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 우리의 직관 너머 물리학의 눈으로 본 우주의 시간
카를로 로벨리 지음, 이중원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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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라는 책을 읽었어요. 포켓사이즈로 눈에 잘 들어오는 활자체로 200페이지 정도에 그림과 공간적 여백이 많은 잘 만들어진 책입니다. 무릇 물리학책은 이렇게 제본되어야 저 같은 초보자가 불평 없이 읽어나갈 수 있을 듯싶어요.

책의 내용은 양자물리학에서 말하는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에요.

 

2018. 5월 영문판 제목은 << The Order of Time>> 인데 시간이란 도대체 무엇이며 그 본질은 무엇이며,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에서의 시간과 우주의 시간은 같은가? 다르다면 그 이유는? 이렇게 한 번쯤은 생각해보았던 질문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저자의 글을 읽습니다.

 

어렵다면 어렵고 하지만 책장은 잘 넘어갑니다. 마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대해 많이 듣다 보면 어느 순간 외워지는 부분이 생기는 것처럼 반복해서 친절히 설명해주는 저자의 얘기에 익숙해지는 지점이 있네요.

 

변화가 없는 시간과 시간들이 이어지다가 어느 순간 감정이 계속 바닥을 치는 것만 같아서 순간 순간 동작을 멈추고 가만히 있게 되는 순간들이 생깁니다.

인간이란 감정과 생각으로 사는 동물인데 현재의 감정과 생각의 주인은 제가 아닌 것만 같습니다. 20201월 중순부터 시작된 코로나19에 관련된 사건들도 시간이 흐르면 과거와 기억으로 되살려질 순간이 올 텐데요.

 

관습적인 언어의 문법과 물리학에서 말하는 시간이란 이렇듯 차이가 납니다. 이 책을 읽고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를 주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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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의 사회
장 보드리야르 지음, 이상률 옮김 / 문예출판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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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학생>이라는 우화가 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던 이 학생은 부유한 한 여성을 욕망하게 되어 악마에게 자신의 (자신의 일부분)을 판다.

악마는 그 학생의 거울에 비친 상을 판화처럼 벗겨내어 주머니에 집어넣고 학생에게는 산더미만큼의 돈을 준다.

이제 학생은 어딜 가나 성공하지만 악마에게 넘겨준 자신의 분신이 또 어딜 가나 자신처럼 행동하며 난폭하게 쫓아 온다.

마치 악마에게 팔린 것에 복수라도 하듯이.

 

그러다 분신은 학생과 대결하던 한 남자와 결투를 하고 그를 죽여버린다.

학생은 어느 날 밤 자신을 쫓아온 분신에 대한 노여움과 잃어버린 자신의 모습에 대한 간절함으로 분신을 향해 총을 쏜다.

분신이 사라짐과 동시에 거울이 산산조각나고 동시에 학생이 쓰러진다.

죽은 것은 그 자신이다.

고통 속에서 학생은 깨어진 거울의 조각을 하나 들어 자신을 비춰본다.

이전의 자신의 육체적 모습이 거울에 비쳤다.

 

장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 를 읽고 있어요.

 

이 우화 속의 학생처럼 우리는 우리들의 모습과 비슷한 세계를 만들어냅니다.

사물(상품)의 소비로 행복함, 안락함, 차이표시기호로서의 위계와 문화, 여가, 유행에 뒤지지 않음 등을 소비하지만 세계는 더욱 불투명하게 비치고 자신의 행위가 이해되지 않는 소외 속에 있어요.

이미 자신의 한 부분을 상품으로 팔아넘기고 교환가치와 사용가치 속의 쓸모있음으로 쫓아가고 있겠지만 그래도 뭔가 더 해볼 수 있을 게 없을까 반성해봅니다.

 

저자는 악마와의 거래구조 그 자체가 상품사회의 구조 그 자체이므로 소외의 극복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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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이란 무엇인가 / 환상의 대중 동서문화사 월드북 152
월터 리프먼 지음, 오정환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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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리프먼의 <<여론이란 무엇인가/환상의 대중>>이란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구입하기 前 누군가 이 책이 번역기로 돌려서 한글로 짜집어 놓은 것 같다고 해서 무척 고민했어요. 그래서 그러한 평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동서문화사출판사에서 보급판으로 출간한 책을 구입하였습니다. 동일한 책<<여론>>이 아카넷 출판사에서 번역되어 있지만 가격이 부담스러웠거든요.

제가 읽고 있는 책은 활자와 종이의 간격이 촘촘해서 천천히 읽어야 한다는 것과 주(注)가 상세하지 않아서 조금 아쉽다는 것 외에는 불만이 없습니다.

작년에 시민포럼을 계획해서 기사를 쓰고 유튜브로 찍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시민들이 관심 있어 할 주제에 대해서 전문가나 관계자분을 모셔서 이야기를 듣고 그에 관한 기사를 신문에 싣고 유튜브로 올리는 기획이었지요.
제 역량에 턱없이 부족해서 힘들어하면서 일 년을 채웠는데 마치고 나서는 궁금점이 가슴을 사로잡았어요.

여론이란 무엇인지, 사람들은 여론을 어떻게 형성하고 이 여론을 주도적으로 끌고 가는 세력이 있다면 그들은 누구인지.
저같이 평범한 시민도 소위 공적인 의견이란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집단지성은 정말 작동하고 있는지. 등등

리프먼은 20세기 최고의 언론인이자 뛰어난 정치 사상가, 그리고 철학자라고 합니다.
저는 이 책을 다니엘 부어스틴의 소개로 주저 없이 선택했습니다.
그는 “여론에서 현실과 인간행동 사이에는 인간의 머릿속에 비친 환경 이미지, 곧 ‘의사환경’이 끼어 있다고 주장합니다. 인간의 행동은 의사환경에 대한 반응으로 사람들이 어떤 고정관념을 가짐으로써 이미지가 좌우된다는 설명”이지요.

이 말은 제가 이해하기로는 각 개인의 머릿속의 실제 상상과 실제 현실의 모습은 다르며 실제 사건이 일어나는 무대인 현장과 영향을 주고받아서 다시 인간의 반응에 영향을 미치는 삼각관계로 이해됩니다.

 

"정치적인 현명함은 사람의 내부에 준비되어 있는 것 이상으로는 끌어낼 수가 없다. 개인 경험에는 한도가 있으므로 인간 의견에는 아무래도 주관이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이 주관성을 극복할 방법을 갖지 않고서는 어떤 놀랄 만한 개혁도 참된 의미로서 본질적인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어떤 정치 제도, 투표제도와 대의제도는 다른 제도보다도 많은 것을 뽑아낸다. 그러나 결국 우리 지식은 양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그 양심과 관계되는 환경에서 나오는 것이다."

 

 

저자는 인간성의 약점과 신문, 정보의 조직화의 미비, 공적인 의사결정을 내려야 할 때 대중들이 보여주는 약점들을 모두 인식하고 있음에도 플라톤의 예언과는 다른 예언을 하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그 예언의 마지막부분에서 그의 고심했던 감정과 생각의 결이 느껴집니다.

 

 

우리가 정보에 접근하는 길에 방해를 받아 불확실해지며, 그 정보를 어떻게 이해하느냐는 고정관념에 의하여 크게 좌우되고, 우리가 추론하는데 도움이 되는 증거는 변명,위신, 도덕, 공간 그리고 표본 추출이라는 착각에 지배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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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컬렉션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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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우리 아들은 그를 박사라고 불렀다. 그리고 박사는 우리 아들을 루트라고 불렀다.

아들의 정수리가 루트 기호처럼 평평했기 때문이다.

오오, 이거 꽤 영리한 마음이 담겨 있을 것 같군.”

...

 

이걸 사용하면 무한한 숫자와 눈에 보이지 않는 숫자에도 번듯한 신분을 줄 수가 있지.”

그는 집게손가락으로 먼지 쌓인 책상 구석에 그 모양을 그렸다.

...

 

셋이서 루트 기호 속에 숫자를 집어 넣으면 어떤 마법에 걸리는지 시험해본 날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4월 초순의 비 내리는 저녁이었다. 어두컴컴한 서재에는 백열등이 켜져 있고, 카펫 위에는 아들이 내던진 가방이 나뒹굴고, 창 너머로는 비에 젖은 살구꽃이 보였다.

언제 어떤 경우든, 박사는 우리에게 정답만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뭐라 대답할 수 없어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때보다 머리를 쥐어짜다 못해 엉뚱한 실수를 저지를 때 그는 오히려 기뻐했다.

 

오가와 요코의 <<박사가 사랑한 수식>> 첫부분입니다.

단어 사이 사이 여백이

절제된 언어의 아름다움과 정제된 질서가 엿보여서 참 예쁜 소설이에요.

비가 와서 좋은 점 한가지는

제가 막 내린 아메리카노가 그윽한 맛을 내며 공기를 커피 향으로 가득 채운다는 점이에요.

누군가는 이렇게 비가 오거나 흐린 날씨가 차분해져서 더욱 좋다고 하던데요.

저는 이런 날씨는 오히려 땅 밑으로 꺼질 것 같아서

기억 속에서 아름다운 문장으로 묻어둔 소설을 옮겼어요.

 

빗소리가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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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노래 - 2013년 제44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이승우 지음 / 민음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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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의 <<지상의 노래>>를 읽었어요. 저자는 제목을 먼저 생각하고 한 10년 정도 생각한 주제를 2년간에 걸쳐서 썼다고 했어요. 지상의 노래가 있다면 천상의 노래도 있다는 말인데 제 의식의 한 부분에서는 더 이상의 상상력을 허용하지 않네요.

 

이 소설은 인간이 겪을 수밖에 없는 죄와 속죄의 과정, 역사와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천상(天上)의 이미지를 추구할 수밖에 없었던 인물을 보여줍니다. 소설의 마지막, 정치 권력에 의해 몰살된 형제들 한 명 한 명에게 쉴 곳을 마련해주는 지점에 오면 과거의 카타콤(무덤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좁은 통로로 이루어진 지하묘지)과 현재의 천산 지하석실이 오버랩되면서 무거운 둔기로 한 대 맞은 것처럼 가슴이 턱 막혔어요. 왜 천산공동체라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모습을 띤 곳이 나와야 했는지 다 이해가 되는 구성이었죠.

 

<<안나 카레니나>>가 훌륭한 소설이라는 점은 소설 내 한 부분도 뺄 수 없고 다 중요한 얘기라는 점이라고 로쟈가 말했었죠. <<지상의 노래>>도 그렇습니다.

 

저처럼 신은 인간이 만들어낸 소망의 집합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도 저자가 애써 보여주고 싶었던 지점은 가만히 수긍이 됩니다. 이 땅과 역사 속에서 선택받은 형제들만이 아니라 버림받은 형제, 버린 형제, 몰살당한 형제들이 편히 쉴 곳을 마련해주는 방이 아닐까.

...

이 방을 같이 만들기 위해서 등장인물과 함께 그렇게 많은 시련과 의문과 길 위에서의 여정이 필요했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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