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고사 선택권 존중이 징계사유라면, 나도 징계하라"
 
현재 중3 담임, 저도 일제고사 선택권을 존중했습니다
 

이민수/ 오남중학교 교사

 

저는 서울 오남중학교 3학년 6반 담임 교사입니다.

저와 저희 반 아이들은 진심으로 이번 일제고사로 징계를 받으신 일곱 분의 선생님들께 죄송하고 부끄럽습니다. 한 해 동안 함께 울고 웃었던 아이들을 두고 정든 교실을 떠나야만 하는 선생님들, 누구보다도 좋아하고 따르던 담임선생님과 때아닌 생이별을 할 수 밖에 없는 아이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저희는 누구보다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그 일곱 분 선생님과 똑같은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누구는 교장, 교감을 잘못 만나 마른 하늘 날벼락 같은 징계를 당하고, 누구는 너그러운 교장, 교감을 만나 같은 일을 하고도 조용히 넘어가는 상황, 이것이 얼마다 부당하고 비상식적인 일입니까?

저는 10월 10일 저희 반 아이들에게 일제고사와 관련한 학부모 편지글을 배부했고, 13일 교장선생님 허락도 없이 학부모 편지를 보냈다는 이유로 교장실에 불려가 꾸중을 들었습니다. 올해로 5번째 맡는 담임, 해마다 학기 초와 학기 말이면 늘 학부모님께 담임편지를 드렸던 저로서는 담임편지를 보내기 전에 교장선생님의 결재를 받아야 한다는 것도 그 날 처음 알았습니다.

10월 13일 아침에 체험학습 신청서를 가져 온 저희 반 학생은 7명이었습니다. 모두 개별적인 가정사를 사유로 썼지만 그 어떠한 체험학습도 인정할 수 없다는 교감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5명은 체험학습을 포기했고, 교감선생님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2명은 끝까지 시험을 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1월 말, 바쁜 일정으로 반 아이들 특성화고, 전문계고 원서를 쓰고 아이들과 마지막 추억을 위해 1박 여행을 다녀오는 사이 너무나 엄청난 결과가 나왔습니다. 제가 아이들과 기차 여행을 떠나 숯불에 고기를 구워 먹고, 따뜻한 방안에서 웃고 즐기는 시간에 서울시 교육청 앞에서는 부당징계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있었고, 파면과 해임을 당하신 선생님들의 철야 농성이 시작된 것입니다.

저는 다시 10월 초 저희 반 교실을 떠 올렸습니다. 일제고사를 치르기 1주일 전, 조회시간 제가 교실에 들어갔을 때 저희 반 아이들은 전날 하교길에 청소년 단체에서 나와 나누어준 일제고사 버튼을 달고 있었습니다. 마침 저도 일제고사 반대 버튼을 달고 있었기에 아이들과 마음이 통했고, 아이들의 요청으로 학부모 편지를 보냈습니다. 저는 그 상황에서 일제고사의 필요성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정말 단순하게 생각했고 편하게 행동했습니다.

이 때 저는 아이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수업시간에 일제고사 관련 동영상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함께 확인한 것은 단지 공부하기가 싫어서 일제고사를 안 보는 게 아니라는 것, 우리도 핀란드처럼 결과 뿐 아니라 공부하는 과정까지 즐겁고 자기의 적성과 특기를 찾아 진로를 선택할 수 있으려면 지금 이 경쟁위주의 입시 제도를 바꿔내야 한다는 것, 고등학교 가면 수능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전국석차를 알 수 있는 모의고사를 볼 기회가 얼마든지 있는데 지금부터, 아니 초등학생부터 일제고사를 보는 것은 아이들에게 불안과 좌절감만 더 크게 할 뿐이라는 결론이었습니다. 물론 아이들에게 자기 마음대로 결정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부모님과 충분히 의논하여 시험을 볼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학부모님들께 편지로 알렸고 회신서를 첨부하여 부모님의 의견도 듣고자 했습니다.

물론 제가 학부모님께 편지를 드린다 해도 대부분의 학생들은 시험을 보게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부모님이 현재 우리 교육 현실을 바라보는 입장이 저와 달라서 아이들이 시험을 보게 된다 하더라도, 부모님들이 이 일제고사를 계기로 내 아이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결국 이러한 교육정책들이 앞으로 우리 교육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지 잠깐이라도 생각해 본다면 저는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혹시나 그 결과로 학부모와 학생이 시험을 안보겠다고 결정한다면 저는 담임으로서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을 교장선생님께, 혹은 더 윗선에, 나아가 이 사회에 전달하고 알리는 통로 역할을 하고 싶었습니다.

이번에 중징계를 당하신 일곱 분 중 여섯 분은 초등이고, 윤여강 선생님 한 분만 중등에서 징계를 받았습니다. 아마도 언론을 통해 이 일을 접한 시민들은 '다른 중고등학교 교사들은 아무 말없이 시험을 봤는데 왜 저 한 사람만 유별난 행동을 한 거지?'라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저는 이 순간 모든 사람들이 저를 바보라고 손가락질 한다고 해도 분명히 말하고 싶습니다. 초등 6명의 선생님, 중등 1명의 선생님만 일제고사 전 학생, 학부모의 의견을 물어본 것이 아닙니다. 저 또한 학부모 편지를 통해 일제고사의 문제점을 공유하고 개별적인 체험학습을 안내했으며 저와 같은 행동을 하신 선생님들이 서울에, 또 전국에 더 있습니다. 그 숫자가 두 자리인지, 세 자리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그 분들은 징계를 받는 선생님들보다 더 처절한 마음으로 가슴앓이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저의 행동을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이 저를 그동안 덮어주신 교장, 교감선생님들에 대한 배신이고 무엇보다도 저희 반 아이들과 헤어질 수도 있는 무모한 행동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장, 교감 선생님, 교육청의 장학사들이 저를 덮어주는 것이 단순히 저를 위하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저 같은 사람이 하나 둘 알려져서 일제고사에 문제제기를 하는 교사들의 숫자가 크게 보도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혹시라도 이 일로 제가 우리 반 아이들의 졸업식에 같이 할 수 없다는 생각를 하면 가슴이 아프지만, 지금 이 말도 안 되는 불의한 상황에서 침묵하는 담임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 저를 더욱 슬프고 부끄럽게 만듭니다.

저는 평소 제 관심이 아이들과 교실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주변에서 저를 아끼는 많은 분들이 저를 걱정해 주시고 저의 용기를 놀라워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대단하고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처음에 제가 아이들 편에 서서 일제고사를 생각하고, 학부모의 결정을 존중하고 싶었듯이 지금은 같은 행동을 한 선생님들의 파면과 해임을 도저히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말을 하고 싶을 뿐입니다.

경쟁만이 살길이라는 교육감 한 사람의 잘못된 신념으로, 내 아이만은 그 경쟁에서 살아남을 것이라는 학부모들의 헛된 기대로, 나 하나 나선다고 뭐가 바뀌겠냐는 교사들의 불감증으로 아이들은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 아이는 남의 집 아이가 아니라 바로 내가 낳은 자식입니다. 앞으로 태어날 우리들의 아이입니다.

이번 일제고사 관련 7명 교사의 부당징계는 반드시 철회되어야 합니다. 이 분들이 다시 학교에 돌아오게 함으로써 학생, 학부모, 교사를 무시하는 교육정책은 절대 관철될 수 없음을 똑똑히 보여주고 싶습니다. 이것이 제가 파면, 해임을 각오하고 이 글을 여러분께 드리는 이유입니다.




△ 12월 23일 오후 4시, 부당징계 철회와 일제고사 중단을 위해 종로 보신각 앞에 모인 학생과 시민들. ⓒ 작은책





△ 일제고사를 거부한 학생들이 만든 손깃발. <경쟁은 이제 그만> ⓒ 작은책





△ 일제고사를 거부한 학생들이 만든 깃발. <일제고사 메롱> ⓒ 작은책





△ 일제고사를 거부하고 집회에 참석한 학생들. ⓒ 작은책





△ 해가 지고도 계속된 집회의 마무리를 장식한 푸른학교 공부방 학생들의 춤 공연. ⓒ 작은책




 
 덧붙임
작은책 주 : 일제고사 선택권을 보장했다는 이유로 일곱 분의 선생님들이 파면과 해임의 중징계를 당하셨습니다. 지난 12월 23일 작은책 일꾼들이 그들에 대한 징계 철회와 일제고사 중단을 촉구하는 집회에 갔다가, 현장에서 받은 유인물에 실린 이민수 선생님의 글을 보고 이렇게 옮겨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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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일제고사 선택권 존중이 징계사유라면, 나도 징계하라"(이민수 교사)
    from 자유를 찾아서 2008-12-26 01:14 
       "일제고사 선택권 존중이 징계사유라면, 나도 징계하라" 현재 중3 담임, 저도 일제고사 선택권을 존중했습니다   이민수/ 오남중학교 교사 저는 서울 오남중학교 3학년 6반 담임 교사입니다. 저와 저희 반 아이들은 진심으로 이번 일제고사로 징계를 받으신 일곱 분의 선생님들께 죄송하고 부끄럽습니다. 한 해 동안 함께 울고 웃었던 아이들을 두고 정든 교실을 떠나야만 하는 선생님들, 누구보다도 좋아하고 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