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함께 가던 목욕탕에는 겨울에 탈의실 중간에 평상이 있고 앞에 거기에 난로가 있었다. 난로 위에는 큰 냄비 안에서 오뎅이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하나에 얼마였는지 기억은 없지만 목욕을 하고 나와서 머리에 물기가 덜 마른 채로 어른이고 아이고 발가벗고 서서 오뎅을 먹는 모습이 어쩐지 의식을 치르는 모습 같았다. 기괴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누구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목욕을 나와서 오뎅을 하나씩 먹었다. 


장사가 잘 되었다. 너도나도 전부 오뎅을 먹었으니까. 당연하게도 여탕의 탈의실 모습은 모르겠지만 남탕의 모습은 꽤나 재미있다. 주로 아버지들의 재미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드라이기로 머리는 말리지 않고 사타구니만 말리는 아저씨, 수면실(라고 하기에는 거창하지만)에서 하나만 입고 잠을 자는데 그 하나가 양말인 아저씨, 등을 미는 때 미리 기계에 등만 얼마나 세게 밀었던지 등말 벌겋게 된 아저씨 등 재미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온도차이로 생긴 수증기가 가득한 목욕탕에서 있는 힘을 다 해 아버지의 등을 밀고 있으면 아버지는 시원하지도 않으면서 아 시원하다고 하면서, 팔다리도 가는 나에게 넌지시 용기와 칭찬을 주었다. 아버지는 무뚝뚝하고 대 놓고 속에 있는 말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었기에 그게 아버지로서 최대한 자신의 의사표현이었다. 목욕탕을 나오면 맞이하는 겨울의 공기는 아주 차갑고 몹시 상쾌했다. 새벽의 이슬 같은 느낌일까. 투게더를 양손으로 들고 집으로 오면 그때서야 저녁을 먹었다. 대략 저녁 8시 정도. 우리는 밥상에 둘러앉아서 겨울 저녁을 먹는데 어머니가 오뎅탕을 끓여 왔다. 집에서 먹는 오뎅탕은 밖에서 먹는 오뎅과는 맛이 다르다. 좀 더 정돈된 맛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밖에서 먹는 오뎅보다는 맛이 떨어졌다. 


하지만 밖에서는 오뎅탕에 밥을 말아먹지 못하지만 집에서는 가능하다. 밥을 다 먹고 나면 우리는 냉장고에 넣어둔 투게더를 꺼내서 먹었다. 하드는 여름에 맛있지만 아이스크림은 겨울에 맛있었다. 겨울의 토요일 저녁은 행복했다. 밤이 되면 전부 이불을 덮고 티브이를 보았다. 아마 토요명화 같은 프로를 봤을 것이다. 겨울이니까 크리스마스 대소동을 봤다고 치자. 코미디 영환데 적당히 야한 장면이 가득한 미국미국 한 영화다. 아주 어린 줄리엣 루이스가 나온다. 줄리엣 루이스는 황혼에서 새벽까지도 그렇고, 그 옛날 로버트 드니로가 무시무시하게 나온 케이프 피어에서도 그렇고, 당차고 거센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는 그런 외국 배우들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재미있는 크리스마스 영화를 보다가 잠이 드는 게 좋다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코로나가 도래하기 전 조깅을 하고 돌아오면서 포장마차에 서서 오뎅을 하나씩 사 먹었다. 특히 겨울에 먹는 오뎅은 유독 맛있었다. 이유는 아무래도 어린 시절의 추억이 덧입혀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보통 8킬로미터 정도를 조깅을 하니까 겨울에 그 정도 달리면 후끈하지만 금세 몸은 식어버리고 만다. 그때 버티고 서서 먹는 오뎅은 꿀맛이었다. 오뎅국무 역시 맛있었다. 오뎅국물은 그저 무로 시원하게 우려낸 국물이 좋다. 그 안에 게껍질이나 새우를 넣어서 우려낸 국물은 나는 별로다. 매운 국물도 별로다. 그저 무로 끓여낸 오뎅국물이 좋다. 그렇게 겨울에도 오뎅을 하나씩 먹으면 사라져 가는 어린 시절의 겨울철 오뎅 맛을 느끼려고 했다. 오뎅과 행복을 결부시켰다. 그러나 코로나 시기가 되면서 포장마차가 문을 닫았다. 조깅을 하는 활동 반경 내에 있던 오뎅 포장마차가 전부 사라졌다. 코로나 시기는 그런 분위기였다. 뭔가 바이러스가 옮겨질 것 같은 분위기는 아예 없애 버렸다.


바이러스는 사람에서 사람으로 옮겨간다. 그렇게 바이러스가 전염이 잘 되는 곳이 목욕탕이었다. 어릴 때는 당연하지만 그걸 몰랐다. 감기가 걸리면 어른들은 목욕탕에서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갔다가 오면 낫는다고 했지만 목욕탕을 나오면 기침이 더 났다. 그때는 그걸 몰랐다. 지금은 감기가 걸리면 사람들이 피하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학교도 가지 않고 신경을 쓴다. 그러다 보면 날카로워지지만 어릴 때는 기침을 하면 좀 포근한 느낌이었다. 부모님은 따뜻하게 보리차를 끓여 주었고 담요를 덮어 주었다. 그래도 기침이 심하면 약을 하나 먹고 잠을 푹 자고 나면 기침이 싸그라 들었다.


요즘은 손을 자주 씻어서 그런지 감기도 잘 걸리지 않고 오뎅도 먹지 않는다. 인공지능으로 세상은 재미있어졌는지 모르겠지만 인간은, 적어도 나는 재미가 없다. 몸에서 재미라고 하는 세포들이 점점 떨어져 나간다. 일상을 공허하게 보내고 있다. 만약 바쁘게 보낸다고 해도 바쁜 일상이 공허하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공허라는 공간이 있다면 나는 지금 그 어떤 상황이든 그 공간을 지나가야만 해서 중간을 지나가고 있는 것뿐이다.


오뎅탕으로 따뜻하고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두꺼운 이불속으로 쑥 들어가 토요명화를 본다. 머리만 빼꼼 드러내놓고 더빙된 토요명화를 보고 있으면 잠이 오소소 떨어진다. 잠들지 않으려고 아버지에게 계속 질문을 한다. 재미없는 영화라도 아버지가 영화를 설명해 주면 마법처럼 재미있었다. 더불어 잠은 더 쏟아졌다. 창밖으로 휘이잉 하는 바람이 실내로 들어오려고 화가 났지만 우리는 절대 창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잠이 쏟아진다. 잠들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버티지만 결국 천사의 망치를 맞고 어느 순간 까무룩 잠이 들어 버린다. 그래서 토요일마다 보던 겨울의 토요명화의 결말은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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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뎅탕과 오뎅국


차이가 뭘까. 오뎅탕과 오뎅국의 차이는 글자에만 있는 것일까. 사실 오뎅탕과 오뎅국의 차이는 크게 없다. 술집에서 안주로 먹으면 오뎅탕이고 집에서 밥으로 먹으면 오뎅국 정도가 아닐까 싶다. 오뎅이 땡기는 계절이다.


날이 쌀쌀해지면 오뎅을 찾게 되고 오뎅을 먹으면 어린 시절의 겨울이 떠오른다. 고개를 들어 진열장 위의 아버지 사진을 보면 아버지와 함께 어린 시절에 살던 마당이 있던 집이 생각난다. 겨울에는 추웠지만 따뜻한 기억. 물론 난방이 지금처럼 잘 되지 않았지만 따뜻하게 겨울을 보낸 추억만 가득하다.


겨울방학이 오기 전까지 국민학교 점심시간에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기다리는 그 시간도 행복했다. 겨울방학은 보통 12월 24일에 했는데, 12월이 되면 교실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했다. 주렁주렁 지금 보면 촌스럽겠지만 아이들이 교실의 여기저기에 장식을 달고 교실 가장자리에 트리를 만들었다. 트리는 학교에서 교실마다 제공해 주었다. 6학년 내내 그랬던 건 아니었다. 1학년에 입학을 했을 때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 2학년이 되었을 때는 다른 학교에 다녔다. 전학은 아니었고 이동이었다. 


대체로 집에서 가까운 곳에 배정을 해주었다. 그러나 2학년 때의 국민학교도 꽤나 걸어가야 했다. 9살 인생은 그렇게 따분함이 없기 때문에 학교에 걸어가는 길이 재미있었다. 겨울이 오고 크리스마스가 다가왔을 때 장식을 했는데 그때 트리를 장식하는 담당이 나였는데 장식을 하다가 산타할아버지모형의 집개를 슬쩍 들고 집으로 와 버렸다. 조마조마 떨리면서도 짜릿했다.


3학년부터는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학교를 다녔다. 3학년에서 6학년까지의 겨울이 가장 생각이 많이 나고 아버지와의 추억이 가장 많은 시기였다. 한 동네에서 죽 자랐고, 한 동네의 여러 집으로 이사를 다녔다. 3학년에 이사를 간 집은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주인집이었다. 엄마는 주인집과 친하게 지냈다. 주인집 할머니는 여고에서 매점을 했다. 여고도 집에서 15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한 버는 동생과 함께 여고에 놀러 갔을 때 매점 안에 들어가서 여고생 누나들에게 과자를 팔았다. 재미있었다. 


그 여고가 있던 자리를 매일 조깅을 하면서 돌아온다. 여고는 다른 곳으로 옮겼고 그 자리는 아파트가 들어섰다. 여고는 영화 클래식에 나오는 학교처럼 소나무가 많고 정원이 예쁘게 가꿔진 학교였다. 담벼락이 있고 담벼락 바깥쪽에는 영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담벼락은 겨울에는 스산했는데 여름에는 무섭게 느껴졌다. 국민학생 때라 단순하게 공포영화 포스터가 여름에 많이 붙었기 때문이다.


겨울이면 담벼락 맞은편에 붕어빵 포장마차가 들어섰다. 포장마차는 핫도그도 팔고, 붕어빵도 팔고, 떡볶이도 팔고 오뎅도 팔았다. 이 정도면 이 작은 동네에서 중소기업이었다. 핫도그 하나에 오뎅국물이 최고의 조합이었다. 핫도그에는 설탕과 케첩을 듬뿍 뿌리는 게 맛있다. 하지만 주인아줌마는 설탕은 잔뜩 묻혔는데 케첩은 듬뿍 뿌려주지는 않았다. 겨울의 칼바람이 차단된 포장마차 안에서 오뎅을 먹는 맛은 정말 좋았다.


그 길의 끝에는 동네 목욕탕이 있었다. 목욕탕 하면 아버지가 떠오른다. 어린 시절에는 목욕탕에 혼자 못 가니까 늘 아버지와 함께 일주일에 한 번 목욕탕을 갔다. 아버지가 일찍 퇴근하고 오시는 토요일 저녁은 목욕탕에 가는 날이었다. 그런데 기억을 아무리 기억을 떠 올려도 겨울의 목욕탕 기억 밖에 없다. 아버지와 여름에도, 봄에도, 가을에도 목욕탕을 갔을 텐데 겨울에 목욕을 하고 밖에 나와서 찬 공기를 맞으며 입김을 후후 불었던 기억. 그리고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네 슈퍼에서 투게더 아이스크림을 사 주었다. 집으로 와서 저녁을 먹고 그걸 동생과 함께 먹었다. 투게더를 먹기 위해 저녁을 대충대충 빨리 먹었다.


그 동네는 작년에 완벽하게 사라지고 말았다. 그전까지는 조깅을 하면서 그 동네로 둘러 오면서 몇 년을 지켜보았다. 마을 사람들이 생활을 하다가 점차 떠나가고 철거 페인트가 칠해지고 전부 철거되더니 벌판이었다가 현재는 아파트가 올라가고 있다. 동네에 딸린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는 꿈도 가끔씩 꿨지만 근래에는 전혀 꾸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동네에는 두 군데의 목욕탕이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가던 목욕탕은 꿈에 나타나지 않지만 혼자서 가끔 가던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는 꿈은 얼마 전까지 잠이 들면 꿈속에 나왔다. 


동네의 풍경도 꿈에 지도처럼 나타났다. 하지만 꿈이라 목욕을 하는데 옷이 잘 벗겨지지 않아서 옷을 입은 채 목욕탕에 들어가거나, 아직 반도 씻지 않았는데 목욕탕 청소를 하면서 나가라고 하거나, 목욕탕에는 들어갔지만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는 동안 꿈이 다 지나가버렸다. 꿈이라서 현실처럼 목욕탕에서 몸을 담그고 때를 미는 건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꿈이란 지나고 나서 생각하면 참으로 묘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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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 밖의 빛이 막 산란하는 게

휴일이의 노래 속 같네

광모의 사진도 떠오르고

우리의 사랑은 부서지기 쉽고

사랑이 깨지는 소리는 겁이나고

그래도 넌 내 꿈이야


검정치마 에브리띵 https://youtu.be/Aq_gsctWHtQ?si=jjhf09uQI0Lr3WLn


사진가 광모의 작품들




제목이 ‘별을 쫓는 아이들’라는 사진은 나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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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샘학원 밑에는 화성오락실이 있었다. 화성 오락실은 꽤 커서 학원에서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우르르 오락실로 들어갔다. 화성 오락실에 가면 아무리 빨리 나와도 한 시간은 넘게 있었다. 그만큼 재미있었다. 좋아하는 게임을 위해 앉아서 하는 사람의 게임을 보면서 뒤에서 기다리는 것도 재미있었다. 화성오락실은 다운타운에 있었다. 동네 오락실과는 달랐다. 따지고 보면 좀 크다는 것 빼고는, 그래서 오락기가 많다는 것 빼고는 특별할 것도 없는데 동네 오락실처럼 어린이들이 없고 학생들만 가득해서 그런지 화성오락실은 우리의 단골 오락실이었다. 


오락이라는 게 지기 위한 게임이다. 오락을 해서 이길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오락기에 동전을 밀어 넣는 걸 멈추지 않았다. 동전을 밀어 넣는 순간 오락기와 나 사이의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눈에 드러나지 않는, 기묘한 흐름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리고 스타트와 동시에 항상 진다는 생각은 저 멀리 달아나 버리고 이겨야 한다는 의지로 불타게 된다. 내 생각과는 분명 다르게 흘러가는 세계라는 걸 알면서도 외면하는 건 쉽지 않다. 내 쪽에서 죽어야 오락실의 게임이 끝이 나기 때문에 절대 이길 수 없다. 아주 간단한 이치지만 나는 오락에 빠져서 게임에서 승리의 목표 속으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인간의 인생이란 반드시 이기기 위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지기 위해서 오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사이에서 어떻게 지는가 하는 방식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확정 지을 수도 있다. 지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도전을 하고 실패를 맛보는 것, 그건 어쩌면 인간은 태어났지만 죽는 것을 알고 있어도 하루를 열심히 견디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알게 모르게 오락을 하는 동안 조금씩 실력이 늘어간다. 그리고 동전을 넣는 횟수도 점차적으로 줄어든다. 게임에서 지고 나면 허탈해하고 친구와 함께 고개를 숙이고 집으로 오지만 다음 날이면 어제보다 나은 회차를 넘기리라는 동기부여가 된다. 그래서 기대를 안고 화성 오락실의 문을 당당하게 연다.


우리 인생은 너무나 약하여 금방 부서지는 장난감 같다고 어느 드라마에서 그랬다. 여러 번 이겨도 한 번 지면 모든 것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이치를 깨닫는 것이다. 나는 절대 그럴 일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지만 그런 일은 예고 없이 어느 순간 닥쳐온다.


힘이 들지만 그럴 때마다 주머니의 동전을 꺼내서 오락기에 집어넣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무너지기 전까지 그동안 쌓아놓은 개개인의 비교할 수 없는 금자탑이 있어서 다시 하면 된다. 오늘은 누구에게나 처음이라 힘들어서 질 수 있지만, 내일이 되어 다시 오늘을 맞이하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한 발 나아가 있는 하루가 된다. 인생이란 꼭 이기기 위해 치열하기보다는 덜 지기 위해 일상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쌓여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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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이 되면 담배냄새가 좋아진다. 나는 담배도 피우지 않지만 11월의 담배냄새는 나쁘지 않아. 11월의 담배냄새는 시월과는 다르고 유월과도 다르다.


가을을 지나 겨울의 초입이 되면 담배냄새에 냉소가 가득해지는 것 같아. 이른 오전에 세탁소 앞에서 스팀연기와 함께 세탁소 주인이 피우는 담배 냄새가 슬슬 좋아져.


엑토플라즘처럼 위로위로 올라가는 푸른 담배연기는 마치 바슐라르가 말하는 촛불의 욕망일지도 몰라.


담배냄새에는 일종의 불협화음이 있는데 11월이 되면 그 불협화음에 동참하는 기분이 들어. 11월이 되면 담배냄새가 좋아져. 자연스럽게 시가렛 애프터 섹스의 노래가 떠오르지.


나는 어째서 담배를 피우지 못할까. 담배를 피울 수 있다면 11월에 내가 피우는 담배냄새를 맡으며 괜찮은 하루를 보낼 수 있을 텐데. 담배를 아주 맛있게 피우는 친구가 있었지. 특히 겨울에 담배를 피울 때면 그 녀석 입에서 굉장한 양의 연기가 나왔거든. 


특히 가로등 밑에서 담배를 피우면 못생겼지만 그렇게 그 녀석이 멋지게 보였지. 따라 하고파서 담배를 억지로 피우면 나는 먹은 것들을 전부 토하고 말았지. 만취해서 토하는 건 괴로워도 받아들일 수 있지만 정신이 살아있는데 토하는 건 세상 괴로운 일이라는 걸 알았어. 거의 죽음 직전이었어. 


담배는 그야말로 가까이 있지만 너무나 먼 기호였던 거지. 나에게는 말이야. 겨울의 담배냄새가 그렇게 나쁘지 않게 느낀 건 그때부터였을지도 몰라. 친구는 고민에 휩싸인 영화 속 주인공처럼 술을 한 잔 마시고 가로등에 기대어 담배를 피웠지. 나는 그 녀석의 말을 듣기보다 그 푸르스름한 연기와 냄새에 빠져들어가고 있었어. 


담배냄새라는 건 몹시도 이상하여 흡연자들도 담배냄새는 싫어하기도 하잖아. 그런데 나는 담배도 피우지 않는데 11월의 담배냄새를 좋아하고 있어. 잘 설명은 못하겠지만 화장품냄새와 향수냄새와 함께 섞여서 나는 담배냄새는 묘한 질감을 가지고 있는 거 같아. 좋다는 말이야. 나쁘지 않아. 모든 여성이 피우는 담배냄새가 좋은 건 아니야. 모든 계절에 나는 담배냄새가 좋은 건 아닌 것처럼 말이야. 


부러운 일상적인 모습이 여럿 있지만 식사 후에 맛있게 담배를 한 대 피우는 모습처럼 부러운 모습도 없어. 그들의 얼굴에는 어떤 안도감이 잔뜩 있잖아. 무릇 꽁초 오상순 시인의 시 하나가 생각나네. 나는 그 시가 너무 좋더라고. 


웃는 사람 따라서

웃지 못함은

고통이다

그러나

우는 사람 위하여

울지 못함은

더 큰 고통이다


11월이다. 11월이 되면 담배냄새가 좋아진다.



Cigarettes After Sex-Apocalypse https://youtu.be/5ey60YJmjQE?si=RxaH6zWPEQV2lb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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