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시절 누구에게나 추억이 깃든 곳이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추억으로 덧 입혀져서 아름답게 채색된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꺼내듯 떠올리면 배시시 웃음이 난다. 나에게 추억이 깃든 어린 시절의 곳들은 전부 사라지고 없지만, 그곳을 요즘도 자주 지나쳐 온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그때의 추억 속에 잠시 머물 수 있다.
그중에 제1 순위는 문방구였다. 문방구는 나의 최애 놀이터였다. 문방구에서 프라모델을 구경하고 있으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4학년인가, 3학년 때인가, 여름방학에 아침에 나가서 오후가 되어도 집에 들어오지 않았던 나를 찾으러 엄마가 문방구까지 와서 끌려갔던 적도 있었다. 어떤 날은 장 보는 데 따라갔다가 문방구 앞에서 프라모델을 진열해 놓은 문방구 앞에서 움직이지 않아서 엄마는 먼저 집으로 간 적도 있었다.
코난, 아톰, 마징가, 철인 28호 같은 장난감이 잔뜩 진열되어 있던 문방구. 학교 앞 문방구는 몇 군데 있었고, 학교에서 집 까지는 10분 정도 거리였다. 엄마는 나를 억지로 집으로 데리고 가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비교적 얌전했던 나는 문방구 속 프라모델을 구경하는 것으로 허기 같은 것을 달래고 있었고, 엄마는 그렇게 하게 내버려 두었다.
한참을 서서 가지런하고도 멋지게 진열된 프라모델을 구경하느라 행복함에 젖어들었다. 용돈을 받으면 그 돈을 모아서 프라모델을 샀다. 집으로 와서 그걸 뜯어서 조립하는 시간은 행복 그 자체였다. 추석이나 구정 같은 명절에 받은 돈으로 좀 더 레벨이 높은 프라모델을 구입하면 혼자 만들지 못해서 아버지와 함께 만들었다. 아버지와 함께 문방구에서 사 온 프라모델을 만드는 건 세상에서 제일 즐거운 일이었다.
문방구는 아이들의 백화점 같은 곳이었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초등학교 3군데가 거리를 두고 일렬로 죽 있다. 그래서 그 앞에는 문방구가 가득하다. 요즘도 가끔 꿈속에 그 문방구 거리가 나온다. 죽 붙어있는 문방구는 아이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기술을 문방구 입구에 가득 채워 놨다. 문방구에서 사이다를 마시기도 하고, 뽑기도 하고, 병아리를 구경했다. 맵지 않은 닭발도 팔았고, 쥐포나 쫀드기 같은 맛있는 것들이 가득했다.
문방구마다 특색이 있어서 문방구를 찾는 학년도 달랐다. 나는 프라모델이 많은 문방구를 당연하지만 좋아했다. 입구 옆으로 된 유리 진열대 위에 가득한 만화 주인공들은 마치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요즘은 문방구가 거의 사라졌다. 적어도 내가 다니는 문화권 내에서는 볼 수 없다. 프라모델은 전문점이 있고, 인터넷으로 구경과 동시에 구입이 가능해졌다. 너무 손쉽게 구 할 수 있어서 그런지 언젠가부터는 프라모델의 흥미가 좀 떨어졌다.
내가 나온 초등학교는 그대로 있지만 운동장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학교 건물이 늘어났다. 문방구가 있긴 하지만 문방구라는 간판만 문방구고 문방구의 모습은 아니었다. 기억은 퇴색됐지만, 행복하고 즐겁게 문방구를 추억하고 있다. 며칠 전에는 내가 다니던 학교 근처 문방구가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꽤나 오래 버텼지만 사라지고 말았다. 100년이 넘은 초등학교도 사라지더니 그 자리에 주차장이 생겼다. 뭔가 참 이상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