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실이는 복도 많아.
영 한, 영이에게 안기고, 꽉 안아달라고 하면 아플 정도로 꽉 안아주니까. 비록 꿈에서지만
찬실이는 복도 많아.
망해서 아무것도 없는 찬실에게 동생 같은 윤승아는 일도 주고 마음도 나누고 자주 찾아오니까. 서로는 위로해주는 사이니까. 서로는 그런 사이니까
찬실이는 복도 많아.
한글도 모르는 주인집 할매에게 한글도 가르쳐주고 비밀의 방에도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게 되니까. 찬실이가 펑펑 울면 그 예전 숟가락으로 홍씨를 떠서 넣어주던 것 같은 손으로 할매가 토닥여주니까. 할매와 콩나물을 오손도손 다듬을 수 있으니까
찬실이는 복도 많아.
힘들 때면 장국영이 나타나서 이야기를 들어주니까. 장국영은 비록 추위도 타고 아픔도 느끼지만 찬실이를 위해 이야기를 해주니까. 비록 장국영은 귀신이기는 하지만
장국영 씨, 지금보다 훨씬 더 젊었을 때 저는 늘 목말랐던 것 같아요. 사랑은 몰라서 못 했지만(웃음). 내가 좋아하는 일만은 내를 꽈아악 채워줄 거라고 믿었어요. 근데 잘못 생각했어요. 채워도 채워도 그런 걸로는 갈증이 가시지가 않더라구요. 목이 말라서 꾸는 꿈은 행복이 아니에요. 저요, 사는 게 뭔지 진짜 궁금해졌어요. 그 안에 영화도 있어요
경남 사투리로 말하는 찬실의 이 대사는 정말 별거 아닌데 듣고는 별거 아닌 게 아닌 대사였다. 모든 걸 잃고 나서 보니 사는 게 진짜 궁금해진 찬실이에게는 영화가 있었다. 단지 좋아하는 일만으로는 절대 행복할 수 없는 삶에 대해서 궁금해진 것이다. 그 안에 영화가 있다는 걸 알았다. 찬실이는 인생의 대 발견을 했다. 정말 맛있는 대사였다. 세상의 모든 찬실이에게 말하는 대사다
그리고 장국영은 멀리 우주에서 응원한다면서 찬실이 이마에 입맞춤을 해주며 장국영은 자신의 별로 돌아간다
찬실이는 높은 지대에 살고 있는 자신의 집에 놀러 온 후배들과 함께 전구를 사러 다 같이 내려간다. 내려올 때 저 장면의 한 컷은 마음에 들었다. 보름달이 환하게 뜬 날에도 가로등이 있어야 하는 동네를 걷는 주인공들. 주인공들은 저 어둡기만 한 달동네를 비추는 위태로운 가로등 같다. 하지만 가로등의 불빛만은 달만큼 크고 밝아서 모든 것을 비춰준다
찬실이는 복도 많아.
늦깎이 한글 쟁이 할매에게 한 줄을 시를 통해 삶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라도 꼬처러 다시 도라오며능 어마나 조케씀미카
사람도 꽃처럼 다시 돌아오면은 얼마나 좋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