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토럴리아
조지 손더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전에 양익준 감독이 "똥파리"라는 영화로 대박을 친 적이 있는데, 이 소설은 "똥파리"의 미국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쌍욕 티키타카"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서글픈 점은 그런 악다구니가 좀 더 위험해도 될 것을, 이들의 악다구니는 추레함과 비루함에만 절여져 있다. (똥파리 처럼 깡패짓이라도 하란 말이다..) 스트리퍼에게 하는 ' 더열심히 뛰어라'라는  말은 지극히 자본주의에 충실하고 규범적이다.  대환장 구질구질 헛소동을 한 번 겪어보고 싶으시다면 추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필립 K. 딕 - 나는 살아 있고, 너희는 죽었다 1928-1982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사람의집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재미 보장. 김어준처럼 수염기른 뚱보 아저씨가 아랫배를 득득 긁으며 좌충우돌 ,주변에 민폐 만땅(특히 여자들한테) 끼치는 이야기다. 거기다 각종 마약류에다 도곤족,안드로메다까지 등장하니 금상첨화. 저자 역시 필 딕 못지않는 삐딱함으로 블랙유머와 위트를 남발하며 이야기꾼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재밌는게 이 필 딕의 평전을 읽고나면 그가 쓴 전집을 읽고 싶어지는 반면 정작 그 전집을 쓴 필 딕은 한없이 찌질하고 유치한, 덜 자란 애처럼 느껴진다는 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부분과 전체 - 개정증보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지음, 유영미 옮김, 김재영 감수 / 서커스(서커스출판상회)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부분과 전체>는 양자역학을 성립시킨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쓴 일종의 회고록이다. 그의 모든 인생사가 들어있는 것은 아니고, 양자역학이 성립하고 황금기를 거쳐 원자폭탄이라는 괴물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자신의 연구경력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양자역학이라는 지금도 ‘귀신신나락 까먹는 소리’처럼 들리는 흥미로운 소재에다 1차세계대전부터 2차세계대전이라는 격동의 BGM이 깔리면서 이 이야기는 비단 양자역학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는 사람도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을 이해하는데 어느 정도의 배경지식이 필요할까? 물론 양자역학에 대한 기초지식이 없으면 이 책의 내용을 완벽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과형인간들에게도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자연을 바라보는 여러 가지 관점들이 인문학에도 적용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에 등장하는 과학자들은 원자핵이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정도의 기술적인 이야기만 주고받지 않는다. 그들이 고민하는 것은 자신들이 새로 발굴한 영역의 철학적·윤리적 함의, 사회적 영향, 종교나 정치 등 인접영역과 관련된 문제들이다. 

  먼저 이야기는 아직 학창시절의 저자가 친구들과 하이킹을 하며 원자론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1차세계대전 직후의 독일 청년들은 어째 21세기 대한민국보다 더 풍성한 학창생활을 보낸 것 같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하고, 하이킹과 캠핑을 하고 친구 집에서 피아노 연주모임을 갖기도 한다.) 저자는 친구어머니의 충고대로 음악가로서 소박한 삶을 살기보다는 더 많은 가능성을 택해 뮌헨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면서 여정을 시작한다. 부러운 것은 이들이 가지고 있는 많은 인적 인프라(?)다. 아인슈타인은 말할 것 없고, 덴마크의 닐스 보어,오토 한 등 마치 수호전의 108영웅같은 등장인물들이 물리학의 난제들에 인생을 걸고 비단 연구뿐만 아니라 우정을 서로 나누며, 그 와중에서 종교와 철학의 담론까지 토론하는 모습을 보면 이들은 죽기 전에 ‘한 평생 잘 살았다’하고 회고할 것 같다. 저자가 자연에서 보는 것은 “단순성과 완결성 앞에서 거의 기겁했던 경험”(p135) 이다. 저자는 “중심적 질서”(p.391)라고 비슷한 단어로 다른 정치,사회적 현상을 분석하기도 한다. 양자역학이 지금도 얼핏 신묘하게 보이는 이유는 우리의 일상을 묘사하는 뉴턴 역학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체계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은 그런 다른 개념체계를 기존의 고전물리학의 용어로 설명해야 하는 이중의 부담을 진다. 이 과정에서 개념과 언어, 관찰한다는 것, 이해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지, 의미라는 것은 또 무엇인지 등등의 문제에 대한 성찰이 등장할 수 밖에 없다. 저자와 닐스 보어와의 대화 중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상보성’인데 하나의 관찰상황과 측정도구는 다른 관찰상황과 배타적이지만 두 개 다 진실이라는 것이다. 배경지식의 부족으로 확언할 수는 없지만, 이런 상보성 아래에서 “물은 100도에서 끓는다” 는 뉴턴역학계의 공리는 “물은 확률적으로 100도에서 끓는다”라는 일종의 확률분포로 바뀌는 것 같다. 관찰하려는 행위 자체가 불확정성을 초래한다면 실험이라는 것이 가능할까? 관찰자가 관찰하려는 행위 자체가 관찰 대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관점은 어떤 주장을 접하면 그 주장을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가부터 확인하라는( 여성학자 정희진이 말하는 ‘위치성’) 인문학적 통찰을 연상시킨다. 기존의 객관, 주관은 상대적인 영역으로 후퇴한다. 108영웅 중 한 명인 카를 프리드리히는 칸트를 신봉하는 철학자와 토론하며  “역사적 발달과 더불어 인간의 사고 구조도 변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과학적 진실에만 국한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것들, 절대적이라고 믿고 있던 것들 중에도 우리가 전혀 짐작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존재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을 굳이 들먹일 필요도 없다. 닐스 보어의 말대로‘심연에 진리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풍랑에 휩쓸린 배의 갑판에 서 있는 것 같은 상황에서 지침으로 삼아야 할 ‘나침반’과 ‘의미’는 무엇일까?  격동의 시대에 걸맞게 저자 역시 평소와다른 선택의 순간을 맞이해야 했다. 히틀러의 독일을 떠날 것인가? 과연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 올 원자력 연구에 힘을 더해야 할 것인가? 저자는 원자폭탄의 책임론을 물으며 미국과학자들을 비난하는 토론에서 서늘한 말을 한다. 단지 우리가 원자폭탄을 개발한 미국과학자들보다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양자역학을 처음 들었을 때 경악하지 않는다면 양자역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 비전공자에게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전문적인 부분을 건너 뛰더라도, 양자역학의 시대를 열고 황금기를 이끈, 그리고 파국까지 오롯이 경험한 한 과학자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리숙한 척, 남자 부려먹기
에스테 빌라 지음, 조선희 옮김 / 황금가지 / 1997년 7월
평점 :
품절


아마 블랙유머라고 생각한다.  왜 "남자는 경제력, 여자는 외모"일까?  이 책에서 밝히는 이유는 남자는 여성을 부양하고 인정받는 데에서 자신의 의미를 찾는 의존적인 존재이고 여성이 관심있는 것은 자신의 안위일 뿐 남성이라는 존재에 근본적인 관심이 없기 때문에 자신을 끝까지 안락하게 부양해 줄 남성을 찾기 때문이라는 것.  뭐 블랙코미디 보는 느낌으로 한번 읽어보는 것도. 수십년 전 비아냥과 아이러니한 조롱이 넘실대던 진중권 책(아마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같은 느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벤야멘타 하인학교 (무선) - 야콥 폰 군텐 이야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
로베르트 발저 지음, 홍길표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회사에 다녀본 사람이라면 굴종과 무기력을 느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벤야멘타 하인학교>를 읽고 난 다음 그 무기력과 복종을 떠올렸다. 이 이야기는 그런 무기력과 복종을 가르치는 학교에 입학한 한 소년의 이야기다. 시대상은 자본주의 질서가 막 구축되기 시작한 독일인 듯 하다. 거리는 화려함과 조급함, 갈망, 고통, 불안 등이 넘실대고 주인공은 부자가 돼서 돈을 물쓰듯 쓰고 싶어한다. 작품에서 주인공의 동기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지만, 주인공은 자신의 욕망에 걸맞지 않게 하인학교에 입학했다. 그곳에는 거인같은 벤야멘타씨와 누이동생 벤야멘타양이 있는, 카프카의 부조리극에나 등장할 분위기를 풍기며 복종과 무감각함, 무기력을 가르치는 아니,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는 곳이다.

주인공의 동료들은 둔감하고 어딘가 활기와 주체성이 없거나 무언가 결핍된 모습으로 묘사된다. 주인공은 의뭉스럽게 그들을 추켜올리는 것 같으면서도 그들을 조롱하는 것 같다.(“같다라고 표현한 이유는 내가 이 화자의 심리를 정확히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화자가 과연 10대 소년일까? 예를 들어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은 이런 십대가 존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 야콥 폰 군텐은 마치 신경쇠약에 걸린 성인 소설가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는 부조리한 벤야멘타 학교에 어울리는 부조리한 주인공이다. 철학자 니체가 근대인은 난장이가 되었다고 서술한 적이 있는데, 어쩌면 작가는 그런 난장이들의 군상을, 사람들이 난장이들이 되기 시작한 시대상을 묘사하고 싶었던 걸까. 생도들은 청소를 하면서도왜 그것을 해야만 하는지, 그걸 제대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주인공의 형의 대사는 작가가 그 시대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대중, 그것은 현대판 노예다. 그리고, 개인은 그 굉장한 집단사고의 노예지. 이제 아름답고 훌륭한 것이라고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많은 , 많은 돈을 벌려고 노력해라.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지만 돈은 아직 건재하다. 모든 것, 모든 것이 파괴되고, 반쪽이 나고, 우아함과 화려함을 빼앗겼다.” 하지만, 형의 충고에는 반전이 있다. “가난하게 경멸받으며 살아. 사랑하는 친구야. 돈생각일랑 떨쳐버려라...부자들은 말이다, 야콥, 불만에 가득 차 있고 불행하단다.”

이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과 인정이고 이 하인학교는 이 돈과 인정이라는 욕망을 가장 궁색한 방식으로 충족시키는 법을 가르친다.(아니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는다.)

소설의 아이러니는 주인공 화자가 그런 하인학교가 가르치는 무기력과 복종, 둔감함을 칭송을 가장하며 조롱하는 듯 하면서도, 어느 대목에서는 그런 특성들을 진심으로 추켜세운다는 것이다. 이미 시대는 전도되었고, 동료 크라우스가 가지고 있는 둔감함은 다가오는 삶의 폭풍으로부터 그를 지켜줄 것이다. 돈을 기준으로 새로운 위계가 정해질 것이고 이 학교의 생도들은 위대하지 않고”, “단지 작고,가난하고, 종속된, 끊임없는 복종의 의무를 진 난쟁이라는 것을느끼고 있다. 이 소설에서 묘사되는 등장인물들을 보면서 현대의 소시민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굽실거리는 복종은 처음엔 어색했지만 나중에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고, 바뀐 자부심, 명예의 종류는 일하지 않는 것을 자부심에서 치욕으로 만들었다.

소설은 신경질적인 화자의 중얼거림으로 채워져 있다. 소설이 진행되면서 벤야멘타 학교의 위계는 변하기 시작하는데, 학교의 주인 벤야멘타씨와 그의 동생이 주인공에게 진심을 요구하면서(돈과 관련없는 다른 종류의 인정이다.) 주인공과의 역학관계가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주인공은 신경쇠약 직전의 화자 답게 자신을 더 무례하게 다뤄달라고 요구한다. 소설의 마지막 전개는 이해할 수가 없다. 벤야멘타 양은 죽음에 이르고,(원인조차 명확하지 않다.) 벤야멘타씨는 학교를 닫고 주인공과 사막으로 떠난다. 여기서 주인공의 감정선은 따라갈 수가 없다. 하지만, 마지막 주인공의 결심은 동의하게 된다. 그의 조증에 가까운 중얼거림보다 그가 마지막에 한 결심이 그의 삶에 도움이 되리라.

“... 그리고, 난 더 이상 내게 묻지 않는다. 왜냐고. 삶이 원하는 것은 격동적인 움직임이라는 것. 성찰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내가 만약 ...한다면 어떨까?’라는 말로 나를 결박하거나 구속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 ‘만약이라는 말도,‘어떨까라는 말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이제 이 펜도 던져버리는 거다. 생각하는 삶일랑 이제 집어치운다. 나는 벤야멘타 씨와 함께 사막으로 간다....신은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무엇 때문에 신에 대한 생각을 한단 말인가? 신은 생각하지 않은 자와 함께 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