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날의 오월은 늘 우리를 설레게 했다. 집 마당에 햇살이 내려앉아서 푸릇푸릇한 화단 속 꽃들을 보게 되었다. 어째서 꽃잎은 일정한 패턴으로 자라 있을까. 그건 몹시 아름답고 유려한 메커니즘 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간격이 비슷하며 자로 잰듯한 모양을 유지할까. 너무나 신기했다. 세상의 신기한 것들은 멀리 있지 않았다. 신기한 것들은 바로 내 옆에 있었다. 나의 주위에, 나의 가까이 신기한 것들은 잔뜩 있었다.


빨간색의 딸기 역시 신기했다. 붉은색이나 뻘건색이 아니라 빨간색이다. 빨강으로 옷을 입은 딸기는 여러 과일 중 가장 예쁘고 가장 맛있는 과일에 속한다.


딸기는 과일일까 채소일까. 딸기는 장미과에 속하는 과일이라 과채소라고 한다. 정확하게는 식물계다. 외형은 과일이지만 열매채소라는 것이다. 역시 신기하다면 신기한 일이다. 우리가 먹는 딸기의 부분은 빨간색이지만 딸기는 밑의 부분에 꽃잎처럼 달린 부분은 빨간색과 보색을 이루는 초록색이다.


이건 딸기와는 다른 이야기지만 1년생 잡초, 1년 동안만 자라는 잡초가 벼라고 한다. 쌀은 잡초에서 나오는 아주 신기한 일들이 지금까지 펼쳐지고 있었다. 이 부분은 아마 총균쇠에 자세하게 나와 있는 걸로 안다.


딸기는 아무 때나 먹어도 맛있다. 딸기는 빵이나 케이크에도 잘 어울린다. 토마토나 사과는 케이크에 올라가지 않지만 딸기는 잘 어울린다. 사과는 조각을 내면 변색 때문에 그런지 변색이 안 되는 키위도 케이크와 어울린다. 케이크 위에 딸기가 가득 박힌 케이크도 있다.


나의 외가에서 개울에 발 담그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다가 시원한 딸기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나 어릴 때는 딸기도 고급과일이었다. 자주 먹을 수 있는 딸기가 아니었다. 바나나도 고급과일이었던 적이 있었지만 딸기도 그랬다. 부모님은 아이들에게 딸기를 먹이고 싶었다. 딸기는 맛있기도 했지만 아이들이 딸기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게 그저 행복했던 부모님. 부모님은 딸기를 드시질 않았다.


그런 딸기가 언젠가부터 소쿠리에 가득 담겨 여기저기서 팔고 있다. 어딜 가나 딸기를 볼 수 있고 먹을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매혹적인 빨간색을 지닌 딸기지만 잘 먹지 않게 된다. 비싸고 먹기 힘들 때는 먹고 싶지만 널려 있을 땐 또 잘 먹지 않게 된다.


삐삐밴드가 [딸기가 좋아]를 불렀었다. 영상을 찾아보니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공연을 하며 딸기가 좋아,를 부르더라. 그 밑에 누가 댓글을 달았다. 나이 먹고 사람이 됐으면 어찌나 했는데 아직 그대로라 다행이라고. 삐삐밴드의 이윤정이 변한다면 이 세계도 끝장이다. 세상에는 신기한 것들이 많다. 정말 신기한 것은 나의 주위에 있다.


삐삐밴드의 저 미침을 들어보자 https://youtu.be/GCHdUcvLj1g?si=mpvI9etnmG-2Bz6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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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자는 예전 윌 스미스의 아이로봇의 이야기에 퍼시픽 림, 마이너리티 리포트, 터미네이터 외 여타 인공지능 영화들이 잔뜩 비빔밥처럼 버무려 있는 영화다.

미래에 인공지능의 권위자인 엄마가 인공지능 할란(시무 리우)에게 당하는 걸 목격함으로 인공지능을 극혐 한다. 아이로봇과 비슷하다. 28년 후 어른이 된 아틀라스는 할란의 인공지능 부대에게 공격을 받고 고립된다.

아틀라스는 퍼시픽림의 소규모 같은 이족보행 로봇에 탑승을 하는데 탑승한 인공지능 로봇의 이름은 스미스인데 스미스는 주인과 뇌를 연동해야만 고립에서 벗어나서 힐린의 공격에 대비할 수 있다 하지만 아틀라스는 인공지능 극혐. 엄마의 충격 때문에 트라우마를 겪는 아틀라스는 인공지능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래서 두 시간 중에 한 시간 가까이 인공지능 스미스와 대립하면서 징징 거리는 모습이 계속 나오다가 결국 연동해서 인류를 멸망시키려는 할란을 무찌른다는 이야기다. 아무튼 골자는 아이로봇과 비슷한.

이런 인공지능의 무서움을 말하는 영화는 무수하게 많이 나왔다. 그래서 이린 영화의 관권은 얼마나 돈을 때려 박아서 볼거리가 많으냐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영화는 확실하게 미션 임파서블만큼 자본이 많이 들어간 게 눈에 보인다. 거기에 제이로가 독기를 품고 촬영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열심히 홍보 중이다. 아마 배트맨과 슬슬 불화설이 또 붉어져 나와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제이로는 나이는 먹지만 늙지 않는 할리우드 대표 여배우로 이번 영화에서도 그걸 증명하려는지 얼굴 클로즈업 장면이 많다. 굉장히 타이트하게 얼굴을 잡는다. 피부고 굉장히 좋고 치아는 말해 뭐 해. 근데 날고 기는 제이로의 얼굴에서도 늙은 티가 이번 영화에서는 난다.

영화 속 인공지능이 팩폭을 날린다. 오랜만에 아틀라스 너 보니 너도 이제 늙었네 같은 대사를 한다. 이 대사는 사람들이 제이로에게 거는 기대가 무너지는 것에 대한 방어기저로 나온 대사일까. 그때 영화 속 아틀라스의 답변이 그걸 말해주는 것 같다.

아틀라스와 할란의 마지막 용암 같은 곳에서의 대결 장면은 스타워즈에서 점점 다스베이더가 되어 가는 아나킨과 스승인 오비완 케노비의 결투를 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그러다 보면 이 영화는 여러 인공지능 영화가 여기저기서 막 보인다.

전투장면은 엣지 오브 투모로우와 알리타 그리고 램 페이지 같은 영화 장면이 떠오른다. 그리고 인공지능을 극혐 하다가 인공지능과 연동 후 인공지능과 관계 맺기를 하며 티키타카 하는 모습은 아무래도 ‘허’ 그녀가 떠오른다. 이런 모든 것을 보면 예전의 아이로봇은 정말 잘 만들기도 했고 재미있는 영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틀라스는 나는 별로였지만 빵빵 터지는 그래픽 잔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볼만한 영화 ‘아틀라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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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탄가스에 중독이 되면, 가치체계의 붕괴, 니콜라이 고골의 '코' 같은 세계, 광신도의 신에 대한 열정, 비 온 뒤 바다의 혼탁함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정신이 빠져나간다. 이계와 현실의 분간도 어렵다. 가난이 창피하지는 않으나 조금 불편할 뿐이라고 누가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보통 불편한 게 아니었다.     

            

 연탄가스를 마시면 몽롱하고 모호한 엔야의 노래가 늘 따라다니는 기분이었다. 안개가 껴 있는, 그 속에서 발이 점점 사라져 가는 기분이 드는 느낌이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연탄가스에 중독이 되어 개근상을 받지 못했다. 기와집은 연탄아궁이로 난방을 하는데 매년 장판을 거둬내고 수리를 하는데 연탄가스라는 놈은 비현실의 이종처럼 여지만 보이면 틈을 벌리고 잘도 빠져나와 잠을 자고 있는 우리 가족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매년 겨울이 되면 연탄가스에 중독이 되어 응급실에 입원하게 되었다. 이 죽일 놈의 연탄가스, 벗어날 수 없는 연탄가스는 다 큰 동생도 정신을 잃게 만들고, 동생을 업고 병원으로 달리던 아버지가 동생을 내려놓고 숨을 헐떡거렸다. 아버지도 엄마도 모두 연탄가스를 마셨는데 그들은 그저 어른이라 연탄가스 중독이 괜찮은 것일까. 뇌에서 어떤 서번트 물질이 흘러나오기에 연탄가스마저 물리치는 것일까. 하지만 두 사람은 단지 견디고 있을 뿐이었다.         

        

 연탄가스는 힘 빠진 괄약근에서 새어 나오는 방귀처럼 수리한 아궁이에서 엑토플라즘처럼 빠져나와 무거운 여귀처럼 낮게 돌아다녔다.      

            

 추워지는 날씨에 득재의 방에서 자주 잠을 잔 이유는 학교에서 가깝기도 했지만 득재의 방은 보일러였다. 엄마도 득재의 방에서 잠을 잔다고 하면 아무 소리를 하지 않았다. 득재가 2학년 겨울방학에는 울릉도 집으로 가지 않아서 우리는 몽땅 득재의 방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겨울을 났다. 득재의 방은 보일러 덕분에 아랫목이 없고 대부분, 골고루 따뜻했다. 상후를 제외하고 대부분 연탄으로 난방을 하는 집에 살았다.     

            

 안도현 시인의 '연탄재'를 보며 인간을 위해 한껏 타오르는 연탄이 좋아야 했지만 우리는 연탄이 싫었다. 그 압도적인 냄새는 이미 얼굴을 으, 이렇게 만들었다.       

          

 득재의 방은 너무 뜨끈뜨끈해서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기철이는 엉덩이에 화상을 입기도 했다. 지갑에 들어있던 모든 것이 우글우글하게 일그러졌다. 2학년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 날, 붉은빛과 반짝이는 불빛과 녹색의 털실 같은 것을 보며 나는 9살짜리 오빠와 5살짜리 여동생의 작은 이야기를 생각했다.   


       


#### 

오빠, 저기 반짝이는 전구는 따뜻해?     

          

 글쎄, 아마도 따뜻하지 않을까.     

          

 우리 집엔 왜 트리가 없어?   

            

 작은 남자아이는 자신보다 더 작은, 허리밖에 오지 않는 동생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창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들여다본 실내는 따뜻하고 행복한 모습이었다.              

 

 남자아이와 여동생은 창 안의 트리를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어른 키만 한 트리에는 반짝이는 전구가 쉴 새 없이 깜빡 깜빡였고 네 명의 가족은 트리 옆의 식탁에 앉아서 케이크와 만두를 먹고 있었다. 크고 따뜻한 만두를 그 집 아이들이 후후 불어서 맛있게 먹었다. 엄마가 뜨겁다며 식혀주었다. 아이들은 웃었다. 부러웠다. 행복해 보였다.     

          

 오빠, 나도 저거 먹고 싶어.         

      

 응, 내년엔 집에 크리스마스트리도 하고 케이크하고 만두도 먹자.      

         

 정말? 와 신난다.        

       

 허리까지밖에 오지 않는 동생도 오빠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지켜지지 못할 거라는 것을. 그렇지만 입으로 에이 또 거짓말,라고 말해 버리고 나면 작은 소망까지 전부 부서져 버릴 것만 같았다.       

        

 그 집에는 처음 들어보는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그 노래는 너무 따뜻하게 들리고 좋아서 절대 잊지 못할 것 같았다. 남자아이는 슬리퍼를 신고 있었고 동생인 여자아이는 외투가 얇았다. 두 아이는 굽은 등으로 창가에 붙어서 여동생은 케이크를 쳐다봤고 남자아이는 왕만두를 쳐다보았다. 창 안의 아름답고도 영화 같은 모습을 보느라 추위도 몰랐다. 발갛게 변해버린 코끝으로 하얀 눈의 결정체가 내려앉아서 녹았다.      

         

 야아, 누이다 오바.       

        

 동생의 입은 얼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오빠는 자신의 외투를 벗어서 동생의 어깨를 덮어 주었다.        

       

 눈 내린다 오빠, 아빠는 언제 와?        

       

 이제 곧.        

       

 오빠, 아빠 오면은... 까지 말하고 동생은 기침을 한 번 하고 웃었고 오빠는 동생의 코를 자신의 옷소매로 닦아 주었다. 어린 남매는 남몰래 가슴 한구석에 겨울의 꿈을 간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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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4에서 일을 냈다. 이 영화는 전혀 무서운 영화가 아닌데 보는 내내 무섭고 전율이 느껴졌다. 아주 공포스럽다. 픽션인데 무척 현실적이다. 논픽션 같은 화면과 구성 그리고 곧 이런 세상이 올 것 같은 불안에 더 무섭다.

이 영화는 언제일지 모르나 미국 전역에 큰 내전이 일어난다. 중임제의 미국 대통령이 3선의 독재와 함께 백인우월을 내세워 인종차별을 하면서 민병대인 서부군이 반란을 하며 내전이 일어난다. 미국 내 모든 도시가 고립되고 동시에 약탈과 함께 타락되어 간다.

정부군과 서부군이 도심지에서 전쟁을 치르고 그 사이를 누비며 보도 사진을 담는 프레스 종군 사진기자들의 이야기다. 퓰리처상까지 탄 베테랑 기자 리(커스틴 던스턴)의 일행에 병아리 사진기자 제시가 여정에 따라붙는다. 위싱턴으로 가는 도중에 내전 상황을 카메라에 담는데 그 영상이 마치 다큐를 보는 것처럼 아주 생생하고 너무나 잔인하고 충격적이다.

프레스 보도기자들은 내전 속에서 총질을 하는 중앙에서 헬멧을 쓰고 종군기자 조끼를 입고 전시 상황을 사진으로 담는다. 모든 카메라는 필름카메라다. 미국 내 모든 기지국이 파괴되면 휴대전화는 전혀 무용지물이고 디지털 역시 무쓸모가 된다.

종군기자는 어느 쪽이든 절대 총을 겨누지도 쏘지도 않지만 전쟁이라는 건 그 모든 것들을 무너뜨린다. 영화는 내전으로 망가져버린 미국을 보여준다. 길거리에 버려진 차들과 불타버린 집들, 구호품을 향해 끝없이 걷는 사람들. 살려달라는 군인에게 사정없이 총격을 가하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으며 제시는 점점 충격이 커져간다.

그러다가 지친 동료들의 얼굴을 담는 제시의 사진을 보여준다. 이런 사진은 메리 엘렌 마크의 사진을 닮았다. 흑백으로 메리 엘린 마크의 뷰에 들어온 사람들의 표정에는 체념과 포기와 희망이 동시에 스며들어 있다. 전쟁은 모든 것들을 앗아간다. 총알이 난무하는 곳이지만 리의 눈에 하늘하늘 꽃들이 들어온다.

덩케르크였나 전쟁 중에도 자연은, 계절은 바뀌고 풀은 봄이 되면 땅을 뚫고 올라오고 꽃을 피운다. 이 영화를 보면 전쟁장면은 뉴스에서 보는 것처럼 너무나 현실적이라 무서운데 배경 음악이 랩이거나 화면과는 다르게 너무 좋은 곡이 흘러 비현실적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더 무섭게 다가온다.

지금 당장 전쟁이 일어나서 휴지 하나만 세상에서 없어져도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고 말 것이다. 지금까지 휴지로 하던 걸 다른 물건으로 대처해야 한다. 카카오톡 몇 시간 먹통이 되어도 마비가 되고 사람들은 불편을 호소했고 서로 으르렁 거렸다.

영화와 상관없지만 내전이 일어나면 동물원을 폭파시켜야 한다. 허기진 맹수들이 전시에 동물원을 나오게 되면 걷잡을 수 없다.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들도 버려지면 더 이상 강아지가 아니라 독기를 품은 사나운 동물이 된다.

영화에 돈을 투자해서 만든다면 이렇게 만들어야 한다는 걸 잘 보여준다. 거짓말 같은데 보다 보면 지금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 현실이구나 같은 착각이 들고 그러다 보면 진짜 현실 같아서 무섭다. 공포가 있다면 바로 이런 게 공포가 아닐까.

베테랑 리는 트라우마 때문에 전시 중 해야 할 때 움직이지 못하고, 병아리 기자 제시는 총알 사이로 다니며 사진을 담는다. 나이가 많아서 이동이 불가능할 것 같았던 새미는 세 사람을 군인들에게서 구해주고 총을 맞는다. 잔인한 군인으로 제시 플레먼스가 나온다. 부부가 한 작품에 나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영화 마지막 2, 30분은 정말 긴박감이 극도에 달한다. 추천하는 영화 ‘시빌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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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슈바빙에 앉아서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주인공 ‘나사라’는 미대생 3학년에 나이트클럽에서 댄서로 일을 하며 성적 취향도 독특했다. 사라는 키도 컸고 미인이었다. 사라를 제외한 가족이 미국으로 가버렸기에 소설 속, 사라는 모두가 바라는 이상형에 가까웠다. 게다가 대범하여 한지섭 교수가 강의시간에 담배를 피워도 된다고 하자 사라는 담배를 피워 버린다. 환호성은 책 속과 밖에서 동시에 들렸다.

“한지섭 교수가 마광수 자신 같지?”라고 득재가 말했다.

“그리고 사라는 마광수가 바라는 어떤 뮤즈이고 말이야.” 개구리가 말했다. 개구리가 말을 하면 득재가 유순한 눈동자로 개구리를 쳐다봤다.

즐거운 사라는 너도 나도 돌려봐서 책이 너덜너덜했다. 테이프로 덧 입혀야 했고 세세한 묘사는 꼭 영상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즐거운 사라는 출판금지가 되었다. 책을 가지고 있던 우리는 즐거운 사라를 소중하게 생각했다. 우리 모두가 좋아하고 계속 읽게 되는 책은 드물었다. 우리는 잘 몰랐지만 마광수는 즐거운 사라를 썼다는 이유로 정부 직속 산하 기관에 탄압을 받고 잡혀간 모양이었다.

“마광수는 어쩌면 사랑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을지도 몰라. 사랑을 못 해본 사람이 사랑에 대해서 더 애가 타는 소설을 적어내지”라고 슈바빙의 주인 누나가 말했다. 우리는 마광수에 대해서 슈바빙 주인 누나에게 더 물었다.

“마광수는 윤동주를 연구했던 사람이야. 평생 윤동주를 연구했지. 그러다 하루아침에 즐거운 사라를 적었고 그 여파는 실로 컸어.”

슈바빙 주인 누나는 윤동주를 연구했던 마광수 교수는 멋진 사람이라고 했다. 개구리를 비롯해 기철이, 상후와 효상 그리고 득재는 슈바빙에 둘러앉아 즐거운 사라에 대해서 끝도 없이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런데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와는 다른 생각에 빠져있었다.

편지로 연락을 주고받는 미국의 그녀 이름이 사라였다. 나에게 있어 사라라는 이름은 많은 의미가 있었다. 집에는 몇 년 동안 그녀에게 받은 편지가 수 백 통이 있었다. 슈바빙에 일찍 가서 편지를 적고 있으면 슈바빙 주인 누나가 그녀에 대해서 묻곤 했다. 그러면 나는 나도 모르는 새 주절주절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에게 흐르는 분위기, 편지로 받은 그녀의 묘한 느낌을 주인 누나에게 잘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게 참 이상했다. 입으로 무엇인가 말을 하려고 하면 어쩐지 모호해지고 그녀가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설명할 수 없어서 더 멋진 거야. 너 혼자 있을 땐 빛을 발하지 못하지만 편지를 적고 있을 땐 너에게 빛 같은 것이 느껴져”라고 슈바빙 누나가 말했다. 그때 기분이 살짝 우쭐해졌다.

그리고 졸업을 하고 스무 살의 11월에 그녀가 한국으로 왔다. 그때, 사랑은 하기 이전에 빠지는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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