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평은 그 시기에 드물게도 자신의 오페라 무대를 가지고 자신의 노래로 자신의 공연을 했다. 중국 땅에 오페라를 알리고 싶었던 단평이었다. 오페라는 인간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사랑하는 사람의 손길 같은 것이었다.
단평을 좋아하던 운언은 단평의 공연을 늘 보러 왔다. 단평 역시 운언을 사랑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사랑은 아름다웠고 뜨거웠다. 단평은 운언을 위해 ‘야반가성’을 작곡하려 하지만 완성에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다. 언젠가 꼭 ‘야반가성’을 완성해서 당신 앞에서 불러 주리라 단평은 운언에게 약속한다.
단평과 운언의 사랑은 아름다웠지만 신분을 넘은 사랑을 했기에 두 사람의 사랑은 너무 위험했고 너무 험난했다. 사랑이란 절대로 불가능할 것 같았던 두 사람을 아름답게 위태위태하게 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사랑은 나날이 뜨겁게 불타올랐다.
하지만 운언은 집에서 점찍어 놓은 곳으로 혼인을 가게 되었다. 운언은 그게 싫어 도망가려다 붙잡히고 만다. 그날 밤 한 무리들에 의해 단평의 극장은 불에 타고 단평은 죽는다.
팔려가다시피 시집간 운언은 처녀가 아니라는 이유로 남편에게 폭력을 당하고 집에서 쫓겨난다. 운언은 불타버린 극장에 매일 와서 단평을 기다리다 미쳐간다. 그렇게 10년의 세월이 흐른다.
10년 후 다 쓰러져가는 극장에 새롭게 나타는 극단이 공연을 하려 하지만 실력이 엉망이었다. 실력이 검증되지 않으니 사람들에게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공연에서 주인공 역의 위청은 노래 실력 때문에 고민이 많다. 그때 위청에게 의문의 남자가 암막 뒤에 나타나 로미오와 줄리엣을 공연하라고 한다.
그 의문의 남자는 죽은 줄 알았던 단평이었다. 단평은 10년 전 불에 타 죽은 게 아니라 한 무리의 남자들이 운언과 단평의 사랑을 방해하기 위해 단평의 얼굴에 염산을 뿌리고 극장에 불을 낸 것이었다. 단평은 염산 때문에 얼굴의 반이 흘러내렸지만 죽지 않고 극장에 숨어 살며 야반가성을 완성시키고 있었다.
위청은 대면하지 않았던 단평의 말대로 로미오와 줄리엣을 공연하면서 고음이 되지 않는 부분은 단평이 무대 뒤에서 대신 불러주었다. 단평이 노래를 부를 땐 운언을 생각하며 슬픔을 가득 채워 설움과 그리움을 담아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부르며 단평은 눈물을 흘린다.
얼굴의 반이 없는 단평은 매일 미친 여자의 모습으로 극장에 나타나는 운언 앞에 나가지 못했다. 반이 흘러내린 얼굴로 앞에 나설 수 없어서 죽고 싶었지만 그것마저 여의치 않았다. 왜냐하면 운언에게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단평은 얼굴의 반이 날아가 버렸고 운언은 정신의 반이 날아가 버렸다. 그렇지만 위청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위청이 죽은 단평으로 착각한다. 사랑에 눈이 멀어 미쳐갔지만 운언 앞에 모습을 보일 수 없었던 단평은 위청을 통해 운언에게 야반가성을 들려 주려했다.
하지만 자신의 얼굴에 염산을 뿌린 조 씨가 운언에게 총을 쏘게 된다. 총을 맞고 쓰러진 운언을 보고 그들 앞에서 단평은 절규한다. 마침내 운언 앞에 나타난 단평은 반이 없는 얼굴로 10년 동안 운언을 위해 만든 ‘야반가성’을 불러준다.
밤이 깊어서야 나와 당신은 비로소
영혼을 활짝 열고 꾸밈없는 마음을 내어 놓습니다
부드러운 입맞춤은 한밤중에
음악이 되어 당신의 마음에 다가갑니다
별님에게 간청합니다
달님이 증인이 되어 주세요
일생을 다해서라도 기다리겠습니다
언젠가는 제 소망이 이루어져서
당신과 함께 영원을 찾아 날아갈 것입니다
반만 살아있는 얼굴의 단평과 두 눈이 보이지 않는 운언은 세상의 고통과 불행을 다 가지고 행복한 길을 떠난다. 사랑은 그런 거라, 진부한 ‘진정한 사랑’이라는 건 그런 거라, 목매고 목숨을 걸 만한 거라고, 어디가 망가지고 부서지고 보이지 않아도 사랑을 찾아가는 거라 알려주었던 단평과 운언의 사랑. 영화 야반가성이었다.
https://youtu.be/SaVIEThrg_M 야반가성 뮤직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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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장국영의 기일이다. 그랬다. 믿기지 않았던 그날 홍콩에서는 장국영의 추모에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사스 때문이었다. 사스가 인류를 공포로 몰아넣었지만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장국영의 믿기지 않는 추모행렬에 동참했다.
작년에도 그랬고 18년이 지난 올해도 그를 추억하는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추모할지도 모른다. 장국영이 살아있었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은 걷어 치우고 장국영은 47살의 아름다운 나이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팬들의 곁을 떠났기에 언제나 그 모습으로 기억된다.
이반이었던 장국영은 금지옥엽에서 이반이 아닌 연기를 했다. 금지옥엽의 주제곡인 ‘추’는 내내 좋아서 유튜브 덕분에 왕왕 듣고 본다. 남자로 분해 깜쪽같이 장국영을 속인 원영의가 피아노 앞에서 어설프게 연주를 하니 장국영이 피아노 앞에서 ‘추’를 부르고 비틀스보다 더 신나게 ‘트위스트 엔 샤우트’를 부른다. 우리의 기억 내면에 장국영은 그렇게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있다.
데이와 우희의 삶을 갈라놓는 것이 힘들었던 패왕별희의 도즈. 우희로서만이 패왕의 온도를 느끼는 인생이지만 변혁과 전통의 경계가 사라지면서 두려운 병처럼 퍼지는 집단사고 속에서 무서운 건 자신 속에 있는 또 다른 자신의 도즈를 연기해야 했던 장국영. 보는 동안 도즈의 감정에 휩쓸려 파도처럼 너울거렸던 패왕별희.
학창 시절 장국영의 영화보다는 노래를 더 많이 좋아했다. 장국영의 모든 노래가 좋았다. 고교시절 사진부 암실에서 주성치와 장국영의 가유희사 같은 시나리오를 써보리라, 라며 선배들이 빠져나간 암실에서 조금씩 시나리오를 적어보기도 했다. 가유희사 속에서 장국영은 주성치와는 다른 매력으로 웃음을 주었다. 18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꼭꼭 쓰고 다닌다. 마치 장국영을 추모라도 하듯이.
장국영의 영화는 자주 볼 수 없었지만 장국영의 노래는 자주 들을 수 있었다. 장국영, 영어 이름은 레슬리. 대부분 영화 속에 나오는 장국영을 좋아하지만 나는 장국영의 노래가 좋았다. 레슬리가 부르는 투유는 늘 한국을 자주 찾았던 장국영의 모습이 떠오른다. 손바닥에 한글을 적어 이선희와 함께 노래를 부르고, 이소라의 프러포즈에 나와서 함께 찍은 사진을 이소라는 아직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앨범을 몇 개나 가지고 있었는데 커버를 잃어버려 직접 써서 커버를 만들기도 했다. 앨범은 다 잃어버리고 두 개 정도 남아있다. 왜 소중하게 다루지 않았을까.
장국영의 목소리에는 늘 옅은 비애가 서려있다. 그 목소리가 노래가 되었을 때 알 수 없는 끌림에 딸려가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장국영이 신나게 부르는 노래도 어딘지 모르게 슬픈 비를 맞는 기분이다.
https://youtu.be/WSfj9ieBfog 장국영 투유 라이브
학창 시절 사진부 암실에서 선배들에게 허벅지를 난도질당하고 아픈 다리를 주무르고 있을 때 한 선배가 장국영을 들어보라며 주고 갔다. 겨우 일어나 암실 창가에 앉았다. 햇살이 창을 투과해 다리에 내려앉았다. 욱신거리는 다리 위에 앨범을 올리고 ‘최애'를 들었다.
그때 노래를 듣고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가 있을까 생각했다. 넋을 놓고 듣고 또 들었다. 햇살에 반짝이는 하얀 눈이 떠올랐고 그 속에서 빛처럼 부서지는 내 몸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노래를 듣고 있으면 내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존재, 초라한 존재가 아니라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그동안 나를 스쳐갔던 소중한 사람들과 소중한 시간들. 지나간 것들을 기억하고 추억한다는 건 그 순간을 눈물을 흘리며 몇 백번이나 떠올렸을까.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도 나에게는 최고의 순간이었을 그 어느 때. 그때를 기억하는 건 나에겐 찬란하고 빛나는 자산인 것이다.
그때 맞이했던 포근한 온도와 나른한 햇살과 아카시아 꽃과 같은 향을 앞으로 만나지 못할지라도 나의 추억 속에서는 그 장소, 그 공간 그 시간이 그대로 우뚝 서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장국영이 열심히 무대 위에서 땀을 흘리며 ‘최애’를 부르고 있다. 넌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라고 하면서, 너 자체가 사랑이라고 하면서.
https://youtu.be/W9jq62-MIUE 최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