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당겨 쓰는 일 콩콩동시 33
김주안 지음, 이현정 그림 / 소야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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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당겨 쓰는 일』/ 김주안 동시집/ 소야주니어/ 2024

소소하게 읽는 즐거움을 주는 동시집을 만났다. 내 집 이야기 같고, 우리 가족 이야기 같고, 내 이야기 같은 우리 주변 어디서나 있을 일어나고 있을 것 같아 공감이 많이 가는 동시집이다.

청주에서 활동하는 김주안 시인은 2022년 한국작가회의 <내일을 여는 작가> 동시 부문에 당선되어 시를 쓰기 시작했다. 한국동시문학회, 한국작가회의, 푸른아동청소년문학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시간을 당겨 쓰는 일』이 첫 동시집이다.

반을 잘라봤다

씨앗 속에 뭐가 있나 보려고

작지만 보인다

단감나무 한 그루

- 「단감 씨앗」 전문 (12쪽)

어떤 모양인지가 머릿속에 또렷하게 떠오르는 시다. 시골에 살았던 사람들은 감 씨를 많이들 잘라봤을 것이다. 어릴 때 우리는 감 씨앗 속에 든 것을 밥숟가락이라고 불렀는데 시인은 ‘작은 단감나무’로 봤다. 시인의 가진 마음의 눈이 이미 작은 씨앗을 큰 단감나무로 키워놓았다.

아버지는 소파에 누워 TV와 하나가 된다

엄마는 바쁘게 집안정리 마치고 침대와 하나가 된다

핸드폰과 이어폰이 연결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누나는 댄스 동영상 찍느라

문 걸어 잠그고

나는 게임으로

오늘도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밤을 맞이한다

밤이 되면 우리 집은 섬이 된다

방 하나하나

외딴섬

- 「외딴섬」 전문 (50쪽)

이 동시는 어쩌면 이 사회의 현실을 고발하는 그런 동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지금 이 시간, 많은 가정에서도 기러기 날지 않는 외딴섬이 펼쳐지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서로의 공통된 관심사가 없어서 일 수도 있고 각자의 취향이 너무나 달라서일 수도 있겠지만 가족 간에도 서로서로 각자의 시간을 존중해 주고 간섭받는 것을 싫어하다 보니 점점 더 외딴섬으로 굳어지게 된 게 아닐까 싶다. 그 외딴섬에 다리를 놓는 일, 모두 나서야 가정이 평화롭다.

겨우내

따뜻한 비닐하우스에서 모종을 키운다

상추, 쑥갓, 고추, 오이

씨 뿌리고 물 주며

자식처럼 길러낸다

미리 봄을 당겨본다

- 「시간을 당겨 쓰는 일」 전문 (95쪽)

표제작인 「시간을 당겨 쓰는 일」이다. 하우스 농사가 많은 요즘, 계절의 구분이 없다. 겨울인 지금 딸기 맛이 최고다. 상추, 쑥갓, 고추, 오이 등 거의 모든 채소가 일 년 내내 마트 야채 코너에 자리하고 있으니 막상 봄이 되고, 여름이 되어 제철에 나오는 과일이나 채소에 크게 감동하는 일이 드물어졌다. 농부의 땀으로 앞당긴 계절, 마트에 가면 채소 하나 살 때라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겠다.

몇 편을 소개하는 것으로 짧은 리뷰를 끝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읽다 보면 ‘아하! 그렇지’, ‘정말 그렇네’ 싶은 시가 많다. 독자의 공감을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간다는 것은 싶지 않은데 『시간을 당겨 쓰는 일』에 그게 된다. 작가의 시에 장단을 맞춰 주는 일, 읽는 재미가 저절로 그렇게 되는데 소소하게 읽는 재미가 이 동시집에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시간을당겨쓰는일

#김주안동시집

#소야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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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약밥 단비어린이 문학
김미희 지음, 안병현 그림 / 단비어린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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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약밥/ 김미희 글 / 단비어린이/ 2023.02

 

 

보통의 주부라면 매 식사때마다 메뉴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가족이 적으면 적은 대로 많은 많은 대로 식성이 다 다르면 고민이 몇 배다. 어쩌다 아는 사람들과 통화라도 하는 날은 요즘 반찬 뭐해 먹어?”라는 질문이 빠짐없이 들어간다. 묻는다고 뾰족한 수가 나오는 건 아니지만 어쩌다 꽤 괜찮은 반찬을 레시피까지 얻는 경우도 있긴 하다. 그럴 때마다 엄마들이 하는 말, “, 그냥 알약 하나만 먹으면 배부르는 거 누가 발명 안 하나?”였다. 그런데, 그 알약밥이 동화로 나왔다. 김미희 작가는 이런 대화도 허투루 넘기지 않나 보다.

김미희 작가는 200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동시, 동화 부문에서 푸른문학상과 동시는 똑똑해로 서덕출문학상을 받았다. 그동안 낸 책으로 공부를 해야 하는 12가지 이유, 놀면서 시 쓰는 날, 모모를 찾습니다, 폰카, 시가 되다, 예의 바른 딸기, 외계인에게 로션을 발라주다, 마다마디 팔딱이는 비트외에도 다수가 있다.

 

여자아이로 변신한 여우의 이야기로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엄마라는 단어에 반감을 갖고 있다. 아이들은 같이 놀다가도 좀 불리하거나 부당하다 싶으면 엄마한테 이를 거야.”하는데 엄마가 누군지 모르는 여우의 입장에서는 이 세상 모든 엄마가 사라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반찬 걱정을 안 해도 되게 알약밥 장사를 한다. 요상구리 할머니에게 자신의 꼬리털로 화장을 할 수 있게 해주고 대신 여우는 알약밥을 받아 널리 퍼뜨리는데 그러면 엄마의 필요성이 줄어들어 엄마가 없어질 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알약밥 차지하기 위해 전쟁이 일어나고 엄마들은 산속에 숨어 몰래 농사를 짓는다. 엄마의 힘은 전쟁 중에도 힘을 발휘하는 걸 보면 역시 엄마는 못 말린다.

자신은 엄마가 원래부터 없는 줄 알았던 여우의 엄마가 요상구리 할머니라는 게 밝혀졌고 마법에 걸려 까만 머리핀은 변신해 있던 토끼는 지금쯤은 어떻게 됐을지 궁금하지만 엄마가 있다는 건 무조건 좋은 거다. 내 엄마는 하늘나라에 계시지만 누군가의 엄마로 사는 것도 괜찮다. 다 자란 아들이 막 현관을 열면서 엄마하고 부르는 날이 많기 때문이다.

가족을 위해 요리하는 일이 때때로 귀찮을 때도 있긴 하지만 정말 귀찮은 날은 외식도 있고 나가기 귀찮으면 배달이라는 편리한 방법도 있으니 예전보다는 알약이야기가 많이 줄어든 것 같다. 그래도 엄마가 한 요리로 온 가족이 건강한 모습으로 둘러앉아 하하호호 이야기꽃을 피우는 시간만큼 즐거운 것도 많지 않다. 잘 먹어주는 것도 기쁜 일이고 그걸 보는 것도 뿌듯한 일이다. 알약밥은 김미희 작가의 알약밥에서 눈으로 먹고 엄마가 차린 식탁에서 맛있게 먹고 감사의 말은 꼭 남기자!

 

 

#알약밥

#김미희동화

#단비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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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 왕팬 나가신다 단비어린이 문학
이영은 지음, 노은주 그림 / 단비어린이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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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 왕팬 나가신다/ 이영은 글, 노은주 그림/ 단비어린이/ 2023.10

 

내리사랑이라는 말이 있는데 할아버지인 왕호랑이가 손주 왕호를 생각하는 마음은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할아버지의 사랑이 듬뿍 묻어나는 동화다. 온전한 내 편이 있다는 건 그만큼 든든하기도 하고, 상대방이 나를 믿어주는 만큼 힘과 용기를 낼 수 있는데 무섭기만 한 호랑이를 이런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변신시켜 놓아 유쾌하게 읽힌다.

 

이 병은 단순히 버려진 유리병이 아니었어요. 바로 왕호의 겁이죠. 왕호랑이는 가끔 유리병이 지진이 난 것처럼 거세게 흔들리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어요. 그리고 마침내 왕호가 겁을 낼 때마다 유리병이 흔들렸다는 것을 알아챘죠. 겁쟁이 왕호를 돕던 왕호랑이는 결국 왕호의 겁 속에 갇히고 만 것이에요. 왕호의 겁이 사라지지 않는 한, 결국 왕호랑이는 유리병 속에 갇혀 영영 나오지 못하고 사라질 수도 있게 되었어요. 왕호랑이는 자신이 정말 사라지게 될까 봐 점점 두려워졌어요.” -(86)

 

아직도 네놈이 정신을 못 차렸구나. 그렇게 귀하게 여기는 아이를 끝까지 믿질 못하고, 모조리 나서서 다 해주려고만 하니 아이가 제 뜻을 펼칠 수나 있겠냔 말이다. 왕호는 진작부터 용기 있게 할 수 있는 아이였다. 네놈이 사사로이 수염을 써 대며 간섭을 하니 아이가 좀처럼 나설 수가 있어야지!” -(106)

 

자녀를 과잉보호하는 엄마를 헬리곱터맘이라고 하는데 열혈 왕팬 나가신다에 등장하는 왕호랑이가 헬리곱터 할아버지다. 손주 사랑이 지나치다 보니 왕호가 할 수 있을 법한 것도 먼저 나서서 해주고 만다. ‘할 수 있다는 믿음과 용기를 먼저 심어주는 게 주변 사람들의 역할인 걸 왕호랑이도 뒤늦게 깨닫는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 결국은 용호라는 전학생으로 변신해 왕호와 한 반에서 생활하게 되는 걸 보니 정말 못 말리는 손주 사랑이다.

흔히 알고 있는 옥상황제라는 캐릭터가 열혈 왕팬 나가신다에서는 아주 재밌게 그려져 있다. 궁금한 독자는 열혈 왕팬 나가신다를 지금 바로 들춰보시길~

 

 

#열혈 왕팬 나가신다

#이영은동화

#단비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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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안 푸른도서관 86
이근정 지음 / 푸른책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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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안/ 이근정 청소년시집/ 푸른책들/ 2023.12

 

조용하게 위로를 건네는 시집

 

 

서울에서 활동하는 이근정 시인은 2017년 푸른동시놀이터에 동시 5편이 추천 완료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한국안데르센상 동시 부문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청소년 시집 내 안의 안, 동시집 난 혼자인 적 없어, 그림책 폭탄을 안은 엄마가 있다.

내 안의 안책장 넘기면서 왠지 모르게 위로를 건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아마도 많은 독자 누구나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내게 건네는 위로가 아닐까?’ 하는.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포스트잇을 붙이면서 읽은 몇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언젠가부터 내 안에/ 뾰족한 침엽수 숲이 생겨났어/ 발붙일 곳 없어 떠돌던 마음에/ 시린 눈이 자꾸만 달라붙은 때에/ 나무는 기쁘게 자라났어// 침엽수는 품을 내주지 않아/ 자라날 뿐이야 더 길게, 높이/ 벌목할 필요 없는 땅에는/ 아무도 오지 않아/ 나는 그 땅에 깊숙한/ 마음의 마음을, 숨겨 놓았어// 이제는 숨바꼭질이야, 너와 나의/ 나조차도 찾지 못하는/ 나의 진심/ 찾아낸다면./ 그래 주기만 한다면// 모두 네게 줄게//

- 내 안의 안전문 (16~17)

 

표제작인 내 안의 안이다. 청소년기는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방황하는 시기이고 자신도 모르게 마음에서 뾰족뾰족한 말이 튀어나온다. “언젠가부터 내 안에/ 뾰족한 침엽수 숲이 생겨났어”, “발붙일 곳 없어 떠돌던 마음에에 같은 문장이 눈길을 붙든다. 정체성을 찾는 일은 청소년기에만 있는 건 아니고 어찌 보면 살아가는 내내 못 찾고 방황하는 이들도 있다. 그만큼 나도 모르는 나가 있고 내 안의 안을 찾기 위해 길고 지루한 술래를 계속해야 한다.

 

누군가 널 외롭게 하더라도/ 살아남아 나무처럼/ 하루에 하나씩/ 깊은 뿌리 내려/ 어떤 여름날/ 환하게 피어나도록/ 시작은 기억나지 않지만/ 언제고 찾아낼 수밖에 없도록// 누군가 널 괴롭게 한다면/ 날아올라 새처럼/ 훌훌 털고 일어나/ 더 높은 곳으로/ 폭신한 구름 새로/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듣고/ 더 높이 날아올라/ 세상이 개미만큼 작아져 버릴 만큼/ 가벼운 몸짓으로//

- 나무처럼 새처럼전문 (23)

 

조용하게 읊조리는 것 같은 시인데 그 조용함이 토닥토닥하고 힘과 용기를 북돋아 주는 시다. 이런 응원이 청소년기 아이들이 더 멀리 도약하기 위한 발판이 된다. 나무처럼 깊은 뿌리를 내리면 어떠한 흔들림에도 꿈쩍하지 않을 것이고 새처럼 훌훌 털고 일어나 높은 곳으로 날아간다면 그 또한 넓은 세상을 많이 보고, 듣고 할 테니 결국은 내면이 단단한 아이로 성장할 것이다.

 

사람은 냄새로 기억되기도 한대/ 내 냄새는/ 바닐라 민트 피스타치오 향이었으면 좋겠어/ 나를 만날 때마다/ 아이스크림 가게 문을 열 때처럼/ 두근두근 설렘이 생기게/ 짭짤한 바다 냄새로 좋을 것 같아/ 감겼던 눈이 확 트이고/ 심장이 벌렁벌렁 뛰면서/ 먼 수평선 어디든 닿을 것 같은 기분/ 나는 봄이었음 좋겠고/ 동시에 가을이었으면 좋겠어/ 풀 내음이 새 학기의 떨림을 꽃다발처럼 안겨 주고/ 낙엽 태우는 냄새로 차분히 다음 만남을 준비하는// 네가 만나는 모든 것에/ 내가 있으면 좋겠어//

- 내가 기억될 냄새전문 (59)

 

누군가를 향으로 기억한다는 것은 그만큼 특별한 관계이거나 굉장히 인상적인 사람일 경우가 아닐까 싶다. 내가 기억될 냄새를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설레는 기분이다. 나를 아는 사람은 나를 어떤 냄새로 기억할까? 무색, 무취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고. 상대방은 또 다르게 기억할 수도 있으니.

 

집을 나와/ 무작정 걸었다// 멀리 떠나고 싶다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내가 커다란 원을 그리고 있었다/ 자꾸만 한 자리로 돌아오고 있었다// 집이 나를 당기고 있었다//

- 구심력전문 (76)

 

일정 기간 집 밖에 나가 있으면 집이 그리워지고 별 반찬이 없어도 집밥이 그립고 한 것은 집이 주는 평화롭고 안락한 환경 때문이 아닐까. 밖은 아무리 편해도 밖이라 내 집만큼 온전하게 그 편안함을 누릴 수가 없다. 항상 집을 구심점으로 해서 그 주위를 얼쩡거리는 우리다. 학교, 직장, 마트, 영화관, 산책 등. 모든 것이 집에서 얼마의 거리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정해서 간다. 집을 등에 지고 다닐 수가 없는 만큼 최대한 집에서 멀지 않는 곳에서 움직이고 집 또한 그런 우리를 언제든지 받아준다. 청소년기에는 집을 떠나고 싶은 마음도 큰데 그 청소년기에조차도 집은 늘 아이들을 끌어당기고 있다. 구심력에 의해.

 

내 안의 안은 독자들의 지친 마음에 따스한 위로를 건네는 시집임에는 틀림이 없다. 청소년기가 언제였더라? 하는 내가 읽어도 마음이 차분해지고 한결 말랑해지는 느낌이다. 주위에 있는 사춘기 아이들에게 한 번씩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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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구멍가게 이용법 단비어린이 동시집
이현영 지음, 정원재 그림 / 단비어린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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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구멍가게 이용법』/ 이현영 동시집/ 단비어린이/ 2023
재작년 도서관에서 일반인 동시 수업을 잠깐 했다. 매번 수업 시간마다 새로운 동시 몇 편을 출력해서 가지고 가 읽히고 직접 쓰게도 했는데 사투리 동시라는 타이틀로 수업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이현영 시인의 「한 알만 먹으면 죽는 약」도 들어가 있었다. 수강생들은 이현영 시인의 이 작품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지방에 살고 다른 지방에 살았던 수강생도 있어서 자신들만의 사투리로 시를 쓰게 했는데 재밌는 작품들도 나왔던 기억이 난다.
개인 작품집으로는 첫 동시집을 낸 이현영 시인은 어린이와 문학에 동시로 에세이 문학에 수필로 등단했고 푸른문학상 새로운 시인상을 받았으며 인제국제시조 공모전에 시조로 장려상을 받았다. 2022년에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간지원으로 『우리 동네 구멍가게 이용법』을 펴냈다. 펴낸 동시집으로 『강아지 기차』(공저)가 있다.
『우리 동네 구멍가게 이용법』에 실린 몇 편을 소개한다.
어린이답게,/ 예쁘고 귀여운 말을/ 표준말로만 써야 합니다//마이크로 몇 번이라 일러 주던/ 심사 위원 할아버지// 예쁜 말도 귀여운 말도 없이/ 끝에는 ‘미안해서 우짜노’로 끝이 난/ 내가 써낸 시// 어린이답게 못 썼는지/ 똑 떨어졌지만// 그래도, 내 시에는/ ‘미안해서 우짜노’가 필요했다// 떨어지면 우짜노,/ 생각은 안 들었다// - 「백일장에서」 전문 (12쪽)
이 동시집을 읽어보면 시인의 색깔이 참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걸 알 수 있다.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건 그만큼 중요한데 시인은 “볼거리 많은 세상, 여기 기웃 저기 기웃대느라 몹시도 늦어 버렸다.”고 동시집이 늦게 나온 이유를 겸손하게 말했는데 그 보다는 좀 더 완성도가 높은 시, 자신의 시 세계를 만드는데 그만큼 더 시간을 투자했기 때문에 늦어진 게 아닌가 싶다. 「백일장에서」를 읽다 보니 더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든다.
옛날 옛적에/ 딸 부잣집이 있었는데/ 딸이 넷이어도/ 엄마 일 도와주는 딸이 없었대// 큰딸은 동무 좋아 밖으로만 나가고/ 둘째 딸은 셋째랑 공기놀이 한다고/ 마당에 퍼질러 앉았고/ 넷째 딸은 너무 어렸지 뭐야// 이 방 저 방 쓸고 닦고/ 설거지해서 엎어 놓고/ 줄줄이 벗어던진 빨랫감을/ 방망이로 두드리면서// 내 손이 내 딸이다/ 내 손이 내 딸이다/ 동네 사람 모르는 착한 딸 자랑을/ 침이 마르도록 하더란다// - 「착한 딸 이야기」 전문 (38~39쪽)
딸 넷인 나의 엄마도 착한 딸 이야기를 개울에서 빨래하며 자랑했을까? 윗세대 부모님들의 힘든 시절이 머릿속에 휙 지나가는 시다.
이십 년 넘게 같이 사는/ 선풍기 짝꿍// 고개 못 들어/ ‘안녕하세요?’ 인사만 하는 건 끄덕이/ 고개 못 숙여/ ‘내가 뭐!’ 하며 인사 한 번 안 하는 건 우쭐이// 끄덕이는 겔겔겔겔 아래로 돌고/ 우쭐이는 턱턱턱턱 위로 돌아서//마루에 앉으면 골고루 다 시원한다//
- 「끄덕이와 우쭐이」 전문 (83쪽)
우리 집에도 절대 고개 안 숙이는 우쭐이가 있는데 겔겔이를 들여놔야 하는 건가? 집집마다 오래 사용하다 보면 한 군데씩 고장이 난 선풍이가 있는 걸로 안다. 그 선풍기가 작가의 눈을 통해 공감이 가는 재미난 시로 탄생했다.
아침에 종종 문 걸어 두고/ 아픈 다리 때문에 읍내 병원에 다니는 할머니가/ 주인입니다/ (오전 시간에 가면 헛걸음치기 쉬워요)// 과자, 라면, 아이스크림 말고도/ 공책, 우표, 옷핀, 두통약도 팔아요/ (가게 옆 깻잎은 그냥 따 가라 하기도 해요)// 날짜 지난 빵이나 우유도/ 당당히 한자리 차지하고 있답니다/ (할머니 모르게 살짝 확인하세요)// 덧붙임. 큰 소리로 인사하는 것을 빼먹지 마세요/ (인사 잘한다고 과자 한 봉지 줄 때도 있거든요)//
- 「우리 마을 구멍가게 이용법」 전문 (94~95쪽)
『우리 동네 구멍가게 이용법』에는 다소 호흡이 긴 동시도 있지만 대부분 재밌게 읽히는 동시들이다. 본문에는 「우리 마을 구멍가게 이용법」인데 책 제목은 『우리 동네 구멍가게 이용법』이라 독자들이 모르는 전략인가? 아는 분이 작년에 자신의 동네에 편의점이 들어왔다고 이제 문화생활권에 들었다고 이야기해서 웃었는데 「우리 마을 구멍가게 이용법」에는 아직 포스기와 카드 결제가 안 되는 그런 구멍가게다. 대형마트와 편의점에 둘러싸여 있다가 어쩌다 구멍가게를 만나면 참 반갑다. 구멍가게 이용법이 다른 동네에서도 통할지 잘 익혀서 써먹어 봐야겠다.
『우리 동네 구멍가게 이용법』, 유괘한 웃음과 따스한 마음이 교차하는 동시집이다. 많은 분이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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