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에세이 중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에세이 ‘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또는 ‘작지만 분명한 행복’ 같은 말로 나오면서 ‘소확행’으로 유명한 에세이야.


이 에세이는 97년도에 한국에 첫 출판이 되었는데. 에세이 속 대부분의 내용은 86년도 전후의 이야기야. 또는 더 전의 이야기, 요컨대 하루키의 대학 시절이라든가, 재즈 바를 경영하던 이야기들이 가득해.


이 에세이는 역시 하루키(정확하게는 하루키 에세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안자이 미즈마루 씨의 삽화가 있어서 읽는 재미가 가득해.


챕터 중에 [오오모리 가즈키 감독과 나]라는 챕터가 있는데 [오오모리는 효고 현에 있는 아시야 시립 세이도 중학교의 나의 3년 후배이며, 내가 쓴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가 영화화되었을 때 감독을 맡은 사람이기도 하다]라는 문장이 있어.


오래된 영화라 한국 매체 어디에도 리뷰나 논평을 볼 수 없는데 씨네 21에서 언급을 했어. 누적관객 195명. 씨네 21에는 영화요정 김혜리 기자가 있잖아. 그녀의 글을 읽는 건 정말 축복이라 생각해. 김혜리 기자의 글과 더불어 예전 페어퍼 편집장 황경신, 잡지 지큐의 이충걸 편집장의 글을 읽는 건 진짜 흥분되고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었어.


또 재미있는 챕터 하나를 소개할게. [올해 밸런타인데이에도 초콜릿을 못 받았다]라는 챕터에는 [그리고 나는 근처의 가게에서 두껍게 지진 두부와 맨 두부를 샀다. 그 두부 가겟집 딸은 조금 털이 많기는 하지만 꽤 친절하고 귀엽게 생겼다]라는 문장이 있어. 하루키는 두부집 딸을 유심히 관찰한 거지. 그게 소설가의 습관 내지는 일이겠지만.


털이 많기는 하지만, 이라는 문장만으로 딸의 생김새를 파악되는 것 같아. 두부집 딸이라고 하는 것을 보니 부모님이 두부집을 하고 딸이 잠깐 도와주는 모양이야. 하루키가 보통 두부를 사러 가는 시간(그동안 에세이를 읽어보면)은 이른 오전에 글을 쓰고, 오전에 달리기를 하고, 점심을 먹고 어슬렁거리며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되었을 때 집으로 가면서 두부를 사잖아? 그 시간에는 보통 중학생이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시간과 비슷할 거야.


그러니까 두부집 딸은 학생, 털이 많다는 것은, 겨울이라고 했을 때 옷을 입고 있기 때문에 얼굴만 드러난다고 치면 하루키가 말하는 털이 많고 귀엽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코밑에 난 털을 말하는 것일지도 몰라. 여중생은 초등생에서 탈피한, 여고생이라는 본격적인 여성의 길에 들어서기 직전의 모습으로 뭔가 허술하고 묘한 구석을 지니고 있잖아.


코밑의 털 때문에 귀엽게 보이는 얼굴은 중학생 정도가 될 것 같아. 아직 여중생들은 코밑에 난 털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친구들이나 선배 언니들에게 지적을 당하면서 점점 거뭇거뭇한 코밑의 털을 관리하게 되겠지.


여중생, 그것도 1학년이라고 한다면 그때 그 여중생 두부집 딸은 지금쯤(이나 하루키 에세이가 나왔을 무렵) 어떻게 변했을까. 하루키의 에세이에 등장했다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을까. 아니면 털이 많다고 써놔서 흥, 해버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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