 이게 뭐냐며 청소를 좀 하라고 하자 자하르는 태연하게 대꾸한다.

“치워봐야 또 쌓일 텐디유 뭐.”

아니, 그럼 안 치우겠다는 거잖아? 서로 말로 이겨 먹는 데는 도가 튼 주인과 하인, 이 둘이 붙어 있으니 집안이 멀쩡할 리가 없다. 오블로모프가 한 번 호되게 나무라면, 처지가 처지인지라 자하르는 이내 걸쭉한 사투리를 쏟아내며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린다.

“가슴이 찡한 말도 재간이 있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겨. 심장을 칼루다 도려내는 것 같어······ 내 집, 내 채소밭, 거기서 두 발 쭉 뻗구 누워보았으면!”

한때 부유했던 오블로모프 가문은 이제 가세가 기울어 다른 귀족들 사이에서도 잊힌 처지다. 아직 지방에 영지도 있고 재산도 남아 있지만, 오블로모프는 영지를 직접 돌보는 일도, 자기 삶을 꾸려가는 일도 좀처럼 하지 않는다. 늙은 하인들은 지난날의 기억을 귀한 보배처럼 간직하고 있다. 주인인 오블로모프 역시 그 시절의 흔적처럼 살아가고,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그는 여전히 침대 위에 있다. 아니, 그래서 언제 일어날 건데? 세수는 또 언제 할 거냐고! 눈앞의 거미줄이 거슬려 죽겠으면 그냥 가서 치우면 안 되는 거야? 하아, 일단 환기 좀 시키면 안 될까? 먼지가 뽀얗게 앉은 가구를 보고 있자니 내 목이 다 칼칼한 것 같다.

그. 러. 나.

오블로모프 본인은 또 별 불만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근심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시골 영지에서는 해마다 흉년이나 수입 감소 같은 좋지 않은 소식이 날아오고, 살고 있는 집까지 비워야 할 상황에 처한다. 문제는 이 모든 일을 해결하려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오블로모프에게 움직인다는 것은 귀찮음의 문제가 아니라 거의 절망에 가깝다. 집에 이따금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해보려 하지만, 세상에 공짜란 없는 법! 그들은 하나같이 주옥같은(발음 조심) 소리를 늘어놓고 갈 뿐이다. 그런데 오블로모프의 게으름보다 더 궁금한 건 따로 있다. 농노제 폐지를 앞두고 낡은 귀족 사회가 흔들리던 19세기 러시아에서, 곤차로프는 왜 하필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는 인간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을까?

이 책보다 수십 년 뒤에 나온 체호프의 <구스베리>를 최근에 읽다가, 오블로모프와 묘하게 겹쳐 보이는 인물을 만났다. 작품 속 수의사 이반 이바니치는 세상과 부딪히기보다 자신의 영지에 숨어 평생을 보내고 싶어 했던 동생 니콜라이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인간에게는 단지 3아르신의 땅만 있으면 된다고 하지요. 하지만 3아르신은 산 사람이 아니라 시체에게나 맞는 크기잖아요. (…) 자기 영지에 숨는다는 것―그것은 진정한 삶이 아니라, 이기주의이고 나태함이며 덕행이 결여된 엉터리 수도생활 같은 것이죠.”

이반 이바니치의 말을 읽는데 오블로모프의 침대가 떠오르는게 아닌가. 물론 약간의 차이는 있다. 니콜라이는 바라던 영지를 얻고 그 안에서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문제는 그 만족에 빠져 영지 바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지 못한다는 데 있다. 오블로모프 역시 자기만의 세계에 머물며 그 안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이 책은 농노제가 폐지되기 전에 나왔고, <구스베리>는 그 뒤에 나왔다. 시대는 다르지만, 두 인물을 보며 되묻게 되는 건 같다. 자기만의 만족에 안주하는 것만으로 우리 삶은 충분한 걸까.

오블로모프는 꿈도 자기 같은 꿈만 꾼다. 옛 시절에 머물러 개울물이 졸졸 흐르고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듣고, 하인들이 짐수레에 건초더미를 수북하게 쌓아 올리는 모습이나 보는 삶. ‘내일도 오늘만 같아라.’ 배 두들기며 지내는 상상만으로도 벌써 입꼬리가 씨익 올라가니 말이다. 게으름이 뚝뚝 묻어나고 복장 터지는 소리나 늘어놓는 인물이었다면 진작 진력이 났을 텐데, 흥미로운 건 그가 하는 말이 마냥 웃어넘길 수만은 없다는 거다. 듣다 보면 은근히 납득도 된다. 오블로모프는 사람들이 그토록 애써 살아가는 이유부터 되묻는다. 의외인 건 정작 삶의 이유를 ‘인간’과 ‘사랑’에서 찾으려 한다는 점이다.

“인간, 제 말은 인간을 사랑하자는 겁니다······” (p. 48)

그가 영 못마땅해하는 건 사람들이 당연한 듯 받아들이는 것들이다. 쓸데없는 분주함부터 허위의식, 사교적인 말들, 체면을 위한 삶까지. 남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부지런히 따라가는 게 정말 ‘사는 거’라고 할 수 있을까. 오블로모프는 이런 의문을 품을 줄도, 다른 사람들의 삶을 생각할 줄도 아는 사람이다. 그런데 정작 자기 삶을 바꾸는 일 앞에서는 좀처럼 움직이지 못한다는 거. 2권으로 넘어가면 어떨지 모르겠다만, 지금까지는 이게 오블로모프의 한계로 보인다. 곁에 뭐든 대신 해 주는 (시답잖긴 해도) 하인이 있으니.

딱 부러진 이념을 내세우는 사람도, 무언가에 푹 빠져 몰두하는 사람도 아닌 오블로모프. 유약하고 순한 데다 생각하고 느끼는 힘은 있지만, 현실의 압력을 견디고 행동으로 옮기는 데는 영 힘을 못 쓴다. 무사태평하게 살아온 그에게 고달픈 인생이란 먹는 것이더냐! 알 리가 만무하다. 해야 할 일을 뻔히 알면서도 자꾸 미루니 내 속이 다 답답하다. 흠, 그런데 쓰다 보니 오블로모프를 두고 품평회라도 연 것 같아 마음이 썩 편치가 않군. ㅋㅋ 나 역시 첫발을 떼지 못한 채 누가 앞에 등불이라도 확 켜주길 기다리던 시절이 있었기에, 그를 마냥 욕하지는 못하겠다.

암튼 그건 그렇고, 세상에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이란 없다 했던가! 오블로모프, 그에게도 사랑이 찾아왔다.

(2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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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블로모프 1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10
이반 알렉산드로비치 곤차로프 지음, 최윤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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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 소란에 지친 이들이여, 모이시라! 머릿속엔 근사한 삶을 그리지만 첫 단추도 못 끼우는 오블로모프가 묻는다. 남들 따라 쓸데없이 분주하고, 허위의식에 젖어 사교적인 말과 체면치레에 매달리며 사는 게 정말 ‘사는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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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 속의 사나이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48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박현섭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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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비내리는 가을 황혼녘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특별히 애를 쓸 것도 없다” — ‘그’라는 말 하나가 주는 무게감. 시간이 눌러놓은 기억을 꺼내놓듯 시작해 삶의 언저리를 맴돌다 끝내 ‘아차’ 싶은 자각을 남기는 이야기까지. 나의 첫 체호프! 요 근래 읽은 단편 중 가장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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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무거운 생각이 그토록 오랫동안 그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은 결국 그 생각 속에 일말의 진실이 담겨 있기 때문인 것이다. - P61

"인생은 고약한 함정 이지요. 한 인간의 사색이 무르익어 완숙한 단계가 되었을 때,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가 출구 없는 함정에 빠졌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사실 그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떤 우연성에 의해 무로부터 세상으로 불려나온 거예요······ 왜죠? 그는 자기 존재의 의미와 목적을 알고 싶어하지만, 그것에 대해 말해주는 사람도 없고, 말해준다 하더라도 헛소리들일 뿐입니다. 그는 문을 두드리지만, 그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죽음이 찾아오지요. 이 역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합니다. 감옥에서 공통의 불행으로 엮인 인간들이 함께 지내며 위안을 느끼듯이, 인생에서는 분석과 이론을 즐기는 인간들이 함께 모여 고담준론을 자유롭게 나누며 시간을 보내지요. 그러다보면 그것이 함정이라는 것도 잊게 되겠죠. 그런 의미에서 지성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쾌락입니다." - P78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죽음에는 오로지 이득만 있을 뿐이라는 생각을 했다. 먹거나 마시지 않아도 되고, 세금을 안 내도 되며, 사람들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아도 된다. 무덤에 누워서 일 년도 아니고 백 년, 천 년을 지낼 테니, 그걸 다 계산하면 엄청난 이득이 되지 않겠는가. 사람은 살아 있으면 손해고, 죽으면 이득이다. 물론 이런 생각이 일리가 없는 건 아니겠지만 그렇더라도 모욕적이고 뼈아픈 진리다. 이 세상의 이치란 왜 이리도 괴상한 것일까? 인간에게 단 한 번 주어진 삶이 이토록 아무 쓸모 없이 흘러가버리니 말이다. - P159

저는 떠올려봤어요. 실상 얼마나 많은 사람이 만족하고 행복해하며 살고 있는지! 이들의 세력은 참으로 압도적입니다! 우리 삶을 한번 보세요. 강자들의 몰염치와 나태, 약자들의 무지몽매, 주변의 끔찍한 궁핍, 비좁은 환경, 타락, 폭음, 위선, 거짓······ 그런 와중에도 집안이나 거리는 조용하고 평온합니다. 이 도시에 사는 오만 명의 사람 중 그 누구도 비명을 지르거나 큰 소리로 분노를 토하는 사람은 없지요. 시장에 가면 식료품을 사려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들은 낮에는 먹고, 밤에는 잠자고, 제각기 헛소리를 지껄이다가, 결혼을 하고, 나이를 먹고, 그러다가 죽은 이웃을 싣고 숙연한 얼굴로 묘지에 갑니다. 우리에게는 고통받는 이들이 보이거나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지요. 그런데 이 세상의 끔찍한 일들은 무대 뒤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거든요. 모두 조용하고 평온한 가운데서 오직 통계 숫자만이 소리 없는 항변을 합니다. - P200

어쩌면 바로 이 영속성 속에, 우리 모두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 완전한 무관심 속에, 인간의 영원한 구원에 대한 약속이, 지상의 생명들의 끊임없는 운동과 끊임없는 완성에 대한 약속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여명 속에서 너무도 아름다워 보이는 젋은 여인과 나란히 앉아, 바다와 산과 구름과 광활한 하늘이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풍경들에 매혹되고 마음이 평온해진 구로프는 이렇게 생각했다. 곰곰이 생각해본다면 본질적으로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아름다운 것 이다. 존재의 고귀한 목적과 자신의 인간적 가치를 망각한 채 우리가 생각하고 행하는 것들을 제외한다면 모든 것이 아름답다. - P259

좀더 지내다보면 해결책을 찾게 될 것도 같았다. 그때는 새롭고 멋진 삶이 시작될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끝은 아직 저멀리 있고,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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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스토리
리처드 파워스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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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속을 걸을 때마다 사람은 자신이 찾던 것 이상을 얻는다. 우주로 들어가는 가장 명확한 방법은 야생의 숲을 통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곳에서 살아가는 아무 연관 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차례로 등장한다. 나무와 함께 자라고, 나무를 연구하고, 삶의 한가운데서 나무를 만나고, 각각의 삶에 나무는 늘 가까이 있다. 줄기처럼 따로 뻗어가던 그들의 삶은 어느 순간 서로 맞닿기도 한다. 태어나고, 자라고, 가장 넓게 뻗어나가기도 하고, 베이기도 하고, 어딘가에서 또 싹을 틔우기도 하는 나무의 시간을 따라가면 인간의 짧은 생을 생각하게 된다. 사람은 자꾸 서두르지만, 나무는 기다린다. 계절이 돌아오기를, 비가 내리기를, 시간이 자기 몫만큼 흐르기를.

병충해가 나무 깊숙이 파고들 듯, 고난도 예고 없이 들이닥친다. 예상도 못 한 극단적인 상황을 맞닥뜨린 가족 이야기에 이건 해도 해도 너무 했다 싶다가도, 현실과 또 뭐가 다른지 똑 부러지게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인생에 열 계단이 있다면 고작 한두 계단 올랐거나 말았을 내가, 어떠한 선택 하나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 삶을 통째로 뒤흔들 수 있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은 너무나 많다.

몇 해 전 그날이 잠깐 떠오르는 이야기도 있었다. 1948년 상하이의 한 부자의 이야기인데, 무역회사를 하는 후이족 무슬림 사업가 마 쇼잉은 공산세력이 곧 들어올 것을 염려해 아들에게 미국으로 떠나라고 한다. 비밀 금고에 간직해 둔 세 개의 옥반지도 아들에게 건넨다. 각각 과거와 현재, 미래를 뜻하는 나무가 세공된 반지였다. 그리고 아버지는 자신과 마 가문이 격변 속에서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때 아들은 그 반지와 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의 의미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었을까. 우리 아빠도 첫 출근을 앞둔 내게 옥반지 같은 건 없었지만, 짧고 굵은 이야기 몇 마디를 건넨 적이 있다. “그놈이 가면 더 한 놈이 온다.” 지금 생각하니 좀 웃기다. 마 쇼잉이 아들을 떠나보내야 했던 상황과 내 첫 출근은 전혀 다른 일이었는데, 현실적인(?) 그때의 말 한마디가 왜 갑자기 생각나던지. 사람에게 남는 게 꼭 대단한 것만은 아닌가 보다.

저문다는 것. 한 사람이 평생 살아온 시간이 점점 뒤로 물러나고 앞으로 남은 시간이 조금씩 줄어드는 인간의 생애를 나무의 시간과 나란히 놓으니, 시간 자체가 왠지 더 쓸쓸하게 느껴졌다. 지금 흘러가는 시간 하나하나가 전과는 조금 다르게 보이는 건 무언가를 잃고 난 뒤에서야 생기는 것 같다. 슬픔에 잠식되지 말라며 놓고 간 선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시간은 지나간 것을 잊게 만들고, 곁에 있던 것을 잃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 나날의 연속에도 무언가는 천천히 쌓이고 있다는 것을 위안 삼아본다. 봄이면 어떨까, 여름은 또 어떻고, 가을엔 좀 다를까, 금방 또 겨울이군. 계절마다 속속들이 들어차 있던 대단치도 않은 생각들이 머릿속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구나 싶지만, 그건 또 그런대로 나름의 역할을 해줄 때가 있다.

이어간다는 것. 한 사람의 생이 저물어도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까지 함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기억으로 남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삶에 닿기도 하고,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이어지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무는? 나무는 더 긴 시간 속에서 이어짐을 보여주고 있다. 한 그루가 사라져도 숲의 시간은 멈추지 않고,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는 또 무언가가 자라고 있을 테니까. 그런 나무를 베어내려는 사람들과 그것을 막으려는 사람들이 한 숲에서 맞선다. 나무를 베는 데는 법도 있고 이유도 있다. 그래서 베는 사람은 할 일을 하는 것이고, 막는 사람은 법 밖에 서게 된다. 이상하다. 법이 허락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한 걸까.

무엇을 소유할 수 있고 누가 소유를 할 수 있을까? 무엇이 권리를 부여하고 왜 전 지구상에서 인간만이 그걸 가져야 할까? (p. 351)

나무를 연구하는 박사 패트리샤 웨스터퍼드는 “나무가 서로에게 말을 한다.”고 알려준다. 나무들이 뿌리와 균류를 통해 연결되어 서로 신호를 주고받고, 필요한 물질을 나누기도 한다며 숲을 하나의 연결된 사회처럼 바라본다. 언제나 숲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그녀를 보고, 사람들은 나무가 지성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여자라며 조롱하듯 수군거렸다. 내가 자연으로부터 얻은 치유, 모든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나’와 ‘나무’ 사이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느낀 숲의 보살핌에, 어느 것 하나 시작되지 않았는데도 이미 이룬 것 같고, 또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머릿속까지 시원해지는 그 개운함을 나는 과연 무엇으로부터 얻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숲이 우거진 공간에서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과 시원하게 부는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뭇잎들에게서 얻는 생의 약동감을. 지나가다 보이는 들꽃 이름 하나도 알지 못하는 내가, 그 알지 못하는 이름을 하나하나 알려주는 엄마의 음성을 들으면서도 ‘아, 그렇구나’라는 힘도 안 드는 대꾸조차 하지 않았던, 그런 나에게도 무언가를 쥐여주는 자연의 관대함을.

나무가 그래봤자 나무일 뿐인데, 나무에서 나올 만한 이야기가 뭐가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지나쳐 버렸었다. 사실 예전 같으면 관심조차 두지 않았을 거다. 이 또한 상실 이후에 생긴 변화 중 하나일 듯싶다. 마음에 잔물결이 생길 거라고는 생각도 해본 적 없는 이야기에 매료될 줄도, 나무에 아무 의미도 두지 않던 내가 자연에 빚을 졌다고 말하게 될 줄도, 이 책을 읽게 될 줄도 몰랐다. 베트남전에서 반얀나무 한 그루 덕에 목숨을 건진 한 남자는 그 이후, 벌거벗은 땅에 나무를 심고 숲을 지키는 사람이 된다. 뇌 손상을 입은 남편을 병간호하던 한 여성은, 삶이 강제로 느려지고 나서야 뒤뜰에 심어 둔 나무들을 남편과 함께 하나씩 알아가기 시작한다. 알면 알수록 그녀의 가슴에 놀라움 덩어리가 자리하고, 그 무렵 책에서 이런 문장을 만난다. “개간된 땅에 숲을 되돌아오게 만드는 가장 훌륭하고 쉬운 방법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는 나무를 심으며 손을 보탰고, 누군가는 손을 거두며 자연에게 자리를 내주는 법을 배웠다.

덩굴이 벽을 한 뼘씩 타고 오르는 것처럼 책장이 더디게 넘어갈 때마다, “숲을 산책하고 나서 기분이 좋아진다면, 그것은 특정 종이 당신을 매수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나무들은 오랫동안 우리에게 닿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사람들이 듣기에는 너무 낮은 주파수로 말을 한다”는 단순한 말 안에 담긴 확신이 생각을 건드렸다. 앞으로 자연과 나무가 또 내게 어떤 의미가 될지는 모르겠다. “개개의 나무들의 생화학적 행동은 이들을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볼 때에만 이해가 가능할 것”이라는 패트리샤의 말을 떠올리며, 또다시 숲의 신호에 귀를 기울이러, 나무에게 매수당하러 가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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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6-09-29 1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물고 이어가는 것.
곰돌이 님의 리뷰는 정말 아름답군요.

곰돌이 2026-09-29 13:21   좋아요 0 | URL
누군가 내게 남기고 간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알아채는 순간이 있곤 하잖아요. 그럴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드는 생각들, 고마우면서도 또 한편으론 그 자체가 참 가혹한 것 같다 싶은 복합적인 감정의 결을 느끼게 만든 것이 나무라서, 생각도 더 깊었던 것 같아요.

다락방 2026-09-29 1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믿고 읽는 곰돌이 님의 리뷰입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저는 이 책을 가지고 있으며, 또 다행스럽게도 저는 나무와 숲을 사랑합니다. 게다가, 저는 인간은 어쩔 수없이, 필연적으로 비인간과 함께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도 이 책을 읽어보겠습니다.

곰돌이 2026-09-29 13:23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은 이미 자연과 나무에 대한 심리적 거리가 가까운 분이니, 리처드 파워스가 이 책을 사람들이 읽고 나무를 위해 뭐라도 하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라, 그저 자각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쓰고 있구나 하는 걸 더 많이 발견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책에서 좋아했던 부분이 하나 떠올랐어요.

“뮤어의 근사한 말이 있죠. ‘난 그저 산책을 나갔을 뿐인데….’”

잉크냄새 2026-10-25 16: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뒷북이지만 이달의 리뷰 당선 축하드려요.

곰돌이 2026-10-25 16:38   좋아요 0 | URL
오늘 제 뒷북 100자평을 이렇게 받아주시는 건가요? 뒷북 라임 무엇 ㅋㅋ 잉크냄새님의 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