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밥 별별 밥 퐁퐁 동시샘
박소명 지음, 신외근 그림 / 하늘우물 / 202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밥 밥 별별 밥/ 박소명 동시/ 신외근 그림/ 하늘우물/ 2025


가끔 가족이나 친구, 지인과 통화나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 “밥 먹었어?” 혹은 “식사했어요?”라고 물어볼 때가 많다. 그러면 오래전부터 아침을 건너뛰는 아들은 아침밥 안 먹는 줄 알면서 왜 자꾸 물어보냐고 그러고 또 다른 지인은 “요즘 밥 못 먹고 사는 사람이 어딨냐?”고 통화할 때마다 그렇게 밥 먹었냐고 물어보냐고 되묻는다.


오래전에 할아버지와 같이 살던 시골집에는 대문이 없었다. 이웃에 살던 분 누구라도 들어오면서 제일 먼저 묻는 말이 “진지 자셨는기요?”였다. 그분들은 배를 곯았던 시절도 있었기에 그 인사가 이해가 간다. 밥은 삶을 이어가게 하는 중요한 에너지원인데 요즘은 밥을 못 먹고 사는 시절은 아니지만 혼밥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혹시 때를 놓칠 수도 있어 “식사했어요?”라는 인사는 계속될 것 같다.


그런데 밥을 말이 아닌 글, 그중에서도 동시로 50편이나 써서 출간한 분이 계신다. 박소명 작가의 『밥 밥 별별 밥』이다. 박소명 작가는 〈광주일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되었고 오늘의동시문학상, 황금펜아동문학상, 한국아동문학상을 받았다. 동시집 『뽀뽀보다 센 것』, 『올레야 오름아 바다야』, 『와글바글 식당』 외 다수가 있고, 동화책 『흑룡만리』, 『오현, 바람을 가르다』, 『70년대 이야기 속으로 풍덩』 외 다수가 있고 어린이 지식 교양책 『세계를 바꾸는 착한 똥 이야기』, 『방구석 유네스코 세계유산』 외 다수가 있다.


1부 “이런 밥 저런 밥”, 2부 “산에도 밥, 들에도 밥”, 3부 “생각이 깊어지는 밥”, 4부 “먹자, 먹자, 맛있는 밥” 총 50편의 밥 중에서 몇 편만 소개해 본다.


1학년 윤지가/ 밥을 먹는다.// 그림 동화책/ 듬성듬성한 글밥// 읽고 또 읽고/ 되새김질까지 하며// 또박또박 천천히/ 맛있게 먹는다.// - 「글밥」 전문 (26쪽)


별 반찬 없이/ 된장찌개 하나로도// 굳었던 마음이/ 사르르 풀어지지.// 차갑던 마음이/ 후르르 데워지지.// 생각만으로도/ 집밥은/ 가슴 따스한/ 엄마 사랑 가득해지지.//

- 「집밥」 전문 (59쪽)


엄마 퇴근하는/ 소리 들리자// 숙제 해놓으라던/ 말이 떠오른 준규// 혼나기 전/ 이불 둘러쓰고/ 아픈 척// -아이고 머리야!// 밑밥을 깐다.// - 「밑밥」 전문 (60쪽)


잔치잔치/ 대보름 잔치// 찹쌀, 찰수수/ 차좁쌀, 붉은팥, 검정콩/ 오곡밥 잔치// 고사리, 도라지/ 시래기, 호박고지/ 토란대, 표고버섯/ 가지, 다래 순, 곤드레/ 온갖 나물 대잔치// 둥가당 칭칭/ 둥가당 칭칭/ 농악대 소리와/ 맛있게 어우러지는//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 대보름 잔치// - 「오곡밥」 전문 (83쪽)


곧 다가올 3월에 입학을 앞둔 아이나 학부모는 걱정과 설렘을 동시에 안고 있겠다. 내 아이가 제대로 따라갈까? 친구와 사이좋게 놀까? 등등. 아이들은 부모가 걱정하는 것보다 훨씬 잘 적응하고, 잘 따라 한다. 윤지가 글밥을 또박또박 천천히 맛있게 먹는 것처럼.


부모는 아이의 행동을 보고 알고도 속아주고 모르고도 속아주는 게 다반사다. 「밑밥」에 걸려들지 않으려면 눈치가 빨라야 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얼마나 많은 밑밥에 서로 걸려들지. 너무 자주 깔면 부작용이 생긴다는 것도 명심해야 하는 부분이다.


뭐니 뭐니 해도 집밥만큼 만만한 게 없다. 매번 별 반찬 없어도 부담 없고 입맛에 제일 맞는 게 집밥이다. 무엇보다 사랑과 정성이 들어있어서 그럴 테지. 오늘은 정월대보름, 오곡밥에 나물 반찬 다 드셨을까요? “찰밥 드셨어요?”하고 안부 인사 나누고 싶다.


박소명 작가가 갓 지은 따스한 밥, 『밥 밥 별별 밥』에는 50편이나 되는 다양한 밥이 많기도 했다. 익숙한 밥도 있었지만 낯선 밥도 있었다. 그렇지만 『밥 밥 별별 밥』과 마주 앉아 한 편 한 편 읽다 보면 이 밥, 저 밥 골고루 다 맛보게 된다. 많은 독자가 『밥 밥 별별 밥』을 둘러앉아 읽으면 모두 한솥밥을 먹는 게 되겠다. 그러면 모두 식구겠다. 밥을 나눠 먹은 식구처럼 다들 더 정답게 느껴지고 힘도 얻겠다. 동시로 지은 밥은 가슴을 따스하게 데워줘 누구라도 보듬어줄 수 있지 않을까?


#밥_밥_별별_밥

#박소명동시집

#하늘우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개구리까지 톡톡 상상 동시집 32
문근영 지음, 민지은 그림 / 상상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개구리까지 톡톡/ 문근영 시/ 상상/ 2024

 

 

쉽고 재밌게 쓰면서도 감각적인 작품을 선보이는 문근영 시인이 출간한 동시집 개구리까지 톡톡이다. 2024 아르코창작기금에 선정되어 출간한 동시집으로 표지를 보면 겨울 시작인 이 계절에 봄이 방안으로 쑥 밀고 들어오는 느낌이다. 책장을 펼치면 그동안 작품으로 봐왔던 문근영 시인의 톡톡 튀는 발상을 만날 수 있다.

 

문근영 시인은 2017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동시집 연못 유치원, ! 이럴 수가, 두루마리 화장지, 깔깔깔 말놀이 동시(공저)를 냈다. 눈높이아동문학상, 금샘문학상, 목일신아동문학상, 비룡소 동시문학상 대상을 받았다.

 

모든 경기는/ 앞으로 나가야 이기는데// 뒤로 물러서야 이긴다//으라차차!// 벌렁 나자빠지고도/ 통쾌하게 이긴다//

- 줄다리기전문 (12)

 

참 쉬운 말로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시다. 줄다리기를 해봤거나 경기를 본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학교 운동회 때 주로 했던 경기 종목 중의 하나로 단체로 달라붙어 젖 먹던 힘까지 짜내 줄을 당겨보지만 앞으로 질질 끌려갈 때는 패배를 인정해야 한다. 6행으로 마치 줄다리기하듯 통쾌함을 선사하는 시다.

 

우리 강아지/ 얼마나 컸는지/ 재 보자 하며// 시골에 갈 때마다/ 할머니가 나를/ 세워 놓고// 벽에/ 가로로 금을 긋는다// 할머니가/ 그려 놓은 금/ 양옆으로 세로금을 그었더니// 벽에/ 대나무 한 그루 우뚝 섰다// 나를 따라 크는/ 대나무//

- 내가 키우는 대나무전문 (36~37)

 

할머니 집 벽에는 아이가 시골 갈 때마다 키를 재 본 금이 생긴다. 그 가로로 그은 금을 세로로 연결했더니 대나무가 되었다는 시로 할머니의 사랑이 담겼다. 가로 금은 대나무 마디처럼 할머니 집에 올 때마다 쑥쑥 커 가는 아이 모습에 온 가족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을 한 장면도 그 마디 안에 녹아 있을 것이다.

 

차들이/ 줄지어 들어가는 / 주차장// 개미굴 같다// 개미는/ 먹이를 물고/ 들어가던데// 차는/ 그냥 가기 뭐해서 그런지// 앞차 꼬리를/ 물고 간다//

- 지하 주자창전문 (78)

 

큰 지하 주차장은 꼬불꼬불해서 길 찾기도 힘들다. 지하 주차장을 개미굴에 비유한 발상이 재밌다. 또한 차가 쭈욱 줄지어서 들어가는 모습을 꼬리 물고 들어간다 했다.

 

씨앗 톡톡/ 잎눈 톡톡/ 꽃눈 톡톡/ 겨울잠 자는 벌레 톡톡// 삼사월엔/ 굼벵이도 석 자씩 뛴다는/ 할머니 말씀// 봄비 저도/ 들었나 보다// 땅속 개구리까지 톡톡/ 깨우러 다니느라// 정신없겠다/ 참 피곤하겠다//

- 노크전문 (82~83)

 

표제작인 시다. 봄비가 내리면 바깥 기운이 하루하루 달라진다. 앙상한 가지에 뾰족뾰족 꽃눈도 터지고 아무것도 없던 땅에서 빼꼼하고 고개 내미는 푸른 새싹도 보인다. 그게 다 봄비의 바지런함이다. 쉬지 않고 톡톡, 깨우러 다녀서.

 

문근영 시인은 등단해서부터 지금까지 열정적으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데 쉽고, 재밌고, 통통 튀는 자신만의 색깔이 잘 드러난다. 이번에 출간한 개구리까지 톡톡역시 문근영 시인의 작품을 읽어본 독자라면 많이 반가워할 동시집이다.

 

#개구리까지_톡톡

#문근영_동시집

#상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등나무와 고양이 초록달팽이 동시집 16
우승경 지음, 김영미 그림 / 초록달팽이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등나무와 고양이/ 우승경 동시집/ 초록달팽이/ 2024

 

 

여러 가지 사회 현상 중에 단절로 인해 문제가 발생 되는 많다.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주변 상황에 눈과 귀를 닫아버리는. 그리하여 자신만이 옳고 다른 사람의 생각은 무조건 배척해버리는 일이 생기기도 하는데 어릴 때부터 대화를 통해서 올바른 판단력을 길러주는 게 부모나 주변 어른들의 역할인 것 같다. 우승경 작가의 동시집 등나무와 고양이에는 주변에 소소하게 소통하는 모습을 담은 동시가 많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에 대한 관심과 소통에서부터 모두가 한 발짝씩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

 

우승경 작가는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대학원에서 한국어 교육과 문헌정보학을 전공했다. 2022년 한국아동문학상 동시 부문 신인상을 받았으며 2023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발표지원)에 선정되었고 쓴 책으로 수필집 경품과 초록 미술관이 있다. 현재 초등학교 도서관에서 사서로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등나무와 고양이는 우승경 작가의 첫 동시집이다.

 

띵동!/ ! 아래층 아줌마다// 쿵쿵 뛸 때도/ 올라오지 않던 아줌마// - 우리 조용히 놀았는데/ - 맞아, 우리 살금살금 다녔잖아// 이때 들리는 아줌마 목소리/ - 쌍둥이들 어디 아파요?/ 너무 조용해서 올라왔어요// 그 말 듣고/ - 우리 안 아파요. 건강해요/ 쿵쾅거리며 뛰쳐나갔다//

- 아래층전문 (19)

 

층간소음이 사회적인 문제가 된 지 꽤 오래다. 하루 이틀에 해결될 일이 아니면 아래층에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곤혹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작품에 등장하는 아래층처럼 평소 아래층과 소통하면서 잘 지냈다면 무리 없이 지나갈 일인데 서로 단절된 채 살아가는 입장이라면 서로가 날 선 반응을 보일 것이다. 나 역시 아주 심한 층간소음을 겪은 적이 있었는데 나의 이사로 벗어날 수 있었다. 작품에서처럼 소리로 아이들의 건강을 염려하는 사이의 이웃이라면 우리 사회가 한결 밝고 건강하겠다.

 

우리 동네에/ 악어가 나타났다// 엄마가 악어 보러 가자고 한다/ - 싫어, 무섭단 말이야// 엄마가 나를 보며 부드럽게 말한다/ - 이번엔 꼭 너를 구해 줄 거야// 엄마 손에 들려있는/ 악어 수학 학원 광고지// 한 번 맡으면 자녀의 수학 성적/ 게 올려드립니다//

- 악어가 나타났다전문 (46)

 

학원 많이 다니는 걸 좋아할 아이는 없다. 학교만 해도 버거운데 학원까지 가서 학기 싫은 공부에 매여 있어야 하니 아이의 심정도 헤아릴 만하다. 그 무서운 악어 이빨로 성적이 올라갈 때까지 붙들려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 보라. 수학을 정말 싫어했던 내 입장에서도 악어 수학 학원은 피하고 싶다.

 

우리 학교 도서관은/ 규칙이 많아// - 떠들면 안 돼/ - 음식물 가져가면 안 돼/ - 책에 낙서하면 안 돼/ - 장난치면 안 돼// 나만의 규칙을 만들고 싶어// - 수다 떨어도 돼/ - 과자 먹어도 돼/ - 책에 낙서해도 대/ - 숨바꼭질해도 돼// 이런 도서관이면/ 하루에 열 번도 더 가겠다//

- 도서관 규칙전문 (62~ 63)

 

안 되는 게 많던 도서관이 되는 게 많은 도서관으로 변한다면 나도 자주 가고 싶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제약이 많은 도서관이 불편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도서관 규칙 정도는 지켜야 질서가 유지된다는 건 아이들과 대화를 통해서 이해를 시켜야 겠다.

 

 

땀을 뻘뻘 흘리며/ 현수막 줄을 꼭 붙들고 있다//


 무주택자 내 집 마련 마지막 기회!

   

- 착한 가로수전문 (85)

 

무주택자 중 한 사람이라도 더 보라고 양쪽 줄에 묶여서 많이 불편할 텐데도 묵묵히 서 있는 나무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나무의 수고로 누군가는 마지막 기회를 잡을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혼자가 아니야, 택배 반품하는 날, 금붕어 무덤, 말 친구, 다수의 작품에 이웃을 바라보는 우승경 작가의 따스한 시선이 더해졌음을 알 수 있다. 표지 그림의 고양이처럼 등나무 아래서 향기 나는 등나무와 고양이를 읽는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노란 감귤을 까먹으며 아랫목에 앉아 읽는 등나무와 고양이도 겨울을 포근하게 할 만큼 따스하다.

 

 

#등나무와_고양이

#우승경동시집

#초록달팽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짜 집
이은겸 지음 / 감꽃별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진짜 집/ 이은겸/ 감꽃별/ 2024

 

 

우리나라 가구 비율 중에 도시 중심으로 1인 가구가 제일 많다고 들었다. 도시와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시골에도 빈집 아니면 1인 가구다. 집은 사람의 온기로 데워지고 사람의 손길로 집이 살아나기도 하고 스러지기도 한다. 이은겸 작가의 동화 진짜 집에는 집이 없어 노숙자처럼 지낸 할머니와 반지하에 살게 된 이경이네 가족, 궁궐 같이 잘 꾸며 놓고 살지만 자기들 밖에 모르는 큰외삼촌네 가족이 등장한다.

 

3가지 유형의 가족과 집의 형태지만 책을 읽다 보니 집은 좋고 나쁘고, 크고 작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 집에 누가 사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 오순도순 머리 맞대고 작은 거라도 마음 편하게 나눠 먹으며 하하호호 웃음이 퍼지는 집이 진짜 집이라는 걸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진짜 집을 쓴 이은겸 작가는 2009조선일보신춘문예 동시로 등단, 2022아동문예신인문학상 동화로 등단했다. 지은 책으로 동시집 우리 사이는, 억울하겠다, 멍순이, 갑자기 철든 날, 눈치 없는 방귀, 그래서 식구외 다수가 있고 산문집 어른이 읽는 동화, 꽃기린 편지가 있으면 창작동화집으로 203호 아이가 있다. 황금펜아동문학상, 대교눈높이아동문학상, 한국안데르센상, 한국불교아동문학상, 최계락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으로 엄마와 네 명의 자녀가 큰외삼촌이 있는 서울로 이사를 와서 겪게 되는 이야기다. 동화 속에는 혈육보다 못한 비정한 큰외삼촌이 있는가 하면 길에서 만난 말도 못 하고 갈 곳도 없는 할머니를 캄캄한 밤길에 업고 와 가족처럼 같이 사는 마음 여린 엄마가 있다.

 

현관문은 짙은 밤색인데 알루미늄 문이었다. 아래위 반씩 나뉜 문 위쪽은 불투명 유리로 되어 있어서 안팎으로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신발을 벗을 수 있는 좁은 현관을 들어서면 한 평 정도 크기의 거실을 지나 막다른 벽에 한 쪽짜리 싱크대가 보였다 그 오른쪽으로는 욕실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서너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구조였다. 욕실엔 세면대 대신 수도꼭지와 대야가 보였고, 변기는 두 계단을 더 올라가야 앉을 수 있었다. (15)

 

큰외삼촌 집으로 이사를 와 넓은 이층집에 같이 사는 것이 아닌 반지하에 짐을 풀고 발을 들여놓을 때 풍경이다. 사방이 트인 곳에서 살다 온 아이들 반지하는 감옥이나 다름없다. 사람도 동네도 전학한 학교까지 모두 낯선 곳인데 이사라고 온 집부터가 순탄하지 않다. 화장실이 방보다 높이 있는 구조의 반지하 집에 가 본 적이 있어서 동화 속 반지하 집의 모습이 대충 그려진다.

 

, 아침에 정류장에 나갔더니 이 할머니가 앉아 있는 거야. 말을 시켜 보니 말도 못하고, 손짓 발짓으로 여쭤 봤더니 집도 없고, 자식도 없다기에 119에 연락했어. 그런데 조금 전에 버스에서 내리는데 글쎄 정류장에서 또 만났지 뭐니. 어쩌나, 발길이 떨어져야 말이. 보호자가 찾을 수도 있어서 파출소와 주유소에 우리 전화번호 남기고 오느라 늦었어. 어서 가자. 힘들다.” (106)

 

지금은 인식이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혈연으로 묶인 사람들만 가족의 범주 안에 들었다. 동화 속 엄마는 몸이 약하고 이렇다 할 든든한 직업도 없다. 없는 형편인데도 불구하고 집 없는 할머니를 외면하지 못해 약한 몸으로 할머니를 업고 왔다. 어린 시절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학교 가는 우리에게 엄마가 손을 흔들면 우리도 뒤돌아서 손을 흔들고, 창으로 햇살이 들락거리겠지. 빗물에 흙이 튀는 창이 아니라 온갖 하늘이 담기는 창이겠지. 그 어여쁜 창엔 차랑차랑 맑은 노래 담은 모빌을 달아야지. (177)

 

방이 딸린 슈퍼마켓으로 이사가 정해지고 이사 가기 전날 밤 새로 이사 갈 집에 대한 기대로 부풀어 있다. 반지하 집 풍경은 많은 것이 어둡고 무거웠다면 새로 이사 갈 집에 대한 희망을 적은 부분에서는 한결 밝고 가벼운 게 느껴진다. 성실하고 착하게 살면 누가 알아줘도 알아준다는 말이 생각난다. 이사할 때도 원래 기반이 탄탄하면 어디서든 좀 더 빨리 적응하고 더 일어서기도 빠르지만 그런 기반이 없다면 쉽지 않다. 경이 집에도 엄마가 1달 남짓 다닌 슈퍼에서 보여준 성실함이 주인의 눈에 들어와 하나의 기반이 되었다. 믿고 맡길 수 있다는 것. 요즘 사회에서 그것만큼 든든한 것도 없다. 이사할 집에서는 여섯 식구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기를 책을 읽으면서 응원하게 된다. 진짜 집이 생겼으니까.

 

 

 

#진짜_

#이은겸_장편동화

#감꽃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별별 동네 바람동시책 6
이묘신 지음, 전금자 그림 / 천개의바람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별별 동네/ 이묘신 시/ 천개의 바람/ 2024

 

그동안 이사나 이사에 관련된 소소한 시나 동시가 작품으로 많이 발표되었다. 이묘신 작가의 별별 동네는 한 권 전체가 이사와 관련된 작품으로만 엮었다. 이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이사 가서 동네에 적응하고 친구를 사귀는 과정, 동네가 좋아지기 시작한 느낌이 될 때까지의 과정이 마치 한 권의 만화를 읽는 느낌이다. 중간중간 네 컷 짜리 삽화가 읽는 재미를 더한다.

 

이묘신 작가는 2002MBC 창작동화대상 공모에 당선되고, 2005년 푸른문학상 새로운 시인상 및 2019년 제13회 서덕출문학상을 수상했다. 동시집으로 책벌레 공부벌레 일벌레, 너는 1등 하지마, 안이 궁금했을까 밖이 궁금했을까외 다수가 있고, 청소년 시집으로 내 짧은 연애 이야기가 있다. 그림책으로 콩쾅!쿵쾅!, 후루룩후루룩 콩나물죽으로 십 년 버티기외 다수가 있으며, 동화책으로 강아지 시험, 김정희 할머니 길등이 있다.

 

늘어놓은 가구들은/ 방과 거실에 자리 잡고// 늘어놓은 책들도/ 책꽂이에 자리 잡고// 신발들은 신발장에/ 옷들은 옷장에 자리 잡았는데// 아직 내 마음은/ 제자리를 잡지 못했다// 꼬깃꼬깃 접힌 마음/ 어디에도 둘 데가 없다//

- 이사전문 (14)

 

이사한 날의 풍경이 그려진다. 아무리 포장이사를 해도 집주인이, 그 물건을 사용할 사람이 다시 정리를 해야 하는 게 이삿짐 정리다. 당장 이삿날에는 바빠서 정신없다가 그날 밤부터 와닿는 낯선 환경에 잠을 뒤척이게 된다.

 

이사 와서 힘든지 정우가 자꾸 겉도네/엄마가 내 이야기를 한다/ 어쩔 수 없지, 여기도 좋아질 거야/ 아빠는 내 마음을 알기나 할까?/ 아빠도 친구 없이 살아 볼래?/ 아빠가 내 마음을 읽어 주면 좋겠다//

- 은 언제일까전문 34

 

여러 번의 이사를 경험한 나 역시, 아이가 초등학생 때는 학교 때문에 멀리 움직이지는 못하고 학교에 걸어갈 수 있는 곳에서 움직였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몇 달 간격으로 이사를 해야 했을 때도 학교까지 전학하면 더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아서 고민했던 부분이다. 아이 입장에서도 이사 등으로 해서 주변 환경이 급격하게 변할 때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한다. ‘은 부모의 바람이고 아이의 마음을 세세하게 살피는 게 부모로서 할 일이다.

 

, 산책하러 나온 것 뿐인데/ , 할머니에게 인사한 거 뿐인데/ , 심심해서 자꾸만 의자에 간 것 뿐인데/ , 할머니 이야기를 들어준 거 뿐인데// 그러는 사이/ 이 나무 의자가 좋아지고/ 이 동네가 조금 좋아졌다//

- 그러는 사이전문 58

 

 

할머니 친구가 생겼고, 고정으로 앉는 의자도 생겼고 그러다 보니 낯설기만 하던 동네도 조금씩 눈에 익숙해지고 탐험하듯 다니던 동네 구석구석을 눈에 익히고 나면 어디가 맛집인지 어디 놀이터가 괜찮은지 어렴풋이 알게 된다. 그러는 사이 동네에 자신도 조금씩 녹아드는 것이다.

 

이 동네로 이사 온 게 싫었어// 높은 아파트에 살 때는 좋았는데/ (그땐 나무 정수리를 보았지만 아래서 보는 것도 좋아)// 주택은 낮아서 창밖도 잘 안 보이잖아/ (집만 가면 볼 것이 더 많아)// 거기까지는 참을 수 있었는데// 여기 내 친구들도 없잖아/ (이젠 의자 친구, 나이 많은 친구, 또래 친구도 생겼어)// 사실, 지금은 좀 재밌을 것 같아/ 앞으로가 엄청 기대되거든//

- 사실전문 90

 

이묘신 작가는 시인 말에서 30년 살던 단독주택에 살다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고 적으며 처음엔 모든 게 낯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나하나 아파트 화단부터 눈을 맞추기 시작하니 정이 들면서 너와 나가 아닌 우리가 되더라고 적었다. 이사는 대부분 사람이 경험해보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만큼 별별 동네우리같이 읽었으면 좋겠다. 별별 동네가 들려주는 별별 동네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면 책 읽는 독자도 이사를 앞두고 있다면 아이 마음도 좀 더 살필 것이고 이미 이사했다면 이사하던 날이 새록새록 기억날 테고, 이사하고 우리가 된 이웃도 다시 생각할 기회가 될 것이다.

 

#별별 동네

#이묘신동시집

#천개의바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