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샘학원 밑에는 화성오락실이 있었다. 화성 오락실은 꽤 커서 학원에서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우르르 오락실로 들어갔다. 화성 오락실에 가면 아무리 빨리 나와도 한 시간은 넘게 있었다. 그만큼 재미있었다. 좋아하는 게임을 위해 앉아서 하는 사람의 게임을 보면서 뒤에서 기다리는 것도 재미있었다. 화성오락실은 다운타운에 있었다. 동네 오락실과는 달랐다. 따지고 보면 좀 크다는 것 빼고는, 그래서 오락기가 많다는 것 빼고는 특별할 것도 없는데 동네 오락실처럼 어린이들이 없고 학생들만 가득해서 그런지 화성오락실은 우리의 단골 오락실이었다. 


오락이라는 게 지기 위한 게임이다. 오락을 해서 이길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오락기에 동전을 밀어 넣는 걸 멈추지 않았다. 동전을 밀어 넣는 순간 오락기와 나 사이의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눈에 드러나지 않는, 기묘한 흐름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리고 스타트와 동시에 항상 진다는 생각은 저 멀리 달아나 버리고 이겨야 한다는 의지로 불타게 된다. 내 생각과는 분명 다르게 흘러가는 세계라는 걸 알면서도 외면하는 건 쉽지 않다. 내 쪽에서 죽어야 오락실의 게임이 끝이 나기 때문에 절대 이길 수 없다. 아주 간단한 이치지만 나는 오락에 빠져서 게임에서 승리의 목표 속으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인간의 인생이란 반드시 이기기 위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지기 위해서 오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사이에서 어떻게 지는가 하는 방식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확정 지을 수도 있다. 지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도전을 하고 실패를 맛보는 것, 그건 어쩌면 인간은 태어났지만 죽는 것을 알고 있어도 하루를 열심히 견디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알게 모르게 오락을 하는 동안 조금씩 실력이 늘어간다. 그리고 동전을 넣는 횟수도 점차적으로 줄어든다. 게임에서 지고 나면 허탈해하고 친구와 함께 고개를 숙이고 집으로 오지만 다음 날이면 어제보다 나은 회차를 넘기리라는 동기부여가 된다. 그래서 기대를 안고 화성 오락실의 문을 당당하게 연다.


우리 인생은 너무나 약하여 금방 부서지는 장난감 같다고 어느 드라마에서 그랬다. 여러 번 이겨도 한 번 지면 모든 것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이치를 깨닫는 것이다. 나는 절대 그럴 일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지만 그런 일은 예고 없이 어느 순간 닥쳐온다.


힘이 들지만 그럴 때마다 주머니의 동전을 꺼내서 오락기에 집어넣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무너지기 전까지 그동안 쌓아놓은 개개인의 비교할 수 없는 금자탑이 있어서 다시 하면 된다. 오늘은 누구에게나 처음이라 힘들어서 질 수 있지만, 내일이 되어 다시 오늘을 맞이하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한 발 나아가 있는 하루가 된다. 인생이란 꼭 이기기 위해 치열하기보다는 덜 지기 위해 일상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쌓여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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