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년 영화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재미있다. 긴 러닝타임을 굉장한 굴곡 없이도 몰입하게 만든다. 마쓰모토 세이조의 원작 [모래그릇]은 드라마와 영화로 여러 편 만들어졌다. 이 영화는 74년에 노무라 요시타로 감독이 연출했다.
강렬한 메시지가 파도처럼 드러나지 않지만 빠른 전개와 깊은 호흡, 영화 내내 흐르는 음악과 두 배우의 연기. 여름의 끈적함이 두 형사의 수사를 방해하지만 일본 전역을 돌아다니며 수사를 하는 집요함.
중반을 넘어 후반 40분부터 클라이맥스가 이어지기에 재미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클래식 숙명이 흐르고 나병 환자 아버지와 9살 아들의 절절한 여정이 2년 동안 이어진다. 부자를 통해 사계절을 담은 영상미가 비장하게 흐른다.
후반의 터질듯한 장면과 클래식 숙명의 만남. 나병에 시달리는 아버지와 어린 아들의 여정이 범인이 누구일까 하는 방향이 아닌, 왜 범행을 저질렀을까 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배우들의 연기가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든다. 휴가까지 반납하고 사비로 출장까지 가서 수사하는 반타테츠로, 그런 선배를 따라다니며 사냥개 같은 집념을 보이는 모리타켄사쿠, 나병 아버지와 사계절 일본을 2년 동안 떠돌다 경찰에게 입양되어 지내다 주인 부부가 죽자 호적을 갈아버리고 미국 유학 후 지휘자가 된 가토고우 등 건널목에서 쓰러져 유산해 사망한 리에 짱 등 연기에서 눈을 뗄 수 없다.
시놉을 보면 도쿄역 차량기지 선로에서 돌로 얼굴이 짓뭉개진 60대 신원불명의 변사체가 발견된다. 경찰은 즉각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현장에서 발견된 술집 상호가 인쇄된 성냥갑을 단서로 탐문 수사를 시작한다. 그리고 술집 여종업원으로부터 피해자와 어떤 젊은 남자가 방문했고 그들로부터 언뜻 [가메다]라는 말을 했다는 증언을 듣게 되지만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수사는 미궁으로 빠져들어 수사본부를 해체하고 일반 사건으로 전환하지만 두 형사는 끈질기게 사건을 추적한다. 그러다 마침내 유명 지휘자의 과거와 연결되고, 단순한 살인사건을 넘어 사회적 편견과 인간의 숙명에 대한 이야기가 숨어 있음을 알게 된다.
영화는 두 형사가 일본의 전역을 누비며 수사를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게 크게 극적이지 않지만, 당시 일본의 시대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에어컨이 없던 시절 모두가 부채질해 가며 그 끈적거림을 이겨내며 수사를 하는 모습은 기묘하기만 하다.
영화만큼 뛰어난 음악이 영화 내내 나오다가 후반 40분은 휘몰아친다. 마지막 40분은 영화의 [왜?]를 설명하는 구간으로 오직 영상과 음악으로만 그 비극성을 보여준다. 클래식 [숙명]이 왜 연주되는지 알게 된다. 아버지와 아들의 숙명은 영원한 것이기에.
내가 이런 모습으로 태어난 것도 숙명이고, 저렇게 멋진 아버지가 아닌 지금의 아버지와 연결된 것 역시 숙명이라 원하지 않던 숙명을 짊어진 나의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나의 숙명을 죄로 보는 사회적 편견을 어떻게 견뎌야 하나.
감독인 노무라 요시타로는 일본 범죄영화의 귀재로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제자로 조감독으로 영화를 시작했다. 젊은 사냥개 형사 요시무라로 나온 모리타 켄사쿠는 나의 쓰레기 아저씨의 김석훈과 아주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