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하루 종일 바닷가를 어슬렁어슬렁거렸다. 바다는 참 묘하다. 사람의 마음과 비슷하다. 같은 바다가 없고 변덕도 심하고, 이거다 싶으면 어느새 모습을 바꿔버리거나 심술을 부리고 전혀 그렇지 않을 것 같은데 울어버리고 예상치 못하게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바닷바람은 차지만 햇살이 따뜻한 것이 겨울에서 봄으로 옮겨가는 애매한 계절의 시점이다. 기시감이 들고 그럴 때면 허니와 클로버를 시작하는 타케모토의 내레이션이 떠오른다. ‘25년 된 집, 벽이 얇아 소리가 다 새고, 입주자는 전원 학생, 아침 햇살이 눈부신 동향. 작년 미대에 합격해 도쿄에 왔는데 학교 주위에는 밭 천지라 깜짝 놀라고 지은 밥이 맛이 없어서 깜짝 놀라고 공중목욕탕 입장료가 비싸서 놀라고 많은 숙제에 놀랐지만 지금은 모두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타케모토의 말처럼 지금 이 애매한 계절도 곧 일상이 된다.


애매한 시점을 지나고 나서 나는 자유와 모험이 있는 일탈보다는 반복과 단조로움이 단단하게 있는 일상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 일상에 집 근처의 바닷가도 있다. 오랜만에 하루 종일 바다 근처를 배회하며 바다를 지치지 않고 바라보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바다를 몇 시간이고 바라보는 것 따위 하지 않았는데 그거 참 기묘하다. 그래도 매일 오전에 30분 정도는 바다를 늘 보고 있으니 바다도 나의 그런 수고를 알아주기를 바랄 뿐이다.


바다를 배회하며 사진을 찍다가 지치면 앉아서 리스트의 순례의 해 2년 중 ‘단테를 읽고’를 죽 들었다. 백건우 버전이다. 요즘 아내 때문에 말이 많지만 나는 백건우 버전의 리스트가 좋다. 다행히 아이패드로 들으면 야외에서 마치 피아노 연주를 듣는 착각이 든다. 다행스러운 것은 일행도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대체로 지금까지 일행은 나의 조금은 이상할지 모르는 행동이나 말도 대체로 좋아해 주는 것 같다. 그것이 참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나의 말과 행동에 현실감은 비교적 소거되어 있다. 그래서 때때로 먹고사는 것에 대해서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땐 늘 불안하다. 

 

'단테를 읽고'를 백건우와 조성진, 두 버전으로 번갈아가며 계속 들었다. 조성진이 젊어 힘 있게 연주할 거라는 생각이었는데 벗어났다. 조성진은 유약하지만 부드러웠다. 마치 나비가 호수의 수면 위에서 살짝 발을 담그듯 '단테를 읽고'를 끌고 나간다. 꼭 38시간 불면으로 보낸 후 샤워를 하고 창을 투과한 빛을 받으며 극세사 이불로 몸을 감싸는 기분이다. 꼭 그럴 필요는 없지만 눈을 감으면 내 손이 단편이 되어 허공을 휘젓는다. 허공에는 그 사람이 남기고 간 편린이 조각이 되어 먼지처럼 날아다닌다. 꼭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은데.


그에 비해 백건우는, 이제 할아버지가 되었으니, 라는 생각을 여지없이 무너트린다. 강렬하고 힘 있게 '단테를 읽고'를 치고 나간다. 격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다란 다란 다란 다란 다라 라라라라(이래서 뭔 설명이) 하며 끌어올리는 부분은 정말 좌심방에 펌프질을 강하게 한다. 숨이 차오른다. 험난한 산속의 지형을 위협스러운 존재를 피해 달리는 것처럼 나는 숨이 타오른다. 크레바스를 넘고 해협을 맨몸으로 건넌다. 그건 마치 인생의 축소이기도 하다. 다라 라라라라라 가 줄어들어 갈 때 길고 넓은 평온한 강이 나타난다. 그제야 나는 숨을 천천히 쉬고 먼 곳의 자연을 눈으로 본다. 숨이 잦아든다. 연주 하나를 듣는데 이런 상태로 내 몰고 가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백건우의 리스트 '리베스트라움'을 듣는다. 꿈속을 거니는 기분. 바다가 곡에 맞게 춤을 추고 춤에 맞는 선율을 백건우는 연주한다. 일행은 이런 나의 이야기가 지루하지는 않은 것 같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건 참으로 고독한 일이다. 그런 생각이 든다. 그 고독의 정점으로 오르기 위해 등을 구부리고 외롭게 피아노와 싸우거나 또는 친하게 지내야 했을 것이다. 외톨이로 피아노와 지내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연주들. 바다를 보며 그런 연주를 듣는다는 것 역시 어떤 면으로 행운이다.


겨울의 바다에서 따뜻함이 느껴지는 게 봄이다. 완전한 봄으로의 초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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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OzJiw-tiY9Q

러브레터 (Love Letter) OST - Winter Story


러브레터는 볼 때마다 포인트가 달라진다. 처음 봤을 때 보지 못한 것을 다시 볼 때 눈에 들어오고,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다시 보면 가질 수 있다.


그것이 사랑이라 알지 못했던 이츠키와 그 사랑을 잊지 못하는 히로코는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관계에 좀 더 깊게 발을 담근다.


히로코가 눈 밭에서 잘 지내냐고 감정이 오를 대로 올라 소리를 지르는 모습은 아마도 히로코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은 그 한 장면에 깊게 몰입되어 그대로 함몰될지도 모른다.


결국 부치지 못한 편지는 그림이 되어 다시 이츠키의 손으로 돌아오고, 히로코와 이츠키는 그렇게도 몰랐던, 잊지 못했던 사랑을 찾아간다.

 

이와이 슌지는 이 이야기를 그대로 묻어 둘 수 없어서 어쩌면 이츠키와 히로코를 후에 하나와 아리스(엘리스)로, 4월 이야기로 다시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또 흘러서 휴대폰이 도래한 이 시대에 ‘라스트 레터’로 태어나 아직 편지가 건재하다는 걸 보여준다. 언니의 지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찾아간 중학교 동창회에서 동생의 외모가 언니와 똑 닮아서 언니로 착각을 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부분이 이츠키와 히로코의 외모가 같은 모습을 이와이 월드를 좋아하는 팬들은 답습한다. 그렇게 동생은 언니가 되어 편지를 주고받다가 편지 속에서 감정이 드러나게 되는 이야기를 이와이 슌지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일본 특유의 영화라고 하는데 일본 특유가 아니라 이와이 슌지가 가지는 고유한 색채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상대방에게 바라는 말은, 영원히 사랑한다는 말보다 아침에 눈 뜨면 잘 잤냐고 물어보고 잠들기 전에 잘 자라는 평범한 인사일지도 모른다.


잘 지내나요?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이 정도 소식을 전할 수 있다면.




#     

나카야마 미호는 러브레터에 등장하기 전에 아이돌로 먼저 데뷔를 했다. 나카야마 미호의 영화 중에 '사요나라 이츠카'라는 영화가 있다. 이 이야기는 큰 굴곡이 없는데 보고 있으면 계속 보게 된다. 영화가 재미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훨씬 이전에 소설로 먼저 읽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둘러싼 분위기는 아주 기묘하다고 생각하는데(개인적으로), 츠지 히토나리의 '안녕, 언젠가'를 그대로 영화로 옮겨 놓은 것이 이 영화고, 주인공 나카야마 미호는 치즈 히토나리의 아내이다. 현재는 이혼했지만. '냉정과 열정 사이'로 유명한 츠지 히토나리의 글은 현실적인데 읽고 있으면 담담하면서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되어 버리는 그런 착각이 든다.    

            

감독은 인천 상륙작전을 만들었던 이재한 감독이다. 이 영화는 과거의 회상 부분은 화양연화의 미장센을 보는 듯하다. 화양연화의 양조위와 장만옥의 분위기가 물씬 난다. 감독이 화양연화를 좋아했구나,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화양연화보다 좀 더 허구의 이야기에서나 볼 법한 주인공들이다. 빼빼 마른 몸이지만 너무나 섹시하게 보이기 위해서 공을 많이 들인 나카야마 미호의 이미지와 정말 영화 속에서나 볼법한 몸과 얼굴을 가진 니시지마 히데토시(소년의 이미지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의 이미지가 영화를 가득 채운다.      

         

인간은 죽을 때 사랑받는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과 사랑한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으로 나누어진다. 이 문장이 영화를 관통한다. 주인공 유타카는 약혼녀를 놔두고 타국에서 관능적인 토우코를 만나 속수무책으로 빠져든다. 유타카와 토우카는 마치 첫사랑처럼 타오른다. 재가 될 것처럼 만나는 매 순간을 태워버린다.      

         

인간은 매일 먹은 밥보다 가끔 먹는 라면이 더 맛있고 집보다는 경치 좋은 곳의 펜션을 더 좋아한다. 하지만 라면도 자주 먹다 보면 질리고 일탈이 길어지면 불안하고 불편해서 일상의 편안함을 찾게 된다. 그게 인간이다.               


넌 더 이상 젖지 않고 난 더 이상 서지 않아,라고 말하게 되는 순간 꿈같던 일탈도 끝내게 된다. 하지만 그 기억들은 언제까지나 남아서 세월을 괴롭힌다. 두 사람은 불장난을 끝내고 헤어진다. 그리고 14년이 흐른 후 재회를 한다. 어떻게 될까.     

          

두 사람의 격정적인 사랑을 위해 카메라는 주인공들 얼굴 가까이 크게 줌인해 들어간다. 너무나 예쁘고 정말 멋진 얼굴과 몸매로 첫사랑을 하는 젊은이들처럼 태국의 열기보다 더 뜨겁게 타오른다. 화양연화처럼 배경음악 역시 좋다. 나카시마 미카의 노래가 아주 은은한 향초처럼 좋다. 니시지마 히데토시는 정말 만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다. 꼭 미야자키 하야오의 ‘귀를 기울이면'의 아마지와 세이지가 현실로 뛰쳐나와서 그대로 어른이 된 것 같다. 니시지마 히데토시를 보면 늘 그런 생각이 든다.    

           

사람은 이별 인사 '안녕'을 준비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 

고독이란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 친구 한 명이라 생각하는 게 좋다. 

사랑 앞에서 몸을 떨기 전에, 우산을 사둘 필요가 있다. 

아무리 뜨거운 사랑을 받았어도 행복을 믿어서는 안 된다. 

죽을 만큼 사랑해도 절대로 너무 사랑한다고 해서는 안 된다. 

사랑이란 계절과도 같은 것. 

그냥 찾아와서 인생을 지겹지 않게 치장할 뿐인 것. 

사랑이라고 부르는 순간, 스르륵 녹아 버리는 얼음조각. 

안녕, 언젠가. 영원한 행복이 없듯 영원한 불행도 없다. 

언젠가 이별이 찾아오고, 

또 언젠가 만남이 찾아오느니 인간은 죽을 때, 

사랑받는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과 사랑한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 

난 반드시 사랑한 기억을 떠올리고 싶다.   

            

안녕, 언젠가. 사요나라, 이츠카,였다.   

           

https://youtu.be/bpFz8ksR2vU

나카시마 미카 - 안녕, 언젠가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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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1-03-18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겡끼데스까~~~~~

참 좋아했던 일본 영화군요.

교관 2021-03-19 11:37   좋아요 0 | URL
페러디가 있었어요 ㅎㅎ

오 뎅 다 낑 가 노 코 가 끼 예~~~~
 


조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의식의 흐름대로 바리스타 룰스 민트 라임 라테를 하나씩 마신다. 나는 어쩌면 아이스크림도 그렇고 민트가 들어간 맛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매일 아침 로컬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은 이천 원, 이건 이천오백 원이다. 오백 원이 더 비싼 만큼 맛이라는 것이 훨씬 난다. 맛있다는 것보다 단 맛과 민트 맛이 난다. 그저 커피 맛만 나는 오전의 커피보다 못하다 괜찮다의 문제보다 이 맛에 조금씩 길들여져가고 있다. 땀을 흘리고 마셔서 그런지 더 흡족하다. 그냥 라테 정도는 집에서나 어디서나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그에 비해 민트 라테는 글쎄, 카페에서 취급하는지도 모르겠다. 위스키를 커피에 타 마시면 아주 맛이 좋은데 그런 맛의 음료 버전이라고 할까.


얼마 전에 빵을 먹었는데(라고 하면 매일 조깅을 하고 돌아오다가 빵을 하나씩 사 먹는데, 그것과는 다른 빵을 먹었다), 내가 손을 뻗어서 먹던 빵과는 다른 빵을 먹었는데 너무 맛있는 것이다. 한 입 먹는 순간 오오 이건 뭐야, 하는 감탄이 나왔다. 달아서 죽을 것 같은데 치즈의 짠맛이 치고 들어오면서 순식간에 맛의 균형을 잡아주더니 또 한 입을 불렀다. 그런 맛을 빵이 가지고 있었다. 이런 빵을 매일 먹다가는 정말 살이 금방 찔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민트 라테를 먹고 있으면 왜 그런지 라면에 넣어서 먹어봐야지 하는 별난 생각에 자꾸 근접하게 된다. 민트맛라면,라고 하면 분명 대부분이 발로 차 버릴 것 같겠지만 단짠단짠의 맛이 한꺼번에 들어와서 처음의 이상한 느낌의 맛만 넘기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라는 나의 생각을 끊고 다시 일어나서 마지막 코스로 조깅을 한다.

 

근래의 내가 있는 도시의 날씨는 아주 기묘해서 초봄의 혹독한 냉기가 흐르는 날의 연속이다. 자칫 옷을 얇게 입고 나와서 조깅을 하면서 흘린 땀이 그대로 축축해져 버리면 감기에 그대로 걸리기 쉬운 날이다. 요즘은 감기가 걸리면 주위에 민폐를 예전보다 크게 끼치기 때문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

 

민트 라테를 하나 마시고 일어나는 구간(이라고 해야 할까. 전문 러너가 아니기 때문에 그저 달리는 길목)은 1.5킬로 정도 되는 오르막길이다. 끝과 끝의 수평을 봤을 때 1층과 2층의 높이 정도 되는데 그 정도로 죽 오르막길이다. 그래서 40분 정도 달리고 난 후에 이 마지막 오르막길을 달리면 다리가 끊어질 것 같은, 등을 후려갈기는 고통이 밀려오는데 민트 라테를 마시는 곳까지 일단 달리고 나면 기분은 상쾌하다. 통쾌한 고통이 주는 기분 좋음은 민트 라테를 마시며 죽 이어진다. 편의점 야외 테라스에 건방진 자세로 앉아서 민트 라테를 쪽쪽 빨면서 멍하게 있다 보면 의식의 흐름이 민트맛라면까지 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어쩐지 빠른 시일 내에 민트맛라면을 먹어 볼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라면에 새우깡도 넣어서 먹어보고, 초콜릿도 넣어서 먹어봤는데 꽤나 맛이 좋았기 때문에 아마도 먹지 않을까. 만약 해 먹게 된다면 여기에 당당하게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민트 라테를 쪽쪽 빨아 마시고 있으니 이어폰으로 '김성호의 회상'이 나온다. 김성호의 회상은 제목이 회상이 아니라 '김성호의 회상'이다. 그러니까 김성호의 김성호의 회상이다. 이 노래는 생각해보면 지치지 않고 꾸준하게 달려서 아직도 여기저기의 라디오에서 나오고 있다. 어쩌면 터보의 회상보다 이 김성호의 회상이 더 많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제목을 그냥 회상으로 짓지 않고 김성호의 회상으로 지어서 이상한데 이상하지 않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이런 노래 제목도 아마 처음이 아닐까 싶다. 처음이라 실수로 이렇게 지었는데 그게 그냥 하나의 제목이 되어 굳건하게 박혀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처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처음부터 영차영차 착착 잘 해내고 다 이겨내는 사람이라면 좀 무서울지도 모르겠다. 윤여정이 그랬는데, 나도 이 나이가 처음이라 실수가 많다고. 그래서 먹을 만큼 먹은 사람이 그것도 못해?라는 건 없는 것 같다. 그런 건 없다. 우리는 모두 청소년기를 끓는 물처럼 지냈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 청소년들을 보면 또 이해하지 못한다. 꼰대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인간을 한 권의 책으로 담는다거나,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는데 그것도 몰라? 하는 건 있을 수 없다. 


바람이 몹시 불던 날이었지,라고 김성호가 부르는 김성호의 회상은 시작한다. 바람이 없다고 하면 이 세계는 어떻게 될까. 해류라든가, 그런 것들이 막 이상해지고 마땅해져야 할 썰물, 밀물 이런 것들도 엉망이 되고 그에 따라 바닷 생물이 마구 죽어 나가고 뭐 그렇게 될까. 의식의 흐름대로 막 쓰다 보면 이렇게 조깅에서 민트 라테를 지나 지구 멸망까지 오게 된다. 의식의 흐름이란 때로는, 가끔 재미있는 생각의 바닷속을 거닐게 한다. 그래도 민트맛라면은 좀 그런가. 옆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데 맛이 정말 궁금하다. 어려운 것도 아닌데 궁금하니까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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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의 책 표지가 원래 있는 걸로 아는데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다. 뒤표지는 우물 밑바닥처럼 아무것도 알 수 없어서 하루키 그림을 하나 삽입을 했다. 책 내용은 소설을 왜 쓰는가, 라는 물음으로부터 시작해서 소설을 쓰기 위해서 가져야 할 정신이나 마음 같은 의미적인 부분부터 여타 에세이처럼 창조하는 인간은 무한 반복에서 나온다, 같은, 소설을 쓰는 것에 대한 전반적인 환경을 잘 이야기하고 있다.


뭐 그렇고, 하루키의 가장 최근 장편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는 일본의 대형서점 매대에서 대체로 빠져있다. 나중에 ‘기사단장 죽이기’를 리뷰할 때 한 번 이야기를 하겠지만 그 장편 1권 ‘현현하는 이데아’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그렇습니다. 이른바 난장 학살사건입니다. 일본군과 격렬한 전투 끝에 난징 시내를 점거하고 거기에서 대량의 살인이 저질러졌습니다. 전투와 관련된 살인이 있었고 전투가 끝난 뒤의 살인이 있었습니다. 일본군에게는 포로를 관리할 여유가 없었기에 항복한 병사나 시민 태반을 살해해버렸습니다. 정확히 몇 명이 살해되었는지 세부적인 것은 역사학자 사이에서도 이론이 있습니다만. 어쨌든 엄청난 수의 시민이 전투에 말려들어 살해된 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입니다. 중국인 사망자수를 40만 명이라고 하는 설도 있었고 10만 명이라고 하는 설도 있습니다. 그러나 40만 명과 10만 명의 사이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요?


이 구절 때문에 일본은 하루키를 아주 안 좋은, 나쁜, 일본에 저항하는 그런 작가로 치부하는 경향이 짙게 되어 버렸다. 그래서 대형 서점의 매대에 ‘기사단장 죽이기’가 없는 경우가 많다. 잠깐 일본과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서 짧게 이야기를 하면.


일본에서 최초의 복어 전문점이 있는 곳이 시모노세키인데 이 복어 전문점을 ‘춘범루’라고 한다. 이 춘범루에서 시모노세키 조약이 체결된다. 우리나라의 동학혁명을 진압하려고 청. 일이 대립하면서 시모노세키 조약이 체결되었는데,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한 놈이 이토 히로부미고 이토 히로부미의 스승이 ‘요시다 쇼인’이며 이 자가 독도는 일본 땅이라 우긴 최초의 사람이다. 그리고 ‘일군만민론’의 창시자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처럼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일군만민론은 왕이 있고 그 밑의 국민이 평등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왕을 욕하는 것은 금지되어있다. 이 요시다 쇼인의 제자 중에는 ‘오사마 요시사마’가 있는데 1893년 새벽 4시에 잠들어 있는 고종을 깨워 협박으로 동학군을 잡는 전시 작전권을 일본으로 넘겼고, 안중근 의사에게 사형을 선고한 인간이다. 이 인간이 아베 신조의 고조할아버지이며 아베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바로 이 모든 인간들의 스승인 ‘요시다 쇼인’이다.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를 해보자. 일본은 원래 300여 개의 소국가로 이루어져 있었다. 우리와 다르게 힘 있는 자가 작은 국위를 가졌다. 왕좌의 게임처럼. 그중에서 현 야마구치, 예전에는 조슈 번이라는 곳, 기타큐슈 그 일대에 왜구가 살았다. 왜구가 살고 있는 그곳은 화산지대라 다른 지역에 비해 논밭이 드물었다. 배가 고프니까 아침에 눈을 뜨면 노략질을 했는데 그곳에서 부산이 가까웠으니 자주 침략을 했다. 거기서 부산까지는 200킬로미터, 돈 많은 도쿄까지는 500킬로미터였기 때문에 가까운 조선으로 쳐들어왔고 임진왜란 출병이 그곳에서 이루어졌다. 


그곳에서 아침에 해가 쨍하게 뜨면 조선의 부산이 보였다. 하지만 부산에서는 그곳이 보이지 않았다. 해가 뜨면 그곳은 깜깜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조선'이라는 말은 아침이 선명한 나라다. 현재 야마구치 사람들은 왜구의 후손들인 것이다. 그 야마구치의 유명한 포구가 시모노세키다. 지금도 부산에서 페리가 그곳으로 간다. 거기가 복어를 처음으로 먹었던 곳이라 한다. 일본과 한국은 오랫동안 독 때문에 복어를 먹지 못했다. 일본에서 복어를 먹지 못하게 한 사람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였다. 


조선으로 침략해야 하는 일본 병사들이 와글와글 몰려 있으니 배가 고픈 것이다. 복어는 지느러미가 짧아서 헤엄을 친다기보다 물 위에 떠다니기 때문에 병사들이 단백질 섭취를 위해 수월하게 잡히는 복어를 먹었다. 하지만 복어를 먹고 죽으니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복어 금지령을 내렸다. 이것들아! 복어를 먹고 죽지 말고 조선으로 가서 죽어라고 한 인물이 도요토미 히데요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후에 복어를 먹게 한 사람이, 복어를 먹을 수 있게 한 사람이 이토 히로부미였다.


아무튼 이토 히로부미가 시모노세키 복어 전문점 춘범루에서 조약을 체결한다. 자신이 개발한 복어 독을 제거하는 기술로 복어의 요리를 먹으며 청일전쟁의 결과물인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한 것이다. 지금은 춘범루가 박물관이 되었다. 그러니까 야마구치의 시모노세키 그 동네를 가면 한국에 쳐들어 온 일본 총독들이 그곳에 다 모여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인간들, 왜구의 총독들이 스승으로 삼는 사람이 요시다 쇼인이다. 요시다 쇼인은 29살에 죽었다. 이 요시다 쇼인의 제자가 도요토미 히데요시고 그 제자가 이토 히로부미다. 최초의 임진왜란이 출범한 곳이 여기이며 이후 근대 한국까지 꾸준하게 침략을 하는 곳이기도 하며 그곳 출신 왜구들이 한국을 침략한 것이다.


그리고 현 가고시마, 구 사쓰마의 사람들이 야마구치 사람들과 동맹을 맺는데 이를 사초 동맹이라 하고 이들이 메이지유신을 일으킨다. 일본의 왕비는 가고시마와 야마구치 이 두 지역의 출신만이 왕비가 된다. 즉 일본의 통치가 여기 사람들이 다 하는 것이다. 이 사람들에게서 시작하여 밑으로 죽 이어져 자민당까지 오게 된다. 일본은 헌법이 없다. 없다기보다 한국은 국민이 헌법을 만든 반면 일본은 맥아더가 2년 동안 일본을 통치하면서 만들어 놓은 법이 일본의 현재 헌법이다. 이 헌법을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이 바로 아베 신조다. 아베가 바꾸고 싶은 것이 헌법 9조인데 평화 헌법 조항을 바꾸려고 한다. 헌법 9조에 '전쟁할 수 없다'가 있는데 이것을 고치려고 하는 것이다.


아베의 야망은 요시다 쇼인의 망령으로부터 시작하여 도요토미 히데요시로 히토 히로부미에서 오시마 요시사마까지 내려와서 아베까지 온 것이다. 아베는 55년 창당한 자민당이 일본을 거머쥐고 나아가서는 아시아를 먹으려는 야망이 있다. 올림픽을 개최하여 세계의 이목과 세계의 사람들과 세계의 돈을 일본으로, 정확하게 도쿄로 집중시키려고 했다. 그리고 한국을 배척하여 일본 자국민으로 하여금 혐한 감정을 부추겼고 한국의 경제를 말살시키려 했고 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먹으려 했고 가장 긴 총리를 하면서 무엇보다 자민당이 100년 이상 일본을 통치하려고 했다. 하지만 한국이 일본의 도움 없이도 경제가 무너지지 않았고 코로나 때문에 올림픽을 개최하지 못해서 세기말적인 적자가 일본에 났다. 그 후로 아베는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지지율이 하락하더니 추락했고 더 이상 아베라는 이름을 걸고 총리를 해봐야 일본 국민들에게 외면받을 뿐이었다. 아베가 궤양성 대장염으로 2006년도에도 일 년밖에 총리를 하지 못했다. 그 병이 도져서 이번에도 총리를 사퇴하게 되었다. 


시모노세키 조약 후에 삼국간섭 중 라오뚱 반도를 물려주는 과정이 이뤄지는데 이전에 일본이 뤼순(여순)으로 쳐들어간다. 뤼순은 평양에서 톈진 쪽으로 보면 죽 비어져 나온 요동반도 끝자락의 도시인데 한 도시의 병사와 민간인들, 약 2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전부 싹 학살을 했다. 2만 명을 전부 죽이면서 36명은 살렸는데 그들은 일본군을 도왔기에 살려두었고 나머지, 아기들, 여자 할 것 없이 전부 몰살했다. 중국에서는 이를 학살이라 하지 않고 뤼순 도살이라 한다. 이 대학살이 근대 군국주의 대학살의 시초가 되었다.

하루키는 2015년 교토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사죄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과거 일본의 침략 사실을 인정하고 상대국이 됐다고 할 때까지 사죄해야 한다고 했다. 총보다 펜이 더 강하다고, 이렇게 할 말을 하는 작가가 있는 일본은 하루키를 존경해야 할 텐데 업신여기고 있다니 일본은 정말 요사스러운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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좐 아저씨나 죠의 가족들에게 김치를 새로 하면 한 두 포기(왜 배추나 김치는 이런 단위를 쓸까, 한 장, 두 장도 아니고 한 개, 두 개도 아니고,,, 그러고 생각해보니 한 개, 두 개나 한 장, 두 장도 계속 발음하니 뭐가 더 어울리고 덜 어울리는지 알 수가 없게 된다. 한 명, 두 명이 아닌 게 어딘가) 정도를 갖다 주는데 외국인들은 김치를 접시에 담으면 신기하게도 김치만 먹는다.


우리는 김치는 밥상의 옵서버라 최소 밥과 함께 김치를 먹거나 라면 내지는 국이나 찌개에 김치를 함께 먹지 김치만 먹게 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외국인들은 꼭 김치를 앞에 두고 김치만 야금야금 오물오물 씹어 먹는다. 그리고 맥주를 들이켠다. 거참 알 수 없다. 그런데 그렇게 먹게 되면 그렇게 먹고 싶어서 그렇게 먹게 된다.


양념이 많이 발린 배춧잎 부분을 비교적 양념이 덜 묻은 아삭한 배추 속에 넣어 같이 먹는다. 김치만 오물오물 씹어 먹고 맥주를 한 모금 마신다. 그렇게 몇 번 먹다 보면 (김치를 새로 하게 되면) 죽 그렇게 먹게 된다. 김치의 맛을 제대로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배추가 가지고 있는 단단한 아삭함과 김치가 지니고 있는 양념 버무림의 맛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김치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밥을 먹을 때 김치는 잘 먹지 않는다. 특히 식당 김치는 데코레이션 수준이다. 그런데 김치를 새로 해서 이렇게 놓으면 맥주와 함께 천천히 씹어 먹다 보면 외국인들처럼 반 포기를, 접시 위에 올라온 김치를 거의 다 먹에 된다. 그리고 제대로 김치의 맛에 빠진다. 며칠 전에는 새로 한 김치와 함께 와인을 곁들였다. 김치는 정말 여러 술에 다 어울린다. 




또 이렇게 밥에 올려서 먹게 되면 역시 맛있다. 김치란 정말 내 주위에 있는 소설책처럼 당연하게도 옆에 있어야 하는 것인데 무심하게 지나치다가 또 안 보이면 보고 싶어 지는 뭐 그런 음식인 것이다. 이렇게 밥과 함께 먹게 되면 영화 똥개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똥개가 김치를 담그고 있는데 대문으로 두 명이 찾아온다.


똥개: 뭐고?

대뜩이: 니가 똥개가 난 대뜩이다. 니가 선배들이 개 잡아 뭇따꼬 선배들을 개패듯이 패뿟는거 맞나?

똥개: 뭐어?

뚱띠: 니가 하도 잘 친다캐서 실력의 자궁을 겨뤄보러 왔따. 

똥개: 나는 싸움 안 한다. 

대뜩이: 니는 그래 개판치고도 아버지가 짜바리라가 징역 안 갔다메. 

똥개: 뭐라고?

뚱띠: 니 엠제이케이라고 아나?

똥개: 그기 뭔데?

뚱띠: 니 맨크로 학교 댕기다가 짤린 아들끼리 맹그른 순수청년봉사단체다. 니가 지면 무조건 가입해야 되고 이기믄 안해도 된다. 우짤끼꼬. 

똥개: 느그,,, 점심 무긋나. 

뚱띠: (바로) 아직 안 뭇따. 와?

똥개: 그라믄 김치에다 밥 좀 묵고 하자. 어차피 싸움도 힘이 있으야 할 꺼 아이가. 

[땀 뻘뻘 흘리며 김치먹방]

똥개: 원래 이름이 대뜩이가. 

대뜩: 아니 대득이다 한대득. 그래도 그냥 대뜩이가 편하다. 

똥개: 엠제이케이? 거 뭔 뜻인데. 

대뜩: 으응 잉그리 약자다. 밀양 주니어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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