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에 본 원작 [먼 훗날 우리]와 비교할 수밖에 없다. 원작은 출세를 하여 고향에 떳떳하게 오고 싶어 하는 청춘과 사랑을 쫓아 행복을 바라는 청춘이 만나 친구에서 연인이 되지만, 인연으로 가지는 못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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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우리 버전이 지금 년도에 맞게 좀 더 현실적이라면 원작은 약간 동화 같은 느낌이 있다. 문가영이 처음에 화면에 등장했을 때와 주동우가 화면에 처음 등장했을 때를 비교하면 주동우는 정말 빼빼 말라서 촌에서 갓 올라온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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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비해 문가영은 말랐지만 뭔가 열심히 공들여 만든 몸이라는 게 확 느껴진다. 마른 느낌보다는 늘씬한 느낌이다. 헬스나 필라테스를 거치지 않으면 절대 나올 수 없는 일자 쇄골이 고아 출신에 하루를 허덕이며 보내는 모습과는 좀 괴리가 있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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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에서 헤어지는 결말에 이르게 되는 건 두 사람 모두가 조금씩 어긋나고 삐거덕 거리면서 헤어지지만, 만약에 우리는 구교환이 좀 더 억지스럽게 문가영을 대하는 것처럼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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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마늘통 뚜껑을 따는 장면은 몹시 자연스럽지는 않았다. 연애시대의 은호가 피클병뚜껑 따는 장면을 떠올리면 그 장면이 얼마나 은호의 마음을 대변하는지 알 수 있다. 단지 뒷모습만으로 은호의 모든 마음을 표현했던 손예진에 비해 마늘통뚜껑 버전은 좀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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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여주인공이 우는 장면은 일반인과는 다르다. 일반인이 울면 참 못생겼다. 예쁜 얼굴일 수 없다. 주동우는 그걸 해낸다. 클라이맥스에서 눈물을 주르륵 흘리는 주동우는 진짜 못생겼거든. 근데 또 문가영은 못생겨 보이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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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교환의 장점이자 단점이라면 어떤 역이든 구교환스럽게 할 수 있다는 것인데, 농담하고 장난칠 때는 디피의 호랭이 구교환도 보이고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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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재미없지는 않다. 원작인 [먼 훗날 우리]가 나올 2019년 당시는 코로나 전으로 중국의 거대 자본으로 만든 영화가 판을 칠 때였다. 그 와중에 이렇게 대만 영화는 정체성을 드러내며 조용히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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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 비해 물 올랐던 주동우는 진짜 샤오샤오 같은 몸과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일반인과 거의 비슷한. 무채색 뒤에 어여쁘고 찬란하게 채색되었던 우리의 젊은 시절은 언제나 그렇듯이 아름다웠고 돌아갈 수 없어서 더없이 그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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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서 제작한 그저 그런 상어재난 영화라서 설정도 누구나 다 알 수 있을 정도로 뻔하고 클리셰 범벅인데 희한하게 마지막까지 재미있게 보게 된다. 허리케인이 마을을 덮치고 엉망진창 지옥이 펼쳐지고 마을을 탈출하지 못한 상황에서 식인상어 여러 마리가 사람들을 공격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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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해안 마을에 5급 허리케인이 제방을 무너트려 마을이 순식간에 물에 잠기는데 그때 상어까지 들어온다. 미국 남부는 허리케인의 악몽에서 거의 피하기 힘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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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라 파미가 주연의 [재난, 그 이후]도 예전 카트리나 당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시리즈였다. 재미있다. 당시 미국은 재난자본주의가 강해서 차가 없던 마을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비용과 허리케인이 몰고 간 후 죽음을 치우는 비용을 계산했던 정부의 비리가 들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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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도 시체도 전부 자본의 따짐을 받아야 하는 자본주의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그 시리즈는 그런 깊은 문제를 지니고 있지만 이 영화는 킬링타임용으로 그만이라 생각된다. 영웅서사가 아니다. 한 명의 주인공이 나오지 않아서 더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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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은 악어가 나온 재난 영화 [크롤]과 비슷하지만 카야 스코델라리오의 1인 주인공이 아닌 여러 일반인이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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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삭의 임산부로 마을을 탈출하지 못해서 여러 사람을 고생시키거나 죽음에 이르게 한 고구마 캐릭터 리사 필즈, 부모님을 잃고 은둔 생활을 하다가 목숨을 걸고 임산부 리사를 구하는 다코타 루이스, 다코타의 삼촌으로 상어를 연구하다 조카가 마을에 갇힌 걸 알고 구하러 가는 해양생물학 박사인 데일 에드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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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영화에서 조연 같은 주연들이 있는데 위탁가정에서 학대받으며 지내는 세 남매가 있다. 서로 피로 이어진 형제는 아니지만 못된 위탁가정의 아버지 밑에서 겨우 먹을 걸 얻어먹으며 지내다가 상어로 인해 세 명이 더 끈끈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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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위탁부모로 나오는 빌런인 빌리 올슨은 결국 그 상황에서도 아이들을 괴롭히다 상어의 밥이 되는 모습이 잔인하게 나온다. 이 영화는 어어 하며 다음 장면을 연상하면 그대로 이어지는 맛으로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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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이 강한 만삭 캐릭터가 여러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해서 사람들은 싫다지만 덕분에 상어재난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재미를 볼 수 있다. [크롤]보다 더 잔인한 장면이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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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람들이 다 싫어하는 임산부가 물속에서 산통 후에 아기를 낳고 그 아기를 지키는 장면도 그래픽이지만 괜찮았다. 모든 사람들이 재미없다고 하는데 나는 이상하게 재미있게 봤다. 끝까지 몰입해서 볼 정도로 속도가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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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6-13 12: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이상하게~~ 재미있어요. ㅎㅎ

교관 2026-06-14 11:57   좋아요 0 | URL
오 동지 한 분 생김 ㅋㅋㅋ!
 


74년 영화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재미있다. 긴 러닝타임을 굉장한 굴곡 없이도 몰입하게 만든다. 마쓰모토 세이조의 원작 [모래그릇]은 드라마와 영화로 여러 편 만들어졌다. 이 영화는 74년에 노무라 요시타로 감독이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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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메시지가 파도처럼 드러나지 않지만 빠른 전개와 깊은 호흡, 영화 내내 흐르는 음악과 두 배우의 연기. 여름의 끈적함이 두 형사의 수사를 방해하지만 일본 전역을 돌아다니며 수사를 하는 집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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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반을 넘어 후반 40분부터 클라이맥스가 이어지기에 재미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클래식 숙명이 흐르고 나병 환자 아버지와 9살 아들의 절절한 여정이 2년 동안 이어진다. 부자를 통해 사계절을 담은 영상미가 비장하게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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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의 터질듯한 장면과 클래식 숙명의 만남. 나병에 시달리는 아버지와 어린 아들의 여정이 범인이 누구일까 하는 방향이 아닌, 왜 범행을 저질렀을까 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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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의 연기가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든다. 휴가까지 반납하고 사비로 출장까지 가서 수사하는 반타테츠로, 그런 선배를 따라다니며 사냥개 같은 집념을 보이는 모리타켄사쿠, 나병 아버지와 사계절 일본을 2년 동안 떠돌다 경찰에게 입양되어 지내다 주인 부부가 죽자 호적을 갈아버리고 미국 유학 후 지휘자가 된 가토고우 등 건널목에서 쓰러져 유산해 사망한 리에 짱 등 연기에서 눈을 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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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을 보면 도쿄역 차량기지 선로에서 돌로 얼굴이 짓뭉개진 60대 신원불명의 변사체가 발견된다. 경찰은 즉각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현장에서 발견된 술집 상호가 인쇄된 성냥갑을 단서로 탐문 수사를 시작한다. 그리고 술집 여종업원으로부터 피해자와 어떤 젊은 남자가 방문했고 그들로부터 언뜻 [가메다]라는 말을 했다는 증언을 듣게 되지만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수사는 미궁으로 빠져들어 수사본부를 해체하고 일반 사건으로 전환하지만 두 형사는 끈질기게 사건을 추적한다. 그러다 마침내 유명 지휘자의 과거와 연결되고, 단순한 살인사건을 넘어 사회적 편견과 인간의 숙명에 대한 이야기가 숨어 있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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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두 형사가 일본의 전역을 누비며 수사를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게 크게 극적이지 않지만, 당시 일본의 시대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에어컨이 없던 시절 모두가 부채질해 가며 그 끈적거림을 이겨내며 수사를 하는 모습은 기묘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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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만큼 뛰어난 음악이 영화 내내 나오다가 후반 40분은 휘몰아친다. 마지막 40분은 영화의 [왜?]를 설명하는 구간으로 오직 영상과 음악으로만 그 비극성을 보여준다. 클래식 [숙명]이 왜 연주되는지 알게 된다. 아버지와 아들의 숙명은 영원한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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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런 모습으로 태어난 것도 숙명이고, 저렇게 멋진 아버지가 아닌 지금의 아버지와 연결된 것 역시 숙명이라 원하지 않던 숙명을 짊어진 나의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나의 숙명을 죄로 보는 사회적 편견을 어떻게 견뎌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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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인 노무라 요시타로는 일본 범죄영화의 귀재로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제자로 조감독으로 영화를 시작했다. 젊은 사냥개 형사 요시무라로 나온 모리타 켄사쿠는 나의 쓰레기 아저씨의 김석훈과 아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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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영화의 바이블이라 일컫는 이 영화는 몇 년에 한 번은 다시 보게 된다. 이 세상에는 그런 영화가 있고 그런 영화에 블랙 호크 다운은 꼭 들어간다. 간단하게 끝날 작전이었는데, 블랙 호크가 추락하면서 시작된 악몽이 24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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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주는 시각적 고통을 있는 대로 보여준다. 거기에 영화 음악을 거의 소거하고 쇠 갈리는 소리와 총소리가 전쟁의 한 복판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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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져 나가는 전우의 복부와 하반신을 보며 정신을 부여잡지 않으면 총알이 머리에 박힌다. 총소리에 고막이 나가 아무것도 들리지 않지만 작전을 수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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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이 지옥도를 보여주면서 헬기가 푸르른 인도양 바다 위를 비행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를 건너 전쟁 속으로 가기 때문에 그 장면이 굉장한 질감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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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이 멋지군요, 물은 어때요?

따뜻하긴 하지만 상어들이 우글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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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에는 눈으로 보이는 것과 실제는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인 우리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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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들리 스콧 감독과 제작자인 제리 부룩 하이머는 영상미를 살리는 대신 다큐처럼 현실감을 살렸다. 시가지 전투는 할 말을 잊게 만든다. 영화는 모가디슈 실화가 바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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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유엔인 미국에 대규모 파병을 요청했다. 1993년 미국은 2만 명의 해병대를 투입했다. 이후 구호 식량 배급과 내전 사태 진정으로 어느 정도 해결을 하고 미 해병은 임수 완수 후 철수한다. 그러나 철수하자마자 곧바로 소말리아 민병대, 아이디드가 집권하려고 유엔의 식량과 물자를 독차지하며 소말리아 모가디슈는 지옥으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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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은 다시 최정예부대를 파견한다. 이 영화를 다시 보면 이전에 봤을 때와는 다르게 보인다. 전쟁 중인 현실의 미군이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많이 다르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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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장군은 명령을 내린다. 사망한 전우도 부상당한 전우도 한 명도 놓치지 말고 빠짐없이 데리고 귀환하라. 이 한 마디는 가슴을 울린다. 전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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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원은 같은 놈은 전우를 폭탄조끼를 입혀 폭침하려는 문서도 나온 것을 생각하면 기분이 아주 별로다. 엄청난 배우들이 대거 등장해서 전쟁을 하는 이유는 전우 때문이라는 대사를 짤막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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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멋진 영화를 만들었지만 너무 현실적이어서 당시에는 전쟁을 오락적인 요소로 사용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25년이 지났지만 지금 봐도 입이 떡 벌어질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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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이’가 하는 이런 여행은 정말 판타지에 가깝다. 눈 덮인 공간의 작은 민박촌에서 주인과 함께 한 방에서 잠을 자며 자연을 느끼는 여행. 자연은 인간이 싫어 추위를 자꾸 불어넣지만, 이상하게 따뜻함이 드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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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잔잔함과 아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일본 영화에서 심은경의 내레이션이 조금 어울리지 않지만 이질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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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이]는 말이라는 틀에 갇혀 있다가 도망을 치듯 말이 없는 자연 속으로 여행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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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생활하다 보면 그런 생각을 한다. 사람들의 말을 따라가기 힘들다. 사람들이 말할 때마다 그 말에 쫓기는 기분이다. 그래서 가끔 너는 왜 그러냐는 말을 듣는다. 세상에는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과 말을 잘하는 사람은 많다. 나 역시 제대로 말을 하고 싶다. 말을 잘하기 위해 조금 생각의 시간을 가지면 사람들은 금세 가버리고 만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하는 말을 잘 알아듣고 싶다. 눈물이 흐를 때 왜 눈물이 나오는지 제대로 말하고 싶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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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주인공 [이]는 설산의 어둠과 고요 속에서 보낸 시간을 몹시 즐거웠다고 한다. 이런 즐거움은 오래만이에요. 그 덕에 [이]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서 사람들의 말을 듣고 글을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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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면 '소음'만 기생한다. 그러나 [이]가 무작정 떠난 여행 속 설산에는 '소리'가 가득하다. 여백을 느끼는 여행은 이제 판타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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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가방 메고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없다. 계획을 짜지 않고, 미리 짐꾸러미를 챙기지 않는 여행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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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죽음을 삶의 한 부분으로 느끼며, 몹시 우울한 물고기의 이미지는 겨울에서 하얀 설원의 동화 같은 모습이 된다. 이런 모습은 심은경이 일본어로 대사를 하고 한국어로 내레이션을 하는 모습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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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심은경이 일본어로 말할 때와 한국어로 말할 때 “같은 사람이지만 다른 면을 보는 느낌”라고 말했다. 내 삶이 판타지가 되면 악마와 천사는 서로 오고 가는 사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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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영화가 우리나라 집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집이란 무엇인가. 오래된 맨션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딱 이런 느낌이 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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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경은 이런 스타일과 이런 헤어스타일로 꾸준하게 영화와 드라마에 나온다. 이제 심은경이 이런 스타일에서 언제 벗어날까 궁금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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