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블로모프 1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10
이반 알렉산드로비치 곤차로프 지음, 최윤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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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바탕에 <오블로모프>라는 제목과 작가 이름 정도만 덩그러니 적힌 표지. 왠지 러시아 문학의 묵직한 이야기와 웃음기 싹 빠진 인간사가 빼곡히 적혀 있을 것만 같아 괜히 읽기 전부터 허리를 한 번 펴고 앉아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자 각 잡힌 분위기가 한 번에 무너졌다.

침대. 그것도 아주 편안해 보이는 침대.

부드럽고 신축성 좋은 잠옷을 입은 삼십 대 남자가 침실이면서 서재이고 거실이기도 한 방에 누워 있다. 오블로모프다. 이 인간, 누워 있는 것이 일상이다.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은 한다. 그런데 생각만 한다. 방 안을 둘러보면 더 가관이다. 곳곳에 먼지는 쌓여 있고, 거미줄은 죽죽 이어져 있고, 널브러진 접시에 먹다 흘린 빵 부스러기까지... 이걸 누가 치우느냐? 오블로모프가 부르면 언제든 하인 자하르가 투덜대며 와 줄 거다. 그런데 자하르도 만만치 않다. 주인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아 공중제비 두 바퀴쯤은 너끈히 돌 것 같다. 집구석이 이게 뭐냐며 청소를 좀 하라고 하자 자하르는 태연하게 대꾸한다.

“치워봐야 또 쌓일 텐디유 뭐.”

아니, 그럼 안 치우겠다는 거잖아? 서로 말로 이겨 먹는 데는 도가 튼 주인과 하인, 이 둘이 붙어 있으니 집안이 멀쩡할 리가 없다. 오블로모프가 한 번 호되게 나무라면, 처지가 처지인지라 자하르는 이내 걸쭉한 사투리를 쏟아내며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린다.

“가슴이 찡한 말도 재간이 있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겨. 심장을 칼루다 도려내는 것 같어······ 내 집, 내 채소밭, 거기서 두 발 쭉 뻗구 누워보았으면!”

한때 부유했던 오블로모프 가문은 이제 가세가 기울어 다른 귀족들 사이에서도 잊힌 처지다. 아직 지방에 영지도 있고 재산도 남아 있지만, 오블로모프는 영지를 직접 돌보는 일도, 자기 삶을 꾸려가는 일도 좀처럼 하지 않는다. 늙은 하인들은 지난날의 기억을 귀한 보배처럼 간직하고 있다. 주인인 오블로모프 역시 그 시절의 흔적처럼 살아가고,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그는 여전히 침대 위에 있다. 아니, 그래서 언제 일어날 건데? 세수는 또 언제 할 거냐고! 눈앞의 거미줄이 거슬려 죽겠으면 그냥 가서 치우면 안 되는 거야? 하아, 일단 환기 좀 시키면 안 될까? 먼지가 뽀얗게 앉은 가구를 보고 있자니 내 목이 다 칼칼한 것 같다.

그. 러. 나.

오블로모프 본인은 또 별 불만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근심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시골 영지에서는 해마다 흉년이나 수입 감소 같은 좋지 않은 소식이 날아오고, 살고 있는 집까지 비워야 할 상황에 처한다. 문제는 이 모든 일을 해결하려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오블로모프에게 움직인다는 것은 귀찮음의 문제가 아니라 거의 절망에 가깝다. 집에 이따금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해보려 하지만, 세상에 공짜란 없는 법! 그들은 하나같이 주옥같은(발음 조심) 소리를 늘어놓고 갈 뿐이다. 그런데 오블로모프의 게으름보다 더 궁금한 건 따로 있다. 농노제 폐지를 앞두고 낡은 귀족 사회가 흔들리던 19세기 러시아에서, 곤차로프는 왜 하필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는 인간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을까?

이 책보다 수십 년 뒤에 나온 체호프의 <구스베리>를 최근에 읽다가, 오블로모프와 묘하게 겹쳐 보이는 인물을 만났다. 작품 속 수의사 이반 이바니치는 세상과 부딪히기보다 자신의 영지에 숨어 평생을 보내고 싶어 했던 동생 니콜라이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인간에게는 단지 3아르신의 땅만 있으면 된다고 하지요. 하지만 3아르신은 산 사람이 아니라 시체에게나 맞는 크기잖아요. (…) 자기 영지에 숨는다는 것―그것은 진정한 삶이 아니라, 이기주의이고 나태함이며 덕행이 결여된 엉터리 수도생활 같은 것이죠.”

이반 이바니치의 말을 읽는데 오블로모프의 침대가 떠오르는게 아닌가. 물론 약간의 차이는 있다. 니콜라이는 바라던 영지를 얻고 그 안에서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문제는 그 만족에 빠져 영지 바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지 못한다는 데 있다. 오블로모프 역시 자기만의 세계에 머물며 그 안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이 책은 농노제가 폐지되기 전에 나왔고, <구스베리>는 그 뒤에 나왔다. 시대는 다르지만, 두 인물을 보며 되묻게 되는 건 같다. 자기만의 만족에 안주하는 것만으로 우리 삶은 충분한 걸까.

오블로모프는 꿈도 자기 같은 꿈만 꾼다. 옛 시절에 머물러 개울물이 졸졸 흐르고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듣고, 하인들이 짐수레에 건초더미를 수북하게 쌓아 올리는 모습이나 보는 삶. ‘내일도 오늘만 같아라.’ 배 두들기며 지내는 상상만으로도 벌써 입꼬리가 씨익 올라가니 말이다. 게으름이 뚝뚝 묻어나고 복장 터지는 소리나 늘어놓는 인물이었다면 진작 진력이 났을 텐데, 흥미로운 건 그가 하는 말이 마냥 웃어넘길 수만은 없다는 거다. 듣다 보면 은근히 납득도 된다. 오블로모프는 사람들이 그토록 애써 살아가는 이유부터 되묻는다. 의외인 건 정작 삶의 이유를 ‘인간’과 ‘사랑’에서 찾으려 한다는 점이다.

“인간, 제 말은 인간을 사랑하자는 겁니다······” (p. 48)

그가 영 못마땅해하는 건 사람들이 당연한 듯 받아들이는 것들이다. 쓸데없는 분주함부터 허위의식, 사교적인 말들, 체면을 위한 삶까지. 남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부지런히 따라가는 게 정말 ‘사는 거’라고 할 수 있을까. 오블로모프는 이런 의문을 품을 줄도, 다른 사람들의 삶을 생각할 줄도 아는 사람이다. 그런데 정작 자기 삶을 바꾸는 일 앞에서는 좀처럼 움직이지 못한다는 거. 2권으로 넘어가면 어떨지 모르겠다만, 지금까지는 이게 오블로모프의 한계로 보인다. 곁에 뭐든 대신 해 주는 (시답잖긴 해도) 하인이 있으니.

딱 부러진 이념을 내세우는 사람도, 무언가에 푹 빠져 몰두하는 사람도 아닌 오블로모프. 유약하고 순한 데다 생각하고 느끼는 힘은 있지만, 현실의 압력을 견디고 행동으로 옮기는 데는 영 힘을 못 쓴다. 무사태평하게 살아온 그에게 고달픈 인생이란 먹는 것이더냐! 알 리가 만무하다. 해야 할 일을 뻔히 알면서도 자꾸 미루니 내 속이 다 답답하다. 흠, 그런데 쓰다 보니 오블로모프를 두고 품평회라도 연 것 같아 마음이 썩 편치가 않군. ㅋㅋ 나 역시 첫발을 떼지 못한 채 누가 앞에 등불이라도 확 켜주길 기다리던 시절이 있었기에, 그를 마냥 욕하지는 못하겠다.

암튼 그건 그렇고, 세상에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이란 없다 했던가! 오블로모프, 그에게도 사랑이 찾아왔다.

(2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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