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목 박완서 소설전집 결정판 1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1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박완서 작가님의 등단작이자 대표작 <나목>이다.

저자의 또 다른 소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읽은 지 오래되지 않아서 그때의 감정들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당장에 배곯지 않는 내일이 중요해 식구들 먹여 살리려고 음전한 올케와 남의 집 세간살이를 들쑤시며 먹을 것을 찾던, 그리고 향토방위대에서 만난 언니가 소개해 준 미군 PX 파자마부를 다니며 밥벌이했던 ‘나’가 떠오르고, 그때의 사람들과 분위기가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첫 월급봉투를 당당히 내밀었던 ‘나’의 벅찬 감정까지도.


저자의 자전적 경험을 담은 이 소설은 1·4 후퇴 이후의 상황을 배경으로 미군 PX 초상화부에서 일하는 1932년생 ‘이경’이라는 여성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흐른다.

왠지 마음 한 귀퉁이 모가 나 있는 듯한 그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을 전쟁 때문에 피폐해진 삶을 살았던 저자의 우울함과 무기력한 그때의 모습이 경아에게도 투영된 듯하다. 한 발 내딛기조차 어려운 막막한 상황에 마음속엔 뾰족한 가시도 한자리 차지하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지금까지 내가 읽은 저자의 몇 권의 책에서 주인공 여성의 공통점이 있다면, 주눅이 들지 않는 당돌함과 솔직함이 아닐까 싶다.
남성 중심 사고 속에서 자기 삶의 방향이나 가치를 스스로 결정하며 살고 싶었던 여성은, 이내 듣기 거북한 말 한마디 세차게 듣고 아랫입술을 잘근 짓씹으며 참아야 했지만 때때로 억압과 차별을 향해 보여주는 맹랑한 태도와 벌침 쏘듯 하는 말 한마디가 손에 쥐는 건 없어 성엔 안 차도 꽉 막힌 목구멍을 뻥 뚫어주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한순간에 행복했던 삶이 무너졌다.

6.25 한 달 전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두 오빠마저도 폭격으로 잃었다. 산다는 게 간단치 않은 무게로 다가오고 구질구질함에서 벗어나고 싶은 간절함과 무기력한 감정이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에 대한 가치를 잃게 하여 삶이 무의미해지고, 신물이나 더는 반짝거림을 찾을 수 없게 되어 세상에 염증을 느끼게 된 상태. 그녀가 딱 그래 보였다.

(P. 44) 싫은 게 나인지 나 외의 남인지 어쩌면 그 모든 것인지 난 아무튼 나를 포함한 내 주위의 너절한 풍경을 종이조각 꾸기듯 마구마구 구겨 던져버리고 싶었다.

대학 시험에 실패하고 밥벌이를 위해 초상화부에서 사장 최만길에게는 미스리로 불리며 사업실적을 올려야 할 일에 달달 볶여야 하는, 늘 별반 다를 게 없는 오늘을 살아갔다.

황홀하고 매력적인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의 상품과 저녁 화장에 여념이 없는 세일즈걸들을 바라보기를 즐겼던 경아는 퇴근할 때 종업원 출입문에서 겪는 불쾌한 보초 순경들의 몸수색을 지날 때면, 집 근처라도 동행할 만한 친구 한 명이 무척 간절했다.
공포감으로 가득한 전쟁통 속에서 가족을 잃고, 살아남은 식구들은 당장 먹고사는 게 급급해서 각자의 슬픔은 가슴에 묻은 채 스스로 강해져야 했을 테지만, 어두운 골목길은 전쟁을 떠올리게 해 두려웠던 것이다.

자신이 퇴근할 때까지 먼저 잡수시지도 않고 기다리시다가 딸이 오면 그제야 밥상을 들여오는 어머니를 만나기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어 집을 향해 냅다 뜀박질해야 했다. 언제라도 전쟁이 일어날 것만 같은 숨통을 조여오는 긴장감과 치닫는 공포감이 사람의 정신과 일상을 파먹어 구멍투성이가 되었을 불완전한 삶은 하루하루가 지옥이 아니었을까.

꼿꼿한 자존심만 남은 경아는 이제 고작 스무 살이다.
희망 끝자락에 딱 붙어 근근이 살아갈 힘을 얻으며 살아가야만 하기에는 팔딱팔딱 심장이 뛰고 활력이 넘칠 나이, 스무 살.
보석을 삼킨 듯 아름답고 현란한 색채를 띠며 재미나기만 하던 시절은 이제 익숙해질 수 없는 회색빛 우울과 외로움만 남은 채 전부 사라졌다. 전쟁이라는 험한 것이 경아의 기억을 제외 한 모든 것으로부터 그 빛들을 앗아가 버렸다.

그녀는 시간이 지나도 치유되지 못할 자식 잃은 참척의 고통을 겪는 엄마의 심정을 모르진 않지만, 자신도 엄마의 자식이기에 느낄 수밖에 없는 서운한 마음과 서로 물러서지 않는 고집까지 더해져 모녀간 갈등이 좀처럼 풀리지 않고 되풀이만 되었다.

엄마가 고생한 만큼 더 잘 지냈으면, 속앓이하는 얼굴 그만하고 다시 밝아졌으면, 그런 엄마 얼굴을 바라보는 내 생각도 헤아려주고 나를 위해서라도 살아주길 바라는 분노 섞인 감당하기 벅찬 경아의 마음이 회색 벽에 부딪혀 바닥에 소리 없이 떨어졌다.
두 사람을 향한 나의 시선은 이내 먹먹함과 무력함 그 어딘가쯤에 가닿고 있었다. 무진 애를 써봐도 어찌 잘 안되는 관계, 이 두 사람이 그러했다.

(P. 22) 나의 내부에서 꿈틀대는, 사는 것을 재미나 하고픈, 다채로운 욕망들은 이 완강한 고집 앞에 지쳐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또 한 명의 환쟁이 ‘옥희도’씨가 초상화부에 들어온다.
단조로운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경아 시선에는 어딘가 고지식하면서도 자기 세계가 있어 보이는, 황량한 풍경이 담긴 눈을 가진 그가 다른 이들과 달라 보였다. 자신의 마음을 한 줌 털어놓고 상실로만 가득 찬 빈자리를 그가 채워줄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던 걸까? 다섯 명의 아이와 아내가 있는 옥희도 씨를 향한 생각이 좀처럼 멈추지 않는 거다. 그가 가진 절망을 덜어내 주고 싶은 마음까지도.

아버지와 두 오빠의 부재가 그녀를 더욱 외롭게 만들고, 가슴을 옥죄고 있는 돌덩이 하나라도 털어놓고 싶은 간절함의 세포들이 차곡차곡 쌓이기만 하여, 그녀를 이리도 연약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 그릇된 감정이라고 말해주고 싶은 나의 솔직한 마음을 무시하려 해도 갑갑함을 피할 수 없던 차, 짙은 고독을 앓는 경아에게 번지수를 잘 못 고른 남자 ‘한태수’가 나타난다.

전깃줄 다발을 든 채 실없는 농담을 하는 PX 전기공으로 일하는 태수는 떡 줄 사람의 생각도 모른 채 경아 주변을 맴돌며 언제나 껄껄대며 인사를 걸어왔다. 넉살이 좋아 경아에게 척척 들러붙고 속없는 사람처럼 너불너불 잘 떠들지만, 한 겹만 드러내도 그 속은 호젓하다 못해 쓸쓸했을 터.


선선한 바람 하나 불 것 같지 않았던 뜨거운 여름,
불볕더위에 잠 못 이룰 때는 어쩌다가 피부에 닿는 이불에서도 열이 펄펄 나는 것 같아 얼른 발로 옆으로 밀어버렸는데, 언제 이렇게 기온이 내려갔는지 자다가 썰렁함을 느껴 이불자락 한 번 더 끌어당겨 안고, 그간 설쳤던 잠을 몰아 자듯 잠을 깊이 자는 나 자신을 보니 사람 마음 참 간사하다.

살아가는 것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당장에 지붕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앞이 내다보이지 않아 갑갑하다가도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뿜어대는 강인한 생명력이 서로가 서로에게 선한 영향력이 돼 주어 각자 품은 결핍을 받아들이며 살아가게 하도록 마음을 식혀주고, ‘살아지는 하루’를 보낼 수 있게 해 주니까 말이다.

모두가 애처로운 소리를 내며 떨었던 그 암담한 시기를 들여다보며, 지쳐버린 절망과 회한의 삶에도 근심과 한숨을 삼키고 애쓰며 살아온 사람의 모습은 우리에게 강인함을 단단히 심어주지만, 어둠을 잔뜩 머금은 상황에서 어떻게든 적응하고 살아 나가야 했던 모습이 뇌 한구석에 깊게 박혀서인지 마음이 쉬이 가벼워지지 않는다.

(P. 124) 몇십 년이나 묵은 은행이 그 가을엔 왜 그렇게 처절하도록 노오랬던가. 난 그것을 보며 왜 그렇게 살고 싶고, 죽고 싶고를 번갈아 가며 격렬하게 소망했던가.


저자는 이 작품을 40세에 썼지만, 20세 미만의 젊고 착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썼다고 한다. 그렇게 기억된다고.

정신을 제대로 차릴 수 없을 만큼 눈앞이 깜깜하고 결핍 많은 삶을 살다가도 봄이라는 것을 알려주듯 추운 겨울 이겨 내고 자유롭게 뻗어있는 가지에 매달린 꽃망울을 보며, 그 작은 것이 품고 있을 생명력에 감동하는 벅찬 마음을 저자는 이 소설의 옥희도 씨의 실제 모델 박수근 화백의 유작전을 통해 느꼈다. 그 힘이 저자에게 열정의 불꽃을 피워 올렸고, 그와 같은 강인함과 벅찬 감동을 찾는 사람들에게 <나목>을 선사해 줬다.

‘진실한 이야기’의 힘을 통해 소박한 일상의 한순간을 더욱 값지게 여기는 감사함과 겸손함을 얻음과 동시에, 전쟁의 공포와 가난에 찌들어 대포 한잔할 새 없이 가족들 부양하느라 예술가로서 살아가기 어려웠던 이들의 열정과 그들을 바라보며 안쓰러워했던 사람의 마음마저 떠올려져 가슴이 뜨거워진다.

저자의 책은 읽고 나면 마음이 단정해진다.
흐트러져 있던 옷매무새 한 번 더 다듬어 볼 줄 알게 해주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나의 세계에서 내가 차고 있는 시계의 속도에 따라 움직이고 살아가겠지만, 혹독했던 삶을 버티며 살아온 사람의 모습을 통해 나를 돌아보게 된다. 정작 내가 이루고자 했던 삶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함만을 위해 전전긍긍하는 삶은 아니었는지, 그것이 현재의 삶을 잡아먹고 있는 건 아닌지를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로 손을 흔드는 대신
박솔뫼.안은별.이상우 지음 / 민음사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잊히지 않는 그때의 나와 그리고 사람들을 그려보며 재밌기도 했고 울적하기도 했다. 무슨 자신감에 그 시간을 내 기억력에만 의존한 채 놓아준 건지 너무 아쉽다. 이제는 언제 들여다봐도 그때의 모습과 감정이 더 많이, 더 선명하게 오래 이어질 수 있도록 뭐로든 남겨 두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피스타치오 바닐라 향’ 커피 캡슐을 골라 얼음과 두유를 넣고 내려 한 모금 마셨다. 크레마가 풍부해 목 넘김은 부드럽고 피스타치오와 두유가 만나 고소함이 배가 됐다. 거기에 은은한 바닐라의 향과 인위적이지 않은 달콤함까지 아주 맛있다. 


맛있는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시고 집어 든 <바로 손을 흔드는 대신> 이라는 에세이는 박솔뫼, 안은별, 이상우 세 작가가 서울, 도쿄, 베를린에서 같은 기간 동안 각자 쓴 글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1년 동안 써온 글을 모은 것이다. 아니, 이렇게 서로 붙어 버렸다고 한다.


나는 지금 골방지기가 되어 시원한 커피를 마시며 이 세 사람의 초대에 기꺼이 응해주는 사람처럼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책장을 넘겨보니 각자의 삶 속에서 스쳐 지나간 이들을 초대하고 찰나의 생각들을 담은 걸로 보인다. 각각의 스타일이 묻어나는 세 사람의 솔직한 감정을 담은 일기를 허락받고 살짝 들여다보는 사람처럼 부담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다가가 본다.


예전에 스트레스와 이런저런 걱정으로 불면증을 잠시 앓았는데 ‘서울의 박솔뫼’도 그랬나 보다. 머리만 대면 자는 사람이었다는데, 고민이 있거나 스트레스가 심한 상황에서는 종종 잠이 안 왔다고 한다.

잠이 오지 않을 때,

옆으로 몸을 살짝 돌려 누웠을 때, 그 어느 순간에 오만가지 생각에 빠지면 수면과는 점점 더 멀어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잠 못 이루는 밤은 이어진다.

아니 그런데, 이거 정말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잠이 안 올 때 자려고 노력하지 말고, 오히려 안 자려고 노력해 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것 같다. 심리적인 걸까?
내가 얼마나 안 자고 버티는지 보자!!! 하는 마음으로 버티는 것이 정말 수면에 효과가 있을까?

바다는 모든 물을 다 받아들인다는 말이 떠오른다. 
나는 포용하고 받아들이고 마음을 비우는 것이 왜 그토록 어려웠는지 모르겠다. ‘예민해서 그런 거라 마음을 편하게 먹어야 한다’라는 세트처럼 묶인 말을 머리로는 이해하려 해도 중언부언 길어지면 가열된 나의 가슴에 또다시 불씨가 타올라 펄펄 끓기만 하고, 괜히 억울해서 두 눈에 눈물만 뜨겁게 차오르곤 했다. 이는 반드시 불면의 밤으로 이어지고.

그땐 그랬었다.
지금은 이렇게 잠만 잘 자는 것을 말이다.

(P. 13) 그러니까 가위눌림 같은 것, 시간이 지나서야 정체가 어렴풋하게 파악되는 것, 파악되었다고 착각하는 것들을 조금 안정감 있는 자세로 받아들이려는 시도인 것이다. 나는 어디에 있는데 그리고 어디에 있게 될 건데 그것은 그렇게 되어 버리는 일이라는 것.


‘도쿄의 안은별’은 여기에서 저기로 간다는 것, 혹은 갔다가 돌아온다는 것은 반복되는 루틴이라 해도 매번 새로운 단 한 번의 사건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보다 아무것도 안 했으면 좋았을 텐데, 혹은 좀 더 생산적이었어도 좋았을 터라는 아쉬움을 내비친다. 그러게, 나도 무척이나 많이 했던 아쉬움 중 하나라서 공감이 된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을 내일에 대한 기대감이 전혀 없어 지겹다는 말을 입 밖으로 자주 내뱉고는 했던 내 모습이 떠올라 얼굴이 조금 화끈거린다.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면서 당연하게 내일도 주어질 거라는 그 오만함이 얼마나 경솔한지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될 수 있으면 특별할 게 없는 (특별하지 않은 게 더 좋다. 평범한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은 걸 이제는 안다.) 오늘을 아쉬워하지 않고 조금 더 즐거운 마음으로 채우고 싶다. 그녀가 내리고 싶지 않은 기분으로 차창을 바라보며 내릴 역에 다다르지 않기를 바라는 그 묘한 간절함, 편안함을 느끼며 공간과 장소를 채워보듯 말이다. 
나는 거창한 거 말고 내 방 안으로 들려오는, 거실에서 TV를 보는 가족의 웃음소리 반복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P. 18) 그 어떤 것도 그 시간과 공간을 완벽하게 반복해 주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이 에세이집을 내기 전, 세 사람이 주고받은 메일을 보니 한참 코로나바이러스가 유행했던 시절이었더라. 한순간에 자유로움이 막혀버린 시간, 그리고 누군가는 쉽게 떠올리지 못할 만큼 모든 것이 무너졌거나 이별의 아픔을 겪어야만 했던 그때의 분위기가 떠오른다. 
예기치 못한 혼란스러움에 서서히 적응해 나가던 나의 모습과 사소한 것조차가 너무 그립고 간절했던 마음까지도.


‘베를린 이상우’는 ‘조르조 모로더’의 9분짜리 트랙을 듣고 있다.
그 순간 주변은 1970년 베를린의 디스코텍으로 바뀌고 한 테이블에 앉은 조르조와 마주하며 미래의 사운드를 만들기 위해 혼자 기타를 치는 이탈리아 소년이었던 그의 여정에 빠져본다. 독일에도 강도 높은 제재로 외식할 수 없었기 때문에 질병으로부터 안전했던 그 시절의 안락함이 그리움으로 다가와 조르조의 목소리를 듣게 하였나 보다.


나는 근사한 오디오와 스피커가 없어 현실은 휴대전화 속에 들어있는 곡이 헤드셋을 통해 내 귀를 호강시켜 주는 게 전부이지만,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다. 특히, 클래식을 재생시키면 나 자신이 고상하고 우아해진 것 같은 착각에 단단히 빠진다. 광활한 우주가 펼쳐지며 내 마음을 두드리고, 어루만져주고 머릿속에서 광광 울려대는 폭발에 압도되는 그 벅찬 감정. 환상이면 어떤가.


(P. 36) 꿈에서 깨어나듯이 혹은 꿈속에서 깨어나듯이 단지 감았던 눈을 떠 보니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처럼 트랙을 재생하자마자 우리는 어딘지 알 수 없는, 그러나 괜히 익숙한 레스토랑에 앉아,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조르조를 마주하고 있다.


코로나 시절 어디선가 기침 소리만 나도 도끼눈을 하고 서로 쳐다보며 의식했던 기억이 난다. 잠옷 그대로 노트북을 켜기만 하면 됐던 재택근무가 처음에는 아주 좋았다가 점점 걸려 오는 업무 전화도 귀찮아지고 업무처리의 한계도 있고 사람도 무기력해져, 차라리 출근하고 싶다는 감정을 느꼈었던 그때의 기억. 그리고 규제가 완화돼 길거리를 걷다가 아직은 마스크 벗는 것이 내키지 않았던 그때, 술집과 음식점을 가득 채우고 앉아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면 왠지 좀 낯설고 위험해 보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찰나의 순간을 놓아주지 말고, 그때의 다듬어지지 않은 감정이라도 이따금 써 두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내 삶을 채워준 추억 속에 잊을 수 없는 고맙고 소중한 기억도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면 희미해지고 마음에선 안 그런데 삶을 살아가다 보면 놓치게 되더라. 그럼, 아쉬움을 되풀이하지 말고, 기록을 통해 스쳐 지나간 사람과 공간과 장소를 다시 마주해보는 거 어떨까.


이 와중에 너무 뜬금없지만 ‘금값이 이렇게 많이 오를 줄 알았더라면 그때 좀 사둘걸’과 같은 엉뚱하지만, 현실성 있고 실속 있는 과거의 나 자신이 적은 글을 읽고 나중에 씩 한번 웃게 될지도 모른다. (풉!)


(P. 76) 순진한 기다림으로 놓친 것들이 많은 것 같다. 너무 늦기 전에, 적어도 내가 지금보다 더 많이 잊어버리기 전에 짧게나마 써 둔다.


비록 떨어져 있었지만 같은 기간, 각자의 방식으로 채웠던 일상의 조각과 감정을 붙여보는 새로운 대화법. 이 세 사람이 우정을 채워나가는 방식이 꽤 낭만적인 것 같다.


그리하여, 내 친구들에게 서로 같은 기간 동안 찰나의 감정을 담은 글을 공유해 보자고 제안해 보면 뭐라고 할지 잠시 머릿속으로 상상해 봤다.
나의 안색을 살피며 대꾸도 없이 뒤통수만 보일 것이 분명할 이 ‘비생산적’인 생각을 내가 잠시라도 왜 해 봤을까 싶지만, 그럼 꼭 친구가 아니더라도(빠른 포기) 사람들과 새로운 대화법이 없을까 고민하는 것처럼 잠시 눈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려본다.


돌이켜보니 남겨두었으면 좋았을 순간들이 많다.
아직은 ‘돌이켜보다’라는 단어가 나에게는 후회와 아쉬움의 색이 짙다.

박솔뫼 작가님이 이제는 곁을 떠난 아빠를 떠올리며 후회의 마음을 적어 내려갔다. 
그래서인지 다 알 수는 없기에 조심스러워하지만, 진심만큼은 선명했던 그녀를 향한 친구의 일기는 더 따뜻하게 읽혔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며 그 모습을 감추어도 또다시 어둠을 뚫고 빛이 오르며 해가 뜨는 것처럼, 그 후회와 자신을 향한 원망은 계속될지 모르겠지만 럼에도 우리는 서로 위로하며, 의지하며 살아간다.

그때의 아빠도 분명 그녀의 마음을 알고 있었을 거다.
지금 그녀가 친구의 마음을 알 수 있듯이.


세 사람의 일상 속 찰나를 채우고 있는 많은 것 중 공통된 것이 있다면,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거다. 그 기억의 대상은 가족도 있고, 지인도 있지만, 이 시간 여전히 전쟁 속에서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사람도 있었다.


나도 어딘가에서 이 세 사람과 스쳐 지나간 사람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읽다 보니, 조금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남은 이야기를 마저 읽어야겠다. 그리고 한동안 치워져 있던 일기를 다시 꺼내, 단 몇 줄이라도 남겨볼까 한다.


 (P. 54) 단지 나를 위해 남겨 둔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5-08-10 1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상은 늘 반복되기에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것이 무너졌을 때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잖아요. 코로나는 우리 모두에게 한꺼번이 그걸 알려준 사건이었던것도 같아요. 이런 일상의 글도 좋고 그걸 섬세하게 읽어내는 곰돌이님의 글도 좋네요

곰돌이 2025-08-10 11:39   좋아요 1 | URL
평범한 보통의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된 계기가 저에게는 슬픈 일과 이어져서인지 때론, 차라리 예전처럼 뭣도 모르고 날뛰던 시절이 그리울 때도 있어요. 무언가를 얻으면 잃는 게 있다는 것만큼은 왜 이리 비켜나가기 어려운 걸까요. ㅎㅎㅎ 전 아직 매콤하게 더 혼나야 해서 많이 읽고 많이 보고 많이 담아야 할 것 같아요. 바람돌이님 댓글에 마음이 후끈해졌어요. 감사합니다. :)

페넬로페 2025-08-10 15: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 잘 쓰는 지인들이 다른 공간에서 각자의 느낌으로 글을 쓰고, 서로 공유하는 것,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조금 부럽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커피 한 잔 내려놓고
그냥 좋은 글을 읽는 것도
부담없고 행복해요 ㅎㅎ^^

곰돌이 2025-08-10 15:33   좋아요 1 | URL
작가라는 직업은 제 주변에서는 찾기 어려운 직업군이라서 그런지 이들의 대화를 들여다보고 서로 아이디어를 짜내는 모습이 색다르게 다가왔어요. 맛있는 커피 마시면서 지난 기억을 소환시켜 보며 이 생각 저 생각해 보는 동안 괜히 마음과 손끝도 말랑말랑해지는 것 같더라고요. 이쯤이면 충분하다 싶어요. ㅎㅎ
 
그녀를 지키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평점 :
예약주문


죽음을 목전에 두고 기울어져 가는 한 남자.
82년의 세월 동안 숱하게 많은 이들을 떠나보내 이제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도 강인함과 차분함을 갖추고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침대에 몸을 늬운 채, 자신을 지켜보는 수도사들의 어렴풋한 형체를 향해 버둥거리며 무언가를 말하려 한다.
삶을 채워 준 모든 기쁨과 비극에서 이제는 아스라이 멀어져가고 목소리마저 힘을 잃고 희미해져 가지만, ‘내 나라’ 이탈리아의 건물과 사람들의 형체만큼은 점점 선명해져 갔다.

왔던 길을 되짚고 묻힌 시간을 되새기며,
그가 들려주려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태어날 때부터 누구도 자신에게 별다른 희망을 걸지 않았을 거라는 그의 말이 아직 윤곽이 드러나지 않아 흐릿한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나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1904년에 프랑스에서 태어난, 이탈리아인 ‘미켈란젤로 비탈리아니’는 공방을 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 돌에 대한 애정이 무척 깊다. 미켈란젤로처럼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은 이름보다는 부모님께서 붙여준 별명 ‘미모’를 더 좋아했기에 앞으로도 사람들에게 미모로 더 많이 불린다.

더 나은 생계를 기대하며 부모가 결혼 후 이탈리아를 떠나 프랑스에 정착했지만, 전쟁이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죽였다.
그 후, 가세가 기울어 조국도 아버지도 없이 이탈리아에 사는 조각가 삼촌인 ‘알베르토’에게 돈 봉투와 함께 맡겨진다.

(P. 32) 그 안에는 비탈리아니 집안의 저금이 거의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타국살이, 노동, 태양과 소금기에 그을린 피부, 여러 번의 재출발로 점철된 세월이 통째로 말이다.

열두 살짜리 아이가 홀로 기차에 올라 머지않아 만나게 될 거로 생각한 어머니와의 만남을 상상하며 전쟁냄새 가득 한 이탈리아에 도착한다. 날뛰는 세상을 버티며 살다 곧 만날 줄 알았던 어머니와 떨어져 지낸 세월이 20년이나 지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두 눈 활짝 뜨고 주변을 둘러보며 만족할 줄 알아야 했다.
난쟁이로 태어나 부모를 원망한 적 없듯이 말이다.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삼촌의 악질적인 폭력쯤이야, 전장에 추악한 짐승보다야 나을 테고 그가 손을 쳐들어 한 대 치려고 하면 다급하게 테이블 밑으로 몸을 숨기면 된다. 차가운 현실과 짙은 슬픔을 삼킨 무덤덤한 미모의 모습은 말 없는 흐느낌으로 번지듯 다가왔다.

주어진 시간을 있는 그대로 그저 품을 뿐이다.
불행을 받아들이는 데 한계가 없는 사람처럼 말이다.


다듬어지지 않은 단단한 돌을, 감정을 다스리는 재료로 삼아 지저분한 소음을 밀어내듯이 깎고 또 깎았다.
오롯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에 빠져들다가 어느새 멋있는 조각상을 탄생시키듯, 미모는 그렇게 스스로 자신을 완성해 나가고 있었다.
힘을 잃지 않고 나아가는 미모를 마음으로 응원해본다.

(P. 27) 나는 행복했고 여전히 내 앞에 놓인 그 모든 것에, 타고 올라가야 하고 나에게 맞게 깎아야 할 그 미래라는 덩어리에 취해 있었다.


이탈리아의 평화로운 소도시 피에트라달바에 도착했다.
미모가 삼촌과 함께 좋은 돌을 구하기 위해 갔던 그곳을, 나는 아이의 호기심 가득 한 눈빛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시선으로 숲의 가장자리에 우뚝 솟아 있는 저택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영롱하면서도 신비스러운 형체가 눈앞에 보였다가 사라진다.

고원지대에서 시원한 바람을 타고 맡아지는 오렌지와 사이프러스 향의 상쾌함은, 이 순간의 평화로움이 오래가길 바라는 희망을 품게 한다. 그러나 지중해 햇살이 자리를 비추는 따사로움과 불필요한 소리가 싹 걷어진 고요함을 앗아가는 대포들이 숨을 뿜어대기 시작했다.

1919년 여름, 전쟁은 끝났지만 경제가 무너지고 여기저기에서 폭동이 일어나 마을에서는 매캐한 탄내를 풍겼다.
한 때 사회주의자였던 무솔리니가 사회주의자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강한 이탈리아”에 대한 열망으로 권력을 더 가까이하면서 혁명적 폭력을 정당화했던 파시스트들의 폭력은 일상화되어갔다. 평화로운 천국, 피에트라달바도 불길을 피할 수는 없다.

(P. 289) 그 시절은 비겁함의 차지였다.


불어닥친 바람으로 깨진 조각상을 복원하기 위해 방문한 이탈리아 명문가 오르시니 가문의 저택에서 미모는 우연히 ‘비올라’라는 동갑내기 여자아이를 만나게 된다. 고착된 상식이 콘크리트처럼 단단하게 굳어 깨지지 않는 후작과 후작부인의 총명한 막내딸인 비올라는, 꿈이라는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라 여겨 온 미모를 또다시 꿈꿀 수 있게 해준다.

(P. 199) 미모. 나는 네게 한계가 없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어. 위로도 아래로도, 큰 걸로도 작은 걸로도. 모든 경계는 만들어 낸 거야.

의식도 못 한 채 내뱉는 말들 속에서 누군가는 획득할 상처받을 기회를 조금도 내주지 않는 사려 깊은 소녀 비올라.
보통의 아이와 다른 난쟁이 미모의 체형, 자라온 환경, 그 아무것도 중요치 않고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를 첫 만남부터 친구로서 대했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자신의 키밖에 되지 않았을 미모에게 아버지의 서재에서 몰래 빼 온 책을 보여주며 지식의 황홀함을 아낌없이 나누었다.

비올라는 고루한 남녀 차별 의식 속에서 경계를 허물고, 한계를 두지 않는 세상을 바라며 훨훨 날고 싶었다.

그녀의 내면의 세계에 자신을 비춰보며 인식의 틀을 조금씩 깨트릴 수 있었던 미모는 비올라와 함께 빽빽한 숲 속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우정을 키워나갔고, 이들이 나누는 대화는 마치 순수한 감정이 담긴 아리아가 되어 퍼져 나가는 듯했다.
그러나, 작은 기쁨 뒤에 가려져 알아채지 못한 폭풍우가 어슬렁거리며 불길한 조짐을 내비쳤고 서서히 그 형태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감정의 낙차를 드러내지 않고 살아온 미모는,
숨겨진 걱정과 슬픔으로 알 수 없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마음의 준비를 할 새도 없이 벌어지는 수많은 시련을 겪었다.
쉽게 나타나지 않는 기적에 세상을 원망하거나 하소연할 시간도 갖지 못한 채 세상은 급진적으로 변했고, 미모는 자신이 가진 체형 때문에 쫓아가는 것조차 남들보다 몇 제곱은 힘들었을 거다.

그렇다고 현실을 피할 수만은 없다.
결핍 많은 한 사람이 멸시와 배제 속에서만 존재하면서도 꿋꿋하게 일어섰고, 다시 걸었다.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신이 그에게 멋진 얼굴과 체형을 주지 못한 미안함에 버티게 해 주는 묘약으로 준 천재적인 재능이 그를 일어서게 했을까?

누군가에게는 아주 당연하게 여겨질 만한 일어서고 걷는 행위가 미모에게는 가장 소중한 행위였다는 것을 부모님께서 알려주셨고, 그 가르침을 간명하여 태어나자마자 누구도 별다른 희망을 걸지 않았던 운명을 끝까지 저버리지 않고 나에 대한 믿음으로 일어서고 걸었던 게 아닐까.

하나도 아프지 않을 수가 없는 아픔과 고통은 어디로 갔을까?

미모는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비울 줄을 알았다.
아니, 태어날 때부터 만족하는 법을 배웠어야 했다는 게 더 정확할거다. 그럼에도 자신이 가진 서글픔을 딛고 아픔과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켜 결국에는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조각상과 창작품은 인생의 여정을 찬란하게 채웠다. 실로 대단한 의지이자 인간승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화려하고 반짝거리는 찬란함이 고뇌의 세월을 피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위험에 빠뜨리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거리를 유지하고 인간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일찍이 알려 준 비올라를 떠올리게 하는 순간과 마주하게 되는 일이 기어코 그의 삶을 관통한 것이다.

이탈리아의 예술적 화려함과 상류층 남자들의 부도덕한 생활에 너무 취했던 걸까. 조각상으로 이름을 날리며 부를 얻게 된 미모가 손목에 까르띠에를 차고 이 도시 저 도시를 다니며 지내는 동안, 부유한 삶과는 거리가 먼 미모의 오랜 친구들의 삶마저 잊고 지냈다.

그 시대를 고스란히 반영한 듯이 포착하기 어렵게, 치워져 있다가 뒤통수를 때리며 등장한다. 그것은 여성의 외침이었다.

(P. 414) 세상은 변하고 있고, 나는 아이들이 그런 변화에서 비켜선 채 살아가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가난한 집안에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밭일로 종일 시간을 보낸 남자의 인생에 가려져, 여성의 외침은 힘을 잃고 숨죽여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사회적 불평등과 동시에 여성으로서 겪어야 했던 고난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숨겨져 있었기에, 나마저도 거짓 약속과 처박힌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비올라의 목소리만 주목하느라 또 다른 여성의 목소리를 의식하지 못했다.

정말 아는 것만큼만 보였구나 싶어, 한쪽 가슴이 따끔하다.
어디선가 비올라가 나를 향해 소리칠 것만 같다.

(P. 495) 이 모든 게 당신 눈에 보이는 그대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겠지?


억압과 한계 너머의 삶을 향해, 자유와 꿈을 향해, 간절한 염원의 날개를 달고 혼란스러운 세상을 향한 날갯짓이 드넓은 세상으로 힘차게 날아오르며 비상하느냐 아니면 거칠게 끌어당기는 땅끝으로 추락하느냐와 같은 결과에서 잠시 한 발자국 물러나 본다.

그리고 ‘행동하는 것’의 가치를 생각해 본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등장인물의 인생이 필름처럼 지나간다.
열두 살 아이가 홀로 기차를 타고 이탈리아를 향해 갔을 때만 해도, ‘희망’을 안고 있었다. 프랑스에 남겨진 어머니와 곧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그 희망 말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사랑하는 자식의 재능을 지켜주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내 손으로 자식을 떠나보내야만 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종교적인 엄숙한 느낌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피에타>와 달리 미모의 <피에타>는 삶을 겪어본 얼굴을 한 마리아가, 두려움과 고뇌는 찾을 수 없는 미소로 아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고 한다.

그 표정에서 읽힐 수 있는 ‘희망’은 미모의 바람이 아니었을까.


가끔 추천사에 기대했다가 실망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은 기대 이상이었다.

웅얼거리지 않고 당당하게 아름다움을 표현한 문장들에 나 역시도 마음껏 그 아름다움을 누려본 것 같다.
차분함 속 자연스럽게 녹아든 적당한 재치로 웃음 짓게 하는 소소한 즐거움이 있고, 실존했던 인물의 등장은 소설의 생명력을 불어넣어 줘서 읽는 재미를 더해줬다.

처음에 책 소개를 읽고, 예술과 정치가 섞인 이야기 속 신비로움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피에타 석상, 천재 석공, 자유, 투쟁, 수도원, 비밀, 유폐 등의 단어만으로도 머릿속에서는 어느 정도의 밑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는데, 막상 읽어보니 훨씬 풍성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며칠동안 잡고 있던 이 책을 놓는 것이 퍽 아쉽다.
그리고 맘 한쪽 편이 아려온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amoo 2025-08-06 1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게 그리도 좋다니, 사 놓고 읽어야 하는데 벽돌 분량이라 선뜻 시도를 못하고 있네요...하~
별 5개인데...^^;;

곰돌이 2025-08-06 11:12   좋아요 0 | URL
꽤 두껍긴 한데 몰입해서 읽다 보면 또 휘리릭 넘어가더라고요.(너무 당연한 이야기네요. ㅎㅎㅎ) 책 좋아하는 분들이 읽으면 와 닿을만한 문장도 곳곳에 담겨 있어서 이따금 꺼내먹는 즐거움도 있었답니다. :)
 

나의 삼촌 알베르토는 위대한 조각가였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내가 그다지도 오랜 시간 동안 형편없었던 이유죠. 삼촌 때문에, 좋은 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유일한 목소리에는 귀를 막은 채, 그런 돌이 존재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좋은 돌은 없답니다. 제가 잘 알아요. 그런 돌을 찾느라고 수많은 세월을 보내봤으니까. 몸을 숙여 내 발치에 있는 돌을 들어 올리는 걸로 충분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 - P5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