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를 하고 그 해 겨울에 군고구마를 팔아서 번 용돈으로 중고 렌즈찰탁식 카메라를 구입해서 전라도로 삼일 정도 사진을 담으러 떠났다. 그때 분명 가방에 카세트테이프 여러 개를 넣었다고 생각했는데 넥스트 1집 하나 달랑 들어 있어서 3일 동안 이 테이프 하나만 죽 들었었다.

 

망했다 생각했는데 3일 내내 버스 속에서, 잠결에, 걸으며, 두륜산을 오르며, 어둑한 동네에서, 휴게소에서 신해철의 목소리를 들었다. 망할 줄알았는데 3일 후 집에 왔을 때는 내가 찍은 사진보다는 신해철이 쓴 글로 된 단편소설 집을 여러 번 읽은 기분이었다.

 

신해철은 정말 이 몇 곡 안 되는 앨범 속에 큰 세계를 축소시켜놨다. 음악적으로는 신시사이저로 후지산의 폭발 같은 풍부한 음을 표현하는데 개인적으로 잘 모르지만 이런 곡들은 녹음을 잘 해야 한다. 작곡자의 편곡이 생각처럼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녹음이 되어야 한다. 녹음실이라든가 녹음 장비라든가 녹음 기술이라든가에 따라서 듣는 이들의 실망과 행복의 폭이 커 버린다.

 

신해철이 재즈카페 앨범을 만들었을 때 그 앨범을 레코드 가게에서 입고를 시켜주지 않았었다. 당시는 대한민국에 발라드 열풍이어서 한국 가수가 발라드가 아니면 레코드 가게에서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가요제 대상 먹은 신해철이 기껏 만들어 온 음악이라는 게 발라드가 아닌 재즈, 펑크, 록, 랩 같은 생소한 음악이어서 외면을 받고 거절을 밥 먹듯 당했었다.

 

신해철은 ‘영원히’라는 노래에서 말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세상에 길들여짐이라고. 남들과 닮아가는 동안 꿈은 우리 곁을 떠난다고.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꿈을 잃지 말라고 신해철은 노래로 부탁, 위안, 위로, 속삭여 주었다.

 

도시인을 들어보면 한국은 정말 바쁘게 흘러간다. 우리가 점심을 식사라 부르지 못하고 한 끼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점심 한 끼를 천천히 맛을 음미해 가면서 먹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학창시절에는 한 시간 정도 되는 점심시간에 빨리 먹고 공을 차야 했고 군대에서는 배식 받아서 정해진 시간 안에 먹지 못하면 혼이 났고 직장에서는 오히려 점심을 거르는 일이 허다해졌다.

 

도시락 싸 다녔을 때는 엄마가 해주는 음식 속에 갇혀 버려 음식을 느끼는 맛이 좁아졌다. 청년들은 취업을 하기 위해 시간을 쪼개 아르바이트를 하고 학자금 대출을 갚아야 하고 잠 한 번 편하게 푹 자기도 빠듯한 생활에서 작은 위안은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음식뿐인데 그것마저 여의치 않게 되었다.

 

신해철은 알고 있었다. 한국인이 천천히, 느리게 점심 한 끼 정도 먹을 수 없는 구조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을.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래서 그는 대안으로 그럴 바에는, 비록 그것이 어떤 면에서 안 좋을 수 있는 결과를 가져올지라도 ‘만족’이라는 카타르시스에 도달하는 것이 낫다고 본 것이다. 편의점 음식이면 좀 어때? 그 질 낮은 음식이라도 누군가에는 허기를 채워주고 배를 불리게 하는 큰 세계인 것을.

 

그리고 이 복잡하고 빠른 도시인의 생활 속에서 자신이 할 일은 노래로 위안을 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앨범을 듣다 보면 그렇게 느껴졌다. 인형의 기사 파트 2에서 잊지 않고 느리게 간절히 원하면 피그말리온처럼 이루어진다고도 말하는 것 같다. 때로는 그런 바보 같은 사람이 있고, 또 그런 바보 같은 사람들이 꾸준히 무엇인가를 해서 그것을 이룩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아빠가 된 사람이라면, 아이가 없더라도 남자라면 아버지와 나 파트 1에 깊게 빠져들 수밖에 없다. 아버지라는 존재가 어느 날 다 커버린 자식들 앞에서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한 마지막 남은 방법은 침묵뿐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를 흉보던 모든 일들을 이제 내가 하고 있다.

 

스펀지에 잉크가 스며들 듯 그의 모습을 닮아가는 나를 보며, 이미 내가 어른들의 나이가 되었음을 느낀다. 그러나 처음 둥지를 떠나는 어린 새처럼 나는 아직도 모든 것이 두렵다. 언젠가 내가 가장이 된다는 것. 내 아이들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두렵다. 이제야 그 의미를 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그 두려움을 말해선 안된다는 것이 가장 무섭다. 이제 당신이 자유롭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나 였음을 알 것 같다.

 

라는 가사에서 젊었을 때의 정열과 야심에 불타던 기백이 사라져가는 것이 곧 나에게도 닥쳐올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어른이 된 지금 도처에 무서운 일이 있지만 어른은 무섭다고 해서는 안 된다. 누구에게도 무섭다고 할 수 없는 것이 가장 두렵다. 집을 떠날 때 듣던 신해철의 노래와 집으로 돌아올 때 들었던 신해철의 노래는 많이도 달랐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숨을 힘껏 참았다가 한 번에 크게 내뱉었을 때 갑갑하지 않고 시원하다면 할 만하다고. 그 속엔 아직도 꿈이 덜 망가져 있기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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