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스트들아 이번에는 하루키의 소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이야. 제목은 넷킹 콜의 노래 ‘South of the border’에서 인용했어. 다 알지?
넷킹 콜이 부르는 노래는 60년대의 멕시코를 말하거든. 에드 시런이 카밀라 카베요와 함께 부른 사우스 오브 보더도 있어, 제목만 같아
넷킹 콜 60년대에 우리나라에 와서 공연한 거 알지? 그때 앨범에 아리랑도 수록하고. 60년대에 한국에 온 재즈의 신들이 좀 있었어. 부비디밥바 하는 루이 암스트롱도 한국에 왔다가 그 앞에서 노래를 기가 막히게 부르는 아이가 너무 잘해서 데리고 미국으로 가서 트레이닝을 시킨 가수가 윤복희잖아
이 소설은 하루키의 몇 안 되는 리얼리티 소설이잖아. 주인공 하지메는 하루키의 모든 소설을 통틀어 가장 지질하고 아내와 가족을 생각하지 않는 무례하고 자기 주관적인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들었지
하루키가 가지고 있는 모든 모든 문학적 미문을 사용해서 포장을 해도 하지메는 개츠비의 데이지처럼 개쌍놈임 ㅋㅋ
홍상수 영화에 나오는 지질한 주인공과 다를 바 없게 느껴졌어. 일상이지만 전혀 일상 같지 않고 도처에 잘 볼 수 없는, 일탈을 긁어모아 만든 캐릭터잖아
어떤 사람에게도 꺼내지 못하는 말들, 절대 말해서는 안 되는 터부 같은 마음을 구어를 통해서 배설해버리는 찌질한 인간
아닌 척 자신을 포장하지만 실은 허울뿐이고 그저 자신을 사랑하는 아내에게 변명이나 늘어놓는 그런 사람이 하지메라는 생각이 들었지. 어릴 때 만났던 첫사랑을 잊지 못해 몇십 년을 속에 꿍쳐놓고 있다가 결국 만나서는 아내와 딸을 버리고 살아온 과정을 잊은 채, 아니 과정은 중요하지 않으니 – 과정 속에 있는 사랑하는 나의 아내, 나의 두 짤은 모두 버릴 수 있으니 나는 시마모토 너에게 가겠다,라는 식이야
눈치채는 아내에게 이런저런 꾸며진 말들로, 물론 자신은 진실되게 이야기를 한다고 하지만 아내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을 거야
이 소설은 하루키가 비교적 짧은 시간에 적었다고 했잖아. 하루키는 바람의 노래를~, 노르웨이 숲 이후에 자신은 리얼리티 소설과 맞지 않기 때문에 절대 쓰지 않겠노라고 했는데
그만 지질하고 구질구질하고 보잘것없는 하지메의 이야기를 적어 버렸어. 긴 장편을 적는 와중에 빠져 나와 어? 하면서 적어버린 이야기가 이 소설이니까, 마치 하루키도 인간이라 그 당시 지금보다 젊은 하루키는 아내와 단둘이 생활하는 것에 대한 어떤 염증을 느꼈을까? 그런 자신이 싫어서 소설을 빌려 자신을 꾸짖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주인공 하지메가 어릴 때 다리를 저는 시마모토의 집에서 레코드로 음악을 틀어. 시마모토의 긴 손가락이 소파에 앉은 그녀의 치마의 격자무늬를 천천히 더듬는 것을 멍하게 보던 하지메와 기묘한 기류가 흐르려고 할 때 난데없이 저 멀리서 넷킹 콜의 ’국경의 남쪽‘이 들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