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벽, 박찬호의 경기를 보기 위해 일찍 일어났다. 일어난 보람도 없이 박찬호는 최악의 투구를 한 끝에 2회 원아웃만 잡은 채로 강판되었다. 아웃카운트 4개를 잡는 동안 안타 3개, 볼넷 두 개에다 몸맞는 공까지 두 개를 내줬으니, 인내심이 별로 없는 샌디에고 감독이 강판시킬 만도 했다.

그런 안타까움과 별개로, 이런 생각을 했다. 저 멀리 미국 땅에서 벌어지는 경기를 볼 수 있게 된 게 얼마나 신기한 일이냐고. 그 옛날, 바다를 건너 전해지는 메이져리그 소식에 굶주렸던 나는 스포츠신문에 나오는 얼마 안되는 기사들을 반복해서 읽었고, 전설적인 선수들의 플레이는 얼마나 멋질까를 상상하곤 했었다.

야구만 그런 게 아니었다. 내가 중3이던 86년, 한국이 몇십년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그때만해도 우리나라 경기가 아니면 중계를 안해줘서 난 스포츠뉴스와 신문기사만 가지고 경기내용을 상상했는데, 어쩐 일인지 TV에서 월드컵 준결승 한경기를 생중계해준다고 한다. 새벽 3시로 예정된 그 경기를 보기 위해 난 10시쯤 잠자리에 들었고, 알람에 맞춰 칼같이 일어났다. 하지만 TV는 지직거리기만 할 뿐, 아무런 화면도 내보내지 않았다. 그렇게 한시간을 분노에 떨다가 잠이 들면서 “비가 많이 오거나 무슨 일이 생겼”을 거라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하지만 그날 저녁, 준결승이 예정대로 열렸고, 독일이 프랑스에게 2-0으로 이겼다는 뉴스를 보니까 분노가 다시 되살아났다. 왜 KBS는 우리에게 거짓말을 한 것일까. 그 의문은 지금도 풀리지 않는다.

90년대 중반 케이블TV 시대가 열렸을 때만 해도 그게 그렇게 좋은 것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난 ‘정규방송 관계로 야구중계를 마칩니다’는 자막을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되었고, 전설적인 농구스타 마이클 조던의 화려한 플레이를 안방에서 감상하는 행운도 누렸다. 그러다 박찬호가 메이져리거가 된 이후부터는 맥과이어나 배리본즈같이 꿈에 그리던 선수들을 가슴벅차하면서 볼 수 있었다. 요즘에는 선발로 뛰는 선수가 4명이나 되니 정신이 없지만, 그래도 꿈에 그리던 미국야구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예전의 나는 퍽 심심했었다. 별로 친구도 없고, 스포츠 이외에 다른 취미도 없었던 탓에 주말이면 늘 집에 들어앉아 하는일 없이 허송세월만 했었다. 하지만 직장에 다니는 요즘엔 그때 넘쳐나던 시간이 그립다. 새벽에 경기를 해야 겨우 볼 수 있고, 그게 아니면 스포츠에서는 무의미한 재방송을 보면서 만족해야 하니까 말이다. 좀더 일찍 케이블 TV가 있었고 선동렬이 일본이 아닌 미국을 선택했다면 내 젊은 시절이 그렇게 심심하진 않았을텐데. 하지만 지금이라도 이런 시대가 온 게 어디냐면서 스스로를 위안해 본다. 점점 테돌이가 되어가는 내 자신이 가끔은 한심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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