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부모를 떠안다 - 고령화와 비혼화가 만난 사회
야마무라 모토키 지음, 이소담 옮김 / 코난북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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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부모님께서 부쩍 나이가 드셨다. 아버지는 팔십, 어머니는 칠십이 넘으셨는데 아직 정정하시다. 아직 내가 <개호介頀>하는 상황은 아니지만 역시 이 책은 내게 남다르게 읽혔다. 물론 여러 가지 경우가 있겠지만, 대부분 부모님에게 애틋함을 가지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개호 때문에 자식과 부모가 서로 날을 세우는 이 책의 일화들은 가슴이 아프다. 개호 때문에 결혼과 일상을 포기하고 자식들은 부모를 돌본다. 효자라는 주변의 시선이라도 있으면 도움이 될 텐데 오히려 부모에게 기생한다라는 시선을 개호자들은 느낀다고 한다. 책에 나오는 문장대로 즐거운 개호는 없다”.

개호자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은 우울감이라고 한다. 기본적으로 개호는 부모와 자식간의 닫힌 세계이기 때문에 고립된 세계다. 저자는 개호자들이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이 이 고립감이라고 한다. 누군가와의 대화가 큰 도움이 된다고, 개호를 미리 준비하라고 충고한다. 결국 <관계부족>이 원인이라고 저자는 진단하는 것 같다. 저자는 독신자가 부모를 떠안은 개호 스타일을 주목하는데 독신개호자가 미혼으로 생애를 보내게 되고 또다시 고립된 노령자가 되는 악순환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본은 이런저런 보완책과 서비스가 있는 것 같다. 예전에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서평에서 그래도 일본은 한국에 비하면 천국이라는 취지의 글을 본적이 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면 비슷한 느낌이 든다. 부족하나마 여러 가지 개호보험과 의료지원서비스가 있기 때문이다. 갑자기 시작되고 갑자기 끝나는 개호, 결국 문제는 죽음으로 수렴된다. 개호 후에는 예외없이 후회가 남는다고 한다. 그래서,개호 중에는 이를 항상 염두에 두라고 한다.

누군가는 비웃겠지만 그래도 나이드신 부모님은 나를 짠하게 한다. 개호라는 상황은 러시안 룰렛처럼 사람을 덮친다고 저자는 환기시킨다. 어머니, 아버지 내가 기억하는 모습들은 전부 과거가 되어버리고 사라질 것이다. 그러면, 나는 이 책에 나오는 누군가처럼 같이 죽자고 부모님께 악을 쓸지도 모른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 한 쪽이 가라앉았다. 최근에 읽은 책들 중의 키워드가 <관계>였다. (절망의 시대를 건너는 법,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유쾌한 혁명을 작당하는 공동체 가이드북...)예전에는 수명이 짧아 개호문제라는 게 그리 부각되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풍성한 가족이나 기타 친족관계가 서로를 의지하는 계기가 되질 않았을까. 1인가구가 대세인 요즘 우리 모두 마음 한 구석에는 누군가를 절실히 원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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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그러다 보니 - 그저 살다보니 해직된 MBC기자, 어쩌다 보니 스피커 장인이 된 쿠르베 이야기
박성제 지음 / 푸른숲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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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동안 엠비씨에서 기자로 일했다. 그러다 부당해고를 당했다. (재처리도 안된다는 김재철사장 때 일이다,) 자, 기분이 어떨까?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생계와 돈에 관한 공포와 압박은 어떻게 해결할까? 실직자라는 “낙오”의 이미지를 담은 주변의 시선은 또 어떡하나? 그런데, 불과 2년만에 스피커 만드는 회사의 사장으로 변신했다. 스스로 수작업으로 명품 스피커를 만든다. 이런 뜬금없는 도약이 어떻게 가능한 걸까? 이런 이야기는 백수전성시대에 또 다른 신데렐라 스토리 아닐까?

<어쩌다보니,그러다보니>는 엠비씨 해직기자였던 저자가 직접 수제 스피커를 만드는 장인으로 변신하기까지의 과정을 다룬 이야기이다. 중간중간 김재철 사장 이야기와 1백70일간의 엠비씨파업, 저자가 겪은 기자생활의 내막도 덤으로 들어가 재미를 더한다. 언론보도의 공정성이 훼손되는 과정을 보는 것은 물론 가슴아프지만, 저자가 또 다른 일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면 부러움과 한숨이 섞여 나온다. 저자에게 그런 변신이 가능했던 것은 그 때까지 “쌓아놓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연희동 한쌤이 강의 중에 “40대에 굶어죽기 힘들다”라는 취지의 애기를 한 적이 있다. 아마 그 때까지 쌓아놓은 경력이나 여러 가지 유무형적 자산이 그 사람을 먹여살린다는 취지의 애기로 이해한다. 노조위원장이지만 한량기자였다는데 저자 역시 해고를 당하면서 완벽하게 망망대해로 던져진 것은 아니었다. 일단 “복직”과 “해고무효”라는 것이 상당한 심리적 완충지가 되었을 것 같다. 실제 가능성여부는 차치하고 바라볼 것이 있다는 것 자체가 실직이라는 황망함을 가라앉히지 않았을까. 최승호, 이근행 같은 동료해직자의 존재와 노조의 지원도 도움이었을 것이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아내의 수입이 있었거나 노조의 금전적인 지원이 있어서 생계의 압박이 상대적으로 덜하지 않았을까. 골프를 즐기고 돈이 많이 드는 취미인 홈시어터 애호가였다니 지금 세상에서 한 끝자락 잡기도 힘든 사람들에게는 다른 세계 이야기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실직중 한 행동의 특징을 꼽으라면,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처음 서너달은 적당히 운동하고, 적당히 고민하고, 적당히 술 마시며 보냈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날 “식탁을 만들어 달라”는 아내의 부탁을 받고, 공방으로 향해 난생 처음 목공기술을 배워 8일만에 식탁을 완성한다. 그리고, “감동이다”라고 소감을 밝힌다. 아마 이 소감이 저자의 이후 행동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성취감을 쫓아 목공일을 점차 늘려가다니 작접 디자인을 하고 자신의 취미인 음악듣기와 목공을 결합시켜 자작 스피커를 만들기 시작한다. 얼마나 성취감이 높았던지 <뉴스타파>의 합류제안과 연봉 2억(!)의 대기업 임원 취직제의를 거절한다. 이 대목이 가장 낯설게 느껴진다. 무려 2억이다! 내가 몇십년 일하면 그 정도 모을 수 있을까. 저자도 이 대목에서 “후회는 없다”며 자못 비장해지는데 나는 혼란스럽다. 당시 저자에게 목공일은 돈을 벌게 하는게 아니라 돈을 쓰게 하는 일이었다. 저자는 친한 친구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행복하게 살자”를 모토로 삼았다고 한다. 목공을 선택한 것은 두 대안 모두 행복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실직 후 생계의 부담같은 어두운 이미지가 이야기 내내 없다. 실직 중에도 아내는 와인 파티를 열고, 변호사 친구가 참석한다. 굶어본 적이 없어 당당한 건지, 아니 내가 실제로 굶어본 적은 있는 건지.

인상적인 것은 스피커를 만드는 과정에서 저자가 여러 인맥의 도움을 받는 다는 것이다. 10년 동안 동호회 카페의 열혈회원이었다는데 “재능 기부”처럼 도움을 받아 스피커를 완성한다. 기자시절의 인맥을 활용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후 그런 과정을 보고 있으면 “좋은게 좋은 것을 불러온다”는 어찌보면 씁쓸한 원칙이 사실인 것 같다. 그렇게 <어쩌다보니,그러다보니> 스피커 회사의 사장이 되었다는 것인데-회사라기 보다는 1인기업이다- 이 책을 읽고 나자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의 와타나베 이타루가 떠올랐다. 두 사람이 비슷한데가 많이 있는데 목공과 제빵이라는 “장인”이라는 개념이 들어갈 수 있는 “중간 규모”의 일을 택했다는 점, 이윤보다는 장인의식이라는 개념으로 일에 접근했다는 점이다. 히라카와 가쓰미가 말하는 “소상공인”의 개념에 가깝다. 그리고, 소비가 아니라 노동에서 이미 삶의 정체성과 의미, 재미를 찾았다는 점이다.

자신에게 소중하고 행복한 감정을 찾아가니 일로 발전하고 자신의 또다른 정체성을 찾는 과정.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뭐가 중요한 걸까? 돈? 그러면 저자를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1년동안 아내에게 가져다 준 수입은 거의 없다고 한다. 이윤이 아니라 합리적인 가격으로 스피커를 공급하는게 저자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누구를 착취할 수 있는 회사의 사장도 아니다. (아까 말했듯 1인기업이다) 아마도 스피커를 만들고 살아온 과정 자체가 저자에게는 돈 못지 않는 보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생계는? 쌍용차 노동자들은 해고 이후 자살을 택했는데 어째서 이 사람은 오히려 자신의 인생을 알차게 만들 수 있었을까? 스스로 자신에게 다시 묻는다. 돈, 정말 필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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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 천연균과 마르크스에서 찾은 진정한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
와타나베 이타루 지음, 정문주 옮김 / 더숲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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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원하는 것을 적어볼까요? 음... 크루즈타고 세계일주하기? 샥스핀과 캐비어로 식탁을 한달동안 도배하기? 오늘은 청담동 그녀와, 내일을 홍대그녀와 함께 놀기?... 이런 일을 직접 겪어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실제로 이렇게 살면 금세 질린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이후에 삶의 공허가 닥칠 거라고 주변에서 지금껏 나를 가르쳐 왔다. 인간은 원래 삶의 의미를 찾고, 다른 사람에게서 인정을 받고 싶어하고, 가치있는 것을 추구하고 싶어하며, 그래서, 아마도 죽음 직전에는 “그래도 잘 살았다”라는 충일감을 가지고 눈을 감고 싶어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하지만, 얼마 전 나의 SNS에는 이런 경구가 떠 있었다.

 

“출근했으니까 영혼아 이따 봐.”

 

물론 일부의 행운아가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이게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대다수 직장인들의 심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일전에 김지룡씨가 “차라리 병렬형 삶을 살아라”라고 충고한 적이 있다. (“재미있게 사는 사람이 성공한다” 중) 해야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을 병행해서 살아가라는 취지의 글이었는데 그 당시에 공감했었다. 대체 일과 삶이 함께 가는 사람이 실제로 얼마나 될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앞의 경구가 유행하는 것처럼 현재는 일과 삶의 균형은 둘째고, 자신의 영혼을 어딘가에 저당잡혀야만 삶이 보장되는 시대다. (아니면 내가 지금껏 터프한 삶을 살아온 건지도 모르지만) 때문에 내가 지금 정말로 원하는 것을 말하라면 “자신을 온전히 바칠 수 있고, 자신의 인생을 채워줄 수 있는, 자신의 정체성이 되는 무언가를 찾는 일”이라고 말하겠다. 그리고, 얄밉게도 와타나베 이타루는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에서 그 일을 해냈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중간에 작두타는 것 비스끄레한 애기도 나온다. 삶의 고민에 지쳐 잠이 든 어느 날,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나타나 “이타루, 너는 빵을 만들어 보렴”하고 속삭였다고 한다. 이 말 한마디에 제빵사가 되기로 인생노선을 수정했다는 애긴데, 너무 꼬투리를 잡지는 말자. 무라카미 하루키도 데이브 힐턴의 2루타를 보고 작가가 되기로 했다지 않은가. 지은이가 진로문제로 벼랑 끝에 서 있는 상황이었다고 하니, 어쩌면 스스로가 만들어낸 구원의 목소리인지도 모른다. 제빵사가 되기로 했다면 파리***나 뚜레** 체인점 하나 열어서 가정을 일구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로 끝나는게 해피엔딩일텐데(맞나?) 이 책의 저자는 자연과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을 견딜 수 없었다. 시스템을 탈주하여 “나답게, 자유롭게”,“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일을 하고, 그것을 생활의 양식으로 삼아 살아가는” 과정이 이 책의 주요 줄거리이다.

지은이는 빵을 만드는 과정과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을 중첩시킨다. 이윤을 위해 인공적으로 배양된 이스트가 자본주의적 착취를 가능케 했다면, 발효하고 부패하는 균은 “순환” 속에서 삶을 유지시킨다. 부패하지 않는 돈이 이윤을 추구하는 것을 가능케 했고, 삶과 자연을 왜곡하는 모순을 만들었다는 것이 지은이의 생각이다. 열심히 일할 수 있고, 좋은 음식과 술을 맛볼 수 있다면 누구나 즐겁고 넉넉하게 살 수 있는데 왜 부패하지 않는 이윤 때문에 일과 먹거리를 파괴하는가? 중간 중간 막시즘과 자신의 경험을 섞어가며 지은이는 자신이 체감한 자본주의의 모순을 설명하고, 그래서 자신이 선택한 대안과 그 대안을 시행하기까지의 과정을 풀어놓는다. 책에는 단순하게 쓰여져 있지만- 예를 들어 “마음이 참 복잡했다” 같은 문장- 실제 저자에게는 인생의 큰 파도였을 것이다.

“힘들기도 힘들고, 지치기도 지친” 직장인들을 위한 책들이 있다. “아, 보람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사표의 이유”,“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작고 소박한 나만의 생업 만들기 ”,“3만엔 비즈니스”,“적당히 벌고 잘 살기”,....... 한 쪽에서는 일 때문에 숨이 막힌다고 난리고 다른 한 쪽에서는 일이 없다고 난리다. “전부 자본주의 때문이야”는 만화 “엘리트 건달”에 나오는 농담이지만, 우리는 이제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토대를 진지하게 재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왜 부장은 나보다 월급을 많이 받는 걸까? 왜 야근은 일상인 걸까? 월세는 왜 내야 하는 걸까? 지구를 자기가 만들었나?

마지막으로 행여라도 다른 삶을 꿈꾸는 내리막 시대를 사는 노마드들에게 저자의 충고를 전한다.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해 터득한 삶의 진리는 당장에 무언가를 이루려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될 턱이 없다. 죽기 살기로 덤벼들어 끝장을 보려고 뜨겁게 도전하다 보면 각자가 가진 능력과 개성, 자기 안의 힘이 크게 꽃피는 날이 반드시 온다.”

 

“ 우리 안의 힘이 당장에 꽃을 피우지는 않겠지만 스스로 자신을 키워가다 보면 언젠가는 만개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쉬지 않고, 싫증내지 말고, 자신을 연마하면 길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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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지마 요시미츠라는 철학자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니체의 인간학”,“비사교적 사교성” 등이 번역되어 있습니다. 일본의 어디대학 교수라는데 지금도 재직하시는지는 모르겠네요. 그렇게 일본에서 지명도가 높은 것 같지는 않은데-예를 들면 사사키 아타루 같은 철학자는 우리나라 신문지상에도 종종 등장하잖아요.- 저는 “일하기 싫은 사람을 위한 책”이란 책을 통해 이 사람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사람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여러분께 어떤 결정적인 순간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사람들이 먼 산을 바라보며 흔히 내뱉는 멘트가 있잖아요.

 

“그 날 이후로 내 인생이 바뀌었다”

 

예를 들면 박지성이 차범근 축구교실에 처음 참가한 날, 혹은 김연아가 처음 스케이트를 신은 날 같은 거겠죠.

먼저 “일하기 싫은 사람을 위한 책”을 소개하자면 제목과 달리 이 책은 그저 그런 자기계발서가 아닙니다. 저자 특유의 인생론이 펼쳐져 있는데, “인생은 부조리다”라는 서늘한 문장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저자는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에 대해서 애기합니다. 대가가 된 사람, 어떤 분야의 성공스토리를 쓴 사람은 그 사람에게는 그 사람이 그런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었던 어떤 결정적 순간이 “우연하게” 닥쳤다는 겁니다.(여기서 강조점은 “우연”에 찍혀 있습니다.) 저자는 정색하면서 말합니다. 재능이 개화하려면 어떤 사람과의 결정적인 만남이나 우연히 들어온 한권의 책, 우연히 겪게 된 한권의 책이 계기가 된다고. 만약 그 우연이 없었으면 그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을지 알 수 없다고. 책에는 주연배우가 쓰러지는 바람에 우연히 발탁된 모리 히쓰코, 책을 잘못 사는 바람에 평론가가 된 아키야마의 예가 나옵니다. 저자는 거듭 강조합니다. 인생은 부조리라고. 미켈란젤로의 재능은 우연히 주어진 것이며 그 재능도 우연한 기회를 얻어 발휘된 것이라고. 그러니, 인생에 절망하지도, 열광하지도 말고 끝까지 음미하라고. 어찌보면 상당히 사람을 힘빠지게 하는 애기인데 이것저것 책을 읽다보니 정말 그런 순간을 맞이한 케이스를 종종 보게 됩니다.

예를 들어 무라카미 하루키. 야구장에서 시원한 2루타를 보는 순간 소설을 쓰자고 마음먹었다는 것은 분명 로맨틱한 성공스토리입니다. 그 자신도 “슬픈 외국어”에서 밝혔듯 안타가 날아가는 각도나 그날의 온도, 습도, 그 날 야구장에서 들리던 함성 같은 것이 절묘하게 어울려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낸 것이겠지요. 그러니까 그 자신도 말했듯 그건 우연이었던 겁니다. 그가 슬픈 외국어에서 인용한 잔인한 대사(오손웰스의 영화라고 합니다.) 까지 나카지마 요시미츠의 허무감과 맞닿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노래를 부를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아니다.”

 

그리고, 생각나는 사람은 마루야마 겐지. 회사가 도산하는 바람에 끼적거리던 글이 아쿠타가와상에 당선되는 (그 때까지 최연소였다고 합니다. 제가 알기론 그 이후 무카라미 류가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로 경신했습니다.) 문학지망생들이 들으면 열폭할 만한 스토리를 쓴 사람입니다. 실제로 당선 직후 겐지에게 소설가지망생들의 항의편지가 쇄도했다고 하네요.이 사람의 에세이를 읽어보면 묘한 분열같은게 느껴지는데 마음 한구석에는 "내가 소설가라고? 분에 맞지 않아!"라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에세이에도 등장하는 편집자의 말처럼 "당신은 문학을 싫어하지만, 문학은 당신을 좋아하는 것 같다"라는 느낌입니다. (그럴 거면 차라리 날 좋아해 주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이 대목에서 나오겠죠.)그리고, 가장 최근에 읽은 예로는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의 와타나베 이타루입니다. 이 사람은 약간 신기까지 있는데, 회사에 다니며 장래를 고민하다가 어느날 잠결에 “빵을 만들어 보라”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충고를 듣고 제빵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유명하거나 돈을 많이 번건 아니지만, 자신의 정체성과 인생의 의미를 찾은 사람으로 성공케이스로 꼽고 싶네요. 아, “짚한오라기의 혁명”을 쓴 후쿠오카 마사노부도 있겠네요. 이 사람은 잠들지 못하고 거리를 배회하던 중 새벽에 별안간 대오각성을 하고 농부가 된 사람입니다. 이 후 자연농법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거의 비현실적인 느낌이 드는데요, 와타나베 이타루나 무라카미 하루키가 거짓말을 할 리 없으니 본인의 착각이든 뭐든 대충 진실로 쳐주는게 맞는 것 같네요.

저도 나카지마 요시미츠의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만의 결정적 순간이 언제 닥칠까 하고 신경을 곤두세운 적이 있습니다. 3호선을 타지 않고 5호선을 타면 내 인생이 바뀔까? 혹은 두시 비행기가 아니라 여섯시 비행기를 타면 내 인생이 바뀔까? 두시 비행기는 추락하고, 여섯시 비행기 내 옆자리에서 어썸한 여인네를 만나지 않을까? ..... 물론 그런 일은 없었고, 지금까지 기다려 봐도 저에게 그런 결정적 순간은 없었습니다. 쇼펜하우어가 자신의 인생론에서 말한 것처럼 시간이 지난 다음에 우리는 하나의 스토리로 각각의 결정적 순간을 만들어 내는 건지도 모릅니다. 하루키에게 다시 기대자면 적어도 그런 순간이 있을 거라고 기대하면서 사는 게 나을지도 모르고요. 아니면 저에게 결정적 순간은 어쩌면 이 책을 발견한 것 자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군 복무 때 휴가나와서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서점엘 가서 이 책을 골랐습니다. 휴가 중에 서점에 간 것도 미스테리한데 왜 전혀 알지도 못하는 저자의 책을 덜컥 샀는지 모르겠습니다. 한권의 책이 사람을 바꾸진 못하지만, 그 변화의 시작이 될 수는 있겠지요. 이 책을 읽고 나서 “끝까지 부조리를 응시하고 음미하는 삶”이란 태도를 접하게 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인생의 결정적 순간은 언제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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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를 그만두다 - 소비자본주의의 모순을 꿰뚫고 내 삶의 가치를 지켜줄 적극적 대안과 실천
히라카와 가쓰미 지음, 정문주 옮김 / 더숲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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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가구가 이제는 대세라고 한다. 사람들은 이제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사회단위로 등장한 개인이 모든 것을 시장에서 해결하기 때문이다. 즉, 모든 것을 돈을 주고 사는 것이다. 돈이 사회를 살아가는 안전망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 결국 문제는 돈이다. (뭐니뭐니해도 money가 최고라는 수십년전 농담)

문제는 이제 사람들이 앞으로 돈을 획득할 가능성이 점점 낮아진다는 거다. 일본의 경제성장은 성숙기에 도달했고, 저출산에 고령화, 총수요 감소가 진행중이다. 그리고, 나는 아직 불행히 겪어보지 못했지만 돈의 유동성이 지극이 높아지면 설사 벌이가 많더라도 인간성 자체가 소모된다고 한다. 40년이상 사업을 해온 저자의 경험담이란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현재 진행중인 “내리막 사회”에서 말이다.저자는 돈 대신 “관계”를 만들라고 조언한다. 사람과 사람의 연결고리가 안전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특히 “지연”을 강조한다. 여기서 지연은 어디 출신이라는 것이 아니라 “얼굴있는 소비자”가 되어 장소와 결합하는 것이다. 익명의 개인이 누리는 자유의 매력 때문에 도시화가 진행되고 화폐경제가 발전했다면,이제 다시 “얼굴있는 소비자”가 되어 지역에서 인격적인 관계를 만들자는 것이다. 여기서 평소 저자가 주장하는 “소상공인”의 개념이 연결될 것이다. 대형할인점의 지역파괴와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예로 들면서 저자는 교환가치이고 본질적으로 유동적인 화폐는 평온과 충족감을 주는 삶의 토대가 될 수 없다고 애기한다. 가족간의 결속만 중시하고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는 미국은 공허한 나라이며 후세에 실패한 나라로 기록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저자가 깨달은 것은 현대인의 과잉소비는 과잉스트레스에서 온 공허감을 메꾸기 위한 대상행동이며, 소비에 대한 욕망은 안정적이고 리드미컬한 생활 속에서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이게 그리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우치다 타츠루의 “절망의 시대를 건너는 법”이나 고미숙씨의 “호모 꼬뮤니타스” 같은 책에서 줄기차게 애기된 것이기도 하다. 증여를 하고 관계를 만들으라는 것. 게다가 돈 때문에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 삶이 피폐해지는 것이 대다수의 현대인들이 아닐까. 삶과 일이 함께 가는 것은 소수의 행운아에게나 해당하는 일이다. 아마 저자가 주장하는 소상공인이라는 개념도 아마 이런 행운아에 관한 애기아닐까.

 

저자의 애기가 여러 방면에 조금씩 걸쳐있고, 단문 위주로 구성되어 있어서 한 눈에 조망이 들어오진 않는다. 그리고, 책을 읽고 나서는 구체적인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게 슬프다. 월마트가 아니라 동네소매점에 가 본다고 해보자. 물론 첫걸음이지만, 안정적이고 리드미컬한 삶이 갑자기 나올 리가 만무하다. 그리고, 저자도 지적했듯 과거의 지역공동체는 토대이자 동시에 구속이었다. 이미 자유의 맛을 본 익명의 개인들이 타인을 어느정도까지 받아들이려고 할까. 혼밥과 혼술남녀가 유행하는 지금 말이다. 타인과의 관계설정이란 철학적이기까지 한, 만만찮은 주제일 것이다. 그리고, 하루종일 원거리 지역에서 근무하고 저녁과 주말만 집에서 보내는, 야근에 쩌는 직장인들에게 지역공동체는 먼나라 애기처럼 느껴질 것이다. 요컨대, 노동과 삶, 사람사이의 관계가 총체적으로 엮여 있어 저자의 애기가 실감이 나지 않는 것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애기가 어떤 단초는 될 수 있을 것 같다. 동네 소매점에 한번 가보자. 소비를 줄이고 그걸 동력으로 다른 노동양식도 상상해보자. 조금씩 조금씩 실천해보면 저자가 말하는 안정적이고 리드미컬한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원래 비와 이슬을 피할 집이 있고, 그 곳에서 가족, 친구들과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떠들썩하고 즐겁게 살아갈 수만 있다면 행복을 느끼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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