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낮에는 따뜻하다고 하는 게 맞지만 오전과 밤에 춥기 때문에 두꺼운 겉옷을 낮에도 입고 있어서 낮에는 좀 덥게 느껴진다. 남부지방이라는 특성 때문인지 낮에는 온도가 올라 그늘에 있으면 시원하고 해가 비치는 곳에 있으면 따뜻하고 좀 더운 감이 있어서 잠이 쏠쏠 온다.


요즘 같은 날에 산책하기 좋으나 자본주의 노예가 되어서 인지 미드를 섭렵하느라 시간만 나면, 또는 시간을 내서 미드를 보고 있다. 이상하지만 미드는 길면 길수록 더 재미있다. 예전 왕좌의 게임도, 덱스터 시리즈도, 베이츠 모텔도 길어서 더 재미있고 좋았다. 끝나가려고 할 때 다음 회가 또 있었지? 하며 기대가 있다. 자본력이 막강해서 그런지 영상으로 보이는 화면 속에 놀라운 효과들이 많다.


비행기가 추락하고 대도심지에 땅이 꺼져 아주 큰 싱크홀이 나타나고 태풍이 와서 대 홍수가 일어 빌딩이나 모든 집들이 물에 잠기는 모든 영상을 영화보다 더 실감 나게 만들어낸다. 게다가 수위가 높은 시리즈, 즉 액션이 너무나 지독하게 현실감이 있어서 피를 낭자하게 하는데 인상을 쓰게 만든다던가 - 너무나 실제 같아서, 또는 젝스 신의 수이가 높은 것도 그렇다. 무엇보다 심리 스릴러에서는 악마인지 인간인지 실제인지 비현실인지 구분이 모호한 현상 속에서 주인공들이 사건을 파헤치려는 이야기들은 너무나 재미있다.


미드를 보면 일본 자본이 대거 들어간 시리즈도 많다. 거기에는 일본 배우들이 왕창 나오는 미드도 있다. 사람들은 일본은 더 이상 죽었다 같은 말을 하지만 미드 속에 나오는 일본 배우들과 일본문화 같은 것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재미있는 미드는 흘러넘치고 그 시리즈를 보면 드라마의 기본이 되는, 이 긴 이야기의 각본은 어떻게 적었을까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이런 멋진 이야기들이 영상이 되려면 먼저 스토리가 있어야 하고 그건 활자로 먼저 세상에 나와야 한다.


어떻게 적었나 하는 기술적인 부분을 말하는 게 아니라 이런 이야기를 머리에 어떻게 생각을 했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세상의 사람은 70억이나 되고 그중에서 스토리를 잘 짜는 사람도 있고 또 그중에서 글을 잘 적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지구에 사는 사람들을 그저 숫자로 70억이라고 하니 크게 와닿지도 않는다. 70억이라는 하나의 숫자는 모호하다.


이번 참사에도 156명의 희생자라고만 해 버리면 그저 하나의 숫자에 사망한 사람들이 묻히게 된다. 기타노 타케시의 말처럼 156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한 사람이 죽은 156건의 사건이어야 한다. 그래야 국가에서 버리다시피 죽음을 맞이한 희생자들이 그저 숫자에 묻히지 않을 수 있다.


생명체는 고도의 질서다. 우리가 사는 지구, 우주 이 모든 것이 고도의 질서다. 생명체뿐만 아니라 천체 이 모든 것들이 고도의 질서인데 아직 왜 그런지 해명이 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점점 무질서를 향해 간다고 물리학자들은 말한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물질의 세계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문화, 인간의 사회현상에도 마찬가지의 법칙이 적용이 된다고 유시민 작가는 말했다. 누군가가 의지를 가지고 질서를 유지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인간 사회 역시 무질서로 가는 것이라고. 고도의 질서를 가지고 논하기에는 물적인 부분만 이야기하는 너무나 원시적인 사건이다.


나는 사실 안 그런 척 하지만 코로나가 덮쳤을 때 무서웠다. 잠자는 시간 빼고 계속 뉴스만 틀어 놓고 있으니 확진자의 상태, 전염되는 속도, 죽는 순간, 일부러 퍼트리는 사람들까지. 무섭지 않을 수 없었다. 공포란 이렇게 오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생각 때문에 더 무서웠다. 그런 느낌은 예전에 세월호가 물에 빠지는 모습을 하루 종일 실시간으로 볼 때에도 비슷했다. 그때에도 무섭고 두려웠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뭔가를 하고 싶어서 매주 열리는 촛불집회에 참석을 했다. 매주 나갈 때마다 나눠주는 팸플릿을 들고 왔다. 그건 아직 저 서랍 안에 있다. 거기서 고함을 지르고 떼창을 하기도 했다. 그랬는데 코로나가 좀 잠잠해질 무렵에는 또 이태원 참사 현장을 실시간으로 보게 되었다. 물론 나와는 모두가 상관없는 사람들이다. 어쩌면 그래서 더 슬플지도 모르겠다.


현재 미국 사회에서 클로이 모레츠를 공격하고 경멸하고 욕을 하고 킴 카다시안을 떠받드는 건 미국 사회가 병들었다는 증거다. 그 병은 너무나 깊고 전염이 강해서 더 빠르고 강력하게 사람들을 전염시킨다. '왜'가 아니라 그저 '너'라서 싫고 밉다고 할 뿐이다. 이 문제를 브라이언 싱어가 영화 엑스맨 1, 2에서 잘 녹여냈다. 돌연변이들은 우리 인간사회에서 같이 생활하는 다양한 인종, 질병에 노출된 사람, 사고로 인해 팔다리가 잘리거나 없는 사람들일 뿐이다. 하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은 왜 싫은지가 아니라, 그저 너라는 이유로 싫은 것이다. 엑스맨 1편에서 가장 멋진 대사는 트럭에서 로그가 울버린에게 아다만티움의 갈퀴가 손을 뚫고 나올 때 아프지 않아?라고 물으니 "매번"라는 대사였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정상적이지 못하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장애는 비정상적인 모습이 아니라 몸이 좀 불편할 뿐이다. 비정상적인 사람은 그렇게 바라보는 시각을 가진, 정상적이지 못한 생각을 하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병이 깊은 것이다. 그 병은 거대한 미국에서 곧 옆 나라로, 옆 나라로 전염이 될 것이다.


이렇게 날이 좋고 세상에 더 없을 좋은 계절에 허망한 마음이 드는 건 자연은 인간의 마음과는 무관하게 예뻐야 할 때에는 앞뒤 재지 않고 예쁨을 뽐내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세상을 덮쳐도, 세월호가 바다에 빠져도, 이태원에서 사람들이 압사를 당해도 자연은 그러거나 말거나 가을이 되면 가을의 옷을 입고 예쁨을 뽐낸다. 그렇기에 인간은 허망하다.


예쁜 건 빨리 망가진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그러나 인간은 예쁜 걸 찾는다. 아름답다, 고혹적이다, 매혹스럽다, 귀엽다는 예쁘다를 이길 수 없다. 만약 이렇게나 예쁜 나의 사람이 다른 사람과 바람을 피우는 장면을 목격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오토가 젊은 남자와 자신의 집에서 바람을 피우는 장면을 목격하고도 조용히 문을 닫고 밖으로 나와야 했던 가후쿠처럼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가후쿠는 예쁜 아내를 잃고 싶지 않을 만큼 사랑하고 있다. 그런데 오토는 가후쿠가 자신이 바람을 피우고 있는지 알고 있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어느 날 오늘은 일을 마치고 들어오면 할 이야기가 있다고 말한다. 가후쿠는 알았다고 웃으면서 말하지만 집으로 들어가기가 싫다. 무서운 것이다. 가후쿠는 상처를 받았지만 제대로 받지 않았다. ‘드라이브 마이카’에서 주인공 가후쿠가 자신의 아내인 오토가 죽고 나서야 제대로 상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미안한 마음이다.라는 말은 무슨 말일까. 미안한 건 알겠지만 미안한 마음은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미안한 마음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미안하지 않은 얼굴을 뒤에 감추고 있다. 미안한 마음이라는 말은 닭볶음탕 같은 말이다. 닭볶음이면 닭볶음이고 탕이면 탕이어야지 닭볶음탕은 도대체 뭔가. 어쩐지 그 모양새가 떠오르지 않는다. 닭도리탕은 어째서 안 된다는 것일까. 닭도리탕은 이미 머릿속에 그 모습이 선하게 떠오르는데.


라디오에 이문세 노래가 많이 나온다. 이문세 4집 정도의 노래. 이문세 4집은 정말 좋은 거 같다. 앨범 속 모든 노래가 좋으려면 노래를 잘 만들어야 한다. 아마도 노래를 만든 이영훈이 혼을 담아 노래를 만들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는 살아생전 이문세에게만 노래를 주었다. 다른 기획사에서 거대 자본을 준다고 했지만 자신의 노래를 가장 잘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이문세라며 그와 끝까지 하고 싶다는 의사를 비쳤다.


이영훈의 노래가 가장 애틋하고 아름답고 처절하게 들리는 노래는 이문세와 이소라가 같이 부른 ‘슬픈 사랑의 노래’다. 노래 한 곡이 만들어지는데 10년이 걸렸다고 한다. 꼭 오래 걸려서 좋은 노래라는 건 아니다. 이 노래가 좋다는 건 노래를 들어본 모든 사람이 알고 있을 것이다. ‘세상에 너밖에 없는데,,,,’라는 가사가 그렇게 슬픈 것도 아닌데 노래를 듣고 있으면 슬퍼진다.


이영훈은 이 노래를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곡이고, 내 생애에 다시 작곡하기 힘든 곡”라고 말했다.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노래의 형태가 살아나서 마치 영화를 한 편 보는 것 같다. 이영훈은 망가져 가는 몸에도 불구하고 86년에 작곡을 시작해서 6년 만에 멜로디를 완성했다. 그리고 이 멜로디에 맞는 가사를 쓰는데 또 4년이나 걸렸다. 10년에 걸쳐 이 노래가 완성이 되었다.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노래 속 두 사람의 10년의 역사가 필름이 되어 테이크, 테이크가 되어 흘러간다. 노래는 말하고 있다. 세상이 조금 더 아플지라도 너는 내 곁에 있어야만 한다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