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 예스터데이는 비틀즈의 노래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다. 그게 끝이다. 무려 비틀즈의 노래들을 왕창 갖다 쓰고 영화에 무슨 노래가 나왔지? 하게 되는 영화다

비틀즈의 노래를 광적으로 듣지는 않았고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앨범은 다른 좋은 노래들이 있는 앨범보다 ‘화이트 앨범’으로 그 앨범은 비치보이스의 ‘팻 사운드’를 떠올리게 된다. 팻 사운드의 해설서를 하루키가 번역했을 만큼 그는 팻 사운드 앨범을 사랑했는데 그때 당시 브라이언 윌슨에 대해서 “결국,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브라이언 윌슨의 음악이 내 마음을 두드린 것은 그가 ‘손이 닿지 않는 먼 장소’에 있는 것에 대해서 진지하고 열심히 노래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했다. 그것처럼 비틀즈의 화이트 앨범 역시 그렇다고 생각한다. 화이트 앨범은 백남준의 아트의 세계를 귀로 듣는 기분이다

이런 영화는 우리나라에서는 만들 수가 없다. 기타 하나를 들고 모든 앨범의 모든 곡을 전 국민이 미치도록 좋아하는 가수가 없기 때문이다. 비틀즈가 해체되고 멤버 반 이상이 죽은 후에도 그들의 인기는 오히려 더 높다. 2012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 폴 메카트니가 기타를 울러 매고 무대에 등장해서 ‘헤이 주드’를 불렀다. 그때 비틀즈의 노래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감동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 당시 폴이 부르는 헤이 주드를 실시간으로 1억 명이 시청했다

그리고 우리나라 새벽시간에 모든 여정을 마치고 런던올림픽의 폐막식을 했다. 잠 안 자고 꼬박 밤을 새워 실시간으로 시청을 했는데 마지막에 죽은 존 레논을 깨워 무대에 불러냈다. 퀸의 음악으로 전주를 알리고 ‘이메진’으로 이어지는 부분에서 경기장에 모인 사람들의 숨죽이는 탄성이 감격적이다. 그리고 리버풀 필하모니 교향악단과 어린이 합창단의 어마어마한 지원으로 첫 시작을 노래한다. 1절이 끝나갈 때 존 레논이 나타나며 노래를 이어간다. 존 레논은 하나의 음악적 상징이다. 단순히 영국을 대표하는 가수가 아니라 메시아적인 상징인 것이다. 폐막식의 피날레지만 굉장한 여운이 남는다. 보지 못한 사람들은 한 번 보면서 그 감동을 느껴보기 바람

그런 상징을 영화에서는 78세의 어부로 나타냈다는 게 뭔가 좀 짜증 난다? 허무하다? 열 챈다? 영화의 태도가 그렇다. 비틀즈를 이용해 한 번 거하게 돈을 벌어볼까, 하는 무례를 저질렀다. 게다가 밋밋하게 흘러가다가 비틀즈를 기억하는 두 명의 중년이 나타났을 때 못된 마음의 나는 이제 저 두 사람이 극을 왕창 뒤집는 역을 하겠지! 했는데 조카 크레파스 십팔 색 진달래 같은 전개라니. 협박이라도 하길 바란 나는 정말 나쁜 놈일까. 비틀즈의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전부 그런 좋은 마음씨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걸까. 그리고 주인공이 부모님 앞에서 렛 잇 비를 앞부분만 세 번 부르고 그냥 끝난다. 무려 렛 잇 비인데. 비틀즈 노래를 들고 와서 어째서 노래 한곡을 못 부르는 거지. 렛 잇 비를 그저 앞부분만 부르고 .

이건 마치 치핵, 치열, 치루가 한꺼번에 온 경우다. 3대 항문 질환이 그랜드슬램으로 온 경우랄 수 있다. 항문 피부 꼬리가 나았나 싶더니 곧바로 항문 가려움증, 그게 나으니까 직장 항문 통증이 왔다는 거다. 어떡하면 좋냐

암튼 이 영화는 그런 대단한, 단순히 대단하다고만 할 수 없는 비틀즈의 노래를 치트키처럼 왕창 갖다 쓰고 어어? 하다가 어,,,, 이렇게 끝나버린 영화였다

이 영화에서 볼 건 릴리 제임스밖에 없다. 릴리 제임스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예쁘게 나온다. 예쁘다기보다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스럽게 나온다. 그래서 멍하게 있기만 하는 주인공의 연기와 비교가 된다. 릴리 제임스는 좋은 영화에 많이 출연했지만 어쩌면 가장 인기가 없었던 좀비 영화에 나오면서 개인적인 인기는 제일 많이 얻은 것 같다. 그래서 이 영화는 릴리 제임스 밖에 볼 게 없다는 말이다

캐비어를 떡볶이에 넣어 휘휘 저어봐야 캐비어 맛이 날 리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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