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컬렉션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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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우리 아들은 그를 박사라고 불렀다. 그리고 박사는 우리 아들을 루트라고 불렀다.

아들의 정수리가 루트 기호처럼 평평했기 때문이다.

오오, 이거 꽤 영리한 마음이 담겨 있을 것 같군.”

...

 

이걸 사용하면 무한한 숫자와 눈에 보이지 않는 숫자에도 번듯한 신분을 줄 수가 있지.”

그는 집게손가락으로 먼지 쌓인 책상 구석에 그 모양을 그렸다.

...

 

셋이서 루트 기호 속에 숫자를 집어 넣으면 어떤 마법에 걸리는지 시험해본 날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4월 초순의 비 내리는 저녁이었다. 어두컴컴한 서재에는 백열등이 켜져 있고, 카펫 위에는 아들이 내던진 가방이 나뒹굴고, 창 너머로는 비에 젖은 살구꽃이 보였다.

언제 어떤 경우든, 박사는 우리에게 정답만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뭐라 대답할 수 없어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때보다 머리를 쥐어짜다 못해 엉뚱한 실수를 저지를 때 그는 오히려 기뻐했다.

 

오가와 요코의 <<박사가 사랑한 수식>> 첫부분입니다.

단어 사이 사이 여백이

절제된 언어의 아름다움과 정제된 질서가 엿보여서 참 예쁜 소설이에요.

비가 와서 좋은 점 한가지는

제가 막 내린 아메리카노가 그윽한 맛을 내며 공기를 커피 향으로 가득 채운다는 점이에요.

누군가는 이렇게 비가 오거나 흐린 날씨가 차분해져서 더욱 좋다고 하던데요.

저는 이런 날씨는 오히려 땅 밑으로 꺼질 것 같아서

기억 속에서 아름다운 문장으로 묻어둔 소설을 옮겼어요.

 

빗소리가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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