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애니메이션 에비니저 스크루지의 이야기 크리스마스 캐롤은 저메키스의 2004년 폴라 익스프레스 이후 베어울프를 거쳐 만들어진 영화다. 영화를 보면 정말 실사처럼 만들었다. 십 년 전임에도 불구하고 요즘 생떼를 쓰며 만들어진 상업영화보다 훨씬 잘 만들었고 또 좋다. 영화를 보다 보면 만화를 왜 실사처럼 만들까,라는 의문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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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모양이나 머리카락이나 손짓이나 옷자락의 휘날림 같은 것들이 인위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기술력의 발전을 확인하기 위함이 아니라면 만화를 이렇게까지 실사와 거의 흡사하게 만들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에비니저의 조카인 프레드가 나올 땐 그 눈빛이나 얼굴의 비틀림이나 특유의 목소리가 가지고 있는 부드러움이 누가 봐도 콜린 퍼스의 젊은 시절이잖아! 하게 된다

이 영화가 나오기 전 스크루지의 이야기는 어릴 때 책으로 읽고 많은 버전의 영화를 스쳐봤지만 그저 흘러가는 시간 대하듯 했는데 이 영화가 나온 후부터는 역시 적극적으로 보게 되었다. 어떤 해에는 여름에 볼 때도 있다. 여름에 겨울 영화를 보는 건 차가운 열대어처럼 묘한 기분을 준다. 규칙이나 법칙으로 정해진 것도 아닌데 마땅히 그러한 것에서 좀 어긋나는 기분이 묘함을 증가시킨다. 요컨대 그램린을 여름에 선풍기를 틀어 놓고 본다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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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루지는 늘 혼자다. 옆에 사랑하는 벨, 가족이 있었지만 모두 떠나갔다. 인간은 혼자서 무엇을 해야 할 때가 사실은 많은 것 같다. 책도 혼자 읽어야 하고 잠도 혼자 들어야 하고 글도 혼자 써야 한다. 밥도 혼자 먹는다. 같이 밥을 먹는다는 건 행위에 속하는 것이고 누군가 대신 밥을 먹어 줄 수는 없다. 어쩌면 결국 밥도 혼자 먹는 것에 속할 수 있다. 그러니 크리스마스이브에 옆에 누군가 같이 있다면 꼭 안아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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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나는 아버지 병간호 때문에 크리스마스이브를 2년 동안 병실에서 보낸 적이 있다. 대학병원 바로 옆이 호텔이라 병실에 난 창으로 보면 호텔의 반짝이는 트리의 불빛과 사람들의 즐거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첫해에는 작은 창으로 그 모습을 보면서 내 년에는 나도 저렇게, 하고 생각했는데 다음 해에도 병실에서 같은 모습을 보면서는 언젠가는 나도,라고 생각을 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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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이라고 쓸쓸한 것만은 아니다. 병실에 오래 있다 보면 병실 사람들과도 이런저런 교류를 하게 되고 간이침대에서 자고 일어난 가족들은 서로에게 민낯을 보여준다. 사람이 살면서 형제, 부모 또는 군대 전우들 그리고 부부 사이를 제외하고는 타인에게 민낯을 제공하는 일은 극히 드물지만 병실에서는 여어(나를 보며), 편하게 좀 잤나, 같은 말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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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병실 사람들의 사진을 담아 그것으로 크리스마스카드를 만들어 돌리기도 했고, 아이가 있는 간호사들은 아이의 사진을 편집해서 주기도 했다. 그러니까 병실에서 병이 낫지 않아서 사라지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것대로 나쁘지 않은 생활이었다. 그때에도 레지던트 3년 차 중에 사진에 빠져있던 늘 피곤해 보이던 의사가 있었는데 그 사람과 병실의 환자들과 가족들의 사진으로 병원의 전시실에 전시를 해보자는 기획을 짜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중환실에 들어가면서 그럴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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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크리스마스이브의 밤에 창으로 보는 세계는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전쟁터 같은 병실에도 밤이 드리우면 모두가 고요해지고 잠에 빠진다. 에너자이저 아이들도 밤이면 봉지처럼 푹 꼬꾸라져 잠이 들듯이. 밤이 사라진다면 끔찍하지만 밤만 지속된다면 그것대로 해볼 만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마도 뭔가 하나를 보며 멍하게 시간을 죽이는 건 그 이후 더 심해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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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가 아버지 대신 들어서고 크리스마스이브 때면 온 집 안에 전구를 달고 불을 밝히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조카에게 선물을 주면 무릎에 와서 앉을 때 이 별거 아닌 일이 너무나 별거처럼 느껴져서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아무것도 아닌 생활이, 평온하게 흘러가는 생활이 아아 행복하다고 느껴야 하는 건 정말 절망 끝에 다다라야 하는 것일까. 스크루지는 어떻든 혼령들과 과거, 현재, 미래를 본 후 달라졌다. 마지막에 조카 프레드의 집에 찾아갔을 때 모두가 스크루지를 반기는 장면은 어쩐지 감격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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