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향기를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는 곳은 골목이라고 생각되는 거 같다. 봄날의 골목은 그야말로 생명이 느껴지는 거야. 벌레들도 많아지고 길고양이들도 따뜻한 곳으로 나와서 볕을 쬐고. 겨울 동안 듣지 못했던 새소리도 들을 수 있다. 그 소리가 봄의 골목을 시끄럽게도 하지만 잘 들으면 운율이 있어 새 따위에게 놀라곤 한다.

여기 보이는 골목은 지금은 전부 아파트 단지로 바뀌어서 없다. 휴대폰이 있어서 이렇게 바로바로 골목의 봄날을 담을 수 있었다. 골목의 틈으로 봄이 되면 어김없이 민들레가 올라온다. 그건 아무리 봐도 너무나 신기한 일이다. 녹색의 그것이 겨울의 차갑고 딱딱하고 검은 바닥의 틈 사이로 올라와서 얼굴을 내민다. 그리곤 이내 골목의 풍경을 봄으로 바꾸어 놓는다. 민들레는 잡초지만, 잡초라서 튼튼하고 생명력이 고래 심줄 같아서 좋다. 민들레를 좋아하는 이유가 단순하지만 그래서 좋아하는 이유가 확실하다. 우효도 민들레를 불렀잖아. 일상을 보내면서 자연적으로 만들어낸 노란색을 그렇게 자주 볼 수 없다. 자연이 만들어낸 노란색은 불순물이 낀 노란색이 아니라 샛노란 색이다. 노란 꽃잎처럼 내 맘에 사뿐히 내려앉으라고 우효도 노래를 불렀다. 민들레는 잡초라서 민들레 같은 사랑은 질긴 것 같다.

나는 봄의 골목을 좋아해서 이 도시의 골목을 매년 담았는데 많은 골목이 사라졌고 그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섰다. 요즘은 생각한다. 분양도 안 되는데 고층 아파트는 끊임없이 짓는다. 집 없는 사람에게 그냥 나눠주는 것도 아닐 텐데 왜 이렇게 대단위 아파트를 짓는 것일까. 아무튼 사라진 골목의 사진은 나중에 신문사에 팔아먹어야지.

골목에 봄이 오면 방향제 냄새가 난다. 아지랑이 냄새라고 할까. 집집 마당에 심어 놓은 나무가 봄에 잎을 올리면서 허브처럼 향이 난다. 목련에서 나는 향 같은 거 말이지. 그러면 그 자리에 서서 미친놈처럼 냄새를 흠흠 맡는다. 이런 방향제 향은 골목에서만 나는 거 같다. 도로나 아파트 단지에서는 봄이 와도 나지 않는다. 물론 도심지 안에서도 안 난다. 그래서 봄이 되면 조깅하고 돌아올 때 골목으로 다니는데 봄의 방향제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봄의 골목은 따스한 정감 같은 게 있다. 대문을 열어 놓고 저녁에 아버지들이 집에 오시면 된장찌개 끓이고 고등어 굽는 냄새가 골목에 퍼지고 말이야. 요즘은 아파트에서 고등어 잘 못 굽다가는 옆집에서 항의 들어 온다메.

골목의 곳곳에 봄을 알리는 민들레와 초록초록한 잡초가 벽면에 그려 놓은 벽화와 어울렸다. 이 골목들이 전부 아파트로 바뀌어서 아쉽다. 이렇게 골목을 지나가면서 사진을 담다가 방향제 향이 나면 그 자리에 서서 향을 맡는 거지. 그러면 기시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국민학교 때 봄 소풍 갔던 그때가 생각나기도 하고. 요즘처럼 미세먼지 같은 건 없어서 봄 소풍 가면 재미있었다. 뿌옇고 먼지 낀 시야가 아니라 맑고 청명하니까 놀기 좋았다. 김밥이 터져 있고 조금 상한 듯한 맛이 나고 사이다는 시원하지 않아서 밍밍한데 그래도 맛있었다.

방송 같은 곳에서 골목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볼 수 없다고 하는데, 뛰어노는 아이들을 볼 수 없는 게 아니라 골목을 볼 수 없다. 어제는 조깅하면서 보니 초딩 아이들은 지금도 놀이터에서 시끄럽고 혼돈스럽게 놀더라고. 그 어려운 나는 반딧불을 부르면서 말이야. 또 조금 달리다 보니 가방을 전부 인생 네 컷 입구에 던져 놓고 그 속에서 깔깔거리면서 시끄럽게 놀더라고. 장소가 바뀌었지,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이런 봄날의 골목의 계단에 건방진 자세로 앉아서 하루키의 초현실 소설을 읽고 있으면 좋다. 그러다가 골목에서 독서 모임을 하면서 그늘에 앉아서 책 읽고 서로 이야기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 봄에 내리는 비는 땅에 떨어져 시가 되는 것 같다. 시는 골목에 내려와 풍경을 바꿔 놓는다. 그러나 아쉽게도 사람들은 골목에 떨어진 봄비에서 시를 느끼지 못한다. 시는 가까이 있는데 못 보는 거지. 아름다움은 주위에 널려 있는데 멀리 있는 아름다움을 보려 하니까 힘든 거지. 그러다 보면 골목은 전부 사라질 것이다.


요즘 내란 불면에 헌제 선고 기다리느라 피가 바짝바짝 마르는 기분이라 뭐라고 해야 할 것 같아서 봄의 골목 이야기를 한번 해봤다. 이 상태로 주말을 보내야 한다니. 이 상태로 또 불면의 밤을 보내야 한다니. 이렇게 기분이 별론데 입맛은 왜 떨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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