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튀르키예 작가 쥴퓌 리바넬리의 <세레나데>였다. 독일계 미국인 노교수 막시밀리안 바그너가 59년 만에 이스탄불에 도착해 그를 수행하게 된 마야에게 긴 시간 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그 이야기 한가운데에 스트루마호가 있다. 유대인에 대한 박해를 피해 루마니아를 떠나 팔레스타인으로 가려던 수백 명이 이 배에 올랐고, 바그너의 아내 나디아도 그 안에 있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을 통치하던 영국은 아랍인들의 반발 등을 우려해 유대인의 이주를 제한했고, 튀르키예 정부 역시 이들의 상륙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렇게 배는 이스탄불 앞바다에서 오랫동안 발이 묶이고 만다.

배 안에서는 먹을 것이 떨어지고, 아기들의 울음소리와 사람들의 구조 요청이 끊이지 않았다. 그 외침은 육지에까지 닿았지만, 누구나 자유롭게 배에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허가를 받은 이스탄불의 유대인 단체가 스트루마호에 식료품과 약품을 날랐다.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누군가는 자신의 삶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용기를 내지 않았을까. 배에서 내릴 수 있기를 얼마나 소망했을까. 또 다른 누군가는 눈앞에 육지를 두고도 내릴 수 없는 현실이 오히려 절망스럽지는 않았을까. 나는 그 마음들을 다 알 수가 없다. 바그너가 하루빨리 나디아를 만나 예쁜 집으로 데려가고만 싶었다고 했던 그 말에 콧잔등이 시큰해져 짐작만 해 볼 뿐이다.

“이 일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어렵군요. 몇백 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나디아를 만나는 게 세계 정치문제가 돼버리다니.” (<세레나데>, p. 396)

스트루마호는 한때 다뉴브강에서 가축을 실어 나르던 낡은 배였다. 그 배가 사람들을 태우고 팔레스타인으로 향하려 했던 것이다. 중부유럽에서 흑해까지 이어지는 다뉴브강. 사람과 물자가 오가는 길이었고, 때로는 제국의 경계가 되기도 했다. 이 강을 따라서는 또 어떤 사람들이 지나갔고,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그렇게 이탈리아 작가 클라우디오 마그리스의 <다뉴브>를 만나게 된다.

다뉴브강은 한 줄기의 강이지만, 어디에서 시작하는지를 두고 오랜 논쟁이 이어져 왔다. 여러 나라를 가로지르며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를 품은 강이라서일까. 그 시작을 두고 여러 가설이 나왔는데, 퇴적학자 아메데오는 다뉴브강이 아무도 잠그지 않은 한 수도꼭지에서 생겨난다는 가설까지 내놓았다. 아메데오는 직접 그곳을 찾아 나선다. 그런데 그에게 이 탐사는 단순히 강의 시작점을 확인하는 일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자기 안에 갇힌 생각에서 벗어나 바깥을 바라볼 구실도 필요했던 모양이다.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 언제나 답을 찾아가는 길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면 제자리에서 맴돌 때도 있으니까. 사실 꼭 답을 찾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잠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거나 바깥 풍경을 보고 있다 보면, 내 안에서만 맴돌던 생각도 슬쩍 딴 데로 새곤 한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오지 마라, 라고 설교하던 때의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어느 정도는 틀렸다. 그랬다가는 자기 안에 갇혀 별점을 치다가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고, 결국 그의 두려움에서 나온 찌꺼기와도 같은 연기에 휩싸인 우상, 저녁기도에서 어서 썩 꺼지라고 명하는 이 악몽에서처럼 어둠 속에 도사린 허망한 이 우상에게 향을 피우게 된다. (p. 29)

이 책은 베네치아의 시의원 마우리치오 체코니가 제안한 <여행 건축: 호텔의 역사와 유토피아>라는 주제의 전시회에 함께하자는 초대장에서 시작한다. 여행의 건축학이라니. 어디 여행이라는 게 계획대로만 흘러가던가?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지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뜻밖의 무언가를 발견하기도 하는 게 여행인데 말이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여행이고 삶이라는 이야기를, 마그리스는 초대장 한 장에서부터 슬쩍 꺼내 놓는 게 아닐까 싶다.

9부로 나뉜 책에서 1부만 들여다봤는데도 카프카, 괴테, 첼란, 셀린, 헤겔, 횔덜린, 하이데거, 키르케고르 등 여러 인물이 언급된다. 지금까지 읽으면서 든 생각은, 마그리스가 인물이나 역사를 하나의 이름으로 정리할 수 없다는 걸 보여주려는 게 아닐까 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어떤 면을 높이 평가한다고 해서 다른 면까지 긍정할 수 있는 건 아니고, 반대로 한 가지 면만으로 그 사람을 다 설명할 수도 없을 테니까. 살아온 시대와 내린 선택, 그로 인해 벌어진 일들이 얽혀 있으니 말이다. 이런 모순과 간극을 여러 인물을 통해 들여다보는 것이 흥미로웠다. 역사와 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시처럼 읽히는 아름다운 문장을 만나 잠시 쉼을 얻기도 했다.

사실 우리는 고아나 다름없이 살아간다고, 횔덜린은 「다뉴브 강의 수원에서」라는 시에서 말했다. 강은 삶의 흐름처럼 햇살에 반짝이며 흘러가지만, 빛나는 그 인상은 눈이 부신 시선이 만들어낸 시각적 환상이다. (...) 강은 늙은 도인道人과 같다. 강변을 따라가며 큰 바퀴 위에서도, 바퀴살 틈새에서도 가르친다. 여행마다 여유로운 시간, 나태, 흘러가는 물결 등, 적어도 남쪽의 한 조각이 있다. 자신의 강변에 있는 고아들에게 무관심한 채, 다뉴브 강은 바다를 향해, 위대한 확신을 향해 흘러간다. (p. 23)

마그리스가 어떤 생각을 하는 작가인지 엿볼 수 있는 이야기를 만나기도 한다. 뜻밖에도 오래전 한 시인과 여인의 사랑 이야기다.

4세기 로마의 시인이자 수사학자였던 아우소니우스는 368년 게르만 원정에 나선 로마군을 따라갔다. 원정에서 승리한 뒤 그는 여성 노예 한 명을 얻었고, 그녀에게 비술라라는 이름을 붙였다. 쉰여덟의 아우소니우스는 비술라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녀를 자유롭게 해주었지만 비술라는 그를 따라 로마까지 왔다. 게르만인의 금발과 눈을 지녔으면서도 로마식 옷을 입고 그곳의 생활에 익숙해진 그녀. 아우소니우스는 비술라를 사랑하면서도 그녀의 출생이나 독일의 강과 숲을 부정하라고 하지 않았다. 새로운 정체성을 얻는다고 해서 이전의 자신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었을까. 이 이야기를 읽다 보면 마그리스가 서로 다른 문화의 만남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아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물론, 늘 조화로운 만남만 있는 것도 아니고, 서로 다른 것들이 부딪히는 순간마다 선택해야 할 일도 생긴다. 다뉴브를 따라가는 동안 마그리스는 또 어떤 이야기들을 이어갈까. 아직 갈 길이 (매우) 멀다.

모든 민족에게는 자신의 때가 있는 법이고, 절대적으로 더 우월하다거나 열등한 문화는 없으며, 다만 민족들이 각기 다른 시기에 번영하고 쇠퇴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체험하여 확실하게 배우지 않는 한, 우리는 진정으로 안전하다 말할 수 없을 뿐이다. 삶을 살아가고 읽는다는 것은, 모든 시기와 모든 국가에서 일어난 ‘인간의 정신사’를 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강을 따라 삼각주까지 가다 보면 여러 다양한 사람과 민족 속에서 피비린내 나는 전장을 보게 될까. 아니면 언어와 문화의 다양성 속에서 이 모두에도 불구하고 하나 된 인류의 합창을 듣게 될까. (p. 43)

관심이 가는 것마다 따라가다 보면 끝이 없다. 갖가지 사유를 좇으며 그 안에 담긴 본질까지 알아내 빈약한 영혼을 살찌우겠다는 욕심도 그닥 없다. 내 발등에 떨어진 일 처리하기도 천근만근이다. 그래도 자꾸 따라가게 되는 건, 그 안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다뉴브강을 따라 중부유럽에서 발칸으로 관심이 이어졌고, 마침 발칸을 배경으로 한 영화 <킹 페타르: 세계대전의 서막>을 보게 됐다. 1915년 겨울, 세르비아군과 피란민들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독일, 불가리아의 협공을 피해 알바니아 산맥을 넘어 후퇴해야 했다. 눈앞에 화면을 채우는 건 눈과 추위 속에서 산길을 걷다 쓰러지는 사람들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행렬을 보고 있자니, 그 겨울을 어떻게 버텼을까 싶었다.

영화 속에서 만난 세르비아의 페타르 1세 국왕은 실제로 젊은 시절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세르비아어로 옮겼을 만큼 자유주의적 신념을 품었던 인물이다. 개인의 존엄과 자유를 이야기하던 사람이 포화가 빗발치는 전선에서 병사에게 듣는 자유는 ‘고통받을 자유’뿐이었다. 그 앞에서 페타르 왕은 끝내 말을 잇지 못한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자니 발칸의 역사를 조금 더 들여다보고 싶어졌고, 책장에 꽂혀 있던 이보 안드리치의 <드리나 강의 다리>를 펼쳤다. 영화에서 본 전쟁은 그 땅이 겪어온 긴 세월 가운데 한 시기였다. 소설은 그보다 훨씬 앞선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그곳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망각은 모든 것을 치유시켜주었으며 노래는 망각의 가장 아름다운 방법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노래 속에서 오직 사랑하는 것만을 기억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하늘과 강과 산 사이 카사바에서 대를 이어간 세대는 혼탁한 물결이 휩쓸고 간 것에 그다지 슬퍼하지 않는 태도를 터득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곳에서 삶은 끊임없이 닳고 소모되지만 그러면서도 역시 지속되고 ‘마치 드리나 위의 다리처럼’ 단단하게 서 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기적이라는 카사바의 무의식적인 철학이 그들에게 스며든 것이었다. (p. 117)

새 신발에 뒤꿈치가 콱 깨물려도 괜찮겠거니 하며 계속 걷다가, 도저히 아니다 싶어 양말을 젖혀보면 이미 많이 까져 있다. 삶에도 그런 일이 있다.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거나, 뒤늦게 알아채거나, 알면서도 별일 아니겠거니 여긴 것들이 어느새 덩치를 키우고 있다. 미리 뒤꿈치에 밴드라도 하나 붙여두었으면 될 일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제 뜻대로만 살 수 없다며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여긴 방향들을 조금씩 지우기도 하고, 실리를 좇는 기회주의자이자 몇 가지 요령만을 갖춘 겁쟁이가 되어가는 것 같기도 하다. 조금은 유연해진 것이라고 위안이라도 삼아 본다. 이렇게 스스로를 달래보는, 별거 아닌 하루다. 그런데 그 뒤늦음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사람들의 삶에 닿고 나면, 내가 뭘 안다고 그랬을까 싶어진다. 훨씬 큰 힘에 떠밀려 살아야 했던 사람들은 그 시간을 도대체 어떻게 지나왔을까. 사실, ‘어떻게’랄 게 있을까 싶다.

역사라는 이름 아래 몇 줄 줄거리로 요약되기 전에, 그곳에는 각자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하루하루가 있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책이나 영화로 만난다. 이미 결말을 알고 있는 이야기도 많다. 익숙하고 비슷한 이야기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그 안에 있던 사람에게는 처음이자 단 한 번의 일이었을 것이다. 내가 책을 통해 만난 사람들, 영화 속 그 겨울에 쓰러진 사람들에게도 한 사람 몫의 하루가 분명 있었을 텐데, 그 하루들은 대부분 이름도 없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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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6-10-29 15: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제나처럼 글과 사진 모두 아름답네요.

저는 저기 중간에, 그 겨울을 어떻게 버텼을까, 하는 문장에서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가 생각났어요. 추운 겨울, 눈 위를 걷던 소년이 갓난 아이를 발견하고, 저 살기도 바쁜데 그 아기를 기어코 품에 안고 다시 그 추위를 걷던 장면이요. 그 책은 그래서 처음부터 하, 진짜 인간 뭐냐, 나도 힘들어 죽겠는데 가만 두면 죽겠다고 다른 사람 살리려는 그거, 그거 진짜 뭐냐, 싶었거든요. 저는 그 겨울을 어떻게 버텼을까, 멈춰 생각해보는 곰돌이 님에게서도 아 진짜 인간은 뭐냐, 하는 그 생각을 합니다. 그 따뜻한 지점에서 말이지요.

따뜻한 마음을 가지신 분이라서 사진도 이토록이나 따뜻한가 봅니다. 저런 정갈한 사진, 저는 꿈도 못꿔요.

곰돌이 2026-10-29 15:47   좋아요 0 | URL
책을 읽는 재미가 이런 데도 있구나 싶어요. 저는 혼자 읽고 혼자 끄적거리고, 거기에서 그치는 사람이라서요. 제가 읽거나 본 어떤 장면을 두고 다락방님은 다른 책을 떠올리시고, 그 이야기가 또 저한테 오고, 이렇게 책 이야기가 연결되는 게 저한테는 흔한 일이 아니라서 더 좋네요.

저는 <웃는 남자>를 아직 안 읽어서 그 소년은 모르지만, 추위 속에서 아기를 품에 안고 걸었다는 이야기는 기억해 둬야겠어요. 나중에 읽다가 그 장면을 만나면 다락방님 생각이 나겠네요. 큭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