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을 읽으면서 든 하나의 단어는 처절함이었다. 더 이상 처절할 수 없을 정도로 처절하다. 그간 고전소설을 읽으며 들었던 처절함은 남한산성에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소설을 읽으면 생생함이 신경물질이 되어 온 몸을 퍼지는 느낌이 들어 마치 영화를 보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영화를 볼 때는 덤덤하게 흘러가는 이 처절함이 소설처럼 흘렀다
소설을 읽을 때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아 나와서 일일이 각주를 달아가면서 읽었는데 영화를 볼 때 최명길과 이시백과 김상헌의 대사 속에 옛 단어가 나올 때는 수월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소설에서는 정명수가 어떻게 해서 청의 용골대 무리에 속하게 되었는지 자세하게 나오지만 영화에서는 대사 한, 두줄로 유추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게 연기인가 할 정도로 실제 같았던 대장장이 서날쇠의 기술을 김훈은 서술했는데 김상헌이 다른 이들을 제쳐두고 왜 서날쇠에게 왕의 격서를 전달하는 중요한 일을 그에게 맡기는지 알게 된다
남한산성에서 추위와 기근에 시달리는 군사들과 말들을 묘사한 부분은 읽는 동안 왕좌의 게임이 스치고 지나갔다. 죽어가는 말을 끓여 국을 나눠 먹는데 그 비린내에 압도당하지만 생존하려면 먹어야 한다. 캡처는 영화 속에의 그 부분과 소설의 그 대목이다
군병들은 시체를 응달에 펼쳐 놓고 얼렸다. 말의 시체는 얼고 녹으면서 썩어서 먹을 수 없었다. 순청 마당에서 군병들은 갓 죽은 말과 곧 죽을 말을 살폈다. 굶어 죽은 말은 사지가 앙상했으나 대가리와 내장에는 뜯어먹을 것이 있었다. 군병들은 도끼로 말의 사지를 끊어냈다. 대가리를 뽀개고 내장을 발라서 가마솥에 삶았다. 말 누린내에 고양이와 개들이 몰려들었다. 성첩에서 내려온 군병들이 뜨거운 국물에 조밥을 말아먹고 말뼈를 뜯었다. [중략] 군병들은 가마니를 풀어낸 시커먼 지푸라기와 노란 이엉을 작두로 썰어서 섞었다. 거기에 더운 물을 붓고 밀기울을 끼얹어서 삽으로 버무려 말죽을 끓였다. [중략] 말을 삶은 김 속에서 군병들은 허겁지겁 먹었고, 말들은 느리게 먹었다. 허기를 면한 군병들이 멍석 위에 주저앉아 옷을 벗어 이를 잡았다. [중략] 토병들이 김류를 향해 이죽거렸다
영상대감도 말국 한 그릇 드시오. 말 내장이 아주 부드럽소.
아니, 말을 잡아주시려면 살쪘을 때 잡으시지 어찌 주려서 바싹 마른 뒤에 잡으시오.
깔개를 거두어 말을 먹이시고 또 그 말을 잡아 소인들을 먹이시니, 소인들이 전하의 금지옥엽임을 알겠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