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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깅을 할 때 당연하지만 음악을 들으며 달리게 된다. (그런데 여름에는 옷이 얇아서 음악 듣는 기기가 무거워 음악은 듣지 않고 그저 달리기만 한다.) 달리다가 힘들면 벤치에 앉아서 쉬는데 그때는 볼륨을 좀 더 높여서 음악을 듣는다. 조깅을 할 때에는 아무래도 자전거도, 앞에서 오는 사람도, 거리에 나오면 자동차도, 그 모든 소리를 무시하고 음악을 크게 들으며 달릴 수만은 없다. 그래서 잠시 앉아서 쉴 때에는 볼륨을 높여 음악을 좀 듣는다. 이어폰을 끼고 음향이 빵빵하게 나오면 아아 음악을 듣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깊게 빠져든다.


요즘처럼 일교차가 커서 아침저녁으로는 날씨가 쌀쌀맞은 날에는 달리면서 흘린 땀이 식을 때 자칫 감기가 걸릴 수 있기에 아직 두꺼운 옷을 입고 있고 그 속에 아이팟 클래식을 넣어 놓고 음악을 들으며 달리고 있다. 그러면 타인에게는 휴대폰으로 음악을 듣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간혹 이어폰 줄이 거추장스러운데 왜 무선 이어폰을 사용하지 않느냐고 하는 사람이 있다. 또 누군가는-애플의 맹신자- 아직 유선 이어폰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뭔가 좀 뒤처진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야기를 해보면 그런 뉘앙스로 말을 하는데 그럴 때면 나는 보통 원펀맨의 사이타마 같은 눈이 되어 딴짓을 하거나 다른 곳을 보거나 하품을 해버린다. 아함.

 

내가 유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 이유는 아이팟 클래식으로 음악을 줄곧 듣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아이팟 클래식은 유선 이어폰으로만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물론 도킹 시스템의 스피커(이건 참 가지고 싶지만)가 있다면 말이 달라지지만 그건 이동이 불가능하다. 이동을 하면서 아이팟 클래식으로 음악을 들으려면 유선 이어폰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주머니에 들어가 있어서 기기가 보이지 않고 유선 이어폰을 끼고 있으면 입을 대는 사람이 꼭 있기 마련이다.


나는 아직도 미니 카세트 플레이어로 카세트테이프의 음악을 듣고 있으니 아이팟 클래식은 꽤나 발전한 음장 기기인 샘이다. 이 음장 기기, 아이팟 클래식도 한 십 년 정도 됐나? 아무튼 그동안 160기가나 되는 기기 속에 차곡차곡 음악이 쌓여 있어서 도대체 어떤 음악들이 들어있는지 나도 모를 지경이다. 3천 곡 정도가 들어있는데 아직도 이렇게 작은 기기에 이렇게나 많은 음악이 들어가다니, 와 대단하군, 하는 생각을 한다. 팝과 가요의 비율이 7대 3 정도로 들어있다. 시끄럽고 해비 한 메틀 곡들도 많고 재즈곡도 꽤 많이 들어있다. 나는 재즈는 잘 모르지만 듣다 보면 좋은 곡들이라는 걸 알게 된다.


간혹 아주 스탠더드 하고 끈적한 재즈곡들이 흐를 때가 있는데 이런 곡이 조깅할 때 나오면 힘들어진다. 달리는 패턴이 있는데 그만 엘라 피츠 제럴드나 빌리 헐리데이의 노래나 콜먼 호킨스의 바디 앤 소울 같은 곡이 흘러나오면 제동이 걸리고 만다. 음악은 너무 좋으나 아주 느리게 나오는 곡이라 이런 음악은 어딘가 창밖을 보는 곳에 앉아서 위스키를 탄 커피를 홀짝이며 들어야지 슉슉거리며 달리면서 듣기에는 무리가 있다.


만약 조깅을 하다가 콜먼 호킨스의 바디 앤 소울이 나오면 다른 곡으로 바꾸던지 해야 하는데 어떻던 주머니에서 아이팟을 꺼내야 하니 달리는 것을 멈추지는 않더라도 흐름은 끊기고 만다. 만약 반환점 정도를 돌 때 이런 재즈곡이 나온다면 위에서 말한 것처럼 벤치에 앉아 잠시 노래를 크게 듣는다. 바람을 맞으며 등에 흐른 땀을 축축하게 느끼며 듣는 재즈곡이 꽤 훌륭하게 느껴진다.


가끔 이렇게 앉아서 음악을 듣는데 마음의 한 부분을 건드리는 음악이 나올 때가 있다. 요컨대 조니 미첼의 노래라던가, 조용필의 노래라든가. 조니 미첼은 지구 상에서 가장 멋진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런 목소리로 뽑아내는 노래는 내 마음에 내려앉아 눈 앞에 보이는 풍경을 뭉크의 그림처럼 뒤틀어 버린다. 하늘은 음울한 색과 암울한 냄새로 가득 차고 바람은 불길한 소식을 전하는 것만 같다. 나는 왜 표도 나지 않고 고통스럽기만 한데 매일 이렇게 달리고 있을까, 나는 정말 어디로 가는 걸까. 같은 생각에 사로 잡히고 만다. 그런 와중에 조니 미첼의 노래를 들으면 눈물이 졸졸 흐른다. 참 기이한 일이다. 조용필의 노래는 가사가 연약한 마음의 부분을 건드린다. 노래에도 표정이 있고 깊이가 있고 넓이가 보인다. 노래의 마음이 보이는 것 같아서 조용필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뭉클하기까지 한다. 


https://youtu.be/tKQSlH-LLTQ Joni Mitchell - Both Sides Now 2000 lives


https://youtu.be/Mnp-m5ts-GM 바람의 노래 조용필(데뷔 30주년 콘서트)


하지만 마냥 앉아서 음악만 들을 수 없으니 일어나서 몸을 좀 풀고 다시 달려서 종착지로 간다. 이렇게 매일 달리다 보면 한 인간의 삶을 하루 만에 짧게 살아보는 느낌이다. 빠르게 달리고플 때는 파워레인저 만한 노래도 없다. 잘 나가는 해비 매틀 밴드는 파워레인저를 거의 다 불렀다. 미스터 빅, 메탈리카 등 폭발하면서 터지듯 연주와 노래가 이어진다. 그에 맞게 빠르게 달릴 수 있다. 폐 역시 터질 듯 펌프질을 한다. 한 번 들어볼까 얼마나 신나고 멋진 곡인지.


https://youtu.be/SH0t-adrTcA 극장판 오프닝 Mr.Big - Go Go Power Ranger


https://youtu.be/JC33Ak17ZAo Metallica - Go go Power Rangers (Official Video)


여러 휴대용 음장 기기가 있지만 아이팟 클래식 만한 게 없다. 나는 또 아이팟 클래식이 좋아서 이 기기에 관한 짤막한 소설을 써 보기도 했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431


아이팟 클래식은 HDD로 돌아가기 때문에 기잉 하는 소음이 발생하고 침수와 충격에 약하다. 그래서 고장이 나면 비용과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한다. 그럼에도 아직 잘 돌아가고 있으며 한 번 충전하면 휴대폰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배터리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아이팟 클래식은 유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어야 한다.


아이팟 클래식과 유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또 무선 이어폰이 대중화된 이 시기에 유선 이어폰을 바라보는 몇몇의 시선을 보면 사소한 일상적인 부분까지 무한 경쟁이 손을 뻗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경쟁이 없는 관계는 발전할 수 없으니 유치원, 학교에 들어가는 순간 우리는 경쟁을 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동생이나 언니, 누나와도 경쟁을 하기도 한다. 학교를 졸업하면 경쟁하기 위해 하루를 보내야 하는 사회에 돌입한다. 


모두가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한다.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이 없고 경쟁에 소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결과가 똑같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구조 자체가 공평하게 결과가 돌아가지 않게 되어 있다. 이렇게 복잡한 시스템은 실은 아주 단순한 구조이지만 우리는 어쩌다가 시스템에 종속되어 버리고 만다. 그러다 보면 매일 좌절하는 순간이 찾아오고 몇몇은 그 좌절에 그만 굴복하고 만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다 보니 사소한 일상적인 부분까지 무한경쟁이 들어와 버리게 된다. 무선 이어폰을 사용하지 않으면 나만 뒤떨어지지 않을까, 스마트와치의 사용빈도가 빈약함에도 나만 차고 있지 않으면 없어 보이는 게 아닐까. 스마트와치는 많은 종류가 있지만 이왕이면,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서 또 고가의 스마트워치를 구입하여 착용하게 된다.

스마트 워치 문구가 이렇다

 네이버 메인 페이지에 실린 스마트 워치의 문구는 이렇다. '조선시대 살아?'라는 문구가 아마도 조금씩 우리의 살을 파고 들어와 아프게 한다. 그리고 조금씩 파고든 경쟁심리는 시간이 지나 마음을 고통스럽게 할지도 모른다. 


매일 반복되는 오늘이라지만 모두가 오늘은 처음이기에 오늘 무슨 일이 나에게 일어날지, 또 회사에서 어떻게 일이 진행될지 알 수는 없다. 그리하여 계획대로 되지 않거나 경쟁에서 밀리게 되면 힘겨워한다. 하지만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하는 것만큼 일상을 평범하고 평온하게 보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없다고 생각된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라디오를 듣고, 운전을 하고, 책상에 앉아서 일을 하고, 비슷한 시간에 조깅을 하지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매일 다르고, 디제이의 텐션도 매일 격차가 있다. 운전을 하면서 보는 자동차나 날씨 역시 매일 다르다. 책상에 앉아서 일을 하다가 글을 피드에 올리면 어제 올린 글에서 오늘 조금 발전했다. 조깅을 하면서 마주치는 사람들도 매일 다르다. 지겹기만 한 반복된 일상이지만 그 속에는 확실하게 변화가 있다.

 

며칠 전에는 조깅화의 바닥에 구멍이 났다. 그만큼 뛰었던 모양이다. 그래 봐야 달리다가 힘들면 벤치에 앉아서 쉬는 수준이지만 매일 뛰었다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똑같은 조깅화를 하나 더 구입했다. 새 조깅화를 신고 달리는 기분만큼 또 좋은 기분은 없다. 유선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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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일이 많은 생을 보내왔습니다,라고 쓰면서 마지막 장면을 수놓으며 끝이 난다. 인간 자격을 잃은 남자가 7년 전에 쓰고 싶었다는 소설이 쓰게 된 과정과 계기를 그리고 있는 이야기가 니나가와 미카의 화려한 색감으로 그려진 영화 인간실격.

니나가와 미카의 히로인 사와지리 에리카부터 미아자와 리에, 그리고 수영을 닮은 듯한 니카이도 후미가 다자이 오사무의 살아생전 만난 여인들을 표현한다. 니나가와 미카는 색채의 마술사라 불리는 사진작가로, 사진으로 시작해서 광고, 영화감독까지 데뷔한 사람으로 앞서 두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술, 담배, 결핵, 여자로 짧은 삶을 보낸 다자이 오사무는 거의 인간쓰레기에 가깝다. 그렇기에, 너를 생각하면 괴롭다, 괴로운데 무섭지는 않다, 같은 허무와 죽음에 가까운 결락의 글을 써낼 수 있었을 것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사랑은 파괴 같은 것이다. 아름다우니 있어도 다른 것을 가진다는 것. 낡은 사상을 끄트머리부터 주저 없이 파괴해 가는 거침없는 영기에 놀라서 파괴 사상을 사랑하고, 파괴 사상으로 사랑을 갈취한다. 파괴는 불쌍하고 슬퍼서 아름다운 것다.

사양을 같이 펴 낸 오타 시즈코 역시 대담한 여성이다. 사랑은 좋은데 연예는 나쁜 것인가? 이해가 안 된다. 그런 애정은 모른다. 결혼해도 잘 모르지만 연애라면 잘 아는 여자. 괴로우면서 즐거워서 그런 연애가 나쁠 리 없는 오타 시즈코. 연애가 나쁜 거라면 저도 나쁠래요. 불량 이래도 좋아요. 애초에 전 불량이 좋은걸요, 라는 멋진 여성이었다.

그런 멋진 여성도 또 다른 사랑이 나타나면 던져 버리는 다자이 오사무에게 대드는 편집자에게, 다들 사랑스러워 품는데 무엇이 잘 못인가, 나는 그렇게 생겨 먹은 놈이다, 그러니 가려면 가거라.

객혈하는 가운데에도 끝없이 담배를 피우고 술을 찾고 여자를 품는다. 유명한 일화인 미시마 유키오가 찾아오는 장면도 영화 속에 나온다. 당신의 소설은 죽음을 쓴 연약한 소설일 뿐이라며 다자이 오사무의 문학을 폄훼한다. 그때 다자이가 너도 나를 찾아온 걸 보면 나의 글이 좋아서 온 것이다, 라며 응수하는 일화는 유명하다.

우리나라의 문인들의 일화도 있다. 시인 이상과 소설가 김유정이다. 두 사람은 참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성격이지만 구인회 소속으로 둘이는 참 잘 어울렸다.

이상은 백석처럼 모던 보이에 투사 같은 사람이었지만 김유정은 유약하고 여린 감성을 지닌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공통점이 있었다.

둘 다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었으며, 몹시 가난한 데다 하는 일마다 풀리지 않았다. 허무와 초현실의 이상의 글과 해학과 풍자로 가득한 김유정의 글로 보아서는 두 사람은 글로써도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이상은 '희유의 투사, 김유정'을 쓰면서 김유정을 기분 좋게 표현했다.

두 사람의 일화가 있다. 1936년 가을 이상은 정릉의 한 암자에서 요양을 하고 있는 김유정을 찾았다. 이상은 일본으로 떠나기 전에 김유정을 찾았지만 본심은 따로 있었다. 더 말라버린 김유정을 보며 이상은 묻는다.

이상: 김 형, 각혈은 여전하십니까?
김유정: 그날이 그날 같습니다.
이상: 신념을 빼앗긴 것은 건강이 없어진 것처럼 죽음의 꼬임을 받기 쉽더군요.
김유정: 김 형! 김 형!(김해경-이상의 본명)은 오늘에야 건강을 빼앗기셨습니까? 인제, 겨우 오늘에야 말입니까?
그러자 이상은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김유정에게 제안을 한 다.
이상: 김 형! 김 형만 괜찮다면, 저는 오늘 밤으로 치러버릴 작정입니다.
오래전부터 생각해오던 동반자살을 제안했다. 하지만 김유정은 그 제안을 거절한다. 자신은 내년에도 소설을 쓰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상은 내일 동경으로 떠난다고 하고 김유정은 만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한 것이 두 사람의 마지막 대화였다.

내년에도 소설을 쓰겠다던 김유정은 돈이 없어 잘 먹지도 못한 채 삶을 마감하고 만다. 그해가 1937년 3월 29일이었다. 그리고 이십여 일 후인 4월 17일에 도쿄의 길을 걷던 중 김해경은 사망하고 만다. 이 둘을 생각하면 안타깝기만 하다.

어떻든 영화는 니나가와 미카 덕분인지, 때문인지 너무 스타일리시하다. 니나가와 컬러가 이전의 영화처럼 화면을 가득 장식한다. 영화 속 다자이 오사무는 죽음도 장난처럼 여기고 죽음 앞에서는 소설과 같아진다. 2010년의 인간실격 영화는 소설을 영화로 옮겼었다. 그래서 요조가 주인공이다.


https://youtu.be/g2ltDpf7ml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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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는 괴팍한 박사가 나온다. 모든 사건을 일으키고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뇌 생리학, 생물학, 종교학, 골상학, 언어학, 음성학 등 잡다한 인류의 모든 학문을 습득한 천재 박사다. 하지만 일상적인 생활은 꽝이다. 손녀가 있는 것으로 보아 사회성이 결여되었는데도 결혼을 하고 자식까지 있는 모양이다. 박사의 이미지상 생김새는 움베르토 에코가 떠올랐다.

하루키는 아마도 박사의 모습을 아인슈타인에게서 가져왔을 것이다. 어째서 그런가 잘 살펴보자. 아인슈타인은 그저 연구 욕이 다른 욕구보다 뛰어나서 연구만 할 수 있다면 뭐든지 다 하는 사람이었다. 소설 속 괴팍한 박사가 그렇다. 물리학에서는 천재성을 보이지만 아인슈타인이 우리나라에 왔다면 노숙이나 했을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반적인 생활은 바보에 가까웠다.

미국이 일본의 원폭 투하를 결정하고 지구에서 가장 똑똑한 물리학 박사 5명을 불렀다. 연구비는 걱정하지 말고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연구를 하라며 시설과 모든 부분을 제공해 주었다. 그들은 이 연구가 후에 어떤 일을 저지르는지 모르고 있었다. 여담이지만 핵의 연구보다 당시 핵을 싣고 가서 투하하는 그 비행기, B21 인가(뭐지?) 아무튼 그 비행기를 개발하는 비용과 시간과 연구가 더 어려웠다.

그런데 연구만 할 수 있다면 아무것도 필요 없었던 이 물리학자들 중에 아인슈타인은 빠져나온다. 이 연구가 비록 일본이지만 그저 평범한 사람들을 대량으로 학살할 거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나온다. 아인슈타인을 제외한 나머지는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악의 평범성'에 속하는 인물들이다. 악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악하게 생긴 인간이 아니라 평범한 옆집 아저씨, 마음씨 좋은 빵집 아저씨 같은 사람들이다.

아인슈타인이 바보 같고 한쪽으로만 치우친 천재성을 보인다고 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모든 중심에는 인간이 가장 먼저 있었다. 이 소설에 나오는 박사는 그런 아인슈타인을 아주 닮았다. 사유하지 않는 인간은 로봇과 같다. 아인슈타인은 바보에 괴짜에 과학에 미쳐있었지만 그 밑바닥에는 ‘인간’이 있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영화 내지는 소설에서 아인슈타인을 가장 잘 들여다볼 수 있는 캐릭터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그 박사다. 그 박사가 아인슈타인의 모습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다.

박사는 포유류의 두개골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골상학 연구를 한다. 어마어마한 동물의 머리뼈 수집을 하고 박사는 20년 넘게 뼈에 대해서 연구한다. 진화에 대해서 박사는 적극적으로 연구를 한다. 스티븐 호킹 박사의 전기를 읽어보면 우주란 창조된 것이 아니라 원래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걸 과학적으로 평생 연구를 하고 갔다.

이 소설에 나오는 괴짜 박사는 그런 모습들을 잘 보여주고 있고 하루키는 그것을 간파하고 이 소설을 집필했다. 이 소설로 다니자키 준이치로 상을 받았을 때 이 작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이 소설을 나름의 긴장감을 갖고 쓰기 시작했고, 있는 힘을 다해 썼으며, 마침내 완성했을 때에는 보람을 느꼈다. 그 보람, 뭔가를 잡았다는 감촉은 지금도 내 몸 안에 남아 있다. 하지만 그 일이 작품으로서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완성도와 반드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다시 읽어 보아도 이 작품은 내가 쓴 것보다 훨씬 더 높은 완성도를 요구한다고 느낀다. (중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작품을 써서 좋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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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하루 종일 바닷가를 어슬렁어슬렁거렸다. 바다는 참 묘하다. 사람의 마음과 비슷하다. 같은 바다가 없고 변덕도 심하고, 이거다 싶으면 어느새 모습을 바꿔버리거나 심술을 부리고 전혀 그렇지 않을 것 같은데 울어버리고 예상치 못하게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바닷바람은 차지만 햇살이 따뜻한 것이 겨울에서 봄으로 옮겨가는 애매한 계절의 시점이다. 기시감이 들고 그럴 때면 허니와 클로버를 시작하는 타케모토의 내레이션이 떠오른다. ‘25년 된 집, 벽이 얇아 소리가 다 새고, 입주자는 전원 학생, 아침 햇살이 눈부신 동향. 작년 미대에 합격해 도쿄에 왔는데 학교 주위에는 밭 천지라 깜짝 놀라고 지은 밥이 맛이 없어서 깜짝 놀라고 공중목욕탕 입장료가 비싸서 놀라고 많은 숙제에 놀랐지만 지금은 모두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타케모토의 말처럼 지금 이 애매한 계절도 곧 일상이 된다.


애매한 시점을 지나고 나서 나는 자유와 모험이 있는 일탈보다는 반복과 단조로움이 단단하게 있는 일상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 일상에 집 근처의 바닷가도 있다. 오랜만에 하루 종일 바다 근처를 배회하며 바다를 지치지 않고 바라보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바다를 몇 시간이고 바라보는 것 따위 하지 않았는데 그거 참 기묘하다. 그래도 매일 오전에 30분 정도는 바다를 늘 보고 있으니 바다도 나의 그런 수고를 알아주기를 바랄 뿐이다.


바다를 배회하며 사진을 찍다가 지치면 앉아서 리스트의 순례의 해 2년 중 ‘단테를 읽고’를 죽 들었다. 백건우 버전이다. 요즘 아내 때문에 말이 많지만 나는 백건우 버전의 리스트가 좋다. 다행히 아이패드로 들으면 야외에서 마치 피아노 연주를 듣는 착각이 든다. 다행스러운 것은 일행도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대체로 지금까지 일행은 나의 조금은 이상할지 모르는 행동이나 말도 대체로 좋아해 주는 것 같다. 그것이 참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나의 말과 행동에 현실감은 비교적 소거되어 있다. 그래서 때때로 먹고사는 것에 대해서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땐 늘 불안하다. 

 

'단테를 읽고'를 백건우와 조성진, 두 버전으로 번갈아가며 계속 들었다. 조성진이 젊어 힘 있게 연주할 거라는 생각이었는데 벗어났다. 조성진은 유약하지만 부드러웠다. 마치 나비가 호수의 수면 위에서 살짝 발을 담그듯 '단테를 읽고'를 끌고 나간다. 꼭 38시간 불면으로 보낸 후 샤워를 하고 창을 투과한 빛을 받으며 극세사 이불로 몸을 감싸는 기분이다. 꼭 그럴 필요는 없지만 눈을 감으면 내 손이 단편이 되어 허공을 휘젓는다. 허공에는 그 사람이 남기고 간 편린이 조각이 되어 먼지처럼 날아다닌다. 꼭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은데.


그에 비해 백건우는, 이제 할아버지가 되었으니, 라는 생각을 여지없이 무너트린다. 강렬하고 힘 있게 '단테를 읽고'를 치고 나간다. 격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다란 다란 다란 다란 다라 라라라라(이래서 뭔 설명이) 하며 끌어올리는 부분은 정말 좌심방에 펌프질을 강하게 한다. 숨이 차오른다. 험난한 산속의 지형을 위협스러운 존재를 피해 달리는 것처럼 나는 숨이 타오른다. 크레바스를 넘고 해협을 맨몸으로 건넌다. 그건 마치 인생의 축소이기도 하다. 다라 라라라라라 가 줄어들어 갈 때 길고 넓은 평온한 강이 나타난다. 그제야 나는 숨을 천천히 쉬고 먼 곳의 자연을 눈으로 본다. 숨이 잦아든다. 연주 하나를 듣는데 이런 상태로 내 몰고 가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백건우의 리스트 '리베스트라움'을 듣는다. 꿈속을 거니는 기분. 바다가 곡에 맞게 춤을 추고 춤에 맞는 선율을 백건우는 연주한다. 일행은 이런 나의 이야기가 지루하지는 않은 것 같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건 참으로 고독한 일이다. 그런 생각이 든다. 그 고독의 정점으로 오르기 위해 등을 구부리고 외롭게 피아노와 싸우거나 또는 친하게 지내야 했을 것이다. 외톨이로 피아노와 지내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연주들. 바다를 보며 그런 연주를 듣는다는 것 역시 어떤 면으로 행운이다.


겨울의 바다에서 따뜻함이 느껴지는 게 봄이다. 완전한 봄으로의 초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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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OzJiw-tiY9Q

러브레터 (Love Letter) OST - Winter Story


러브레터는 볼 때마다 포인트가 달라진다. 처음 봤을 때 보지 못한 것을 다시 볼 때 눈에 들어오고,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다시 보면 가질 수 있다.


그것이 사랑이라 알지 못했던 이츠키와 그 사랑을 잊지 못하는 히로코는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관계에 좀 더 깊게 발을 담근다.


히로코가 눈 밭에서 잘 지내냐고 감정이 오를 대로 올라 소리를 지르는 모습은 아마도 히로코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은 그 한 장면에 깊게 몰입되어 그대로 함몰될지도 모른다.


결국 부치지 못한 편지는 그림이 되어 다시 이츠키의 손으로 돌아오고, 히로코와 이츠키는 그렇게도 몰랐던, 잊지 못했던 사랑을 찾아간다.

 

이와이 슌지는 이 이야기를 그대로 묻어 둘 수 없어서 어쩌면 이츠키와 히로코를 후에 하나와 아리스(엘리스)로, 4월 이야기로 다시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또 흘러서 휴대폰이 도래한 이 시대에 ‘라스트 레터’로 태어나 아직 편지가 건재하다는 걸 보여준다. 언니의 지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찾아간 중학교 동창회에서 동생의 외모가 언니와 똑 닮아서 언니로 착각을 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부분이 이츠키와 히로코의 외모가 같은 모습을 이와이 월드를 좋아하는 팬들은 답습한다. 그렇게 동생은 언니가 되어 편지를 주고받다가 편지 속에서 감정이 드러나게 되는 이야기를 이와이 슌지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일본 특유의 영화라고 하는데 일본 특유가 아니라 이와이 슌지가 가지는 고유한 색채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상대방에게 바라는 말은, 영원히 사랑한다는 말보다 아침에 눈 뜨면 잘 잤냐고 물어보고 잠들기 전에 잘 자라는 평범한 인사일지도 모른다.


잘 지내나요?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이 정도 소식을 전할 수 있다면.




#     

나카야마 미호는 러브레터에 등장하기 전에 아이돌로 먼저 데뷔를 했다. 나카야마 미호의 영화 중에 '사요나라 이츠카'라는 영화가 있다. 이 이야기는 큰 굴곡이 없는데 보고 있으면 계속 보게 된다. 영화가 재미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훨씬 이전에 소설로 먼저 읽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둘러싼 분위기는 아주 기묘하다고 생각하는데(개인적으로), 츠지 히토나리의 '안녕, 언젠가'를 그대로 영화로 옮겨 놓은 것이 이 영화고, 주인공 나카야마 미호는 치즈 히토나리의 아내이다. 현재는 이혼했지만. '냉정과 열정 사이'로 유명한 츠지 히토나리의 글은 현실적인데 읽고 있으면 담담하면서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되어 버리는 그런 착각이 든다.    

            

감독은 인천 상륙작전을 만들었던 이재한 감독이다. 이 영화는 과거의 회상 부분은 화양연화의 미장센을 보는 듯하다. 화양연화의 양조위와 장만옥의 분위기가 물씬 난다. 감독이 화양연화를 좋아했구나,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화양연화보다 좀 더 허구의 이야기에서나 볼 법한 주인공들이다. 빼빼 마른 몸이지만 너무나 섹시하게 보이기 위해서 공을 많이 들인 나카야마 미호의 이미지와 정말 영화 속에서나 볼법한 몸과 얼굴을 가진 니시지마 히데토시(소년의 이미지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의 이미지가 영화를 가득 채운다.      

         

인간은 죽을 때 사랑받는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과 사랑한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으로 나누어진다. 이 문장이 영화를 관통한다. 주인공 유타카는 약혼녀를 놔두고 타국에서 관능적인 토우코를 만나 속수무책으로 빠져든다. 유타카와 토우카는 마치 첫사랑처럼 타오른다. 재가 될 것처럼 만나는 매 순간을 태워버린다.      

         

인간은 매일 먹은 밥보다 가끔 먹는 라면이 더 맛있고 집보다는 경치 좋은 곳의 펜션을 더 좋아한다. 하지만 라면도 자주 먹다 보면 질리고 일탈이 길어지면 불안하고 불편해서 일상의 편안함을 찾게 된다. 그게 인간이다.               


넌 더 이상 젖지 않고 난 더 이상 서지 않아,라고 말하게 되는 순간 꿈같던 일탈도 끝내게 된다. 하지만 그 기억들은 언제까지나 남아서 세월을 괴롭힌다. 두 사람은 불장난을 끝내고 헤어진다. 그리고 14년이 흐른 후 재회를 한다. 어떻게 될까.     

          

두 사람의 격정적인 사랑을 위해 카메라는 주인공들 얼굴 가까이 크게 줌인해 들어간다. 너무나 예쁘고 정말 멋진 얼굴과 몸매로 첫사랑을 하는 젊은이들처럼 태국의 열기보다 더 뜨겁게 타오른다. 화양연화처럼 배경음악 역시 좋다. 나카시마 미카의 노래가 아주 은은한 향초처럼 좋다. 니시지마 히데토시는 정말 만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다. 꼭 미야자키 하야오의 ‘귀를 기울이면'의 아마지와 세이지가 현실로 뛰쳐나와서 그대로 어른이 된 것 같다. 니시지마 히데토시를 보면 늘 그런 생각이 든다.    

           

사람은 이별 인사 '안녕'을 준비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 

고독이란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 친구 한 명이라 생각하는 게 좋다. 

사랑 앞에서 몸을 떨기 전에, 우산을 사둘 필요가 있다. 

아무리 뜨거운 사랑을 받았어도 행복을 믿어서는 안 된다. 

죽을 만큼 사랑해도 절대로 너무 사랑한다고 해서는 안 된다. 

사랑이란 계절과도 같은 것. 

그냥 찾아와서 인생을 지겹지 않게 치장할 뿐인 것. 

사랑이라고 부르는 순간, 스르륵 녹아 버리는 얼음조각. 

안녕, 언젠가. 영원한 행복이 없듯 영원한 불행도 없다. 

언젠가 이별이 찾아오고, 

또 언젠가 만남이 찾아오느니 인간은 죽을 때, 

사랑받는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과 사랑한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 

난 반드시 사랑한 기억을 떠올리고 싶다.   

            

안녕, 언젠가. 사요나라, 이츠카,였다.   

           

https://youtu.be/bpFz8ksR2vU

나카시마 미카 - 안녕, 언젠가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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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1-03-18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겡끼데스까~~~~~

참 좋아했던 일본 영화군요.

교관 2021-03-19 11:37   좋아요 0 | URL
페러디가 있었어요 ㅎㅎ

오 뎅 다 낑 가 노 코 가 끼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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