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차에 밥을 말아먹으면 이게 뭐 얼마나 맛있겠냐 싶지만 막상 먹어보면 홀짝홀짝 먹게 된다. 거기에 총각김치를 젓가락으로 푹 찍어서 들고 우걱우걱 먹는 맛이 좋다.


예전에 어떤 다큐 같은 영상을 보니 김소희 요리사도 외국에서 손님들에게 엄청난 요리를 제공하고 자투리 시간에 주방에 서서 물에 밥을 말아서 총각김치로 밥을 먹더라고.


무더운 여름날 논다고 땀을 많이 흘러 러닝셔츠가 더 젖은 채로 들어오면 외할머니가 등을 슬슬 문질러주며 선풍기와 부채신공으로 땀을 식혀 주었던 게 생각난다. 외할머니는 내가 배고프다며 물에 만 밥을 한 숟가락 떠 그 위에 총각김치를 먹게 좋게 입으로 아작 씹어서 잘라내서 올려 주었다. 내가 와암 한 입 먹으면 외할머니는 엉덩이를 토닥 두드려주었다.


서러운 단어 가난이 무겁게 덮쳤던 어린 시절에 동생이 태어나면서 나는 일 년인가 그 이상인가, 외할머니가 있는 외가에서 지냈다. 그때가 아마 5, 6살 정도 되었을 것이다. 밤마다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었고(그렇다고 한다, 나는 믿지 않지만) 동네 아이들에게는 타지에서 온 아이라고 따돌림을 당하고 놀다가 싸움을 하면 늘 맞고 들어왔다.


불영계곡 저 안에 있는 외가는 물 맑은 개울이 흐르는 곳에 있어서 여름이면 졸졸졸 물이 흐르는 소리를 들었다. 낮에는 개울에서 사촌형이 가재를 잡아 주었다. 좀 더 컸을 때에는 가재를 잡는 법과 낚시하는 법도 알려 주었다. 하지만 사촌형들과 누나들은 학교에 가고 외할머니와 외숙모는 밭일을 하고, 나는 홀로 동네에서 놀아야 했다.


5세 인생 전반에 있어서 낯선 곳의 아이들과 어울리는 일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어릴 때 사진을 보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빼빼 말랐다. 그래서 늘 동네 아이들에게 맞고 들어왔다. 울면서 들어오면 외할머니는 슈퍼우먼이 되어 동네 아이들을 찾아다니며 그 애들의 부모에게도 한 소리를 퍼부었다. 야호. 외할머니는 동네에게 슈퍼우먼으로 통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가 고개를 숙였다.


점심에 국수를 먹기도 했고, 상추쌈에 밥을 먹기도 했지만 보리차에 밥을 말아서 총각김치를 맛이 좋았다. 외할머니가 입으로 먹기 좋게 아작 깨물어서 숟가락 위에 올려 주었기 때문이다. 지금 늙어버린 엄마를 보면 외할머니를 보는 것 같아서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어제는 며칠 만에 온 임영웅 3단 우산을 드렸더니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외가에서 지냈던 사진들을 보면 하얀 팬티에 하얀 러닝셔츠만 입고 내내 다녔다. 어린 시절에야 가난에 대해서 알 수 없었지만 이 서러운 가난은 전쟁도 아닌데 그렇게 가족을 흩트려 놓았다. 외할머니는 그걸 나에게 느끼게 해주고 싶지 않아서 잠깐 밭일을 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늘 나를 업고 다니거나 옆에 있어 주었다. 또 외가에는 외할머니, 큰외삼촌, 큰 외숙모, 사촌형들과 누나들이 6명이나 있어서 늘 귀여움을 받았다. 그래서 외가에서 지내는 게 싫지만은 않았다.


형들과 누나들은 개울에 나가서 고기를 잡고 물장구를 치고 튜브를 잡아 주었다. 솥에서 작은 알감자를 삶아서 배고프면 같이 먹고, 외할머니와 함께 전부 앉아서 물에 밥을 말아서 총각김치를 아작아작 먹었다. 마냥 똥강아지 소리나 들으며 예쁨만 받을 줄 알았는데 총알 같은 시간은 내게서 소중한 것들을 빼앗아갔다.


보고픈 내 외할머니. 오늘은 총각김치를 먹자. 물에 밥을 양껏 말아서 먹어야지. 총각김치는 맛있어서 이렇게 밥과 계란프라이와 두부와 같이 먹어도 너무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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