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도메스틱은 2018년에 나온 1998년 같은 영화다. 도메스틱은 지구가 망하고 난 후에 살아남은 자들이 생존하는 투쟁기다. 이런 클리셰의 영화는 차고 넘쳐난다. 좀비로 인해서, 괴식물에 의해서, 태양이 망가져서, 행성이 떨어지거나 전쟁 또는 질병 내지는 AI와의 전투 등으로 지구가 멸망하는 영화는 끝없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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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망해야 하는 이유는 새고 샜다. 하지만 망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몇 가지 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 몇 가지 안 되는 이유 때문에 삶을 유지하고 보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매일 조깅을 하지만 조깅을 그만둬야 할 이유는 천지다. 하지만 조깅을 매일 꾸준하게 해야 하는 이유는 한두 가지 정도 밖에 없지만 그 한두 가지의 이유가 나를 매일 조깅하게 만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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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영화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뉘는데, 졸작이 있고 망작 그리고 괴작으로 나누는데, 더 도메스틱은 망작에 가깝다. 졸작은 그나마 나은 것이지만 그렇다고 괴작까지는 아니다. 그 이유는 마지막에 말하도록 하자. 더 도메스틱은 미국 정부에서 아! 인간이 싫어!라며 영화 초반 미국 초등학교 아이들이 수업을 마치고 야호 하며 나오는 장면에 하늘을 가득 뒤덮는 대공 수송기들이 검은 독가스를 뿌리면서 인류를 멸망시킨다. 그러면서 독가스에도 살아남은 사람들이 죽기 살기로 생존해야만 하는 이야기다. 그 중심에 남녀 주인공, 니나와 마크가 니나의 부모님이 있는 곳으로 가면서 사람을 사냥하는 갬블러들을 피해서 가는 생존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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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로 나오는 케이트 보스워스는 언젠가부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빠져 버렸다. 대부분의 영화에 죽 주연으로 나오고 있지만 딱히 떠오르는 영화가 없다. 슈퍼맨의 연인으로 나왔었고, 우리들에게는 장동건의 연인으로도 나온 액션 닌자형 판타지 영화 워리어스 웨이로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더 도메스틱에서 케이트 보스워스, 니나는 저 코리아가 새겨진 잠바를 죽어라 입고 있다. 심지어는 빌런들에게 잠바를 빼앗겼지만 총을 들고 씨발 빨리 잠바 내놔 하며 다시 입을 정도로 저 잠바에 집착을 보인다. 저 코리아 잠바가 뭐라고. 니나는 소극적이고 빌런들을 무서워하고 총을 잘 못 쏘는데, 영화 후반으로 갈수록 갑자기, 느닷없이(맥주를 마시며 하드록에 몸을 흔들고 난 후 신기가 들렸는지) 미군처럼 총을 쏘며 자세까지 군인처럼 확실한 걸음걸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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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는 왜 독가스를 뿌렸는지, 영화 속 살아남은 자들도 관객도 모른다. 아마도 이 부분은 상상에 맡기려는 거 같은데 너무 개연성이 없다. 이유도 모르고 지구가 회색빛으로 망해버린 이야기는 비고 모텐슨과 샤를리즈 테론의 ‘더 로드’가 있다. 해가 없고 아들과 함께 생존해가는 이야긴데, 코맥 맥카시의 소설만큼 깊이 있지는 않았지만 인간이 가장 밑바닥에 깔렸을 때 무엇을 중심으로 생존해야 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영화였다. 아들과 아버지는 신발을 구하는 것과 우리 이외의 인간을 피해 다니는 것이 맹점이다. 단백질 보충을 위해 인간은 인육을 먹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지구가 왜 멸망했는지 나오지 않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그 이유에 접근할 할 수 없을 만큼 생존기에 흡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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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도메스틱은 살아남은 사람도 많다. 집들도 꽤 멀쩡하다. 볕이 든 집 앞에서 서로 이야기를 할 때는 너무 평온해 보여서 그 장면만 보는 사람이라면 휴먼 드라마라고 해도 믿을 법하다. 이 엄중하고, 살벌하고, 여기서도 갬블러들은 사람을 사냥하여 고기로 먹는 이 와중에 서로들 모이면 커피 잔을 들고 커피를 마시며 살아남았구나, 같은 이야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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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식량부족의 시대에 커피라니, 그것도 우아하게 커피 잔에. 그럴 수 있다고 치자. 영화 속에는 뚱뚱한 사람들이 많다. 독가스 살포 후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만약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다면 살이 찐 사람들이 남아 있을 수 있지만 시간이 몇 년 지난 다음이라면 절대 식량 부족인 시점에서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니나와 마크가 한 집에서 식사를 하는 장면에서 대화를 하는데, 우리가 먹은 맛있는 고기는 소입니까?
소? 가축을 본지 얼마나 됐나? 새나 고양이 개를 본 적이 있는가. 동물은 이 세계에서 소멸했다고 말하는 대화가 나오는데 그러면서 우리가 먹은 고기는 인육이라고 말을 한다. 마크는 그 이야기를 듣고 바로 구토를 한다. 그게 인간이라면 뇌가 반응하는 대로 하는 행동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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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영화 속 독가스는 인간보다는 동물들에게 더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바로 소멸했거나 아니면 살아남은 동물일지라도 독가스를 마셨기에 남은 인간들이 그 고기를 먹지는 않았을 것이다. 영화 속 뚱뚱한 사람들은 그 몸을 유지하기 위해 인육을 맛있게도 마음껏 먹었다는 것인데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에서도 거티스는 열차 마지막 칸에서 식량이 극도로 부족해서 아기를 먹는 장면을 말하는데 고통과 윤리적 죄책감에 울면서 말을 한다. 남한산성을 읽어보면 전쟁 중에 먹을 것이 절대 부족하여 길거리에 죽은 사람에게 눈을 돌리는데 그때는 이미 인간은 인간이라는 그 의미에서 벗어나야 했다. 배고픔을 이길 수 없기에 인육을 먹으나 평소처럼 사고하고 생각하며 행동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도매스틱의 뚱뚱한 사람들은 그저 평소의 거친 사람들이다. 인육을 먹어가며 그 몸을 유지하면서 평소처럼 지내기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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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로드에서 바짝 마른 코디 스밋 맥피의 모습과 더 바짝 말라버린 비고 모텐슨이 어렵게 콜라 캔을 하나 발견하여 마시는 장면을 떠올려보면 도메스틱의 설정이 얼마나 대충대충인지 알 수 있다. 갬블러들에게 잡혔다가 다 죽이고 탈출한 킬러 같은 것으로 나오는 소노야 미즈노는 매력적으로 나오는 것 같은데, 없어도 될 캐릭터다. 나와서 갬블러들에게 총을 쏘아대는 것 까지는 좋은데 니나가 버린 반지를 찾아서 마크에게 주다가 머리가 뚫려 죽는다. 이 무슨. 소노야 미즈노는 엑스 마키나에 나왔던 그녀로 이 신비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는 도매스틱에서는 오갈 때 없는 하나의 소품으로 전락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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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와 마크가 한 가정에서 식사를 할 때 그 집의 12살 정도 된 아들이, 갬블러들이 칼에 찔려 죽은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다. 가슴 밑으로 칼에 팍팍 찔려 죽은 장면을 말한다. 난도질이 일정하지 않고 키가 작은 사람, 즉 어린아이가 한 것이라는 말을 하며 영화는 끝으로 갔을 때 핏빛 가득한 조그만 발자국과 니나와 마크가 지켜주었던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있는데 손과 발에 피가 잔뜩 묻어 있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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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은 많은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괴작이 되기 직전에 멈추게 한 장면이었다. 무라카미 류의 ‘희망의 나라로 엑소더스’라는 소설이 있는데 그 소설을 읽어보면 그동안 전 세계를 두렵게 했던 IS 테러범들이 어린아이들을 훈련시켜 살인을 하는 모습이 잘 나와있다. 이 책은 2000년도에 나왔으니 그때는 IS 테러범이라는 말이 있기 전 테러범들이 있었다. 무라카미 류는 3년 동안 취재를 하여 이 소설을 적었는데 읽으면서 아아 굉장하다,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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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잔인하다. 아이는 순수하고 천진난만하기에 살인을 하나의 놀이로 인지를 한다. 사람이 피를 토하며 죽는 모습을 어른처럼 한 번 걸러서 생각하며 눈으로 보지 않는다. 그저 재미로 느껴지면 정확하게 그 일을 한다. 그것에 어떠한 도덕적 죄책감이나 수치심 내지는 감정의 변이를 일으키지 않는다. 테러범들은 그 사실을 잘 알기에 아이들을 잡아서 훈련을 시킨다. 무엇을? 총의 무게를 이겨내는 훈련을 시킬 뿐이다. 그러면 정확하게 목표물에게 접근하여 적확하게 살인을 한다. 하나의 놀이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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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나라로 엑소더스를 읽으면 놀라게 되는 것이 20년 후의 이야기, 즉 작금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변이나 일들이 그 소설에서는 고스란히 말하고 있다. 희망의 나라로 엑소더스는 반드시 영화로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전혀 기미가 없는 것이 이상하다. 더불어 ‘코인 로커 베이비’도 영화로 나올 것 같은데, 같은데 하면서 나오지 않는다. 아무튼 도메스틱의 마지막 장면은 이런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면서 괴작으로 가지 않고 망작에서 끝날 수 있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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