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학생스포츠지, 우리나라의 학생 선수들은 스포츠의 전사로 성장한다. 석사, 박사 선수도 있는 미국과 달리 우리 애들은 어려서부터 수업은 하나도 안듣고 맨날 운동만 한다. 제도적인 문제일 수도 있고, 문화적인 차이일 수도 있다.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니 내년에 LPGA에 진출하는 골프선수 배경은의 인터뷰 기사가 나와있다. 이미 스무명이 넘는 선수가 가있는데 한명 더간다고 크게 달라질 것은 없어 보였기에 별 생각없이 읽다가, 그녀가 1주에 책을 두권씩 읽는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미국골프 2부리그 상금랭킹 3위, 한국 골프 상금왕인 그녀가 나보다 책을 더 많이 읽다니. 난 한달에 한권 겨우 읽을까 말까인데. 그걸 떠나서 운동만 하는 게 아니라 책도 읽는 그녀가 참으로 기특해 보였다.
하지만 그 기특함은 다음 말에 의해 실망으로 변했다. 최근에 재미있게 읽은 책이 김진명의 <살수>라는 거다. 김진명. 난 이 작가를 별로 안좋아한다. 별로 안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의 책은 아예 읽지도 않는다. 민족주의와 반일감정, 핵무장 선동으로 채워진 첫 번째 책은 신선하다고 봐줄 구석이 쥐꼬리만큼은 남아 있지만, 그 다음에 내는 책들 역시 그런 원초적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김진명에 의하면 외환위기도 미국의 음모고, 일본은 무조건 나쁜 놈이며, 거기 맞서 우리 경제를 살리는 삼성은 선 그 자체다. 도박을 다룬 <도박사>를 빼면 <황태자비 납치사건>, <한반도>, <제3의 시나리오> <바이 코리아> 등 모든 작품이 다 그런 식이다. 도대체 김진명이라는 작가는 왜 발전이라는 게 없는가. 내가 그를 멀리하게 된 <하늘이여 땅이여> 역시 뻔한 스토리와 도식적인 인물구도로 무협지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품인데, 심각한 것은 그 책을 읽고난 독자의 반응이었다. 한국인이라는 게 자랑스러웠다나 어쨌다나. 우리 개개인은 그 자체로 소중한 존재인 것이지 국가의 구성원이라서 자랑스러울 건 없어 보이는데 말이다.
을지문덕의 활약을 그린 <살수> 역시 퇴행적인 민족주의에 기대어 책이나 팔아볼 속셈인 듯하다. 어떤 책을 주문했을 때 <살수>의 팜플렛이 와서 읽어봤더니 역시나다. 알라딘에 올라온 독자서평의 제목을 보라. “내가 한국인이라는 걸 일깨워 줬다!” 중국이 고구려를 자기네 역사라고 우기는 시점이란 걸 감안하면 책을 낸 타이밍은 기가 막히지만, 작가가 이걸 빌어서 우리에게 하고픈 말이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다. 수의 백만대군을 막아낸 을지문덕의 영웅담을 되씹으면서 자위하는 게 지금의 우리한테 무슨 도움이 되는지.
LPGA 풀시드를 받은 배경은이 읽은 책이 하필이면 <살수>라는 게 마음이 아파서 이렇게 글을 썼는데, 이런 생각까지 든다. <살수>를 읽는 것과 아예 책을 안읽는 것 중 어느 게 더 좋은 것일까 하는. 책을 워낙 안읽는 풍토에서 <살수>라도 읽는 게 더 나은 것일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