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엑시트’에서 의주는 고객인 용남의 가족을 헬기에 태워 보내고 옥상에 남게 된다. 이 장면에서 의주로 분한 윤아의 연기는 좋다고 생각한다. 의주는 옥상에 남아서 밀려오는 두려움과 공포에 그만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20대인 의주가 엉엉 운 건 옥상으로 계속 차오르는 독가스의 죽음에서 피할 수 없다는 극한의 공포 때문만은 아니다. 그 짧은 시간에 지금까지 살아온 길지 않은 생에 대해서 생각했고 거기에서 오는 만감의 교차가 눈물을 흐르게 했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데 둥지에서 떨어진 상처 입은 작은 참새를 보았다. 살려 주려고 손바닥에 올려놓으니 작은 생명체가 손바닥 위에서 숨을 헐떡였다. 그때 동네의 할아버지가 나오더니 야생 동물을 인간이 억지로 살려 주어서는 안 된다, 인간의 보호를 받고 인간의 먹이를 받아먹고, 인간의 손이 타면 나중에 야생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할아버지는 인간과 야생의 보이지 않는 규율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참새를 살리고 싶었다. 하지만 규율에 따르기로 했다. 그것이 인간과 야생이 함께 생존하는 길이다. 다음 날 학교로 가는데 참새를 놔준 곳에서 참새는 싸늘하게 죽어 있었다. 그때 얼마나 눈물이 흘렀는지 모른다. 어른들이 말하는 법칙이나 만들어놓은 규율 때문에 참새를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자신이 바보 같았다. 비록 규칙에 어긋나더라도 눈앞에 도와줘야 하는 누군가가 있으면 그렇게 하리라

 

 

부지점장이라는 타이틀을 받았지만 아르바이트와 다름없는 비정규직인 의주는 자기 자신보다 고객들을 먼저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을 구하고 자신은 용남과 함께 독가스가 올라오는 옥상에 남게 되었는데 밀려오는, 뱃속에서부터 밀려오는 허탈함과 두려움과 공포가 한데 뒤섞여서 눈물부터 터져 나온다. 이제 20대인데 죽음의 공포 앞에, 가족도 친구도 없이 혼자라고 해도 무방할 자신이 내팽개쳐졌는데 거대한 절망 앞에 어쩌 의연할 수 있을까

 

절망 때문에 이렇게 눈물이 터져 나오는 경우가 어디 이 뿐일까. 살면서 그런 경험을 하거나 하게 된다. 열심히 해보려는데 아무것도 안 되고, 해도 해도 넘어지기만 하고, 사람들은 나에게만 뭐라고 하고, 내 편일 것 같았던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없고. 사람들은 숫자와 물질로 나를 측정하려고만 하고. 그러다가 사랑하는 사람마저 잃게 되면 절망 앞에서 의주 같은 눈물이 터져 나온다

 

의주로 분한 윤아는 기존의 연기력 같은 것에서 벗어났다. 아이돌 출신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늘 연기력 논란 중심에 있다. 아이돌은 오디션을 거쳤기에 아이돌 출신은 대체로 검증이 되었다. 게다가 연습생을 거치면서 카메라에 대한 거부감이 없기에 카메라 앞에서 예쁘게 나오는 방법을 안다. 그렇기에 감독이 연기지도만 잘 해준다면 해볼 만하다. 여곡성 같은 경우는 배우에게도 관객에게도 서로에게 상처가 된다. 카메라 앞에서 거부감 없이, 떨지 않는 장점이 있는 아이돌을 갖다가 그 정도 밖에 안 된다는 건 전적으로 감독의 책임이다

 

신파도 없고 클리셰도 없고 메시지가 확실하고 가능성이 있는 영화 엑시트에서 의주가 두려움에 우는 장면은 꽤 해낸, 절박함을 나타낸 좋은 장면이라 생각한다. “사고 현장의 두 분 부디 힘내시길 바랍니다.” 이 한 마디가 재난과 같은 현실의 대한민국의 청춘들에게 할 수 있는 고작의 말이다. 생존, 살아 남는 자만이 희망을 잡을 수 있다. 부디 힘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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