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도메스틱은 2018년에 나온 1998년 같은 영화다. 도메스틱은 지구가 망하고 난 후에 살아남은 자들이 생존하는 투쟁기다. 이런 클리셰의 영화는 차고 넘쳐난다. 좀비로 인해서, 괴식물에 의해서, 태양이 망가져서, 행성이 떨어지거나 전쟁 또는 질병 내지는 AI와의 전투 등으로 지구가 멸망하는 영화는 끝없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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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망해야 하는 이유는 새고 샜다. 하지만 망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몇 가지 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 몇 가지 안 되는 이유 때문에 삶을 유지하고 보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매일 조깅을 하지만 조깅을 그만둬야 할 이유는 천지다. 하지만 조깅을 매일 꾸준하게 해야 하는 이유는 한두 가지 정도 밖에 없지만 그 한두 가지의 이유가 나를 매일 조깅하게 만드는 것 같다
.

실패한 영화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뉘는데, 졸작이 있고 망작 그리고 괴작으로 나누는데, 더 도메스틱은 망작에 가깝다. 졸작은 그나마 나은 것이지만 그렇다고 괴작까지는 아니다. 그 이유는 마지막에 말하도록 하자. 더 도메스틱은 미국 정부에서 아! 인간이 싫어!라며 영화 초반 미국 초등학교 아이들이 수업을 마치고 야호 하며 나오는 장면에 하늘을 가득 뒤덮는 대공 수송기들이 검은 독가스를 뿌리면서 인류를 멸망시킨다. 그러면서 독가스에도 살아남은 사람들이 죽기 살기로 생존해야만 하는 이야기다. 그 중심에 남녀 주인공, 니나와 마크가 니나의 부모님이 있는 곳으로 가면서 사람을 사냥하는 갬블러들을 피해서 가는 생존기이다
.

니나로 나오는 케이트 보스워스는 언젠가부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빠져 버렸다. 대부분의 영화에 죽 주연으로 나오고 있지만 딱히 떠오르는 영화가 없다. 슈퍼맨의 연인으로 나왔었고, 우리들에게는 장동건의 연인으로도 나온 액션 닌자형 판타지 영화 워리어스 웨이로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더 도메스틱에서 케이트 보스워스, 니나는 저 코리아가 새겨진 잠바를 죽어라 입고 있다. 심지어는 빌런들에게 잠바를 빼앗겼지만 총을 들고 씨발 빨리 잠바 내놔 하며 다시 입을 정도로 저 잠바에 집착을 보인다. 저 코리아 잠바가 뭐라고. 니나는 소극적이고 빌런들을 무서워하고 총을 잘 못 쏘는데, 영화 후반으로 갈수록 갑자기, 느닷없이(맥주를 마시며 하드록에 몸을 흔들고 난 후 신기가 들렸는지) 미군처럼 총을 쏘며 자세까지 군인처럼 확실한 걸음걸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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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는 왜 독가스를 뿌렸는지, 영화 속 살아남은 자들도 관객도 모른다. 아마도 이 부분은 상상에 맡기려는 거 같은데 너무 개연성이 없다. 이유도 모르고 지구가 회색빛으로 망해버린 이야기는 비고 모텐슨과 샤를리즈 테론의 ‘더 로드’가 있다. 해가 없고 아들과 함께 생존해가는 이야긴데, 코맥 맥카시의 소설만큼 깊이 있지는 않았지만 인간이 가장 밑바닥에 깔렸을 때 무엇을 중심으로 생존해야 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영화였다. 아들과 아버지는 신발을 구하는 것과 우리 이외의 인간을 피해 다니는 것이 맹점이다. 단백질 보충을 위해 인간은 인육을 먹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지구가 왜 멸망했는지 나오지 않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그 이유에 접근할 할 수 없을 만큼 생존기에 흡입된다
.

하지만 도메스틱은 살아남은 사람도 많다. 집들도 꽤 멀쩡하다. 볕이 든 집 앞에서 서로 이야기를 할 때는 너무 평온해 보여서 그 장면만 보는 사람이라면 휴먼 드라마라고 해도 믿을 법하다. 이 엄중하고, 살벌하고, 여기서도 갬블러들은 사람을 사냥하여 고기로 먹는 이 와중에 서로들 모이면 커피 잔을 들고 커피를 마시며 살아남았구나, 같은 이야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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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식량부족의 시대에 커피라니, 그것도 우아하게 커피 잔에. 그럴 수 있다고 치자. 영화 속에는 뚱뚱한 사람들이 많다. 독가스 살포 후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만약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다면 살이 찐 사람들이 남아 있을 수 있지만 시간이 몇 년 지난 다음이라면 절대 식량 부족인 시점에서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니나와 마크가 한 집에서 식사를 하는 장면에서 대화를 하는데, 우리가 먹은 맛있는 고기는 소입니까?
소? 가축을 본지 얼마나 됐나? 새나 고양이 개를 본 적이 있는가. 동물은 이 세계에서 소멸했다고 말하는 대화가 나오는데 그러면서 우리가 먹은 고기는 인육이라고 말을 한다. 마크는 그 이야기를 듣고 바로 구토를 한다. 그게 인간이라면 뇌가 반응하는 대로 하는 행동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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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영화 속 독가스는 인간보다는 동물들에게 더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바로 소멸했거나 아니면 살아남은 동물일지라도 독가스를 마셨기에 남은 인간들이 그 고기를 먹지는 않았을 것이다. 영화 속 뚱뚱한 사람들은 그 몸을 유지하기 위해 인육을 맛있게도 마음껏 먹었다는 것인데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에서도 거티스는 열차 마지막 칸에서 식량이 극도로 부족해서 아기를 먹는 장면을 말하는데 고통과 윤리적 죄책감에 울면서 말을 한다. 남한산성을 읽어보면 전쟁 중에 먹을 것이 절대 부족하여 길거리에 죽은 사람에게 눈을 돌리는데 그때는 이미 인간은 인간이라는 그 의미에서 벗어나야 했다. 배고픔을 이길 수 없기에 인육을 먹으나 평소처럼 사고하고 생각하며 행동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도매스틱의 뚱뚱한 사람들은 그저 평소의 거친 사람들이다. 인육을 먹어가며 그 몸을 유지하면서 평소처럼 지내기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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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로드에서 바짝 마른 코디 스밋 맥피의 모습과 더 바짝 말라버린 비고 모텐슨이 어렵게 콜라 캔을 하나 발견하여 마시는 장면을 떠올려보면 도메스틱의 설정이 얼마나 대충대충인지 알 수 있다. 갬블러들에게 잡혔다가 다 죽이고 탈출한 킬러 같은 것으로 나오는 소노야 미즈노는 매력적으로 나오는 것 같은데, 없어도 될 캐릭터다. 나와서 갬블러들에게 총을 쏘아대는 것 까지는 좋은데 니나가 버린 반지를 찾아서 마크에게 주다가 머리가 뚫려 죽는다. 이 무슨. 소노야 미즈노는 엑스 마키나에 나왔던 그녀로 이 신비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는 도매스틱에서는 오갈 때 없는 하나의 소품으로 전락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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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와 마크가 한 가정에서 식사를 할 때 그 집의 12살 정도 된 아들이, 갬블러들이 칼에 찔려 죽은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다. 가슴 밑으로 칼에 팍팍 찔려 죽은 장면을 말한다. 난도질이 일정하지 않고 키가 작은 사람, 즉 어린아이가 한 것이라는 말을 하며 영화는 끝으로 갔을 때 핏빛 가득한 조그만 발자국과 니나와 마크가 지켜주었던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있는데 손과 발에 피가 잔뜩 묻어 있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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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은 많은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괴작이 되기 직전에 멈추게 한 장면이었다. 무라카미 류의 ‘희망의 나라로 엑소더스’라는 소설이 있는데 그 소설을 읽어보면 그동안 전 세계를 두렵게 했던 IS 테러범들이 어린아이들을 훈련시켜 살인을 하는 모습이 잘 나와있다. 이 책은 2000년도에 나왔으니 그때는 IS 테러범이라는 말이 있기 전 테러범들이 있었다. 무라카미 류는 3년 동안 취재를 하여 이 소설을 적었는데 읽으면서 아아 굉장하다,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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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잔인하다. 아이는 순수하고 천진난만하기에 살인을 하나의 놀이로 인지를 한다. 사람이 피를 토하며 죽는 모습을 어른처럼 한 번 걸러서 생각하며 눈으로 보지 않는다. 그저 재미로 느껴지면 정확하게 그 일을 한다. 그것에 어떠한 도덕적 죄책감이나 수치심 내지는 감정의 변이를 일으키지 않는다. 테러범들은 그 사실을 잘 알기에 아이들을 잡아서 훈련을 시킨다. 무엇을? 총의 무게를 이겨내는 훈련을 시킬 뿐이다. 그러면 정확하게 목표물에게 접근하여 적확하게 살인을 한다. 하나의 놀이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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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나라로 엑소더스를 읽으면 놀라게 되는 것이 20년 후의 이야기, 즉 작금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변이나 일들이 그 소설에서는 고스란히 말하고 있다. 희망의 나라로 엑소더스는 반드시 영화로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전혀 기미가 없는 것이 이상하다. 더불어 ‘코인 로커 베이비’도 영화로 나올 것 같은데, 같은데 하면서 나오지 않는다. 아무튼 도메스틱의 마지막 장면은 이런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면서 괴작으로 가지 않고 망작에서 끝날 수 있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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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헌터 2:요괴 사냥단은 인디아나 존스의 추격신과 이티의 그 장면, 드레곤 길들이기 외 많은 모험 판타지 영화의 장면이 아주 골고루 섞여 있는 영화다. 그것이 좋다 나쁘다,로 꼭 집어서 말할 수는 없다. 인간은 기억에 의존을 하고, 기억이란 축소되거나 확대되거나 왜곡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이런 장면에서 지난 기억을 떠올렸을 때 단순히 기억을 하는 사람이 있고, 마음의 추억이 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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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헌터:요괴 사냥단은 1편에서 우바와 헤어진 샤오란과 천음이 우바를 잊지 못하고 찾아가는 내용에 반가운 양조위, 도박범 투스꾼이 등장하면서 우바를 둘러싸고 벌이는 한바탕 농담 같은 이야기다. 영화 초반에는 역시 반가운 오군여와 증지위가 잠깐 등장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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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서 이미 우바의 귀여움과 표정에 빠져버린 사람들은 이제나저제나 2편이 나오기만을 기다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바의 캐릭터는 아시아 영화권에서는 드물게 사랑스러운 스크린 캐릭터를 완성해냈다. 1편에서 끝내면 안 되는 것이다. 이 우바라는 하나의 아기 몬스터 캐릭터를 만들어내기까지는 어마어마한 수고와 고생이 뒤따른다. 우바는 인간으로 치면 2살에서 2살 반 정도의 아기이다. 그러다 보니 2살 반짜리의 아기의 표정과 말투와 걸음걸이를 캐릭터에 넣어야 했다. 우바는 무(우)처럼 보여서 친밀감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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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서 우여곡절 끝에 샤오란과 천음은 부부가 되고 우여곡절 끝에 우바와 만나고 인간계에 몬스터가 있으면 안 된다고 해서 우여곡절 끝에 헤어지면서 끝난다. 그리고 2년 만에 2편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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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적으로는 소포모어 징크스를 깨지 못했지만 1편보다 우바의 표정과 동작이 훨씬 다양해졌다. 짜증이 난다는 사람이 있지만 마음을 넓게 가져보자. 영화는 심각하지 않다. 인간계와 요괴계 사이를 오고 가는 요괴들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양조위의 코믹한 연기를 볼 수 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가 가볍고 난해하지 않다. 뮤지컬 같은 음악 연출이 있고, 음악은 중국풍과 현대풍이 가미되었다. 게다가 영화의 배경과 세트가 화려하고 색채가 아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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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투스꾼이 사기도박으로 사람들에게 쫓겨 풍선에서 잠이 들 때 우바와 다른 요괴에게 이불을 덮어준다. 언젠가부터 영화 속 장면에 이불을 덮어주는 모습이 나오면 나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이불을 덮어준다는 건 친밀한 관계거나 친밀할 관계이거나, 친밀했던 관계가 어떠한 일로 같이 밤을 보내게 되었을 때 우리는 이불을 덮어준다. 이불을 덮어 준다는 건 그만큼 친밀한 사람이 곁에 있다는 말이다. 집에 있는 강아지와 한 침대에서 잠을 들 때에도 우리는 가끔 이불을 덮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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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제외한 이종은 대체로 이불 따위는 필요 없이 잠을 자는 존재로 영화에 많이 등장한다. 전 세계가 이티에게 열광했던 건 엘리엇과 거티가 이티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자신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아낌없이 보여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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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이종은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존재이지만 그들은 현실의 소수민과도 비슷하다. 일본의 다큐멘터리영화 카운터스를 보면 일본의 수많은 우익들은 일본에 있는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범죄의 온상이고 여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악으로 나온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나라에 있는 소수민들에게 똑같은 잣대로 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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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이종에게 이불을 덮어주는 건, 영화 속에서 엄마가 딸에게, 또는 친구가 친구에게, 애인이 애인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이불을 덮어주는 친밀감 그 위의 친밀감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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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우바는 인간의 엄마, 아빠인 샤오란과 천음과 다시 만나고 같이 지내게 된다. 개인적으로 스타더스트나 말레피센트(너무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 같은 영화가 좋아서 그런지 우바의 이야기 같은 영화가 계속 나왔으면 한다. 중국은 자본의 나라이기 때문에 아마도 지속적으로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리뷰가 이불 얘기만 하다가 끝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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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몇 년 동안 온갖 지구의 재난 속을 뛰어다니며 해결하느라 이젠 자신 자체가 재난이 되어서 나타난 영화가 스카이 스크래퍼다. 드웨인 존슨는 할리우드 최고의 몸값 배우 답게 지구가 반으로 갈라지는 현장을 뛰어다녔고, 괴물 악어와 괴물 늑대 사이를 누비며 때려잡았고, 게임과 같은 밀림 속으로 들어갔고, 좀비 자동차들과도 싸워왔다. 드웨인 존슨은 센안드레아스 제작진과의 끈끈한 관계가 있기에 앞으로도 갈라지고 찢어지고 구멍 나는 지구를 구하는데 계속 등장할 것이다
.

드웨인 존슨은 참 매력적인 배우다. 거대한 몸과 굵은 목소리, 지치지 않는 체력, 실룩 거리는 미소, 깊이 있는 연기와는 거리가 먼
근육질은 드웨인 존슨에게 바라는 바가 확실하다. 이 터질듯한 근육질의 몸은 어벤져스의 타노스와도 붙어도 이길 것만 같은 환상을 준다
.

이제 지칠 때도 되지 않았나, 하는 사람이 있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드웨인 존슨은 장동건, 배용준, 서태지와 동갑이다. 아직 톰 크루저가 비행기에 매달리고 건물과 건물을 뛰어다니고 있기에 지치기에는 아직 멀었다. 재난 영화는 꾸준히 나올 것이고 드웨인 존슨을 대처할 만한 배우도 없다. 브루스 윌리스는 늙었지, 탐 크루저는 미션임파서블 시리즈에 매달리지, 제이슨 스타뎀은 대형 상어와 놀고 있지. 대체 배우도 없을뿐더러 더 락 시절부터 좋아했던 사람들은 드웨인 존슨이 스크린에 나오면 아낌없이 보러 가서 주머니를 열었다
.

액션이라는 것에 사람들의 눈높이는 굉장히 높아졌다.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슈퍼히어로들의 전두엽과 두정엽을 강타하는 액션부터, 본 시리즈의 리얼리티 액션과 아시아에서는 견자단의 발 차기, 이전으로 올라가면 재키 챈과 브루스 리의 액션을 끊임없이 사랑해왔다. 그러다 보니 이번에는 건물과 마주한 기이한 액션을 한다. 건물 액션 영화 하면 아무래도 다이하드가 떠오른다. 하지만 두 영화를 비교할 순 없다. 왜냐하면 스카이 스크래퍼는 영화 적으로는 형편없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

다이하드에서의 긴장감과 적절한 타이밍에 긴장을 느슨하게 하는 존 맥클레인의 유머와 이젠 다신 볼 수 없는 앨런 릭먼의 차분한 빌런까지. 다이하드는 골 때리는 형사 존 맥클레인이 몸을 사리지 않는 부분은 드웨인 존슨의 스카이 스크래퍼와는 비교가 되지만 영화 자체는 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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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스크래퍼는 세상에서 제일 높은 빌딩에서 화재가 발생해서 그 안에 있는 주인공 윌 소여의 가족이 갇히게 되어 구해내는 내용이다. 세상에서 주목받는 가장 큰 빌딩에서 화재가 발생했는데 불을 끄려고 나타나는 소방차나 소방헬기나 뭐 그런 것이 없고, 홍콩 시민들은 유튜브처럼 실시간 방송되는 윌 소여의 건물 활극에 입을 막거나 살아남으면 박수를 치고, 홍콩 특수경찰들은 말도 안 되게 무능하고, 화재 속에서 살아 나온 윌 소여의 아내와 어린 아들을 병원으로 바로 옮기지도 않고 홍콩 특수 경찰들과 함께 현장으로 투입을 하는 등 설정과 개연성으로는 엉망이지만 싹 소거하고 보면 인간이 할 수 없는 환상적인 능력과 현실세계에서 초현실 세계의 느낌을 받을 수 있는, 팝콘무비로 본다면 괜찮은 영화다. 왜냐하면 드웨인 존슨이니까
.

12세 관람가로 온 가족이 볼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의 액션이다. 피가 튀긴다거나 총알이 머리를 박살 내는 장면은 당연하지만 없다. 그래서 자칫 아빠가 아들이나 딸을 데리고 이 영화를 봤다가 잘못하면 낭패를 볼 수도 있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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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 ‘고난과 역경’이라는 단말마와 흡사한 언어가 지구에 나타나고 난 이후에 정말 고난과 역경이 무엇인지, 고난과 역경이라는 말을 갖다 붙이자면 바로 여기에 붙여야 한다. 드웨인 존슨은 언제나 고난과 역경이다. 이 영화에서는 윌 소여니까 윌 소여는 영화 초반부터 고난과 역경이다. 특수부대 출신의 FBI였던 윌 소여는 폭탄을 몸에 두른 가정폭력범을 저지하지 못해 폭탄이 터지는 바람에 한쪽 다리를 잃는다. 하지만 병원에서 자신의 주치의였던 사라 소여를 만나 결혼하여 깨물어도 아플 것 같지 않은 너무나 귀여운 아들, 딸을 두고 행복한 생활은 2분 동안 되다가 이후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다
.

만약, 정말 만약에 영화 속 삶이 현실이라면 마지막에 주어지는 보상과 행복이 뒤따른다 할지라도 이 엄청난 고난과 역경은 거절하고 싶다. 윌 소여는 친한 친구의 죽음을 보고, 신체 어딘가 찢기도, 어깨에 긴 유리 파편 같은 것이 박히고, 이것만 해도 고난과 역경인데 고통스럽게 또 손으로 그걸 잡아 뺀다. 그러면서 세상에서 제일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타워 크레인을 타고 말이다. 고난과 역경의 연속 또 연속이다. 이래저래 해서 타워 크레인에서 불이 활활 타는 빌딩으로 건너 뛰는 것 역시 고난과 역경이다. 떨어질 법 한데 아슬하게 매달려 있고 홍콩 시민들은 고개를 꺾어 그저 윌 소여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폰으로 촬영하기 바쁘다. 이것 또한 고난과 역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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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로 진입을 한 후에는 대형 풍력 터빈의 프로펠러 사이를 통과해야 하며 불구덩이 사이를 뚫고 다리를 만들어 건너고 빌런들과 총격전도 벌이고 딸도 빼앗긴다. 하지만 이 무수한 고난과 역경을 뚫고 윌 소여는 딸을 구해내서 무사히 빌딩을 내려와 가족과 재회를 한다. 캡처에서처럼 무능한 홍콩 경찰은 윌 소여의 가족에게 대단한 가족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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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대단한 가족이다. 영화는 윌 소여의 가족사랑을 보여준다. 영화 초반부터 윌 소여는 아들과 딸에게 너희를 사랑하는 아빠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리고 가족에게 고난과 역경이 닥쳤을 때 아빠는 모든 것을 던지고, 다리가 한 쪽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위해서 고난과 역경을 헤쳐서 이겨낸다. 아들과 딸은 이런 아빠를 두어서 정말 든든하고 행복할 것이다. 모든 아빠가 윌 소여 같지는 않을 것이지만 만약 윌 소여의 아들, 딸과 비슷한 나이의 아이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우리 아빠도 윌 소여 같을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아빠는 아이들의 영웅이니까
.

쫄쫄이 메리야스 슈퍼영웅이 빌런과 결투를 벌이지만 우리는 어쩌면 드웨인 존슨처럼 인간 히어로를 바라고 있기에 앞으로도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드웨인 표 재난 액션 영화는 죽 나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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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에 대한 이야기와 감독 박훈정에 대한 이야기는 지난번에 했기에 언급하지 않고, 불안적 요소를 소거하고 보면 마녀는 빠져들기에 충분한 영화다. 대체로 마녀를 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액션이 신선해서 기억에 남는다고 하는데 나는 이 장면, 닥터 백과 기억이 돌아온 자윤이 투명한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대치를 하는 장면이 가장 전율이 돋고 몰입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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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각성을 통해 닥터 백이 자신을 찾게 끔 지금까지 이 모든 걸 자윤이 계획한 것이고, 닥터 백은 자신이 그동안 자윤을 찾으려 했다는 것에 대한 생각이 오류였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는 장면이다. 모니터로 지켜보던 귀공자 역시 이 전부가 자윤이 이렇게 하게끔 만들었다는 것에서 오는 두려움과 분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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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2분이 조금 넘는 대치 장면은 천천히 흘러가며 자윤과 닥터 백의 얼굴을 보여주고 서서히 두 사람의 거리가 좁혀진다. 여기서 몰입도를 끌어올리는 것이 모그의 음악이다. 지하세계의 하얀 어둠 속을 걷는 듯한, 진공의 세계 같은 모호하고 정의할 수 없는 음악
.

하얀 눈이 내려앉아 모든 세상을 덮어서 순백의 세계를 만들었다. 새도, 벌레도, 스널프도 보이지 않았다. 생명체의 움직임과 온기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새하얀 백색의 설원만이 가득한 세계. 순수하지만 생명은 보이지 않는 세계가 펼쳐진다. 눈길에 발자국을 내고 걷다 보면 언젠가는 지쳐 눈밭에 무릎을 꿇고 지나온 발자국은 내리는 눈이 꼼꼼하게 덮어버린다. 무릎을 꿇어 버리고 나면 더 이상 일어서는 건 무리다. 그대로 쓰러져 내리는 눈의 무게에 깔려 고요하게 숨을 거두는 장소. 그 장소는 아름답지만 생명을 앗아가는 잔인한 세계의 느낌이 이 장면에 흐르는 모그의 음악이었다. 이 장면에서 모그의 음악을 듣고 떠올린 세계는 무섭도록 차갑고 뜨거운 세계의 교차가 느껴졌다
.

특히 자윤이 유리벽으로 다가가서 총으로 쏜 방탄유리 자국을 만진 후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 때 나오는 모그 음악은 곧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서스펜스를 극으로 올려준다. 다리가 수십 개인 이종의 존재가 천천히 유리바닥을 기는 것 같은 음악. 울림통으로 들리는 통주음의 긁는 음악은 온몸의 신경을 건드려 크고 깊은 긴장을 준다. 영화 음악이란 이런 것이라고 자신 있게 보여주는 것 같다. 이 장면을 여러 번 돌려 화면을 보지 않고 음악만 들어도 이 부분의 장면과 자윤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안함이 들지만, 여러 번 돌려 음악을 꺼버리고 화면만 보면 정말 이상하다
.

모그의 음악이 버닝에서처럼 마녀의 전체적인 흐름을 끌어갔으면 좋았겠지만 모그의 음악이 전반적으로 스크린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그렇다고 영화의 곁에서 영화를 떠받들어주는 것 역시 아쉽게도 못 미친다. 한스짐머가 영화음악을 맡는다고 해서 모든 영화에 한스짐머가 딱 맞는 음악을 만들지는 못한다.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도 많이 봤다. 그렇지만 마녀에서 자윤과 닥터 백의 대치 장면은 모그의 음악과 함께 삼박자가 맞아졌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참 멋진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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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의 어느 영화 리뷰어의 말처럼 그동안 수많은 영화의 ‘힐 위 고우’가 있지만 발키리의 힐 위 고우처럼 경쾌하고, 힘 있고, 기분 좋은 ‘힐 위 고우’는 없었다. 토르 라그나로크는 발키리의 ‘힐 위 고우’ 같은 영화다
.

토르 라그나로크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로 넘어가면서 2년 동안 사라진 토르와 헐크의 생존을 알리는, 다음 편으로 넘어가는 하나의 가교 역할을 하는 영화다. 마블의 팬들은 도대체 토르와 헐크는 그동안 어디서 뭘 한 거야!에 답을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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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는 무거움이 없고 마치 에어로 스미스의 공연 두 시간을 소리 지르며 보고 난 것 같은 느낌의 영화다. 와우 드디어 스프가 라면과 만나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 후 제대로 맛을 내는 거야, 정말 맛있어.라며 오뚜기 컵라면을 3분 동안 기다려 처음 컵라면을 먹어본 미국인 같은 느낌의 영화다. 그러니까 기분 좋은 영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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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웃고 즐기기만 한 것은 아니다. 토르 라그나로크에서 토르는 진정한 자신의 능력을 각성한다. 헬라가 토르의 묠니르를 깨버리면서(세상에나 이렇게 쉽게) 토르는 자신의 힘이 비로소 망치에게서 나오는 게 아니라 자신, 바로 자기 안에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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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절대 깨지지 않는 우주의 물질인 묠니르가 박살 나면서 지구에 없는 초강력 물질인 와칸다의 비브라늄, 그리고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도 어쩌면 박살이 날 수 있다는 것을 예견한다.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는 캡틴의 탄생이 있었던 2차 세계 대전에서 토니 스타크의 아버지인 하워드 스타크에 의해서 만들어졌는데 방패를 이루고 있는 물질이 역시 지구에 없는 제3의 물질 아만타티움이다. 이 아만타티움은 울버린의 몸에 주입이 되어 영원히 죽지 않는 몸을 가진 울버린이 된다. 그런 울버린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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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의 세계관은 우주를 관통하고 있고 우주를 관통하고 있는 물질, 비브라늄, 묠니르, 아만타티움이 있는데, 이런 세계관은 마츠모토 레이지의 은하철도 999, 하록 선장, 천년 여왕에서 나오는 우주에서 딱 세 자루뿐인 ***이라는 총과도 비슷하다. 이 세 자루뿐인 ***건은 철이가, 하록 선장이, 그리고 천년 여왕이 들고 있다. ***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네요 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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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그나로크로 돌아와서 토르는 아버지인 오딘과의 대화에서 오딘은 토르에게 이런 말을 한다. “네가 망치의 신이었더냐” 이 대사에서 토르는 망치가 없이도 자신의 힘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신과 같은, 신과 대등한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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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치에게 기대어 자신의 힘과 능력을 휘발시키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장면이 영화가 관객을 대하는 태도라 생각한다. 관객의 상상을 끌어낼 수 있게 한다. 멍해지려고 할 때 영화는 관객의 생각을 꼬집는다. 잠시 벗어나서 영화 마녀에서 자윤과 닥터 백이 대치하는 멋진 장면 바로 전에는 영화를 완전하게 망치는 길고 장황한 설명으로 시간을 잡아먹는 식상함을 보여준다. 그건 대놓고 관객을 무시하는 태도이지만 토르 라그나로크에서는 그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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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첫 장면에서 아스가르드는 무너지고 해임달과 로키는 죽는다. 헬라 역시 절대 악이다. 게다가 헬라는 아스가르드에서는 힘이 계속 증폭이 된다. 신과 같은 능력이 생긴 각성한 토르는 맞상대가 없는 헐크와 발키리와 함께 헬라에게 덤비지만 헬라에게 상대가 안 된다. 그러니까 묠니르에게서 벗어난 토르, 갇혀있는 생각에서 깨어난 헐크, 그리고 발키리의 조합은 절대 악이라도 감히 이기지 못하는 힘을 지니고 있지만 헬라에게는 무참하게 깨진다. 그런 헬라가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는 그대로 무너졌다는 것인데 뭐랄까 그러기 쉽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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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 라그나로크는 토르의 시리즈 중에서는 가장 좋았던 것 같다. 유머를 잃지 않는, 망치의 신이지만 망치에게서 벗어나 자신의 힘을 알게 된 망치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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