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택트는, 조디 포스터의 눈을 관통하는 우주는 그야말로 존재론적으로 관철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 콘택트를 봤을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칼 세이건도 몰랐을 때였다. 콘택트를 다시 보았고 그때서야 소름이 돋았고 조금 불편했지만 조디 포스터가 보는 우주, 그 속에 몸을 던진다고 해도 어쩌면, 정말 어쩌면 괜찮은 사멸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좀 더 흘러,

알폰소 방식의 우주를 산드라 블록의 눈을 통해서 바라보았다.


그래비티를 내식으로 한 줄로 표현하면 '시야에 들어오는 감각에 대한 도취'라고 하고 싶다.


점 같은 인간이 모여 사는 거대한 행성, 헬멧에 손바닥만 하게 비칠 때 다시 오래 전의 존재론적 인식에 대해서 떠올려보았다.


나는 스톤 박사와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 놓은 적이 있었나.


인생에 있어서 1년은 간호 때문에 병실에서 난 창밖을 바라보며 크리스마스를 보냈고 그다음 해는 중환자실 복도에 난 작은 창밖을 보며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그리고 죽음을 옆에서 지켜봤다. 상황이 생각 밖으로 펼쳐지면 대체로 판단이 흐려지게 된다.


쥐가 뱀에 쫓겨 필사적으로 도망을 다닌다. 그렇게 도망을 다니다가 궁지에 몰리면 발악을 하지만 그 경계를 넘어서고 나면 뱀의 아가리에 들어가는 순간 쥐는 이루 설명할 수 없는 쾌락을 추구하게 된다. 죽음이 곧 나르시시즘 절정에 이르는 순간.


스톤 박사는 그 절망의 끝에서 서서히 딸의 곁으로 다가가려 한다. 경험에 대한 기준치도, 오감을 통한 감각적인 통념의 선이 허물어지려고 한다. 그때, 매트가 나타나 보드카를 들이대며, 자식을 잃는 것보다 큰 슬픔은 없지, 하지만 가기로 했으면 계속 가야 해. 두 발로 딱 버티고 서서 살아가는 거야.


스톤은 그때 깨닫는다. 오늘 죽으면 더 이상 내일부터 죽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내가 두 발로 땅을 밟고 서서 살아가는 것이 죽음을 맞이했을 때 그 죽음에 당당하게 악수를 청할 수 있다는 것을.


진짜로 절망에 빠지면 나 힘들다는 소리조차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 절망의 끝에 희망이 살을 찌울 수 있는 동력이 있다. 그래서 우리들, 인간은 두발로 땅을 디디고 서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염원하는 아름다운 우주에서 두 발 없이 유영하는 것보다 훨씬 값지기 때문이다.


그래비티란 그런 것이다.

영원불멸의 우주로 살아가기보다 비록 소명이 다해서 죽어 버릴 지라도 한 인간으로 사는 게 값진 것이다.

애드 아스트라를 보면서 브래드 피트의 눈동자는 지구가 아닌가, 그리고 영화 속 아버지인 토미 리 존스의 눈동자는 우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독하고 한 없이 떠도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는 우주에서 인간의 낙관적인 세포는 점점 소멸해가는 것 같다. 토미 리 존스의 눈동자는 광대하고 넓고 끝을 알 수 없는 고독한 우주를 닮았다.


그에 비해 브래드 피트의 눈동자는 전 우주의 고독이 주는 욕망보다 내가 잡을 수 있는 행복이 있는 지구를 닮았다. 중력이 끌어당기고 안간힘을 써야만 움직일 수 있는 지구가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저항 없이 유영을 할 수 있는 멋진 우주보다 아름답고 살만하다는 것을 기이하게도 마지막 장면 브래드 피트의 눈동자가 말을 하는 것만 같다.


제목의 뜻을 찾아보니 ‘별까지”라는 말인데 뜻은 “어려움을 뚫고 별까지”다. 여기서의 어려움은 현재 우리 인간생활 전반에 깔린 어려움과는 다른 질을 말하고 있다.


영화 속 시대는 지금보다 미래이다. 그것이 멀던 가깝던 지금보다 훨씬 앞선 미래다. 영화 속 태블릿이나 우주 해적이나 우주 정거장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거기서 죽 커가고 있거나. 그런 먼 미래에도 지구에서 우주의 한 지점으로 가는 건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간단하게 비행선에 올라 슝하고 갈 수는 없다.


브래드 피트는 참 멋있다. ‘멋있다'라는 건 배우, 진짜 배우 같다는 말이다. 피지컬이나 말투나 얼굴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더 그래 보인다. 정말 스크린 속에서만 존재할 법한 사람 같다. 브래드 피트는 영화 ‘옥자’도 기획했다. 브래드 피트도 참 알 수 없는 인간이다. 그런 알 수 없는 인간들이 모여 사는 지구가 광활한 우주보다 훨씬 낫다는 말이다.


우주로의 발걸음이 빨라진 요즘, 너도나도 우주에 대한 관심이 깊지만 영국의 윌리엄 윈저 왕세손의 말처럼 우주로 가는 것도 좋지만 자본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망가져가는 지구에게 좀 더 시선을 돌리는 게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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