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를 걷고 있었다. 차들은 끊임없이 지나갔고 바람은 뿌연 미세먼지를 잔뜩 실어 날랐다. 도로공사 때문에 도로에서 떨어져 아슬아슬한 길을 걸었다. 책을 보며 걷다가 책을 덮어야 했다. 도로의 사정이 신발 바닥을 통해 바로 머리에 전달되는 그런 길이었다. 도로에 신경을 쓰며 걷고 있는데 한 로컬 카페에서 모과이의 ‘아이엠 짐 모리슨 아이엠 데드’가 흘러나와서 나도 모르게 그만 그 카페로 쓱 들어갔다.


모과이는 연주만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묘한 록밴드다. 내가 좋아하는 앨범은 ‘버닝’으로 그 앨범을 듣고 있노라면 마음을 한없이 숭숭 구멍을 내버린다. 그건 어쩐지 영화 ‘버닝’을 볼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영화 속에는 하루키와 윌리엄 포크너가 있었고 테이크와 테이크 사이는 온통 메타포가 구멍을 매웠고 은유로 이어져 있었다.


카페는 천장이 낮고 작은 공간이었다. 해체주의나 플럭서스가 어울릴법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틀에서 벗어난 실내장식과 암울하지만 희망이 섞인 냄새가 미미하게 났다. 무엇보다 앉아 있으니 모과이나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음악이 계속 나왔다. 마침 책을 들고 있어서 책이나 좀 보면서 앉아 있다가 갈 요량으로 커피를 주문했다. 커피도 생명을 갓 부여받은 것처럼 신선한 맛이 났다.


내가 읽고 있던 책은, 새로운 식품의 종류가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인류에게 생기는 바이러스에 관한 상관관계를 적어 놓은 책이라는 말은 거짓말이지만 내가 읽기에는 꽤 어려운 책이었다. 소설만 줄창 읽는 나에게 읽어보라며 누군가 건넸는데 어째서 이렇게 어려운 책을 빌려준 건지 모를 일이다.


사실 카페에서 질 좋은 의자에 엉덩이를 파묻고 앉아서 편안하게 책을 읽어 본지는 몇 번 되지 않았다. 늘 구석진 곳에 웅크리고 앉아서 책을 읽거나 누군가를 기다릴 때, 또는 계단에 잠시 앉아서 땀을 식히면서 몇 줄의 글을 읽었고 일하는 가운데 틈이 보이면 책장을 몇 페이지씩 넘길 뿐이었다. 요즘은 그 망할 놈의 아이패드 때문에 책장을 더럽히지 않고도 활자를 볼 수 있다.


지금은 책도, 글도 누워서 읽고 쓸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책상과 불빛이 있어야만 글을 쓸 수 있었던 시대라고 해봐야 고작 15년 정도 전인데 마치 백악기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이제 정전이 도래해도 책을 읽을 수 있고 글을 쓸 수 있다. 그놈의 아이패드 때문에.


대부분이 향기로운 음악이 흐르는 카페에서 책을 읽는 것에 반해 나는 편안 것에 익숙지 않았다. 오랜만에 비어있는 시간이 자산처럼 불어나서 카페로 들어와 책을 펼쳤지만 생각만큼 책을 읽을 수는 없었다. 아마도 그것은 오래된 습관 내지는 하나의 패턴에 길들여진 탓이다. 책을 펼쳤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도로공사 현장에 시선을 두고 모과이의 음악에 빠져들어 생각은 고랑을 따라 흐르는 물처럼 밑으로 밑으로 흐르기만 할 뿐이었다.


조금 웃긴 얘기지만 책이 가장 잘 읽힐 때가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들어갔을 때였다. 보호자가 할 것이 없었다. 하루에 두 번 있는 면회를 잠깐 하는 것이 보호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중환자실이라는 곳에는 고도의 숙달자 들만이 그곳의 생리를 알기 때문에 어설픈 보호자의 손길은 오히려 독이 된다.


한 치수 작은 운동화를 신고 한 시간 동안 달린 것 같은 불편함 때문에 잠은 오지 않아 대기실에서 책을 읽었다. 할 수 있는 것은 책을 읽는 것, 그것뿐이다. 자정이 넘어가면 병원의 병실은 대부분 숨을 죽이고 밤의 D 세계에 녹아든다.


병원 복도 끝은 죽어버린 시간이 활동을 한다. 실체나 감각이나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 곧 나는 히틀러를 피해 크렘린의 미궁 속으로 기어 들어간 스탈린을 생각한다. 스탈린을 생각할수록 그는 뒷짐을 지고 수행원을 대동하여 더 깊은 궁 속으로 가버리고 만다.


나는 크렘린에서 헤매다가 사립탐정인 레미를 만난다. 레미는 나에게 말했다.


여긴 알파빌이야, 감정을 가지는 일은 용납되지 않아. 눈물을 흘리며 우는 사람은 체포되어 공개 처형되는 도시지. 알파빌에서는 감정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


전 그럼 어떻게 되는 겁니까. 내 말에 레미는 또 말했다.


재미있는 건 말이야, 알파빌에서도 섹스는 존재한다는 거야. 아이러니하게도 너에게서 알파빌이 느껴져.


고개를 드니 중환자실의 면회시간이 되었고 복도에는 사람의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더불어 모과이의 ‘아이엠 짐 모리슨 아이엠 데드’도 끝이 났다. 나는 책을 덮고 카페를 나왔다.


그래서 오늘의 선곡은 모과이의 아이엠 짐 모리슨 아이엠 데드 https://youtu.be/5EfuLuN0VX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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