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초 투아웃 이후에 터진 극적인 석점 홈런, 세인트루이스는 이 홈런으로 휴스톤을 꺾고 월드시리즈 진출의 희망을 이어갔다. 이것을 놓고 미국야구는 역시 재미있다느니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내가 보기에 우리 한국시리즈도 충분히 재미있었다. 4연승이라는 결과만 놓고 볼 땐 싱거울만도 했지만, 경기내용을 놓고본다면 우리 것도 꽤 재미있다. 예컨대 연장 혈투를 벌인 2차전에서 9회말 원아웃, 국내 최고의 마무리라는 정재훈으로부터 대타 김대익이 쳐낸 동점 홈런이 감동 면에서 푸홀스의 석점 홈런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꼭 4승3패를 해야 치열한 접전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1차전부터 3차전까지 한국시리즈는 그래도 박진감 있고 재미있는 재미있는 경기였다. 삼성이 역전승을 거둔 1차전은 물론 8대 0으로 끝난 3차전 역시 8회 대량득점이 나기 전까지는 1대 0의 팽팽한 투수전이었다.

삼성이 우승을 하는 데 일등공신은 단연 김재걸과 오승환이지만, MVP 투표결과대로 오승환의 위력이 훨씬 더 대단했다. 2차전에서 3이닝을 무실점으로 잠재운 오승환이 아니었다면 선발투수 싸움에서 불리했던 삼성이 이렇게 쉽게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10승 1패 16세이브에 1점대 방어율로 삼성이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오승환이 있는 한 삼성은 당분간 마무리투수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걱정이다. 그간 우리 야구가 재미있었던 것은 삼성이 돈을 물쓰듯 씀에도 불구하고 번번히 우승을 못했기 때문인데, 배구에서 그러는 것처럼 야구에서도 이제 삼성의 독주가 시작되는 게 아닐까 싶어서 말이다. 박진만, 심정수가 모두 삼성으로 간 사실에서 보듯, FA에서 수십억원의 베팅을 할 수 있는 구단은 삼성밖에 없고, 삼성은 그 결과 지나치게 호화로운 선수층을 거느리게 되었다. 다른 종목과 달리 야구에서 삼성이 독주할 수 없었던 이유는 야구의 인적자원이 비교적 풍부해 다른 팀이 삼성을 견제할 수 있기 때문이었지만, FA 제도의 수혜자가 번번히 삼성이 되면서 점차 균형이 깨지는 느낌이다. 작년 시즌 우승팀인 현대는 이제 야구에 돈을 쓸 마음이 없어보이고-여력도 안되겠지만-삼성과 맞붙은 두산은 거의 선수보강이 없어 약체로 분류되었던 팀이다. 그러니 3차전까지 그래도 박빙의 승부를 연출한 것이 두산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미국이야 양키스가 아무리 돈을 쓴다해도 그에 못지않은 돈을 쓰는 보스톤이 있고, 또 구단이 서른개나 되니 한국같이 독주하는 게 무척이나 어렵다. 하지만 삼성에는 돈이 있고, 우수한 선수들이 즐비하고, 게다가 권오준같은 투수를 길러내는 능력있는 감독이 있다. 김세진과 신진식이 모두 삼성에 있는 게 배구의 인기를 추락시켰듯이, 한 팀의 독주는 전체적으로 보아 득보다는 실이 많다. 삼성의 우승으로 환호하는 선동렬 감독의 모습을 보면서 일말의 불안감을 느끼는 건 나 혼자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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