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에덴 2 - 추앙으로 시작된 사랑의 붕괴
잭 런던 지음, 오수연 옮김 / 녹색광선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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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삶의 방향은 어디를 가리키고 있을까.

노동자 마틴 에덴은 우연히 만난 상류층 여성 루스와 사랑에 빠져 그녀와 어울릴 만한 나 자신을 만들기 위해 축적된 습성을 버리고 허기를 채우듯 지식을 쌓아갔다. 새로운 세계에 금방 눈을 뜬 사람처럼 발견하는 기쁨과 흥분으로 들뜬 그의 열정은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자극이 될 만큼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지만, 너머의 삶에 가닿기 위한 매 순간 쉬지 않는 노력이 어딘가 위태로워 보였다.

그래도 괜찮았다. 사랑하는 ‘연인’이 있기 때문이다.

사유의 세계에서 감행하는 모험보다 더 위대한 것이 사랑의 모험이었다. 세계가 그토록 경이로운 것은 거스를 수 없는 힘에 떠밀려 그것을 구성하는 원자와 분자들 때문이 아니었다. 루스가 그 안에 살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가 이제껏 알고, 꿈꾸고, 상상한 것 중에 가장 경이로운 존재였다. (1권 p.137)

그녀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싶었던 열망이 원동력이 되어 묵은 더께를 털어내듯 자신이 살아온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한 배움의 노력이 내면을 들여다보고 삶의 본질에 집중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지독하게 가난한 삶에서 치열하게만 살았던 마틴이 드디어 그토록 염원하던 상류 사회의 사람들과 지적인 대화를 나눌 기회를 얻게 된다. 그들은 노동계급 사람들과 사는 동네와 먹는 음식의 차이만 다를 뿐 아니라 분명, 그가 찾고자 하는 그 이상의 무언가를 알고 있을 것이다.

막연한 기대와 상상이었을까.

동경의 눈빛으로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말은 무거운 삶의 짐을 지탱해 줄 바닥짐 하나 없이 몸으로 부딪치며 자신에게 묻은 흙은 스스로 털어버리며 살아온 마틴에게, 아무런 감명을 주지 못했다. 그저 자기 과시로만 가득한 현학적 허세였다. 멀리서 보면 격조는 높아 보이지만 가까이서 들여다보니 삶에서 길어 올린 통찰이 아니라 자기 것으로 흡수하지 못한 남의 말만 복제한 알맹이 없는 말들이었다.

자기가 속한 계급의 모든 이들, 그리고 루스의 계급에 있는 이들은 작게 한정된 공식에 따라 작게 한정된 삶을 살아가는 군집적인 존재들이었다. 끼리끼리 모여서 다른 사람의 의견대로 틀에 박힌 삶을 살면서, 그들이 종속된 그 유치한 공식 때문에 개인이 되지 못하고 삶을 제대로 누리지도 못했다. (p. 63)


마틴과 루스의 사랑, 이것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첫 만남에서 느꼈던 뜨거운 열정, 설렘, 욕망 등의 감정이 서로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마틴은 자신을 향한 루스의 사랑보다는 창조적 자아의 힘이 그의 가슴을 더 뜨겁게 만들었다. 루스 또한 사랑으로 인해 감수해야 하는 고통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출 수 없는 양가적인 감정에 홀로 고뇌하고 있었다.

지극히 생계와 연관된 현실적인 문제를 말하는 루스의 입장에서는 마틴이 다소 낙관적 편향에 빠진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의 명석한 두뇌는 분명 천부적인 재능으로 보이긴 하지만, 희망 가득한 계획처럼 모든 게 척척 이루어진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두 손을 꼭 붙잡고 행복과 성공을 추상적으로 그려보는 것도 나쁠 건 없지만, 루스에게는 당장에 ‘결혼’이라는 목표를 단단하게 받쳐 줄 안전한 길이 중요하다.

마틴과 루스가 서로의 감정을 확인할 때마다 허탈감이 들었다. 상반되는 입장 표출에 체념하는 기운만 느껴질 뿐이었고, 직접적인 상처만 최대한 피하는 듯한 배려와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사랑의 속삭임은 오히려 고단하게만 다가올 뿐이었다.

“나는 자기의 사랑을 믿기 때문에, 자기 부모님의 적개심이 두렵지 않아. 세상 모든 것이 길을 잃고 헤맬지라도, 사랑만은 그렇지 않아. 가다가 나약해져서 맥없이 머뭇대지 않는 한, 사랑은 잘못 갈 수가 없어.” (p. 78)

정말 그럴까. 믿음만 존재한다면 가능한 게 사랑일까?
너무나도 다른 삶에 길든 상태에서 만난 이 두 사람이 과연 짓눌리는 현실의 무게를 ‘함께’ 견딜 수 있을까?
루스의 조언에 늘 따라오는 마틴의 확대 해석은 이따금 숨이 턱턱 막혔다. 지나친 자기 확신이 자만심으로 경계에 이르렀다는 것은 굶주림과 궁핍이 진작에 알려주고 있음에도 말이다.

나는 속 좁은 사람들의 관습적인 도덕을 비웃는 사람입니다. (p. 90)

그럼에도 마틴이 루스를 만나게 된 순간은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였던 것 같다. 그는 지긋지긋한 가난한 노동자 계급에서 올려다본 우아하고 고상한 루스와 그녀가 속한 상류 사회를 동경했다. 그녀의 후광이 자신의 결핍을 채워주기를 바라진 않았지만, 그 삶에 가닿기 위해 노력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갈 수 있었고, 결국 그가 가진 글쓰기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준 것만큼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순간과 내 삶의 진실을 알게 해주는 순간을 경험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흔한 일이 아니며, 살아가는 데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세상은 친절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날마다 그 아름다움에 대한 해부가 자행되었다. (p. 174)

당장에 주린 배를 채울 걱정뿐이었던 지옥 같은 삶, 내일 눈 뜨는 것조차 고문이라는 생각에 잠들고 싶지 않은 그 순간조차도 고된 노동으로 저절로 눈이 감겨버리는 삶의 반복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물음이 삭제되었던 마틴의 인생에 루스와의 만남은 ‘인생의 종’이 울린 순간이라 생각된다. 간절히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집요함을 끌어올리고, 실패에 좌절하는 대신 자신을 위로할 줄도 알았으니 말이다.

마틴이 지식을 채우고 흡수하는 것에 온 에너지를 쏟는 모습은 긍정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지만, 자신의 믿음과 사상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의심하고 밀어내는 태도는 갑갑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안정감 없는 삶 속에서 그동안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채 불안하게 살아오다가 뒤늦게 발견한 것들을 하나하나 삶의 진리로서 단정 짓는 것이 어찌 보면 이해하지 못할 일도 아닌 것 같다.

그런데도 그에게 조심스레 말해주고 싶다.
이론상의 진실과 현실은 늘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지 않다는 모순을 조금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겠느냐고.
마틴처럼 치열하고 맹렬하게 삶을 살아야 할 필요성을 덜 느낀 채, 세상과 사람의 이중성에서 느껴지는 환멸감 따위는 이젠 익숙하게 느껴질 만큼 타성에 젖어가며 평온함에 안주하며 살아가는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고작 이것뿐이다.

간절히 원하는 것을 향해 온 힘을 쏟으며 달려가는 동안에는 미처 알지 못하는 것, 그건 막상 내 손에 쥐어지고 나면 내 주변을 채우고 있는 것이 생각처럼 대단히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아마도 어디에도 진리는 없고, 진리에도 진리는 없을 것이다. 진리라는 건 아예 없을 것이다. (p. 236)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절망 속에서 자신을 건져 올린다는 것에 관한 생각을 가장 많이 했던 것 같다. 삶의 방향을 잃었던 시절의 내 마음 한구석을 늘 채우고 있었던 공허함과 다시 마주하는 것이 아리기도 했지만, 나만이 눈치챌 수 있는 현재의 변화에 조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마틴의 삶을 들여다보니, 보고 싶은 것만 보면서, 아니, 현실을 왜곡시키면서까지 소유하려고 했던 것이 나에게 아무런 가치를 만들어 내지 못할 것이라는 걸 예상하지 못해 다시 극복하려고 애썼던 내 과거의 모습이 떠올려진다.

그 무엇도 나를 채워줄 수 없다는 생각에 도무지 앞날이 보이지 않고, 보고 싶지 않은 격앙된 감정으로 내 몸이 바닥에 미세하게 보이는 틈 사이로 아예 녹아 들어가 없어져 버리면 좋겠다 싶을 만큼의 무너짐에도 어느새, 바깥 공기와 차단해 버린 블라인드를 뚫고 들어오는 햇살이 그럭저럭 괜찮게 느껴지고 운동화 끈을 질끈 묶고 다시 밖으로 나가 걸으면서 온 세상을 채우고 있는 움직임과 소리에 ‘이런 삶도 괜찮아.’라고 받아들이기까지의 고난과 내가 선택한 적당한 아름다움을 보았던 그날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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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에덴 1 - 추앙으로 시작된 사랑의 붕괴
잭 런던 지음, 오수연 옮김 / 녹색광선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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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소설가 잭 런던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평소에 계급 간 사랑을 소재로 한 소설이나 영화를 즐기는 편이 아니라서 계속 다른 책들에 밀려만 있었는데, 예쁜 표지 못지않게 책 맨 앞에 실린 녹색광선 편집부의 ‘책 머리에’ 글이 눈에 들어왔다. 이 글과 더불어 ‘추앙으로 시작된 붕괴’라는 부제가 흐름이나 결말을 예상하게 하지만, 오히려 그보다 더 중요할지 모를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게 해줄 것 같아 기대하게 했다.

(P. 11) 아름다움을 동반하는 붕괴들은 도처에 존재한다. 독자분들께서 마틴의 붕괴에서 어떤 종류의 아름다움이라도 발견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모순과 붕괴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문학 안에서 충분히 가능한 일이므로.


저자는 가난한 집안 사정 때문에 학업을 중단하고 밑바닥 세계를 떠돌며 지내다가 15세 되던 해, 양식장의 굴을 약탈해서 팔면 돈이 된다는 말에 배를 한 척 사서 어린 해적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가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부를 위한 바다 위 피비린내 풍기는 욕망과 모래밭 위에서 육체적 쾌락에 뒹구는 것만이 존재한 거친 해적과 그들 주변을 맴도는 헤픈 웃음을 날리는 여자들, 그리고 상처로 굳어진 얼굴과 손으로 온종일 죽도록 일만 해야 하는 노동자들이 그의 세계를 채우고 있지 않았을까.

시도와 포기의 반복을 거쳐 스물여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미국 최고의 인기 작가 반열에 오른 잭 런던의 서사 때문인지 이 소설에서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남녀 간 사랑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가 인생을 살아가며 깨달은 삶의 본질을 엿볼 수도 있을 거란 기대도 하게 한다.

책장을 더 넘겨본다.

온갖 고난을 겪으며 살아온 가난한 노동자 ‘마틴’은 우연히 상류 계급의 여성 ‘루스’를 만나게 된다.

여태껏 알던 탐욕스러운 여자들과의 강렬함과 달리 희고 창백한 얼굴로 우아한 아름다움만을 풍기는 그녀의 모습은 마틴의 머릿속을 어지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태어날 때부터 장밋빛 인생인 루스의 고귀한 자태 양옆으로 암담하던 시절 자신을 둘러싼 여자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P. 21) 화이트채플 가에서 발을 질질 끄는 퀴퀴한 여자들, 술에 절어 퉁퉁 부은 노파들. 또 괴물 같은 여자 형상으로 선원들의 피를 빠는, 입도 몸도 더러운 지옥의 온갖 것들, 항구의 쓰레기들, 인간 세상의 밑바닥 찌꺼기들.

이 문장을 읽는 내내 적잖이 불편했다.
진절머리 나는 시궁창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으로 빚어진 자신을 향한 혐오의 표현일 수도 있다. 다만, 절망 속에서 더는 피할 수 없었던 선택이란 것도 있지 않을까? 시련에 굴복당하지 않기 위한 선택에 가려진 것은 없었을까? 인간의 숭고함을 잃지 않으려 했던 몸짓말이다. 생계를 위해 거친 삶 사느라 차마 드러내지 못한 이 모든 것까지도 한데 묶인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을 피할 수 없었다.

그만큼 인간의 가치가 계급에 따라 극명하게 갈린다는 것을 보고 느꼈을 저자의 직설적인 표현으로 이 소설 속 주인공 마틴이 지독한 자신의 삶을 얼마나 끔찍하게 생각하는가를 알게 했다. 그는 생계를 위해 돈이 되는 것이라면 모두가 달라붙는 사람들을 보고 지내왔는데, 지금 눈앞에 생계를 위해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과 책에서만 봤던 수많은 가능성이 펼쳐진 세계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화려하고 멋진 저택에서 모든 게 어색하면서도 인간의 본능에 따라 아름다움을 좇는 마틴의 복잡한 마음은 그 만의 몫이 아니었나 보다. 고상한 삶에서 모든 게 익숙해 보이는 루스 또한 다른 결의 복잡함을 느끼며 자신도 놀랄 만큼 마틴을 원하고 있었다.

(P. 28) 꿈에도 생각지 못한 타락의 본성이 자신에게 내재해 있다가 드러나는 듯싶었다.

사랑은 그랬다. 매혹적이었다.
본능에 충실한 ‘그 순간만큼’은 계급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감춰지고, 서로를 향한 호감은 참으려 해도 참을 수 없고, 자신을 단속하려고 해도 더는 그 필요성을 잊어버리게 하는 마술이었다.

소금기 섞인 바람에 찌든 좁디좁은 방 한구석으로 돌아와서야 꿈에서 깬 듯 현실이 보이고 마틴은 저 위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애쓰지 않아도 자신과 그녀와의 머나먼 거리를 실감 나게 하는 것들이 하나둘 떠올려지고 자신의 주변을 채우는 소리와 코에서 맡아지는 냄새까지 어느 하나 고통과 가난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 없는 자기 삶이, 그녀와의 첫 만남은 분명 현실감 없는 꿈이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안 될 이유만 가득한데도 지금은 황홀경에 빠져 하루가 삼 년 같고 그녀 생각으로 가슴에 먼지만 쌓여가기에 마틴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원하는 사람이 되어주려 결심한다. 루스의 삶에 어울릴만한 나 자신을 만들고 싶은 열망은 솔직했고 순수했고 간절했다. 교양을 쌓고 부족한 지식을 채우기 위해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한 마틴은 더 나아가 글로써 인정받고 싶고 작가로 성공해서 루스의 사랑을 얻고 싶었다. 흥미로운 건, 마틴이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간다는 점이었다.

(P. 91) 당신이 이 집에서 누리고 있는 삶에 나도 도달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내고 싶어요.


‘계급’이라는 것은 가난을 벗어나려고 한 만큼, 글을 쓰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쓴 만큼 아무리 가려보고 눌러보고 막아보려 해도 부력에 의해 떠오르는 풍선처럼 가라앉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사랑의 힘이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숨겨두고 외면했던 감정을 끌어올리면서 애초에 가라앉을 수가 없었던 계급과 지위라는 장벽마저 들어 올리게 만드는 게 진짜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애처로운 노력으로 비칠지 모르겠으나 목표를 가지고 노력하는, 분명하고도 확실한 마틴의 사고는 건강해 보였다.
상류층 삶을 향한 속물적 욕망을 내비치고, 자신의 처지만을 탓하고, 기대만 하고, 고통만 받으며 제자리에서 이룰 수 없는 그녀와의 사랑만을 미친 듯이 갈구하는 것이 아니라서 더 좋았다.

루스는 마틴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려 노력하고 그에게 느낀 활력을 그날의 자양분 삼아 하루를 보내면서 거칠고 열정적인 불꽃 같은 마틴이, 온화하고 차분한 애정과 사랑을 주고받는 삶으로 진입하길 원했다. 나는 서서히 현실의 냄새가 맡아진다.
마틴의 축적된 습성에서 벗어나려는 노력과 그가 가진 매력이 계급의 차이를 모두 끌어안을 수 있는 지고한 가치가 될 수 없음을 알려주는 듯한 이 문장을 난 그저 냉정하게 응시할 뿐이다.

(P. 103) 그녀는 자기가 그를 빚어내고 있으며, 자신의 의도는 선하다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여자를 위한 노력을 충분히 하면서도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자신을 소멸시키지 않는 단단함을 가진 마틴이라 다행이면서도, 한편으론 너머의 삶에 가닿기 위해 매 순간 충실하기만 한 그의 쉬지 않는 열정이 조금은 우려스러웠다.
그럼에도 마틴의 노력이 ‘가치 있는 삶’에 방향을 두고 있다는 점이 좋았고, 글을 쓰는 것을 통해 더욱더 많은 사람에게 아름다움을 설명해 주고 싶은 마음은 근사했다.

새로운 세계에 금방 눈을 뜬 사람처럼 적당한 긴장감과 발견하는 기쁨과 흥분으로 가득 차 보이는 그의 모습은 경쾌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특히, 소설을 써 내려가며 집필이 끊긴 동안 좌절하지 않고 자신을 돌보고 위로할 줄 아는 모습에 내심 놀랐다.
그가 겪어온 삶을 추측해 보며 자존감을 지키기 어려웠을 거란 편협한 생각이 나의 머릿속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 있었나 보다. 싫은 건 싫다고 할 줄 아는 마틴인데 말이다.

(P. 273) “나는 나고, 사람들이 다 만장일치로 내린 평가라 할지라도 내 입맛을 거기에 맞추지는 않겠어. 내가 어떤 게 싫으면, 나는 그걸 싫어하는 거야. 그뿐이야. 나와 같은 인간들 대부분이 그걸 좋아하거나 좋아하는 척한다고 해서, 내가 좋아하는 시늉을 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어. 나는 좋아하고 싫어하는 일에 있어서 유행을 따라갈 수 없는 사람이야.”


이 소설이 흥미로웠던 점 또 하나는, 마틴이 자신과 같은 노동자 계급의 사람들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볼 줄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지독한 가난의 냄새를 풍기는 사람에게 혐오가 아닌 동류의식을 갖고 좌절 대신 희망을 발견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그의 모습은 분명 내면의 또 다른 불씨를 켜는 순간으로 보였다. 더 이상, 삶을 좌절시키는 것이 자기 자신이면 안 된다는 의지를 얻게 된 것이 아닐까.

(P. 279) 자기 앞에 있는 고생에 찌든 여인의 주름진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수프와 갓 구운 빵 한 덩어리들을 떠올리자, 가슴 속에서 뜨거운 감사와 인류애가 샘솟았다.

망망대해에 가로막힌 삶에서 벗어날 거란 생각을 못 했기에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배움을 통해 마틴은 지식을 얻고, 교양을 쌓으며 루스의 세계에 조금이라도 가닿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도 얻었다. 하지만, 그녀가 속한 상류사회는 자신의 정체성을 흔들고 언제라도 허물어질 모래성을 쌓는 것처럼 환멸과 분노를 안겼다.

나는 목표를 가지고 노력하다 보면 뜻하지 않게 얻게 되는 인생의 진리가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믿는 사람이기에 그가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 속에서 참된 아름다움의 의미를 얻을 수 있길 응원했고, 루스와의 사랑을 이루든 못 이루든 적어도 정신적인 가난에서만큼이라도 벗어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읽었다.

마틴의 분투와 배움의 의지는 자극되기도 하고 그가 도서관을 다니고 책을 읽는 행위만으로도 이전 삶에서는 찾지 못했던 숭고한 아름다움과 경외심을 찾는 모습에 그의 변화가 반가우면서도 가슴 한편이 조금 애처로웠다. 꿈을 갖는다는 것, 목표를 갖는다는 것조차 이렇게나 사람을 가슴 뛰게 하고 열정을 갖고 움직이게 만드는데, 현실은 이상과 다르지 않은가.

현실을 사는 내가 현실을 잊고 현실과 다른 나로서 마틴의 세계에서 그의 선택이 우주의 아름다움이든 푹푹 찌는 열기 속 노동이든 그 무엇이 되었든, 그 가치를 조금도 훼손시키지 않은 채 즐기며 읽을 수 있었기에 독서 자체의 즐거움이 컸다.
무엇보다 중요할지 모를 ‘그 무언가’를 찾고 싶었던 나의 기대를 충족시켜 준 마틴이 가고자 하는 곳이 어디일지 점점 더 궁금해진다.

(P. 171) “그리고 삶은 항상 아름답지만은 않아요. 그런데도, 내가 이상하게 생겨 먹은 탓인지, 나는 그 삶에서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죠. 아름다움은 그런 삶 속에 있기 때문에 열 배로 증폭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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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bass 2025-08-22 0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처음듣는 작가인데...작가이름에도 책제목에도...이름에 지명을 붙이기 좋아하는 작가인가봐요. 이유가 있지 않을까...

곰돌이 2025-08-22 04:39   좋아요 1 | URL
(작가 이름은 계부의 성을 딴 거라고 해요) 주인공의 이름은 확실한 이유가 있어 보여요. 자기 삶에 비하면 여주인공의 삶은 천국 같아 보이거든요. 그곳을 향해 열심히 가고 있는 남자입니다. 재밌어서 2편 기대 중!!ㅎㅎ

바람돌이 2025-08-22 1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부에서는 그 천국에서 추락하는 마틴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앗 스포??? 그건 뭐 뻔한 이야기고요. ㅎㅎ 2권은 더 좋았습니다. 곰돌이님 글을 읽으니 제가 이 책 읽을 때의 흥분이 다시 살아나네요.^^

곰돌이 2025-08-22 13:06   좋아요 1 | URL
마틴의 삶만 풀어놔도 재밌어서 꿀떡꿀떡 읽었어요. ㅎㅎ 각자 살아온 삶에 너무 길들여진 상태라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마틴이 이제는 벗어나기 위한 삶 말고 자신을 위한 삶을 살 수 있으면 좋겠는데...2권 다 읽고 나면 영화도 보려고요. 말하고 움직이는 마틴을 또 한 번 만나봐야겠어요!!

새파랑 2025-08-22 11: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녹색광선에서 나온 책들이 다 좋은데, 그중 마틴에덴이 제일 재미있었어요~!! 바람돌이님 말처럼 2권이 더 좋았음~!!

곰돌이 2025-08-22 13:07   좋아요 1 | URL
녹색광선에서 나온 책은 감정의 혼란만 읽어봤어요. ㅎㅎ 1권도 꽤 재밌게 읽었는데 2권이 더 재밌다니…. 그나저나 마틴이 맥주 한 잔 시원하게 하면서 구애받지 않는 상황에서 소설 쓰는 장면이 나와주면 좋겠는데요…. 과연 ㅠㅠ
 
나목 박완서 소설전집 결정판 1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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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애처로운 소리를 내며 떨었던 암담한 시기를 들여다보며 절망과 회한의 삶에도 한숨을 삼키고 애쓰며 살아온 모습은 강인함을 단단히 심어주지만, 어둠을 잔뜩 머금은 상황에서 어떻게든 적응하고 살아나가야 했던 모습이 뇌 한구석에 깊게 박혀서인지 마음이 쉬이 가벼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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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목 박완서 소설전집 결정판 1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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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님의 등단작이자 대표작 <나목>이다.

저자의 또 다른 소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읽은 지 오래되지 않아서 그때의 감정들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당장에 배곯지 않는 내일이 중요해 식구들 먹여 살리려고 음전한 올케와 남의 집 세간살이를 들쑤시며 먹을 것을 찾던, 그리고 향토방위대에서 만난 언니가 소개해 준 미군 PX 파자마부를 다니며 밥벌이했던 ‘나’가 떠오르고, 그때의 사람들과 분위기가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첫 월급봉투를 당당히 내밀었던 ‘나’의 벅찬 감정까지도.


저자의 자전적 경험을 담은 이 소설은 1·4 후퇴 이후의 상황을 배경으로 미군 PX 초상화부에서 일하는 1932년생 ‘이경’이라는 여성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흐른다.

왠지 마음 한 귀퉁이 모가 나 있는 듯한 그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을 전쟁 때문에 피폐해진 삶을 살았던 저자의 우울함과 무기력한 그때의 모습이 경아에게도 투영된 듯하다. 한 발 내딛기조차 어려운 막막한 상황에 마음속엔 뾰족한 가시도 한자리 차지하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지금까지 내가 읽은 저자의 몇 권의 책에서 주인공 여성의 공통점이 있다면, 주눅이 들지 않는 당돌함과 솔직함이 아닐까 싶다.
남성 중심 사고 속에서 자기 삶의 방향이나 가치를 스스로 결정하며 살고 싶었던 여성은, 이내 듣기 거북한 말 한마디 세차게 듣고 아랫입술을 잘근 짓씹으며 참아야 했지만 때때로 억압과 차별을 향해 보여주는 맹랑한 태도와 벌침 쏘듯 하는 말 한마디가 손에 쥐는 건 없어 성엔 안 차도 꽉 막힌 목구멍을 뻥 뚫어주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한순간에 행복했던 삶이 무너졌다.

6.25 한 달 전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두 오빠마저도 폭격으로 잃었다. 산다는 게 간단치 않은 무게로 다가오고 구질구질함에서 벗어나고 싶은 간절함과 무기력한 감정이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에 대한 가치를 잃게 하여 삶이 무의미해지고, 신물이나 더는 반짝거림을 찾을 수 없게 되어 세상에 염증을 느끼게 된 상태. 그녀가 딱 그래 보였다.

(P. 44) 싫은 게 나인지 나 외의 남인지 어쩌면 그 모든 것인지 난 아무튼 나를 포함한 내 주위의 너절한 풍경을 종이조각 꾸기듯 마구마구 구겨 던져버리고 싶었다.

대학 시험에 실패하고 밥벌이를 위해 초상화부에서 사장 최만길에게는 미스리로 불리며 사업실적을 올려야 할 일에 달달 볶여야 하는, 늘 별반 다를 게 없는 오늘을 살아갔다.

황홀하고 매력적인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의 상품과 저녁 화장에 여념이 없는 세일즈걸들을 바라보기를 즐겼던 경아는 퇴근할 때 종업원 출입문에서 겪는 불쾌한 보초 순경들의 몸수색을 지날 때면, 집 근처라도 동행할 만한 친구 한 명이 무척 간절했다.
공포감으로 가득한 전쟁통 속에서 가족을 잃고, 살아남은 식구들은 당장 먹고사는 게 급급해서 각자의 슬픔은 가슴에 묻은 채 스스로 강해져야 했을 테지만, 어두운 골목길은 전쟁을 떠올리게 해 두려웠던 것이다.

자신이 퇴근할 때까지 먼저 잡수시지도 않고 기다리시다가 딸이 오면 그제야 밥상을 들여오는 어머니를 만나기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어 집을 향해 냅다 뜀박질해야 했다. 언제라도 전쟁이 일어날 것만 같은 숨통을 조여오는 긴장감과 치닫는 공포감이 사람의 정신과 일상을 파먹어 구멍투성이가 되었을 불완전한 삶은 하루하루가 지옥이 아니었을까.

꼿꼿한 자존심만 남은 경아는 이제 고작 스무 살이다.
희망 끝자락에 딱 붙어 근근이 살아갈 힘을 얻으며 살아가야만 하기에는 팔딱팔딱 심장이 뛰고 활력이 넘칠 나이, 스무 살.
보석을 삼킨 듯 아름답고 현란한 색채를 띠며 재미나기만 하던 시절은 이제 익숙해질 수 없는 회색빛 우울과 외로움만 남은 채 전부 사라졌다. 전쟁이라는 험한 것이 경아의 기억을 제외 한 모든 것으로부터 그 빛들을 앗아가 버렸다.

그녀는 시간이 지나도 치유되지 못할 자식 잃은 참척의 고통을 겪는 엄마의 심정을 모르진 않지만, 자신도 엄마의 자식이기에 느낄 수밖에 없는 서운한 마음과 서로 물러서지 않는 고집까지 더해져 모녀간 갈등이 좀처럼 풀리지 않고 되풀이만 되었다.

엄마가 고생한 만큼 더 잘 지냈으면, 속앓이하는 얼굴 그만하고 다시 밝아졌으면, 그런 엄마 얼굴을 바라보는 내 생각도 헤아려주고 나를 위해서라도 살아주길 바라는 분노 섞인 감당하기 벅찬 경아의 마음이 회색 벽에 부딪혀 바닥에 소리 없이 떨어졌다.
두 사람을 향한 나의 시선은 이내 먹먹함과 무력함 그 어딘가쯤에 가닿고 있었다. 무진 애를 써봐도 어찌 잘 안되는 관계, 이 두 사람이 그러했다.

(P. 22) 나의 내부에서 꿈틀대는, 사는 것을 재미나 하고픈, 다채로운 욕망들은 이 완강한 고집 앞에 지쳐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또 한 명의 환쟁이 ‘옥희도’씨가 초상화부에 들어온다.
단조로운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경아 시선에는 어딘가 고지식하면서도 자기 세계가 있어 보이는, 황량한 풍경이 담긴 눈을 가진 그가 다른 이들과 달라 보였다. 자신의 마음을 한 줌 털어놓고 상실로만 가득 찬 빈자리를 그가 채워줄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던 걸까? 다섯 명의 아이와 아내가 있는 옥희도 씨를 향한 생각이 좀처럼 멈추지 않는 거다. 그가 가진 절망을 덜어내 주고 싶은 마음까지도.

아버지와 두 오빠의 부재가 그녀를 더욱 외롭게 만들고, 가슴을 옥죄고 있는 돌덩이 하나라도 털어놓고 싶은 간절함의 세포들이 차곡차곡 쌓이기만 하여, 그녀를 이리도 연약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 그릇된 감정이라고 말해주고 싶은 나의 솔직한 마음을 무시하려 해도 갑갑함을 피할 수 없던 차, 짙은 고독을 앓는 경아에게 번지수를 잘 못 고른 남자 ‘한태수’가 나타난다.

전깃줄 다발을 든 채 실없는 농담을 하는 PX 전기공으로 일하는 태수는 떡 줄 사람의 생각도 모른 채 경아 주변을 맴돌며 언제나 껄껄대며 인사를 걸어왔다. 넉살이 좋아 경아에게 척척 들러붙고 속없는 사람처럼 너불너불 잘 떠들지만, 한 겹만 드러내도 그 속은 호젓하다 못해 쓸쓸했을 터.


선선한 바람 하나 불 것 같지 않았던 뜨거운 여름,
불볕더위에 잠 못 이룰 때는 어쩌다가 피부에 닿는 이불에서도 열이 펄펄 나는 것 같아 얼른 발로 옆으로 밀어버렸는데, 언제 이렇게 기온이 내려갔는지 자다가 썰렁함을 느껴 이불자락 한 번 더 끌어당겨 안고, 그간 설쳤던 잠을 몰아 자듯 잠을 깊이 자는 나 자신을 보니 사람 마음 참 간사하다.

살아가는 것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당장에 지붕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앞이 내다보이지 않아 갑갑하다가도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뿜어대는 강인한 생명력이 서로가 서로에게 선한 영향력이 돼 주어 각자 품은 결핍을 받아들이며 살아가게 하도록 마음을 식혀주고, ‘살아지는 하루’를 보낼 수 있게 해 주니까 말이다.

모두가 애처로운 소리를 내며 떨었던 그 암담한 시기를 들여다보며, 지쳐버린 절망과 회한의 삶에도 근심과 한숨을 삼키고 애쓰며 살아온 사람의 모습은 우리에게 강인함을 단단히 심어주지만, 어둠을 잔뜩 머금은 상황에서 어떻게든 적응하고 살아 나가야 했던 모습이 뇌 한구석에 깊게 박혀서인지 마음이 쉬이 가벼워지지 않는다.

(P. 124) 몇십 년이나 묵은 은행이 그 가을엔 왜 그렇게 처절하도록 노오랬던가. 난 그것을 보며 왜 그렇게 살고 싶고, 죽고 싶고를 번갈아 가며 격렬하게 소망했던가.


저자는 이 작품을 40세에 썼지만, 20세 미만의 젊고 착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썼다고 한다. 그렇게 기억된다고.

정신을 제대로 차릴 수 없을 만큼 눈앞이 깜깜하고 결핍 많은 삶을 살다가도 봄이라는 것을 알려주듯 추운 겨울 이겨 내고 자유롭게 뻗어있는 가지에 매달린 꽃망울을 보며, 그 작은 것이 품고 있을 생명력에 감동하는 벅찬 마음을 저자는 이 소설의 옥희도 씨의 실제 모델 박수근 화백의 유작전을 통해 느꼈다. 그 힘이 저자에게 열정의 불꽃을 피워 올렸고, 그와 같은 강인함과 벅찬 감동을 찾는 사람들에게 <나목>을 선사해 줬다.

‘진실한 이야기’의 힘을 통해 소박한 일상의 한순간을 더욱 값지게 여기는 감사함과 겸손함을 얻음과 동시에, 전쟁의 공포와 가난에 찌들어 대포 한잔할 새 없이 가족들 부양하느라 예술가로서 살아가기 어려웠던 이들의 열정과 그들을 바라보며 안쓰러워했던 사람의 마음마저 떠올려져 가슴이 뜨거워진다.

저자의 책은 읽고 나면 마음이 단정해진다.
흐트러져 있던 옷매무새 한 번 더 다듬어 볼 줄 알게 해주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나의 세계에서 내가 차고 있는 시계의 속도에 따라 움직이고 살아가겠지만, 혹독했던 삶을 버티며 살아온 사람의 모습을 통해 나를 돌아보게 된다. 정작 내가 이루고자 했던 삶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함만을 위해 전전긍긍하는 삶은 아니었는지, 그것이 현재의 삶을 잡아먹고 있는 건 아닌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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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손을 흔드는 대신
박솔뫼.안은별.이상우 지음 / 민음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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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히지 않는 그때의 나와 그리고 사람들을 그려보며 재밌기도 했고 울적하기도 했다. 무슨 자신감에 그 시간을 내 기억력에만 의존한 채 놓아준 건지 너무 아쉽다. 이제는 언제 들여다봐도 그때의 모습과 감정이 더 많이, 더 선명하게 오래 이어질 수 있도록 뭐로든 남겨 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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